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을 아십니까.

　김학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드라마 <태조왕건>에 나왔던 배우를 떠올릴 겁니다.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1916~2001)입니다.

저는 김학철선생을 항일운동을 연변 조선족 문학가란 정도로 이름만 알고 있다 95년 9월김학철 선생의 자서전격인 <최후의 분대장>을 읽게 됐습니다.

저에겐 <최후의 분대장>은 잊을 수 없는 책입니다. 저는 94년 11월 한겨레가 아닌 다른 신문사에 수습기자로 입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불편했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95년 가을 한겨레 공채 시험을 볼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신문사를 다니고 있을 때라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95년 8월말 한겨레 입사 시험 일정이 공고되자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그래서 9월 말 추석 연휴 사흘 동안 집중적으로 시험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제게는 황금과 같은 사흘이라 정말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시험 공부에 전념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최후의 분대장>이란 책때문입니다.

　연휴 첫째날 아침 일찍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점심을 먹기위해 밖으로 나가면서 일이 꼬였습니다. 밥 먹고 책구경을 하러 들린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게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 <최후의 분대장>이었습니다. 서점에서 서서 책을 잠깐 훑어보다 이거 재미있겠다 싶어 7천원을 주고 샀습니다.

　그런데 도서관 자리에 앉아 잠깐 보겠다고 편 <최후의 분대장>을 도저히 덮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 한켠에서는 ‘황금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조바심이 불처럼 일었지만, 김학철 선생의 파란만장하고 질풍노도같은 생애가 제 마음을 꽉 붙잡았습니다. 결국 그 다음날 점심때까지 410페이지짜리 <최후의 분대장>을 다 읽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읽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서 다시 읽기 시작해 그 다음날 점심때까지 읽었습니다. 이틀을 몽땅 <최후의 분대장>을 읽고 연휴 마지막날 저녁에야 ‘내가 지금 정신이 있나 없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코 후회는 되지 않았습니다.

　몇년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체 게바라 바람이 불었습니다. 게바라가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김학철 선생은 게바라 못지 않게 역사의 한복판에서 격동적인 삶을 산 분입니다. 김학철 선생의 글을 읽으면 우리에게도 이런 대륙을 넘나드는 풍운아가, 혁명가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도대체 김학철이 누군인데’는 궁금증이 드는 분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김학철 선생의 책을 읽어보십시오. <격정시대> <해란강아 말하라> 같은 소설도 좋고 <최후의 분대장>이나 <우렁이 속같은 세상-김학철 산문집>(2001년 6월 창작과 비평, 8천원)도 좋습니다.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어 이것도 힘든 분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세요. www.kimhakcheol.com을 치면 김학철 선생의 글이 실린 홈페이지가 뜹니다. 중국 연변에서 운영하는 이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는 ‘사나운 비바람이 치는 길가에/다 못가고 쓰러진 너의 뜻을/이어서 이룰 것을 맹세하노니/진리의 그늘밑에 길이길이 잠들어라/불멸의 영령’이란 ‘조선의용군 추도가’와 웃고 있는 김학철 선생 사진이 나옵니다. 조선의용군 추도가는 김학철 선생이 작사한 노래입니다.

　김학철 선생을 전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를 좀 하겠습니다.

　김학철 선생은 1916년 원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김 선생 본명은 홍성걸인데 항일 투쟁 과정에서 쓴 김학철이란 이름이 굳어졌습니다.) ‘거센 파도가 안벽(岸璧)을 들이 덮칠 때마다 방바닥이 움실움씰 들노는, 게딱지 같은 삼간 초가집에서 나는 태어났다’(<최후의 분대장> 11쪽)

　소설가 이호철 선생과 김학철 선생이 원산 덕원군 현면 현동리로 고향이 같습니다. 이호철선생은 김학철 선생을 이렇게 말합니다. "크고 작은 일에 절대로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 당신 본대로 꺼리낌없이 털어놓고 뿐만 아니라 몸소 실천에 옮기는 사람, 주위 눈치나 보며 우물쭈물하는 것과는 애당초에 거리가 먼 사람, 본대로 느낀대로 단 한방에 장작 빠개보여주듯이 선렬하게 보여주는 사람, 그 어떤 강한 권력하게 보여주는 사람, 차리는데 있어서도 앞뒤가 분명한 매사에 결곡한 사람, 이런 사람이였으니 그 평생은 명실상부하게 파란만장했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번에 유고집으로 출간된 당신의 산문집 <우렁이 속같은 세상>도 편편마다 그렇게도 편하게 읽히면서 낄낄 혼자서 웃음이 나오지만, 죄다 읽고 나서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문득 숙연해진다. 역시 김학철이라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였구나’싶어지며."

