명나라 가정(嘉靖 : 1522-1566) 연간 때 중국 호북성 기주(　州) 와초패(瓦硝　)라는 조그만 마을에 조상 대대로 의원 일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던 이언문(李言聞)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고향 부근 일대에서 꽤 유명한 의원으로써 알려져 있었다. 이언문에게는 병이 들어 그이 보살핌을 받고 있었던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라는 병약한 아들이 있었다. 이시진의 건강은 아버지 이언문의 자상한 진료와 건강관리로 인하여 산에 올라 약초를 캘 수 있을 만큼 호전되었다. 이 사람이 바로 본초강목(本草綱目)이라는 의서를 지어 한국의 하준이라는 사람과 함께 세계 의학계에 있어서 불후의 업적을 남긴 이시진이라는 사람이다. 이시진은 그의 아버지를 도와 약을 짓다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통의약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언문은 그의 아들이 의사의 길보다는 경서(經書)를 읽어 벼슬길에 올라 입신출세하기를 바랬다. 당시 의원의 일은 비천한 직업에 속해 대부분의 사람이 의원이 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언문은 자기의 직업을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시진은 공부를 싫어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경전(經典)을 공부하여 14세가 되자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시행하는 예비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그러나 중앙에서 치르는 본 시험에는 세 번이나 계속해서 낙방하여 관리로서 입신출세하는 꿈을 접어야했다. 결국은 이시진은 가업을 이어 의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시진은 의원이 자기가 하고 싶어했던 일이었던 만큼 어떠한 고난도 참고 견뎌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이시진의 자는 동벽(東壁), 호는 빈호(瀕湖)이다. 그는 일생 동안 많은 책을 저술했지만 대표작은 역시 본초강목(本草綱目)이다. 이시진은 고대의 약은 초목(草木) 류 즉 식물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중국 고대의 신화상의 제왕인 신농씨(神農氏)가 여러 가지 초목을 친히 시험하여 약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듣고, 태고시대 때 만들어진 약전(藥典)은 초목(草木) 류를 주종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환자를 진찰할 때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약학서가 수천 년 동안 고증이나 수정이 없이 그대로 전해오고 있기 때문에 많은 오류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의사들은 약학서의 오류를 모른 채 그대로 처방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귀중한 생명을 잃게 하는 수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시진은 의약서의 수정 작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의약서의 오류는 모두 의사의 책임이여 약학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시진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의학서의 오류 때문에 생명을 잃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잘못된 의약서를 바로 잡는 일이 극히 어려운 일인 줄 알면서도 기필코 바로잡아 귀중한 생명을 보호해야 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는 우선 옛 의약서의 연구부터 시작했다. 이시진은 단숨에 800여 종에 이르는 약학서를 독파하여 약물에 대한 지식을 넓혀 가는 과정에서 많은 의문을 느꼈다. 어떤 의학서에는 백화사(白花蛇)의 약효는 다른 뱀과는 다르다하고 몸에 24개의 마름모꼴 무늬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 것인가? 또 어떤 의학서에는 물고기는 풀의 종자에 의해 번식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것인가? 이시진은 그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그의 아버지인 이언문에게 물었다. 그의 아버지는 백화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백화사는 우리가 사는 기주(　州)에 많이 서식하기 때문에 기사(　蛇)라고도 불린다. 용봉산 일대에 많이 살고 있는데 다른 뱀과는 그 모습과 생태가 다르다. 너도 직접 용봉산에 올라 한 마리 잡아 시험해 보면 좋을 것이다. 백화사의 특징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시진은 아버지의 조언대로 용봉산에 올라 위험을 무릅쓰고 백화사를 잡아 그 동안 품었던 여러 가지 의문 사항을 풀었다. 이시진은 백화사에 대한 경험을 거울 삼아 의약서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책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하여 연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 후 이시진은 왕진을 갈 때는 반드시 약상자를 어깨에 둘러멘체, 손에는 약초 채집에 필요한 호미를 쥐고 여기저기서 약초를 채집하다가 그 약효를 시험, 확인하였다.

▶백화사(白花蛇)/ 독사의 일종으로 한 번 물리면 오보(五步), 혹은 백보(百步) 내에서 죽는다고 해서 오보사(五步蛇) 혹은 백보사(百步蛇)라고 불리웠다.

이시진이 38세 때, 초왕(楚王)의 초대를 받아 왕자의 난치병을 치료한 일이 있었다. 초왕은 이시진의 의술에 탄복하여 자신의 전속의로 삼으려 했으나 이시진은 약초를 채집하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 후에 황제가 이시진이 명의라는 소문을 듣고 그를 서울로 불러들여 어의(御醫)로 삼았다. 일개 시골의 보잘것없던 의사가 당시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어의가 된 것이다. 그는 황제의 건강과 병을 보살피는 태의원(太醫院)에 재직하면서도 마음은 항상 추진했던 의약서의 수정 작업에 가 있었다. 이시진은 마음속으로 태의원의 힘을 빌려 의약서의 수정 작업을 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 황실의 힘을 빌어 천하의 명의들을 한 자리에 모아 이들이 힘을 합쳐 본초(本草)의 수정 사업을 한다면 얼마나 효과적일까? -라는 생각으로 그의 계획을 상주했으나 황실은 이시진의 건의를 직분을 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오히려 견책 처분의 조치를 취했다. 화가 난 이시진은 어의의 직을 던져버리고 예전과 같이 약상자를 어깨에 메고 왕진을 다니면서 농부, 사냥꾼, 어부, 등을 스승으로 삼아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았다.

" 물고기는 풀의 씨에서 생겨나는 것입니까?"

이시진은 나이가 많이 든 늙은 어부에게 물었다. 어부는 여러 가지 자기가 보고 경험한 실례를 들어가면서 물고기는 대개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암수가 수중에서 방란(放卵)과 방정(放精)에 의해서 수정(授精)을 한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었다. 이시진은 27년에 걸쳐 드넓은 중국 천지를 돌아다니면서 약초를 채집 조사하여 의약서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 그 결과 마침내 본초강목이라는 세계 식물학계와 의학계 역사상 획기적인 저서인 본초강목이라는 책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본초강목은 모두 50권, 190만 자의 한자, 1,892개에 이르는 약초, 11,091개에 이르는 처방, 1110개의 동식물에 대한 삽화를 포함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동양의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본초강목의 약물 분류는 광물, 식물, 동물의 순으로 되어 있으며,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 순으로 기술되어있다. 또한 무기물에서 유기물 순으로, 저급에서 고급의 순으로 기술하여 자연계의 발전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이 탄생하기 200여 년 전의 당시로써는 이러한 분류법은 특기하고도 남을 과학적인 분류라 할 수 있다. 200여 년 후 본초강목을 읽고 난 다윈도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했다.

이시진이 본초강목을 탈고한 것은 그의 나이 61세 때의 일이었으나 불행히도 그 후 십 수년 동안 출간을 못하다가 결국은 이시진은 그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한 채 7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본초강목은 이시진이 죽고 3년 후에나 출간하게 되었다. 본초강목이 한국과 일본에 전해진 해는 출간되고 10년 후인 1606년 경이라고 했다. 또 하나의 동양의학의 정수인 동의보감을 지은 한국의 허준은 1546년에 태어나서 1615년에 죽었으니 이시진은 28년 앞서 나서 25년 앞서 간 허준보다 한 세대 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초강목은 라틴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 등 세계 유수한 언어로 모두 번역되어 있으며 영문판만 하더라도 10여 종에 이르고 있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1-07-25 09:15:03 중국이야기(으)로 부터 이동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