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일요일' 이라 불리운 영화 '블러디 썬데이'를 본 게 얼마 전인데, 낯선 영국배우들이 나와 열연을 펼쳐 상당히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난다. 최근 작가 황석영씨가 5.18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부르면서 그런 류의 사건들은 정치선진국이라 불리운 영국같은 나라에서도 있었다고 말하면서 역사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한다고 해서 화재를 낳기도 했다. 아마도 그가 인용한 게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이었던 것 같다. 하긴, 역사적인 의미나 사건이 일어난 배경과 상황 들은 80년 광주 5.18과 '피의 일요일' 사건이 아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황씨가 이 두 사건의 본질을 잘못 알고 말한 측면이 있긴해도 두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이나 사건 이후의 사후처리, 재판과정 등은 아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건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위 영국이란 나라는 공식 명칭이 UNITED KINGDOM 으로 잉글랜드를 비롯해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그리고 1922년 에이레 공화국(아일랜드)이 독립하면서 북아일랜드만이 영국령으로 남게 되어 현재의 왕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들 왕국들은 서로 다른 민족으로 특히 아일랜드의 경우는 섬나라 영국에서도 또 다른 섬으로서 존재하면서, 영국에 복속하기를 거부하며 끝없는 독립투쟁을 하기로 영국정부로서도 아주 큰 골칫거리였다. 결국 에이레 공화국이 독립을 하게 됐지만, 그 중에서 아일랜드 북쪽에 위치한 북아일랜드가 영국령으로 남게되는 과정을 보면, 영국이 아일랜드를 오랫동안 식민통치하면서 가톨릭을 믿는 민족으로, 저항심이 타지역들보다도 무척 강했던 이 지역을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영국의 신교도들을 집단이주시키면서 이 지역에 신교도들이 기득권을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즉, 모든 경제적 교육적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면들까지 극한의 차별을 통해 신교도 우대정책들을 펴고, 이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줌으로써 이곳은 사실상 아일랜드 민족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남게 된 셈이다. 그래서 아일랜드 민중들 속에선 이곳을 북아일랜드라 부르지 않고 단지 지역명인 얼스터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일, 일제가 한반도에서도 같은 방식을 썼다면 어땠을까... 즉,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에만 일본인들을 집단이주시켜 같은 방식으로 통치전략을 폈더라면, 아마도 한국은 남북으로 갈라진 것 외에 지금의 경상도 전라도 지방은 예외적으로 일본령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일제가 너무 욕심이 많아 한반도 외에도 중국까지 먹으려고 해서 길게 못 내다본 것이 우리에겐 오히려 행운이 된 셈이랄까...)

영국령으로 남게 된 북아일랜드에는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는,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들은 사회 상층부와 경제권을 쥐고 있는 신교도과의 끝없는 전쟁을 벌이게 되고 무장투쟁을 위주로 하는 폭력단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 IRA (Irish Republican Army) 다. 본래 IRA 는 아일랜드의 영국으로부터의 완전독립을 목표로 하는 독립군 조직이었으나, 에이레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북아일랜드가 영국령으로 남게되자 완전한 독립을 부르짖으면서 북아일랜드에 잔류하며 무장투쟁을 벌이게 된 셈이다. 이 IRA가 극한적인 무장투쟁을 벌이자 북아일랜드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있던 신교도들이 경찰력과 군사력을 동원해서 탄압을 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양대 세력의 감정은 물과 불처럼 화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말하자면, '피의 일요일' 사건이란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그 본질을 이해하게 되는 셈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쥔 신군부세력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항쟁을 벌인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5.18 광주민중항쟁과 '피의 일요일' 사건과 '비슷한' 성격으로 본 황석영씨의 인식은 확실히 작가로선 본질을 외면하고 경솔하게 발언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이 광주민중항쟁과 진행되는 과정이 비슷하고, 사후처리나 재판과정까지도 비슷하다는 걸 부정할 순 없는 듯하다. 이 싯점에 그 사건을 추적해가는 게 의미있는 일인 것은 그 사건의 진행과정과 사후처리 등이 80년 5월의 광주와 비슷하기도 하려니와, 오히려 오늘의 현 정부가 행하는 정책들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72년 1월 31일, 북아일랜드의 델리 시민들은 영국정부의 불법억류에 반대하고 시민권을 주장하기위해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기로 하면서, 당시 델리 시민권협회 대표이자 영국의화 하원이기도 한 아이반 쿠퍼가 IRA의 무장투쟁방식을 반대하며 평화행진을 주도한다. 쿠퍼는 비폭력적인 시위만이 그동안의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역설하면서 시민들이 행진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북아일랜드 지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시위행위를 불법으로 규정지은 영국정부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서 도시를 봉쇄하고 있는 중이었다. 영국정부로선 이번 시위도 잠재적인 폭력사태로 번질 위험이 있다고 간주해서, 폭도진압을 위해 공수부대까지 동원하는 강수를 두고, 진압군 총사령관인 포드장군은 애초부터 평화시위 자체를 부정하고 시위 중 발생할지도 모를 어떤 자그마한 돌발상황에도 즉각 반격하도록 명령해서 상황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던 중이었다. 시위 주도자인 쿠퍼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행진루트를 변경하기도 하지만, 행진에 참여했던 일부 청년들이 대열에서 이탈해 돌을 던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점차 상황은 통제불능의 사태로 발전했다. 이런 사태로 공수부대는 과잉진압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더욱 대규모의 공수부대가 투입되면서 결국 진짜 인명살상용의 진짜 총탄까지 사용하게 되며, 급기야는 공수부대의 무차별총격으로 노인과 부녀자들까지 도합 13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당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된다.

