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과거 - 『김형욱회고록』 제2권 중에서

<관련자료>

황태성건과 관련되는 김종필, 박정희의 사상적 경력을 현장목격자, 증인, 관련된 일간신문기사, 군법회의 재판기록 및 미군정보당국의 자료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김종필, 박정희는 공히 부역자 및 부역자가족명부에 기록되어 있다. 우선 김종필은 이미 타계한 박정희의 가형이자 자신의 장인이 되는 박상희를 대면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김종필 자신의 가형인 김종익이 한때 충남 부여에서 공산주의 단체인 교련연맹의 위원장을 지낸 바 있었다. 해방후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원들이 김종필의 집을 급습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김종익은 피신하고 그 소란통에 김종필의 부친이 충격을 받아 뇌졸중으로 졸도, 그후 사망한 사실이 있다.

이상에서 적시한 사실만으로는 김종필이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인물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나 미군당국은 김종필에 대하여 적지않은 의혹과 관련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김종필은 미 조오지아주 육군보병학교 초등군사반 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경향신문 지상에 미국을 비판하는 소감을 발표한 바 있었는데 미군당국은 그 원문은 물론 번역문까지 수집하고 있을 정도이다. 특히 5.16혁명후 1962년 6월 10일 화폐개혁 당시 김종필이 오직 박정희와 당시 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이던 유원식 두사람하고만 상의, 미국에 전혀 사전통고도 없이 새 화폐를 영국에서 찍어온 사실에 격분, 김종필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기에 이르렀다.

박정희는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 본적을 둔 박성빈의 5남으로 1917년 9월 30일 출생하였다. 첫째형 박동희는 지금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둘째형 박무희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으며, 셋째형 박상희는 전술한 바와 같이 대구 10.1폭동에 가담하였다가 경찰에 피살당한 공산주의자였고, 넷째형 박한희는 호적에 올리기도 전인 어린때에 요절하였다. 따라서 박정희는 사실상 박성빈의 4남이 된다.

박정희는 향리에 있던 구미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할 만큼 우수한 학생이었다. 대구사범 졸업후 경북 문경에 있던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 그곳에서 교사의무복무연한 3년을 보냈다. 당시 박정희의 월급은 35원이었는데 하숙비를 제외한 금액을 전액 가난한 부친에게 송금하곤 하였다. 교사생활 3년을 마친 박정희는 중국대륙으로 웅비할 것을 결심하고 만주로 건너가 신경(新京)에 잠시 머물며 장래의 행로를 모색하다가 군인의 길을 택하여 입신할 것을 결심하고 만주국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이때가 1940년 봄이었다. 당시 만주군관학교에는 조선인, 일본인, 만주인, 몽고인 청년들이 모여 있었는데 사용어는 중국어였다. 박정희가 들어간 해의 클라스는 2백명이었는데 만주청년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본인이 50여명 그리고 조선인이 12명이었다. 이 12명 중에 박정희를 포함 전 1군사령관 이한림도 끼어 있었다.

2년후인 1942년 박정희는 금메달표창을 받은 우등생으로 초등과정을 마쳤는데 졸업장에서 재학생의 송사에 답하는 졸업생의 답사를 낭독하기도 하였다. 그 답사의 내용중에는 "만주국의 왕도 낙도를 지키고 대동아공영권을 확립하는 성전에서 나는 사꾸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하는 구절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튼 우수한 성적과 일본천황에 대한 철저한 충성심을 인정받은 박정희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연습과정에 입학하는 특전을 누렸다. 여기에는 역시 우등생으로 졸업한 이한림도 동해하였다. 1944년 일본육사 제57기생을 3등으로 졸업, 졸업과 동시에 일본 육군소위로 임관된 박정희는 잠시 일본내 마쯔야마 제14연대에 배속되었다가 곧 중국 열하성에 있던 만주국 보병 제8연대 소대장으로 배속, 주로 만리장성 부근의 중국 팔로군의 활동지역에서 팔로군의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을 지휘하였다. 이때 박정희는 창씨개명하여 오까모도 미노루(岡本實) 소위, 통명으로는 다까기 마사오(高木正雄)가 되어 있었다.

