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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인지 조갑증인지 별 거지 발싸개같은 이름이 나를 깨우는구나. 내 관창이다. 니가 좋아하는 '화랑' 관창. 품일 장군의 아들이요, 황산벌 전투의 '영웅', 니가 표현하는 대로 세계사를 들추어도 그 예가 드문 비장미와 감동의 순간을 연출한 열 여섯 소년 관창이다.

누가 내 장렬한 죽음을 코미디로 만들었다 캐서, 내 후손도 아니고 (후손일 리가 없지, 난 결혼도 못하고 죽었으니) 하다못해 경주김씨 핏줄도 아닌 니가 와 그래 열받는지 내사 마 도통 모르겠다. 대체 와 그리 열받는데? 나는 인제야 좀 어깨가 가벼워진 느낌인데...... 내가 저승에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아나. 내 죽은 뒤 천년 동안 내 죽음을 갖다가 임금에 대한 충성과 임전무퇴 무사정신의 전범으로 내세웠던 놈이 니 빼고도 천지 빼까리였고, "나이 열 여섯 화랑 관창은 단기필마로 창을 들고 죽음을 향해...." 그 선동에 현혹되고 고무되고 감동받아 내같이 죽어 나자빠진 청소년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뿐이겠나? 보아하니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전쟁만 나면 떼로 몰려 들어오더라.

다시 한 번 묻는데, 니 그기 진짜로 아름답나? 나이 열 일곱 묵은 놈이 생에 대한 애착도 없이, 이쁜 가스나 하나 골라 알콩달콩 살아갈 꿈을 니 좋아하는 초개처럼 버리고, 대가리 안맞는 투구 쓴 채로 아무개는 나와 내 칼을 받아라 외치는 꼬라지가 그래 아름답나?

용맹한 장수와 그를 따르는 소규모 병력이 적진을 헤집는 것은 과거의 전투 방식 중 하나였다. 김유신 장군도 청년시절 낭비성 전투에서 그랬고, 그는 나처럼 죽지 않아 거기서 이른바 '떴지'. 하지만 그 소규모 병력의 단신 돌격을 하나의 희생양으로 삼아 군의 사기를 북돋는 심리전 요소를 도입한 게 김유신 장군이기도 했다. 조갑제 네가 말한 비녕자 사건 때 그랬다.

비녕자는 이른바 박석김씨도 아니고 설씨도 아니고 최씨도 아닌, 골품제 명확한 신라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떠돌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간들일수록 한 번 목숨 걸면 못말린다. 신라의 골품제가 싫어 당나라에 가서 큰 인물 되어 보겠다던 신라 사람 설계두가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에서 얼마나 열심히 싸우다 죽었는지 아나? 당 태종은 또 그 사람 시신에 옷을 덮어주는 쇼를 한다. 조갑제 니는 또 설계두의 죽음 가지고도 신라인의 기개를 대륙에 떨친... 뭐 우짜고 하면서 설레발을 치겠지만도..... 그런 비녕자를 김유신 장군이 불렀다. 술을 치면서 부탁을 했다. "니밖에 없다 먼 말인지 알제?"

여자는 지 이뻐하는 남자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지 알아주는 인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캤재? 그것도 사실 말짱 거짓말이지, 여자는 지가 좋아하는 남자 꼬실라고 화장을 하고, 남자는 지 좀 알아 달라고 목숨 바치는 기지. 우쨌든 엎치나 메치나 결과는 같다. 거기서 비녕자가 내는 못하겠십니더 하면 그 인간 인생은 끝난 거 아이가. 근데 나는 참말로 김유신 장군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 기..... 하필이면 고향에 얼나를 두고 온 사람도 아니고, 한 전투에 아버지하고 아들이 같이 나온 사람을 선택을 했냐 카는 기다. 조갑제 니도 잘 인용했지만 비녕자가 종 합절이한테 한 얘기가 있쟤?

"내가 죽으면 아들이 반드시 따라 죽으려 할 것인데 너는 거진과 함께 나의 해골을 거두어 돌아가 어머니를 위로해 다오"

조갑제 느그 세상에도 차마 못할 욕이 느그 애비 애미 우짜고 하는 욕일 기고, 골목길 주차 싸움이 일어나도 즈그 아버지가 욕 먹고 있으면 아들놈 눈 디비지잖아. 하물며 즈그 아버지가 단신돌격하다가 말에서 떨어져가 토막이 나는 꼴을 보고 어느 시러베아들이 참겄노. 비녕자는 그걸 알고 있었던 기라. 근데 문제는 김유신도 그거를 알고 있었던 기라.

