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인 최동이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가 모델이다. 역사무대에서 숙빈 최씨는 천한 무수리의 신분으로 숙종이 총애하는 후궁의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동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그녀의 삶 자체가 지닌 이러한 극적 면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숙빈 최씨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 또 다시 악역을 맡아야 할 비운의 여인이 있으니 그녀가 바로 장옥정, 즉 후일의 장희빈이다. 경종의 어머니인 장희빈 역시 양반이 아닌 중인 집안 출신이다. 게다가 드라마는 그녀의 부모에 대해 아버지는 중인, 어머니는 천민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실제 숙종실록에 그런 기사가 나온다.

그러면 숙종의 치세에 이렇게 천한 신분을 가진 여인들이 왕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미모가 출중해서? 재능이 뛰어나서? 그 이유는 드라마의 향후 이야기 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부분인 만큼 미리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여인의 벼락출세는 조선 후기 서인과 남인의 당파싸움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숙종의 책략이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다.

숙빈 최씨와 장희빈의 악연은 숙종 6년에 발생한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신대출척은 남인 허견이 인조의 손자들인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과 결탁해 역모를 꾀했다 하여 남인들을 조정에서 몰아내고 허적, 윤휴 등을 사형시킨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장희빈의 집안까지 풍비박산 낸다.

장희빈의 큰 아버지는 역관출신으로 무역과 상거래를 통해 한양 제일의 부자가 되었다. 그는 남인의 돈줄이기도 했는데 이웃집에 서인 김석주가 살고 있었다는 게 화근이었다. 김석주는 서인의 뒤를 봐주던 명성대비(현종의 비)의 사촌이며 경신대출척의 고발자이기도 했다. 그는 역모를 고하면서 애매하게 장희빈의 큰 아버지를 끼워 넣었다. 남인의 돈줄을 끊을 목적도 있었겠지만 실상은 그 재물을 자신이 차기하기 위해서였다.

드라마에서 장옥정은 명성대비와 사사건건 대립하는데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집안 간의 구원이 있었던 셈이다. 경신대출척으로 조정에서 쫓겨난 남인들은 그런 장옥정을 눈여겨봤을 것이다. 그리고 장옥정을 남인 집안 출신인 장렬왕후(인조의 계비)의 처소에 궁녀로 들여보낸다. 증조할머니에게 문안인사를 다녀야 하는 숙종의 동선을 고려한 포석. 마침내 숙종의 눈에 든 장옥정은 왕자 윤(경종)을 낳고 희빈의 자리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장희빈을 후원해 궁궐에 들인 남인 조사석이다. 숙종실록에 따르면 조사석은 훗날 우의정에 제수되는데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이 나서 반대했다고 한다. 이유인 즉, 장희빈의 어머니가 한때 조사석의 가노였으며 둘 사이에 연분이 나 장희빈을 낳았다는 것. 결국 김만중은 처벌당하지만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드라마 속 남인의 지도자 오태석(정동환)은 바로 이 역사인물 조사석을 모델로 삼은 듯하다.

가진 자, 잃은 자, 재미 본 자

사료에서 숙빈 최씨가 등장하는 때는 남인들이 장희빈을 내세워 다시 정권을 잡는 기사환국 (己巳換局) 직후다. 기사환국으로 조강지처인 인현왕후 대신 장희빈을 왕비에 앉히고 서인의 영수 송시열, 김수항을 죽인 숙종이 이번에는 궁중에서 세숫물을 떠 나르던 무수리 한 사람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바로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동이)다.

그렇다면 천한 무수리가 숙종의 눈에 든 것은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드라마에서처럼 우연히 함께 담장을 넘다가 눈이 맞은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숙빈 최씨가 원래 서인 김춘택의 가노이자 연인으로 그의 지시에 따라 궁궐 안의 정보를 캐던 여인이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조사석이 일부러 장희빈을 숙종의 눈에 띌 만한 곳에 들여보낸 것이라면, 계략의 달인 김춘택이라고 못하였을까?

김춘택의 할아버지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였고, 종조부는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이었다. 서인 명문가 출신인 김춘택은 정권탈환에 부심하던 서인들을 규합하여 남인들과 장희빈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김만중의 한글소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가 이 무렵에 지어진 것이 과연 우연일까? 시기심 많은 교씨가 간계를 써 사씨부인을 내쫓는다는 이야기는 폐비 민씨(인현왕후)에 동정적이던 민심을 자극하고 장희빈을 악녀로 몰아갔다.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친 김춘택은 남인들의 폐단을 한껏 부풀려 숙종에게 전달한다. 물론 메신저는 숙빈 최씨였다. 그녀의 베갯머리 송사로 남인들은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장희빈은 중전에서 후궁으로 강등된다. 이것이 이른바 갑술환국(甲戌換局)이다. 조정에 복귀한 서인들은 남인의 씨를 말렸다. 남인들이 다시 중용된 것은 반세기 후 정조 대에 이르러서였다. 채제공은 숙종 시절 여인을 정치에 이용한 것에 대해 자아비판한 후에야 요직에 올랐다.

이처럼 역사무대에서 숙종의 치세는 잦은 환국으로 얼룩져 있다. 장희빈과 숙빈 최씨는 각각 남인과 서인의 미인계에 따라 궁궐로 들어갔고 처참한 정변의 씨앗이 되었다. 그렇다면 숙종은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고 미인계에 놀아난 것일까? 드라마에서는 숙종을 로맨틱한 군주로 그리고 있지만 역사기록을 보면 오히려 비정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한때 아내였던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리고, 갑술환국 후 숙빈 최씨를 멀리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숙종은 집권세력을 언제든 내치기 위해 견제세력의 미인계를 짐짓 용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장희빈과 숙빈 최씨 중 가진 자는 누구고, 잃은 자는 누구인가?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오직 재미 본 자들만 있을 뿐이다.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비정해질 수 있는 정치인들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난세의 정치공학은 불행히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권경률 ㅣ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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