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1일 김포공항을 떠나 홍콩에서 6개월 복수 비자를 받아 중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홍콩도 중국영토이니 같은 동네이기는 합니다만 엄연히 IMMIGRATION OFFICE를 통과해야 하는 다른 나라입니다. 오자마자 인터넷부터 찾았지만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아 참여는 할 수 없고 글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산행공지도, 강좌에 대한 글도 모두 읽었습니다. 기존의 것은 전화선으로 연결하여 속도로 느리고 그리고 팩스에 연결되어 전용선을 깔라고 말했더니 중국 통신회사들이 10월1일부터 놀기 시작해서 7일까지 논다고 하며 휴무가 끝나면 깔아준다고 하더니 아직까지도 깜깜무소식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날자가 15일이 되었군요. 21세기경제학연구소 동지들과 함께 가을 단풍 산행을 한 번 거행하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와 버려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영역작업도 큰 소리만 치고 손도 못 댔습니다.
좌우지간 중국에서는 참아야만 합니다. 화를 내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 중에 하납니다. 마음의 수양이 부족해서입니다. 제가 번역해 놓은 열국지 한 장면 중 건숙(騫叔)이라는 사람이 진목공(秦穆公)에게 들려주던 말이 생각납니다.
무릇 천하를 제패하고자 하는 자는 세 가지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탐하지 말고, 화내지 말며, 조급해 하지 말라 . 탐하면 잃는 것이 많을 것이며 화는 내게 되면 곁에 있는 친한 사람들이 떠날 것이며 조급하게 일을 하게 되면 빠뜨리게 되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주도면밀(周到綿密)하게 일을 처리하여 문제가 없게 하기 위해서는 탐하지 말 것이며 이익과 손해를 따져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화를 겉으로 들어내면 안될 것이며 완급을 참작하여 순서를 정하여 일을 하기 위해서는 조급하면 안될 것입니다.
이 곳의 일은 예전에 있던 공장이라 업무파악은 금방 되었지만 마땅한 타개방안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선 제가 와 있는 공장은 앨범공장입니다. 생산품의 90%이상을 영국의 한 회사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를 전후해서 앨범이라고 하면 한국이 그 공급의 90%를 장악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미국으로부터 덤핑판정을 한 방 얻어맞아 한국의 앨범산업은 풍지박산이 나고 그 결과 거의 90%이상이 앨범 산업은 중국으로 넘어 왔다고 했습니다. 앨범 한 종목만으로 3천만 불 이상 하는 회사가 중국에 20여 개 있습니다. 제가 지금 와 있는 회사의 금년도 수출액은 약 500만불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유동성이 급박하여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에 달려 있겠습니다만....
공장은 심천에서 서북으로 100키로 정도 되는 곳에 혜주시(惠州市)라는 곳에 있습니다. 그 곳의 외곽도시인 진강진(陳江鎭)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진강면(鎭江面) 정도 되는 곳입니다. 행정구역이야 면 단위이지만 면적은 우리나라의 군 서너 개를 합쳐 논 것만큼 넓습니다. 이 곳은 중국에서 전자공업의 메카입니다. 중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TCL이란 TV공장과 그리고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컴퓨터 공장이 있습니다. 두 공장의 종업원은 각각 한 20만 명 정도 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삼성전자와 LG가 나와 있고 그 두 공장의 하청 공장이 20여 개가 같이 들어와 삼성과 엘지는 물론이고 중국회사에도 납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 동양전자 현지법인 대표는 3년 전에 알고 지내던 분이었는데 지금도 계속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만나 대화를 해 본 결과 3년 전에 매출액이 500만 불이었던 것이 지금은 2천만 불이 넘어섰다고 했습니다. 스피커와 오디오 본체를 만들어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제가 있는 회사는 옛날 모습 그대로 변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광동성(廣東省)에는 말이 다른 종족이 셋에 요리도 셋입니다. 우선 광동어에 광동요리는 잘 아실 것이고 조주(潮州)어에 조주요리입니다. 조주라는 곳은 광동성을 해안선으로 죽 타고 올라가면 복건성과 경계되는 곳에 산두(汕頭 : 중국 발음으로는 샨토우)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근방을 통틀어 조주지방이라고 합니다. 옛날부터 조주사람들은 장사를 잘해 유명한 거부들이 많이 나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주요리는 중국의 어느 대도시를 가도 가장 비싼 고급요리에 들어갑니다. 제가 먹어본 결과 우리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지만 중국이나 홍콩이나 화교사회에서 내노라하는 상인들의 대부분이 조주출신이라 조주음식이 비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곳은 객가(客家)어에 객가요리입니다. 저희 한국사람들 입에 가장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일인당 10만원 내고 먹은 중국요리를 여기서는 일인당 만원씩 내고 먹을 수 있습니다. 이 곳의 기후는 낮에는 25-28도, 밤에는 10-15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밤과 낮의 온도차가 커서 잘못하면 감기에 걸립니다. 3년만에 다시 본 중국의 모습은 그 사이 엄청나게 변모해 있었습니다. 홍콩과의 국경도시인 심천에서 광주까지의 광심(廣深) 밸트는 소위 세계경공업의 메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속도로의 전장이 약 150키로 되는 곳이지만 그 도로 연변에는 공장들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대신 잃은 것은 환경이겠지만 중국 사람들은 그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공기오염은 서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각합니다.