비녕자는 적진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그 아들도 결사적으로 말고삐를 쥐는 종의 팔을 칼로 치고 백제군 진영에 뛰어들었다. 종 합절은 무슨 생각을 했겠노? 주인의 유언을 어겼고 팔 하나를 잃었다. 주인 부자를 모두 지 눈 앞에서 잃었다. 살아 돌아가면 그 인생 참 울음꽃이 피어도 함박꽃이 피는 기지. 외팔이 합절은 싸우러 간 게 아이다. 죽으러 간 기다. 우찌 됐든 결과는 같다. 아버지와 아들, 그라고 그 종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죽어가는 꼴을 보고 이쪽 군대는 악이 받치는 기다.
"조또 죽기 아이모 살기다."

이쯤 되모 김유신 장군이 말을 몰면서 사자후를 토하지.
"아버지와 아들 그 종까지 나라를 위해 죽는 거 똑똑히 봤재? 그들이 와 죽었노? 우리를 위해 죽었다. 우리는 와 싸우노? 서라벌의 느그 가족들을 위해 싸운다. 여기서 도망가다가 등에 창맞고 죽을래, 아이모 비녕자 가족같이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을래? 자..... 인제 내가 간다. 또오오오오오오오올격"

예나 지금이나 군바리는 단순한 기라. 겁먹고 흩어진 군바리는 개만도 못하지만, 그 개들이 독기를 품고 神兵 저리 가라칼 군대가 되는 거는 한순간인기라. 문제는 그 독기를 불어넣는 방식이겠지. 김유신 장군은 비녕자 부자와 합절을 희생시킴으로써 재미를 봤대이. 그라고 당 태종과 똑같은 쇼를 한다. 비녕자와 거진과 합절의 몸에 옷을 덮어 주고 그 위에서 통곡을 한 거지. 진덕여왕도 옥루를 흘리며 그들을 애도했고...... 그들은 다 한 자리에 합장되었다. 그 세 사람이 만나가 무슨 얘기를 했겠노. "우리 세 사람의 공으로 우리 군이 이겼으니 이 얼마나 영광이겠노"라고 했을 거 같나? 조갑제 니는 그래 생각하쟤?

삼국사기 김흠운전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어려서 화랑 문수의 휘하에 있을 때에 낭도들이 아무개가 전사하여 지금까지 이름을 남기고 있다는 말을 하게 되면 흠운은 개연히 눈물을 흘리며 감정이 격하여져 그를 흠모하는 모습을 보이었다. 동문의 승 전밀이 그것을 보고 이 사람이 적진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니는 지금 요즘 청소년들이 김흠운처럼 되지 못하는 게 안타까와 죽을 지경이제?

남 얘기 할 거 없다. 내 얘기로 가자. 당나라 군이 온다카는 말을 듣고 전 신라에 동원령이 내렸다. 화랑이 우찌 빠질 수 있겠나. 나도 활을 메고 우비를 말안장에 채운채 남천정(경기도 이천)까지 올라갔다. 첨엔 고구려를 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대군은 갑자기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백제였다. 일찌기 신라가 동원해 본 적이 없는 대군 5만이 백제로 쏟아져 내려가는 것이다.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끄는 5천과 맞섰을 때 우리는 승리를 확신했다. 10대1 아이가. 계백이 그 처자를 죽이고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우린 웃었다. 그리고 그 광기를 탓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긴데, 엄한 처자를 와 죽이노"
"그라이까네 계백은 화랑이 아니지. 살생유택을 모른다 아이가"

우리가 보기엔 그건 발악하는 쥐새끼의 만행일 뿐이었다. 비녕자의 돌진이 백제 진영에서 보기엔 박살난 군대를 다시 응집시키려는 고육책에 불과했듯이, 계백은 그 처자를 죽임으로 5천 군사를 결집시키고 있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것은 비장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광기였다. 니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고대 정복국가의 끊임없는 전쟁이 빚어낸 광기의 최고봉이요, 다시 있어서는 안될 비극의 첨단이었다. 조갑제 니가 분노한 그 영화에서 계백의 아내가 한 말을 명심해 보기 바란다.
"호랑이는 가죽 땜세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새 디지는 거여."