이 사건의 처리는 당시 민주국가라 자처했던 영국이란 나라의 실체를 의심케 할 만큼 엉터리와 조작이 난무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단지 몸만 시위에 참가했던 17세의 청년 제리가 공수부대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지만, 폭탄테러범으로 조작되는가하면, 영국재판부는 이 평화적인 시위가 공수부대병사들이 IRA의 선제공격에 자극받아 자위권 행사로 정당한 반격을 한 것이란 영국군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더구나 과잉진압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만든 책임이 있는 영국군들은 상황 자체를 조작하여 책임을 면케하고, 심지어 영국여왕으로부터 그런 지시를 내린 지휘관들에게 훈장까지 수여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이르게도 된다.

권력을 쥐고 있는 측에서 보면, 자신들의 잘못을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문명이 발전하고 시민들의 의식 자체가 이젠 그런 야만적인 상황 자체를 용인하지 않을 만큼 성숙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권력을 쥔 사람들은 그 힘을 과시하고 자신들의 의도대로 휘두르길 좋아하는 속성이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본산이라 자처했던 나라, 영국에서도 그런 야만적인 일들이 불과 몇십년전만해도 버젓이 일어났었고, 그로부터 10년쯤 뒤엔 아시아의 신생민주국가 한국에선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세력들이 민주화를 부르짖던 광주시민들을 총칼로 짓밟는 사태가 일어나고, 디지털 첨단시대인 오늘날에도 미얀마에선 총칼로 집권한 무자비한 군부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발전하는가? 황씨의 말을 빌면 분명히 역사와 사회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오늘의 한국이 처한 상황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마치 80년 광주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오늘의 한국정부가 저지르는 만행을 보면, 확실히 한국은 퇴행적으로 변해버렸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철거민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달라며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무장테러범들 퇴치때나 투입되는 경찰특공대들을 시위하는 사람들의 몇십배나 되는 인원들을 투입해서 사람들이 6명이나 희생된 것도 모자라 시위하던 사람들을 테러범들로 뒤집어 씌우지를 않나, 정부의 쇠고기 졸속협상을 문제삼아 비판하는 언론들을 옥죄어 수사하는 것도 모자라 체포해서 손봐주는 것이라든가, 시위장에 있던 사람이면 외국이건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건 두들겨패서 무작위로 끌고가질 않나, 인터넷에 정부 비판하는 글을 썼다하여 체포해서 몇달간을 구속상태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시위하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끌고가 사상최대인 46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연행해가는 사태를 만들기도 하니... 미얀마나 북한을 철저히 통제된 독재국가로 비웃을 자격이 과연 우리에게 있을까... 오늘 광주 5.18, 29주년을 맞이하며 문득 떠올려본 생각이다. 더구나 종교를 믿고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오늘의 현실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처지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3-01-20 12:38:02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