소년기를 원산 바닷가에서 보낸 김학철 소년은 "나는 중학생 시절에 난생 처음으로 공기총으로 참새 한마리를 쏴 떨궜는데 그 할딱할딱하다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나머지 소나무 밑에다 구덩이를 파고 내 손에 죽은 그 참새를 고이 묻어준 다음, 공기총으로 조총(弔銃)을 쏘고 ’영원히 다시 이런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었다. 그러고 낚시질을 하다가도 이와 비슷한 일에 부닥쳤다. 처음으로 낚아올린 빙어 새끼가 파드닥거리며 모질음을 쓰다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다시는 낚시대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내가 자란 뒤에 산 사람을 겨냥하고 총을 쏘기에 이르렀으니-그도 기를 써가며 쏘기에 이르렀으니- 내 일생은 참으로 들쭉날쭉이랄 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역시 누가 닭의 목을 비튼 것만 봐도 끔찍해서 얼른 고개를 외치고 도망질을 쳐버린다"(<최후의 분대장>)

서울 혜화동에 있는 보성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김학철 선생은 광주학생의거와 윤봉길 의사 의거,이재유 사건을 보며 ‘태극기 휘날리는 상해의 임시정부는 아예 내 마음의 메카가 돼 버렸다. 그리고, 조선 학생들도 당당히 군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황포군관학교는 내 마음속에서 아예 오매불망하는 예루살렘이 돼버렸다.’(<최후의 분대장>)

　1936년 20살 청년 김학철은 상해임시정부를 찾아 서울역에서 중국 봉천(지금 심양)행 기차표를 끊고 기차에 몸을 싣습니다. 지금은 휴전선으로 막혀있지믄 그때는 서울에서 기차를 차고 중국으로 가던 때였습니다.

　중국에서 항일 투쟁에 나선 김학철 선생은 중국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의용군에 입대했습니다. 조선의용군에 대해서는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한 좀 공부를 해야 합니다. 김학철 선생은 41년 12월 중국 태항산에서 일본군과 교전중 포로로 잡혀 일본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일본 나카사키 형무소에서 복역을 합니다. 왼쪽 넓적다리뼈의 1/4이 깍여나가는 관통상을 입은 김 선생은 일본 이사하야 형무소 무연묘지에 썩어들어가는 다리 한짝을 묻습니다. 김 선생은 이를 ‘도마뱀의 꿈을 이룬 셈이었다’고 표현하더군요.

1940년대 침략 전쟁에 나선 일본한테 조선의 대표적 지식인들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해방뒤 이게 문제가 되자 이들은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지요. 하지만 김학철 선생처럼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다리가 잘리고, 일제 감옥에서 폐결핵과 신장 결핵을 앓으면서도 목숨걸고 투쟁하던 사람도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함부로 쓰지 않아야 할 듯 싶습니다. 　

김 선생은 1945년 10월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석방될 때까지 일본 감옥에서 복역하다 서울로 돌아옵니다. 1946년 김 선생은 ‘감옥에서 다리가 잘려 인제는 군인이 될수도 없고 그렇다고 놀고 먹을 수는 없어서 문학을 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송지영씨의 소개를 받아 이무영씨한테서 소설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김 선생은 서울에서 1947년 평양으로 건너갑니다. 김학철 선생은 북쪽에서 로동신문사 기자, 인민군신문사 주필 등을 맡았지만 1952년 중국 연변에 정착합니다. 김 선생은 ‘북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장편 소설 하나를 엮을만한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라고 밝힐 뿐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당시 김일성 수상과 김 선생이 속한 정치세력이 권력 투쟁을 벌이다 패배한 것 같습니다.