아마 조갑제 니는 "어찌 장군의 뜻을 거시기허겄습니까 어서 내 목을 치시오"하고 목을 의연하게 늘어뜨릴 아내를 상상하고 또 감동 묵을 끼야 그러지? 그리고 아이들도 아버님의 뜻을 따르겄습니다 하고 단정히 무릎을 꿇고, 계백은 눈물을 흘리며 그 목을 치는 정경을 상상하면서 또 찌르르 찌르르 할 끼야 그렇지?

하지만 조갑제 니가 그래 좋아하는 삼국사기 계백 열전에도 그 가족들이 우찌 했다 카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군신유의에 사군이충이 수천년의 이데올로기로 내려온 나라, 삼강행실도에 비녕자가 빠지지 않고, 내 일화가 심심하면 비단실로 수놓아지는 나라에서도 최후의 순간 계백의 가족이 무슨 말을 우째 했는지는 차마 기록하지 않았다. 아마, 네 상상 속의 그 장면이 사실과 일치한다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영웅이 만들어졌겠지. 계백의 처 아무개로 말이다. 나는 그 점에서 니보다는 김부식이가 낫다고 본다. 니는 그 마누라의 최후를 가장 멋지게 그려 낼 놈이거덩. 니 머릿 속에서 말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네 번 전투에서 네 번 다 깨졌다. 이미 최고 사령관의 가족을 적진에 돌격(?)시킨 군대였다. 숫자만 믿고 달려든 우리 신라군이 개골창이 되어 물러날 밖에..... 역시 백제군은 강하고 우리가 어떻게 해 볼 나라가 아니라는 (우리 신라는 원래 백제에게 컴플렉스가 좀 있었다. 문화적으로 후진국이었으니까) 패배의식이 진영을 쓸고 돌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반굴이 창을 들고 진을 나섰다.

삼국사기에는 그 아버지 흠순이 아들을 불러 가지고 "신하는 충성이 제일이고 자식은 효도가 제일이다.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는 것은 忠孝를 다 완성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카는데 그 내막을 한 번 생각을 해 바라. 와 비녕자같은 성도 두품도 없는 사람이 아니고 김유신의 조카이자 사위인가를..... 그것도 살만큼 살 놈이 아니고 나이 스물도 안된 홍안의 화랑인가를. 그거는 이쪽의 광기였다. 아니 좋게 말하면 생존 방식이었다. 계백이 지 새끼들 목을 쳤으니 이쪽도 고위층의 자식 몇 명 생목숨 정도는 바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었던 기다. 반굴은 그렇게 달려나갔다가 바로 목이 달아났다. 사서에 그래도 군사들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록된 건 그가 비녕자 가족처럼 드라마틱하게 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나는 아버지를 원망 안한다. 내가 그 위치였다 캐도 내 아들을 희생시켰을 거다. 단, 이거 하나는 분명히 해 두자. 우리 아버지나 내나 둘 다 하늘을 원망했다. 아름답다? 누가 관창을 아름답다 캤노. 아버지가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고, 아들은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다짐하며 적진을 향해 달리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대체 어느 시대 사람이고? 그 인간은 필시 언젠가 저승에 떼로 들어온 가미가제 특공대 보고도 오르가즘을 느낄 인간일끼라.

나도 열심히 싸웠지만 순식간에 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백제군에 결박되어 계백 앞으로 갔다. 전쟁에 오기 전 처자를 죽인 장수와 전쟁의 제물로 간택되어 사선에 든 열 여섯의 화랑이 대면했을 때 떠오르는 단어가 '죽음'과 '죽임'외에 무엇이 있을까. 계백은 내 투구를 벗기고 내 나이를 묻더니 이런 묘한 소리를 했다.
"신라에는 뛰어난 병사가 많구나. 소년이 오히려 이러하거든 하물며 장년 병사들이야....."

그가 신라군의 화랑을 모를리 없었다. 내 나이 또래의 소년들이 전장에서 선봉에 서 칼을 휘두르고 활을 날리며 그 죽음들로 서로 고무받고 맹세하는 '동양 최초의 장교단'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것은 비웃음이었다. 그리고 휘하 군사들에게 "신라는 이런 어린애까지 병정으로 쓴다"는 뜻을 전달하고 싶은 것이었다.