1945년 7월 중위로 진급한 박정희는 소속돼 있던 제8연대가 영안(寧安)으로 이동함에 따라 그곳으로가 있던 차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에 따라 하루아침에 무장해제를 당하고 말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중, 일본에 대해 증오심을 품고 있던 만주인 하사관들의 보복행위로 패잔병의 말로의 비참함을 되씹고 있다가 군복을 벗고 부대를 이탈, 피난민대열에 끼어 북경에 도착하게 되었다. 마침 당시 북경에 있던 광복군 제3지대를 찾아가 서둘러 광복군조직에 가담, 그후 전투경험을 인정받아 북경지구 광복군 제1중대장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이미 오래전에 학병을 탈출하여 광복군에 가담, 간부로 있던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張俊河)가 그곳에서 박정희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장준하는 박정희가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도 일본을 탈출하지 않았다는 점, 만일 일본이 계속 득세하고 있다면 박정희는 여전히 창씨개명한 일본인장교로서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학살하고 있었으리라는 점, 그러기에 박정희는 기회주의자라는 점 등을 들어 그를 한때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는 사실이다. 박정희와 장준하간의 불화는 이미 18년간의 내력을 가진 뿌리가 깊은 것이다. 따라서 조만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장준하가 사상계의 필봉을 들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정희만큼은 한국의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거의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 장준하에게는 18년간의 반목과 불신의 한 외연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경지구 광복군에 가담하여 1년을 보낸 박정희는 1946년 5월 귀환동포를 싣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환선에 승선, 7년만에 고향인 상모리에 돌아왔다. 곧 동년 9월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국방경비대 사관학교에 간부후보생 제2기로 입교하여 재훈련을 받고 한국 육국대위로 임명되어 육군사고나학교 교관으로 재출발하였다. 그후 육군본부 정보국에 배속되어 곧 소령으로 진급, 작전정보실장을 맡아 북한정보를 취급하고 분석하는 일을 맡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박정희가 고향 상모리에 돌아왔던 1946년 5월을 전후하여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와 그의 동지 황태성은 대구지방에서 공산주의운동을 격렬하게 전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박상희는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상당히 총명하고 지도력 있는 인물로서 특히 박정희가 여러 형들 중에서도 가장 존경하던 형이었다고 한다. 박상희와 박정희 그리고 황태성이 공산주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시간과 기회는 충분하였으리라 판단된다. 박정희가 고향에 돌아와서 3개월쯤 되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러 서울로 올라간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서 소위 10.1폭동은 일어났고 그 와중에서 박정희가 가장 존경하던 형 박상희는 피살된 것이다. 박정희는 황태성을 매우 존경했으며 어렸을 때 그에게 빠지지 않고 세배를 다니기도 하였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이던 기간중 박정희는 남로당조직책 이중업(李重業)의 지령을 받은 군부연락책 이재복(李在福)에 의해 남로당 군사부장으로 임명되어 국방군내에 남로당의 세포조직을 통괄하는 군부조직책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박정희가 어떠한 경로로 이중업, 이재복과 접선됐는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문제의 황태성이 이 접선을 주선하였으리라고 추측되고 있다.

1948년 10월 20일, 여수 서방 신월리에 주둔중이던 국군 제14연대가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반란(이하 여수순천반란사건)을 일으켰던 당시 박정희는 육군사관학교 세포책을 후임 생도대장 소령 오일근(吳一根)에게 인계하고 국군 제4연대를 거쳐 육군본부 정보국에 전임되어 있었다.

여순반란사건이 진압되고 즉시 주모자에 대한 재판이 개시되었다. 주모자 중령 오동기, 중령 김종석, 소령 나학선 등과 사건 수사과정레서 덜미가 잡혀 체포된 남로당 조직책 이중업, 군부연락책 이재복 등 89명에게 1948년 11월 1일 육군보통군법회의는 국방경비법 제18조, 제32조, 제33조를 적용, 사형을 언도, 동월 7일 광주고등군법회의는 이중 28명에게 사형을 확정하였다. 이 28명 중에서 1명을 제외한 27명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형집행을 면한 문제의 인물은 바로 남로당조직책이자 반란사건 배후의 수괴였던 이중업이었다. 이중업은 정부수립직후의 혼란을 이용, 여간첩 김수임의 도움을 받아 일시 석방된 틈을 타서 김수임의 애인이자 남로당간부였던 이강국(李康國)과 비슷한 시기에 월북하였다.