오자마자 재고 처리하러 광주(廣州)와, 산두(汕頭), 그리고 호문(虎門)이라는 데를 다녀왔습니다. 호문이라는 데는 아편전쟁의 전적지가 있는 곳이라고 옛날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의 여러 군데 방문하여 옛날에 사귀던 중국 친구들이 반갑게 대해주니 힘이 좀 나는 것 같습니다. 내일도 다시 산두라는 곳에 가야 합니다. 상담하자고 중국친구가 부르니 달려가야 합니다.
참고로 산두(汕頭)라는 곳은 참으로 특이한 곳입니다. 원래 등소평이 개방정책을 펼 때 상징적으로 마련한 5개의 경제특구 중의 한 곳이었습니다. 5개의 경제특구는 광동성에 4개 복건성에 한 개를 지정했었습니다. 광동성 소재 4곳의 경제특구는 심천(深川), 주해(珠海), 산두(汕頭), 해남도(海南島)이고 복건성의 경우는 하문(廈門)입니다. 해남도는 지금은 독립하여 광동성과 같은 급의 해남성(海南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일로 비유하자면 제주도(濟州島)가 전라남도에 속해 있다가 제주도(濟州道)로 된 것과 같습니다. 경제특구의 가장 큰 특징은 중국회사들이 외국에 물품을 수출하고 대금 결제를 받을 때 경제특구 외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환율이 1달라에 8원 정도 했다면 경제특구의 경우는 5%나 7%를 더 얹혀서 8.4나 8.5로 적용해 주었습니다. 자연히 다른 지방의 회사들이 외국에 수출할 때 경제특구에 있는 무역회사를 창구로 하게 되어 많을 때는 중국의 수출액 중 70%이상을 5개의 경제특구가 달성할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경제특구에 대한 특혜가 거의 없어진 상태입니다. 그런데 산두는 다른 경제특구와는 달리 특이하게 발전했습니다. 중국식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지 모르지만, 한국식으로 말하면 분명히 밀수의 본거지가 된 것입니다. 산두시 지방정부가 나서서 중국에 들어오는 화물의 통관을 산두에서 하게 되면 다른 세관보다 더 싸게 해 준다고 섭외활동을 합니다. 즉 관세에 대한 디스카운트 정책이 지방정부와 세관이 협조하여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곳이 산두라는 곳입니다. 그러니 중국의 내노라하는 사업가는 모두 산두라는 곳으로 몰려들게 되고 그리고 항상 활기에 넘쳐 있습니다. 산두 지방정부는 수입업자들이 떨어뜨리는 돈을 수입으로 도로와 항만 및 사회간접 자본을 확충하여 장사하기에 더욱 좋은 환경으로 만듭니다. 그 곳에서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벤츠 정도도 못 몰고 다니면 행세를 못합니다. 중국에서 벤츠의 가격은 모델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겠지만 대략 100만원 정도 합니다. 일본의 인기 차종인 랙서스는 50만원 한국의 소나타는 30만원 정도 합니다. 중국돈 일원에 한국돈 150원입니다. 이 공장의 근로자 한 달 봉급이 하루 8시간 근무에 400원, 추가로 4시간 야간근무하게 되면 600원 즉 9만원 입니다. 중국돈으로 100만원이면 천문학적인 액수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길거리에 널린 게 벤츠고 그 보다는 못하지만 일본제, 독일제 등 승용차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빈부격차가 아마도 한국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중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몰고 다니는 자동차가 즉 그 사람의 인격이고 실력입니다. 한국의 경우 납품업자가 발주처 사장보다 더 줗은 차를 타고 다니면 발주처 사장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되지만 중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달 봉급 천 원도 안되는 세관원들이 4-50 만원 짜리 자동차를 버젓이 타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당사자는 의기양양하기만 합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하는 물신주의(物神主義)의 나라, 그리고 하는 일이 돈이 되느냐 아니냐로 따지는 실용주의(實用主義)의 나라, 그리고 자기 손에 있는 일 원이 상대방 주머니의 일 억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이기주의(利己主義)의 나라, 참 신기한 나라입니다.
2004-05-12 15: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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