뜻밖에도 "살려 보내라!"는 말을 듣고 말안장에 묶인 채 "느그 에미 젖이나 더 먹고 오그라 알었지야?"하는 백제 군사들의 웃음 소리를 들었을 때에야 나는 계백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것은 또 하나의 심리전이었다. 자기 집안에서 처자를 죽인 계백이, 냉혹한 전쟁터에서 적장의 아들의 사정을 돌볼 이유가 어디 있었을까. 전쟁은 그렇게 추한 기다. 말안장에 묶인 채 터벅터벅 신라 진영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내 짧은 인생 중 가장 긴 시간이었다. 백제군들은 말에 매인채 발악을 하며 돌아가는 내 뒷모습을 보며 배를 쥐고 웃고 있었고 신라군은 욕도 아니고 동정도 아닌 눈빛으로 날 지켜보고 있었다. 이 전쟁이 아름답다고? 내가 아름답다고?

아버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살아왔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어야 했는데 살아 돌아온 별종일 뿐이었다. "우물에 가서 물을 퍼 들이켰다." (삼국사기) 그 찬 기운이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지만 나는 죽어야 했다.

"아까 내가 적지 가운데에 들어가서 장수의 목을 베지 못하고 그 깃발을 꺾지 못한 것이 깊이 한스러운 바이다. 다시 들어가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이 말을 남기고 나는 백제 진영으로 돌진했다. 아니 죽으러 갔다. 이미 생에 대한 애착을 버린 상황에서 나는 백제군 수십명을 죽이며 '민첩하게' 싸웠다. 과거의 비녕자처럼. 당나라에 망명하여 고구려와 싸웠던 설계두처럼. 힘이 다하여 계백 앞에 다시 끌려 왔을 때 계백은 분노해 있었다. 살려 주었는데 또 왔느냐는 분노에 더하여, 저놈을 또 살려 보냈다가는 몇 명이 더 죽을지 모르겠다는 계산까지 더해진 노기였다. 마침내 그가 칼을 빼들었다. 그가 내게 죽음을 선고한 순간 나는 그에게 솔직히 고마왔다. 이 미친 경기를 끝낼 수 있었기 땀시.

내 목이 말꼬리에 매달려 돌아갔을 때 아버지 품일 장군은 내 잘려진 머리를 어루만지며 그야말로 인간적인 진실로 인간적인 말 한 마디를 뱉았다.
" 우리 아이의 얼굴과 눈이...... 살아 ..있는 것 같네"
지가 잉태시키고 지가 키우고 지가 칼을 가르친 자식놈의 모가지가, 물론 마땅히 죽을 자식이라 생각이야 했겠지만도, 막상 머리하고 몸뚱이가 분리되어 오자 우리 아버지 피눈물을 흘렸데이. 그리고는 발악하듯이 외쳤지. "능히 왕실의 일에 죽었으니 후회가 없다.” 후회가 없다... 후회가 없다.. 후회가 없다... 갑제야 갑제야 너는 이 말에 감동 묵었제? 신라 무인의 기개가 물씬물씬 느껴지면서 저 멸사봉공의 정신을 본받지 못하는 답답이들한테 회초리를 치고 싶제? 까짓거 북한 아이들이 도발해 왔을 때 미사일 한 방 못쏘는 문약을 탓하고 싶제? 근데 니 가슴에 한 번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참말로 가슴에 후회가 없다카모 그기 인간이가. 그기 정녕 아름다운 아버지와 아들이가.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울부짖는 동안 김유신 장군은 냉철하게 군사들을 지켜보고, 그들을 격동시켰다. "오늘은 관창이지만 내일은 니다." "장군의 아들들이 다 죽었다. 싸움에서 지면 느그는 살 것 같나?" "조또 그래봐야 10대 1 아니가" 결국 "전군[三軍]이 이를 보고 용기를 내어 뜻을 세워 북을 요란하게 쳐 진격하니" 백제의 5천 결사대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계백은 곧 내 뒤를 따라 황천길을 따랐고...... 내 죽음에는 '급찬' 벼슬이 따라붙었다.

내 죽음이 아름답나? 내가 살던 시대는 이른바 정복국가들의 각축전이 최고조에 달하여, 그 각축의 종착으로 달려가는 시기였다. 전쟁에만 패해도 장수는 죽고, 가족은 노비가 되는 것이 국가의 법률인 시대였다. 결국 나는 그 시대에 꿰어맞춰져 맞창이 나버린 인생일 뿐이다. 물론 황산벌 싸움에서 다른 평민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울 때 신라군에 슬그머니 항복해 버린 벡제의 좌평 찌꺼기들들보다는 내 인생이 값졌을지 모르지. 하지만 내 인생이 아름다왔다고 본받으라고 우겨 대는 것만큼은 참아 줄 수 없을 정도로 분통이 터진다.

