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게시판 > 중국이야기 > 시인 이승철의 소주 관람기

상하이에서 쑤저우를 향하여 달리는 길은 끝없이 펼쳐진 평야였다. 고속도로를 두 시간동안 달려도 산은 구경할 수 없었다. 띄엄띄엄 2층집 농가들과 가끔씩 보이는 커다란 공장 건물,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강에는 어김없이 화물선들이 떠 있어 해상운송이 발달한 이 지역의 특성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쑤저우 시내에 있는 중국 4대 정원중의 하나인 유원 풍경 1

유난히 많은 뽕나무 밭과 그 뽕나무들이 가지가 몽땅 잘려나가고 밑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이 지역의 특산물인 비단(명주)을 생산하기 위한 누에치기가 지금 한창이라는 표시이기도 하였다.

석양이 비치는 고도 쑤저우는 너무 조용한 모습이다. 우리가 묵을 호텔만 덩그렇게 9층짜리 빌딩일 뿐 시가지는 대부분 5층 이하의 건물들이다. 안내원은 천년고도의 역사와 유적들이 많은 도시의 미관을 고려하여 고층빌딩건축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 비단공장에서 본 누에바구니

우리들이 묵을 호텔이라고 하여 입구에 들어서니 뜬금없이 9층짜리 커다란 주점 앞이었다. <00錦江國際酒店> 분명히 호텔인데 주점이라는 간판은 우리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서야 아! 하고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고급호텔은 주로 ‘빈관’(賓館)이라고 하며, 중급 호텔은 주점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묵을 방이 마침 9층이어서 객실에 들어가 밖을 내다보니 시가지가 온통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것이었다. 새로 개발된 지역에 세워진 새 호텔이라서 그런지 시설도 깨끗하고 좋은 편이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관광에 나섰다. 이번 목적지는 호구산이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산이라니 의아한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나지막한 언덕에 우뚝 솟은 탑이 보인다.

▲ 쑤저우 시내의 운하 모습

이름만 산이지 사실은 산이 아니고 무덤이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왕 부차가 그의 아버지 합려의 묘역으로 조성한 것이라는데 높이가 해발 34m의 커다란 동산이다. 호구(虎丘)라는 이름은 후에 진 나라의 진시황이 합려의 시신과 함께 매장되었다는 명검을 찾기 위하여 이 무덤을 파헤치려고 하였단다. 그 때 호랑이 한 마리기 지키고 앉아 울부짖어 무덤 파헤치는 것을 포기하였는데 이때부터 호구산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호구산 입구에 들어서니 길 오른 쪽에 오왕 합려가 명검을 시험하기 위하여 잘랐다는 작은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진 채 눈길을 끈다. 아무리 명검이라 하더라도 바위를 자를 수 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믿거나 말거나 그럴 듯한 유적으로 보존하여 관광자원으로 이용하는 것도 중국다운 발상이다.

▲ 칼로 벤듯 갈라진 호구산 길 옆의 시검석

조금 더 올라가니 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고 그 아래로는 작은 연못이 예쁜 모습이다. 이 바위는 워낙 넓어서 한꺼번에 천여 명의 승려가 설법을 들었다 하여 천인석(千人石)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천인석을 지나 바윗길을 오르니 오왕 합려의 시신과 함께 삼천 개의 검이 묻혔다는 검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검지 위에 걸친 돌다리 위에는 두개의 둥그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은 월왕 구천의 충신인 범려의 미인계로 부차에게 보내진 역사상 중국의 4대 미인으로 통하는 서시가 검지를 내려다보던 구멍이라고 한다.

▲ 호구산 검지와 서시가 바라보기 좋게 구멍이 뚫린 다리

범려의 미인계로 보내진 서시는 오왕 부차의 애첩으로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 그녀는 검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날마다 다리 난간에서 내려다보곤 하였는데 이것을 본 오왕 부차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다리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주었다고 한다. 구멍이 두개인 것은 왕 자신도 서시와 같이 보기 위하여 구멍을 한개 더 뚫었기 때문이란다.