여순반란사건을 계기로 뒤늦게 군부내 남로당세포조직이 의외로 광범하다는 것을 인지한 정부는 당시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이던 이범석(李範奭)의 특명으로 숙군에 착수하였다. 제1차 숙군파동시 박정희는 당시 마산주재 국군 15연대장 중령 최남근(崔楠根), 육사 생도대장 오일근 및 박정희의 권유로 군입대 전에 공산당에 가입했던 이주일(李周一, 현 국가재건 최고회의 부의장) 등 1천여명과 같이 체포되었다.

최남근 박정희 일파에 대한 숙군공판의 군법회의는 구 통위부 장교식당을 임시법정으로 사용, 당시 육군참모총장 이응준(예비역중장)이 설치장관이 되어 심판부는 중령 김완룡을 재판장으로 하여, 대위 김태현(예비역대령), 대위 김유제(예비역중령), 중위 박재명(현 육군소장 및 법무감) 등 7명으로 구성하였으며, 검찰부는 당시 법무감이던 중령 이보형(예비역준장)과 중위 신모(6.25동란시 전사)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관선변호인은 중위 최영희(6.25동란시 전사)가 맡았다. 당시 박정희의 조서작성을 담당한 자는 육군방첩대(SIS) 소속 대위 이한진(예비역대령)이다. 법정에서 박정희피고인은 깨끗이 이발을 하고 반짝일만큼 머릿기름을 많이 바르고 있었다. 복장은 당시 육군예복이던 짙은 구렛바색 군복을 입고 있었으며 피의사실을 순순히 자백, 시인하였다. 담당조사관 이한진 등 방첩대원이 시종 방청하고 있었다.

동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기간중 박정희와 친교가 깊었던 인물들이 다음과 같은 중요부서에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와 같은 만군출신 준장 정일권(현 주미대사)은 육군참모부장이었고, 역시 같은 만군출신 중령 백선엽(예비역대장)은 육군작전국장직에, 중열 황헌친(예비역준장)은 육군고급부관이란 자리에, 그리고 동기생 소령 김안일은 조서작성 담당자 이한진의 직속상관인 육군방첩대의 대장으로 있었다.

1949년 2월 8일에 시작된 서울고등군법회의는 동월 13일의 선고공판에서 73명에게 실형을 언도하였다. 중령 최남근에게는 총살형, 소령 박정희를 비롯하여 소령 김학림, 소령 조병건, 중령 배명종 등 4명에게는 무기징역이 내려졌다. 그외 18명에게 15년 징역, 24명에게 10년 징역, 23명에게 5년 징역이 떨어졌다. 대위 이주일, 대위 정진, 중위 한동석, 중위 박병순, 중위 서정학 등은 심증은 또렷하나 물증이 약하여 형이 면제되고 무죄방면되었다.

이상의 사실은 당시 경향신문(1949년 2월 17일자)와 서울신문(1949년 2월 18일자)에서 확인하였으며 이 사건을 보도했으리라고 유추되는 기간동안의 기타 주요신문철은 모두 실종되었다. 육군문서창에 보관중인 군법회의관계서류철에서 동 제1차 숙군공판기록이 완전히 누락되어 있음도 주목할만 하다.

다만 우연한 일치로 5.16혁명이 발발했던 1961년 5월 16일자로 간행되었던 공보부발행 『한국관계해외논조연감총집』 제927페이지에 이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동 서적에는 「박정희씨가 제1군참모장 재직당시 남로당의 군사부장으로 복무했으며 1948년 북조선정부를 지지한 여순반란사건으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우인 장교들에 의한 감형의 도움을 받아 군에 다시 복무케됐다」고 기록되고 있는데 여기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라는 대목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의 착오라고 판단된다.