이런 사연때문인지 생전에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한 김 선생은 북한 체제의 개인숭배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김 선생은 1957년 중국의 반우파 투쟁때 ‘우파분자’로 몰려 숙청을 당합니다. 김 선생은 모택동의 개인 숭배를 비판한 정치소설 <20세기의 신화>를 썼다 문화혁명기간에 터무니 없는 죄목을 뒤짚어쓰고 10년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김 선생은 24년간의 숙청 대상으로 있으면서 감옥을 가지 않을 때는 다리로 광석캐기, 돼지 먹이 등 강제노동을 했습니다. 1980년 64살때 복권된 김 선생은 당시 심정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2년 동안이란 긴 세월을ㅡ일생의 거의 절반을 (우리 나라의 형법에서도 20년이상은 무기징역임을 기억하라.) 아무 까닭없이 개돼지 취급을 받아온 이른바 <우파>량반들이 억울한 루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는 마당에서 공산당 만세를 부르고 눈물을 흘리고 하는것을 아주 감동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한때 습관이 되였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리를 숙이고 한번 랭정히 생각해볼 필료가 있다. 20여년전에 수십만의 지식인들을 비참한 처지에 몰아넣었던 공산당의 그 로선이 잘못되였음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거기 무에 만세를 부르고 또 눈물을 흘려가면서까지 감사를 드릴게 있는가…나는 나의 24년간의 다른 사람보다 이태가 더 많은ㅡㅡ고난의 력사가 끝나는 마당에서 아무에게도 감사를 드리지 않았다. 그러니 백배사례따위의 굴용적인 표헌은 있을 수가 없었다. 만세도 아니 부르고 눈물도 아니 흘렸다. 나는 그런 얄팍한 가살쟁이도 또 연극쟁이도 다 아니기때문이다. …인민의 작가에게는 기골이 있어야 한다. 등골뼈가 곧고 단단해야 한다.”“작가에게는 특히 인민의 작가에게는 인격이란게 있어야 한다. 앞발을 들고 뒤발로 서서 재롱을 피우지 말아야 한단 말이다.”

한 연변 후배 문인은 김 선생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리앞에 한 거인이 서있다.량쪽 겨드랑이에 쌍지팽이를 짚은 척각의 로인, 년령 75세, 키 180센치, 수척한 몸매, 잔주름이 많기는 하지만 깨끗이 늙은 강파른 얼굴과 뽀족한 하관, 거기에 꾹 다문 입술과 한창때의 그런 광채는 세월과 함께 사라졌으나 정기가 도는 사려 깊고 슬기가 넘치는 한쌍의 눈. 이 거인이 바로 오늘도 백발을 흩날리면서 붓대를 틀어쥐고 문학의 고봉으로 톺아 오르는 투사이며 작가인 김학철이다.…이러한 체격과 기질의 임자 김학철은 한평생 복잡하고 곡절많은 인생길을 걸어왔다. 식민지시대의 고난을 눈물겹도록 맛보면서 지낸 비애의 소년시절, 항일전쟁의 피와 불의 세례를 겪은 격정의 청춘시절, 제국주의 감옥에서 몇 년, 광복 후 서울에서의 좌익운동 가담과 창작활동 그리고 평양, 북경에서의 문필생활, 연길에서의 본격적인 문학창작과 24년의 정치박해(그 중 10년은 옥살이)를 겪은 좌절 많은 중년시절, 65세에 와서야 다시 붓을 들어 창작의 왕성기를 맞이한 만년생활. 이렇게 곡절많은 인생길을 걸은 작가는 고금중외에 드물다. 세상에 실로 렬화속에서 아홉번 나보고 빙설속에서 아홉번 얼어보고 피못속에서 아홉번 목욕해본 작가가 있다면 그가 곧 김학철일것이다.”(최삼룡 <김학철론>에서)

김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탁월한 유머에 감탄하곤 합니다. 피눈물나는 고난을 겪지만 탄압하는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글솜씨가 단연 돋보입니다. 이런게 혁명적 낙관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 선생은 2001년 9월 25일 숨을 거둡니다. 임종을 앞둔 김 선생은 20일동안 금식을 하던 중 다음과 같은 유언장을 남깁니다.

“남기는 말, 사회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더는 련련하지 않고 깨끗이 떠나간다. 병원주사 절대 거부, 조용히 떠나게 해달(라) 김학철.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 김학철 구술. (아들) 김해양 기록. 2001년 5월 5일 (금식 닷새째)” “부고를 내지 말라. 유체고별식과 추도회를 일체 하지 말라. 일체 부조금을 받지 말라. 골회는 두만강 하류에 뿌리고 남은 것은 우편 종이박스에 담아 두만강 물에 띄워 고향 원산에 가게 하라. 우편 박스 우에는 ‘元山 앞바다 行 김학철(홍성걸)의 고향 가족 친우 보내드림’을 쓴 글을 붙여 달라. 두만강가에서 마지막가는 길을 <조선의용군 추도가>와 <황포군관학교 교가>의 연주속에 보내달라." 　

　2001년 9월27일 오전 10시께 86살의 늙은 혁명가는 가을 바람이 스치는 두만강 기슭에서 강물을 따라 동해로 흘러갔습니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09-04-02 23:04:42 한국사(으)로 부터 이동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