오왕 부차는 월나라의 미인계로 보내진 서시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가 결국 월의 구천에게 패하여 오나라는 망하고 부차는 자살하였다. 오왕 부차의 와신(臥薪, 장작위에 자리를 펴고 잠)과 월왕 구천의 상담(嘗膽, 쓸개를 핥음) 은 서로 잊지 않기 위하여 장작더미 위에서 자고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하였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의 어원이 되었지만 이 호구산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 중 한곳인 셈이었다.

▲ 15도 기울어 중국의 피사 사탑이라는 높이 48미터의 호구산 8각 7층 탑

산이 아닌 34m 높이의 언덕 위에는 높이 47,5m의 운암사(雲岩寺)탐이 우뚝 서 있다. 8각 7층 벽돌 탑인데 약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서 중국판 피사의 사탑으로 불린다고 한다, 눈으로 보기에도 기울어진 경사가 느껴진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最古)의 벽돌 탑으로 서기961년에 완성된 것이라고 하는데 산보다 오히려 기울어진 탑이 더 높아서 유명한 것이다.

호구산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쑤저우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 거리는 중국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자전거와 오토바이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보도 한 쪽에는 뒤쪽에 손님 좌석이 있는 자전거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한가로웠다.

▲ 손님을 기다리는 자전거 택시가 있는 거리 풍경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에 걸맞게 시내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운하는 어디에나 작은 배들이 매어져 있었다. 한 운하에는 쓰레기 운반선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평평한 평야에 세워진 도시여서 운하의 흐름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흐름이 더디니 운하로서 이용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지만 물은 맑지 못하고 탁한 모습이었다.

점심 후에는 패키지 관광순서로 비단공장 쇼핑이었다. 안내원의 안내를 따라 들어가니 입구에 뽕잎을 먹는 누에 바구니가 눈길을 붙잡는다. 하얀 누에들이 부지런히 뽕잎을 갉아먹는 모습이 경이롭다. 공장안에서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여공의 손놀림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 비단공장에서 실뽑는 여공의 모습

비단을 짜지 않고 이부자리용 솜으로 가공하는 곳 옆에서는 비단 솜을 판매하고 있었다. 값은 예상대로 싼 편이어서 아들 딸 혼수용과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옆방은 비단 패션 판매장이었다. 각종 옷이며 넥타이 등 제품은 상당히 다양했지만 색상 무늬나 염색은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역시 이곳에서도 많은 물건들이 팔렸다. 나는 쇼핑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송대의 창랑정, 원대의 사자림, 명대의 졸정원과 함께 중국 4대정원의 하나인 유원을 관광하였다. 이 정원은 아기자기한 정교함이 돋보이는 남방 고전원림건축예술의 정화라는 칭송을 받는 곳이라고 하였다.

▲ 유원 풍경 2

회랑의 수많은 창문격자무늬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이 모두 다른 것이 하나의 특징이었다. 울툭불툭 기괴한 석회석들이 주축을 이루는 정원과 연못에는 작은 배까지 띄운 것이 호화로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정원의 운치 있는 정자들과 함께 수많은 각종 분재들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어서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 넓고 아름다운 정원에서는 누가 살았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예나 지금이나 잘사는 지배계층과 가난한 서민의 삶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었구나 하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거리로 나오니 가로수들이 눈에 익은 모습들이다. 넓적한 잎을 가진 우리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플러터너스 나무 가로수였다. 그러나 이곳 나무들은 서울의 가로수와는 생김새가 다르다. 가을이면 가지들을 모두 잘라버려 굵은 줄기 하나에서 해마다 작은 새 가지들이 자라는 서울의 가로수와는 달리 굵은 가지가 옆으로 쭉쭉 뻗어 2차선 길 건너의 나무와 서로 어깨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 유원 앞의 길거리 풍경과 가로수

어떤 것은 길 옆 가게의 간판을 완전히 가린 것도 있었고 건물 앞쪽 처마를 뚫고 자란 것 까지 있었다. 정부에서 나뭇가지 하나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철저하게 관리하고 작은 손상이라도 입힐 경우에는 엄청난 배상과 벌금을 물리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옛날부터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소주, 항주” 라는 말이 있었다는 중국에서 살기 좋기로 이름난 고장 쑤저우, 그곳에는 비옥한 토지와 따뜻한 기후, 풍부한 물, 그리고 잘 보존된 문화유적과 함께 엄격하게 관리하는 정부의 힘이 시민들을 통제하여 멋진 가로수를 가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