박정희는 즉시 육군소령에서 파면됨은 물론 기결수로 수감될 직전에 처해 있었다. 여기에 전술한 육군정보국장 백선엽과 SIS대장 김안일이 적극적으로 빅정희의 구명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주로 정일권을 움직여 박정희가 사실상 사전에 백선엽에게 자수했으며 더불어 군부내 공산당세포조직의 전체명단을 제공하였으며, 당시의 공산당 숙군작업이 그만큼이나마 진전된 것은 순전히 박정희의 공로이며 게다가 그처럼 공산당사정에 정통하고 있던 박정희가 없이는 공산당과 대결하는 육군정보체계를 운영하기 곤란하다고까지 말하면서 육본 고위참모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이들의 구명운동은 당시의 국내정세라는 것이 여간첩 김수임이가 국정을 주름잡으며 여순반란사건 핵심주요인물 이중업을 빼돌릴 수 있었고, 국회 내에서는 후일 국회푸락치사건의 수령 김약수가 국회부의장으로까지 버티고 있었던 정도였기 때문에 이들의 구명운동은 그 허점을 틈타 주효하게 되어 박정희는 형집행정지로 간신히 처형을 면하고 육군에서 파면된 것으로 끝나는 요행을 잡았다. 그러나 그런 혼란을 이용한 박정희구명운동이 효과를 거둔 것은 시국혼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결정적 이유는 박정희가 남로당군부책임자만이 알 수 있는 군부내 공산당세표조직의 전모를 고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1949년말까지 무직자노릇을 하던 박정희는 1950년에 들어서서 6.25발발 직전에 다시 육군본부정보국에 무보수 문관으로 고용되었다. 그것은 당시 공보국장이었던 이용문이 경질되고 후임으로 대령 장도영이 들어서자 박정희는 장도영에게 접근하여 통사정, 장도영은 정일권과 소령 이기건의 지원을 받아 박정희를 구명하였다. 박정희는 곧 육군정보국 정보과에 배치되어 정보과장이던 소령 유양수(전 국가재건최고위원)의 지시를 받으며 무보수로 일하는 일방, 과원들의 모금과 정보비 일부를 떼어 받아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비공식문관은 6.25발발후 장교부족사태와 전시하의 혼란을 이용, 정보국장 장도영의 추천을 받아 당시 복직심사위원장이던 황헌친과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승진되었던 정일권의 도움을 확보하여 장교복직운동을 시작하였다. 여기에 강문봉과 이기건도 적극 동조하였다. 정일권 등은 이를 당시 국방장관 신성모에게 상신하여 허락을 받아내어 박정희는 파면전과로 만 2년을 경과치 않으면 장교복직은 물론 정식문관으로도 채용될 수 없다는 군인사법의 제한을 넘어뛰어 다시 육군소령으로 복직하게 되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번 재출발한 박정희는 그의 사상관계 전과 때문에 진급될 때마다 곤욕을 치루었고 더불어 일선지휘관직이 불허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후 현재까지의 박정희의 진급과정과 경력은 이미 상세히 알려졌으므로 본 보고서에서는 생략한다.

다음은 박정희가족 및 결혼생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박정희의 첫 번째 아내는......

나(김형욱)는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남산 중턱에 있던 내 사무실의 북쪽으로 뚫린 창에는 북악산이 보이고 있었다. 나는 좀체 피우지 않고 다만 내방객을 위해 마련해 두고 있었던 담배를 한가치 피워 물고 그 북악산 기슭아래 자리잡고 있는 청와대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예고된 일정표에 따르면 박정희는 아마 국무회의를 주재한 후 막 청와대 거실에 돌아와 있을 시간이었다. 심한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익숙치 않은 담배때문이었는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남산에서 건너다 보이는 북악산과 그 사이에 있는 서울시내에는 아름다운 낙조가 깃들고 있었다. 그것은 한폭의 수채화였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09-04-02 23:04:42 한국사(으)로 부터 이동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