그 선동으로 대체 누구를 또 사지로 몰아넣을 끼고. 멀쩡한 아홉살 짜리 얼나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한 마디 했다고 청사에 남을 반공투사로 만들어 전국 각지에 동상 세우고 자빠진 그 사고방식으로, 화랑 관창의 기개를 본받아 대체 누구를 때려잡으러 누구를 내보낼 끼고. 이라크에 보낼끼가? 아니면 북한 주석궁문을 탱크로 밀어버릴 기갑병으로 보낼 끼가?

갑제야 갑제야. 니는 영화보고 열받았다 캤나? 나는 지금 니가 하는 말 듣고 열받는다. 영화에서 나를 코미디로 만들었다 캤나? 지금 니가 하는 기 더 코미디다. 나도 꿈 많은 소년이었다. 옆집에 이쁜 가스나 한 번 어떻게 해 볼라고 담도 넘어 봤고 (우리 때는 느그때만큼 자유로왔다 아이가) 칼을 배우면서도 계곡물 들어가모 칼집 가지고 물싸움 하고 놀던 열 여섯 소년이다. 와 내한테 무거운 군신의 탈을 씌울라카노. 천년 동안 뒤집어 쓰고 있었던 그 투구를 그 영화 보면서 좀 벗을라 캤드만... 와 내보고 그 무거운 칼 타고 말 조또 안듣는 말 타고 폼 잡고 서 있으라카노. 열 여섯 나이에 사람을 수십 명 죽이고 나도 고마 밥숟갈 놔 삤는데, 그기 뭐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내 동상을 천지사방에 세울라카노. 누가 누가 관창을 아름답다 캤노 ?

끝으로 말 하나만 더하자. 갑제야 니 김유신 장군을 되게 존경하는 갑데..... 나도 존경한다. 위에서 내가 김유신 이름 석 자 뒤에 꼬박꼬박 장군 붙인 거 보면 알끼다. 적어도 김유신은 냉혹한 장군이었지만 위선자는 아니었데이. 니가 예를 든 둘째 아들 원술을 용서하지 않은 일화는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그가 한 말과 행동에는 책임을 지는 무장이었데이. 고구려를 치러 갈 적에 당나라군과 연락이 끊겨 곤란을 겪을 때 김유신 장군은 몇명의 특공대를 파견했고 그들은 고구려 영토를 관통해서 당나라군과 접촉하고 돌아왔다. 그때 임금이 김유신이 내리자는 상이 골품제에 어긋난다고 망설이자 김유신 서슴없이 조카 임금한테 큰절을 하면서 "골품이 중합니까 공훈이 중합니까"라고 말했다. 그기 아무나 할 수 있는 소리는 아니지.
결정적으로........ 황산벌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 당나라 군대와 만났을 때 소정방이 기일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신라의 독군 (군대를 독려하는 임무를 맡은 관직) 김문영을 베려 했을 때 김유신 장군이 한 일은 내 원망을 풀어 줬다.
"소 장군은 황산의 결전을 듣지 못하였느냐. 내 이 능멸을 참느니 차라리 당군과 먼저 일전을 겨루고 백제를 멸하리라."
백발이 빳빳이 서고, 칼집에서 칼이 저절로 튀어나왔다고 했다. 당대의 슈퍼파워 당나라 군 사령관 앞이었다.

갑제야. 김유신을 존경하는 갑제야. 시청 앞 광장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같이 흔들고 미국 국가를 부르는 놈들 앞에서 너는 "기독교인들 애국 폭발 중"이라고 했지. 그 꼬락서니를 보고, 지들이 벌인 전쟁에 생뚱 관계없는 전투병을 파병하라는 슈퍼 파워의 망발을 듣고, 김유신 장군의 백발이 뻣뻣이 일어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내 장담하는데 아마 니 모가지는 김유신 장군 칼에 저만치 데굴데굴 굴렀을 거다.

갑제야 니가 열받았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 봐라. 거시기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들일을 하고 있던 어머니를 끌어안을 수 있었다. 나는 내 관창의 죽음보다는 백 배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산다는 거, 생명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기 어디 있겠노? 이익을 빌미로, 충성을 이유로, 국익을 명분으로 사람들의 생목숨을 앗아가는 것만큼 더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노. 나는 그 더러운 짓의 희생양이었다. 나는 내 이름이 또 다른 더러운 짓의 명분으로 천년만년 대여되는 것이 또 한 번 죽기보다 싫다. 누가... 누가 관창을 아름답다 켔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