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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해3. 우공과 함께 당진에 포로로 잡혀가는 백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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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3. 우공과 함께 당진의 포로로 잡혀가는 백리해




우공이 순식의 계책(計策)에 떨어져 당진군(唐晉軍)을 이끌고 괵나라의 하양성을 향하여 진군하였다. 그때 하양성은 대부 주지교(舟之橋)가 지키고 있었다. 주지교(舟之橋)는 우공(虞公)이 구원군을 끌고 왔다는 말을 믿고 관문을 열고 맞아 들였다. 우공이 끌고 온 철엽거 안에 숨어 있던 당진군이 뛰쳐나와 관 안으로 진입하여 일제히 괵군을 향해 공격하였다. 주지교가 관문을 닫으려고 하였으나 당진군들은 이미 관 안으로 진입한 후라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리극이 우공의 뒤를 이어 당진군의 본대를 이끌고 하양성 안으로 들어 왔다. 주지교는 하양성을 잃었다고 괵공에게 문책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하양성을 지키는 수비군을 거느리고 당진군에게 항복하였다. 리극이 주지교와 하양성의 수비군을 향도로 삼아 하수를 건너 상양성을 향하여 군사를 진격시켰다.




한편 괵공이 상전(桑田)에서 견융군(犬戎軍)과 대치하고 있다가 당진군의 공격을 받은 하양성이 떨어 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괵공이 본국을 구하기 위해 황급히 군사를 거두어 퇴각하려는 순간에 견융의 기습공격을 받게 되었다. 괵공이 거느린 군사들은 대부분이 전사하여 뒤를 따르는 병거의 수는 단지 십여 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괵공은 패잔병을 수습하여 간신히 상양성에 당도하기는 하였으나 이미 견융군과의 싸움에서 대부분의 군사를 잃어버려 대책 없이 망연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윽고 당진의 군사들이 상양성 앞에 당도하여 성 주위를 물샐틈없이 포위하였다. 그 해 팔 월에 포위 당하여 십이 월이 되자 성중에는 땔나무와 먹을 것이 모두 떨어졌다. 괵공이 성 안에서 나와 싸움을 걸었으나 막강한 전력의 당진군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괵공이 거느린 사졸들은 지치고, 백성들이 내는 울음소리는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리극이 주지교에게 시켜 편지를 써서 화살에 메달아 성안으로 쏘게 하여 괵공으로 하여금 항복을 권하게 하였다. 괵공이 편지를 읽고 나서 말했다.




" 우리의 선조들은 대를 이어서 주나라 왕실에서 경사(卿士)의 직을 맡아 왔는데 어찌 내가 아래 직급의 제후에게 항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괵공은 밤이 되자 가솔들을 이끌고 성문을 열어 주나라 도성을 향하여 도망쳤다. 리극(里克)은 괵공이 달아날 수 있도록 뒤를 쫓지 않았다. 괵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서 향기로운 꽃과 등불을 손에 들고 리극 등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였다. 리극은 백성들을 안전한 곳에 모이게 한 후에 휘하의 군사들이 추호도 범하지 못하도록 추상같은 명을 내렸다. 이어서 군사들의 일부 수비병으로 남겨 괵성을 지키도록 한 다음에, 괵나라의 부고(府庫)에 있던 금은보화를 모두 꺼내어 수레에 싣도록 하고 그 중 십 분의 삼과 괵공에게 주었던 미녀들을 모두 우공(虞公)에게 주었다. 우공이 수많은 보물과 미녀들을 받고 크게 기뻐했다. 리극이 한편으로 사람을 헌공(獻公)에게 보내어 괵나라를 정벌한 것을 보고한 다음, 한편으로는 자기의 몸에 병이 났다고 핑계를 대고 휘하의 군사들을 우나라 도성밖에 머물며 쉬게 했다. 리극은 사람을 시켜 자기의 병이 낫게 되면 당진으로 회군할 것이라고 우공에게 전하게 했다. 우공이 수시로 음식과 약을 가지고 와서 리극의 병 문안을 하였다. 이렇게 한 달여가 지나던 중에 우공에게 갑자기 보고가 들어왔다.




" 당진의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도성 밖에 당도하였습니다."




우공이 사람을 보내 당진의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온 연유를 물어 보게 하였다. 그 사람이 돌아와 우공에게 보고하면서 말했다.

"

괵나라를 정벌하러 나간 당진의 군사들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까 걱정하여 그들을 돕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우공이 듣고 말했다.




" 과인이 마침 당진의 군주를 만나 수호를 맺고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당진의 군주가 스스로 찾아오니 과인이 바라고 있던 바였다."




우공이 듣자 황급히 음식을 준비하여 도성 밖으로 나가 진후를 맞이하였다. 두 나라 군주가 서로 만나서 피차간에 사례의 인사를 나누었다. 헌공(獻公)이 우공(虞公)에게 기산(箕山)에서 사냥대회를 하자고 하였다. 우공이 당진(唐晉) 사람들에게 자기의 사냥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서 성안의 모든 무장병들과 병거를 끄는 군마(軍馬)를 하나도 남김없이 사냥터로 끌고 나와 헌공(獻公)과의 시합에 임하려고 하였다.




이윽고 약속한 날자가 되어 두 나라의 군주들은 사냥터에서 만났다. 진시(辰時)에 시작한 사냥이 신시(申時)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성안에서 급보가 왔다.




▶진시/오전 7시부터 9시까지의 시간

▶신시/오후 3시부터 5시까지의 시간




" 성안에 불이 났습니다. "




헌공이 옆에서 듣고 말했다.




" 그것은 민간이 잘못해서 일어난 불일 것이요. 시간이 지나면 진화가 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사냥이나 계속 합시다."




헌공은 성안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우공을 붙잡아 다시 한번만 더 사냥터를 에워싼 후 내기를 하자고 청하였다. 대부 백리해(百里奚)가 은밀히 우공에게 다가와 말했다.




" 성안에 란이 일어났다고 하니 주군께서는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르시면 안 될 것입니다. "




우공이 헌공(獻公)의 청을 사양하고 이어서 작별인사를 한 다음에 먼저 사냥터를 떠났다. 우공의 일행이 회군하여 반쯤 갔을 때 수많은 우나라의 백성들이 란을 피해 자기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잇는 것이 보였다. 그 백성들이 우공 일행을 보자 말했다.




" 성은 이미 허를 찔려 당진의 군사들이 점령해 버렸습니다."




우공이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 속히 성으로 수레를 몰아라."




우공 일생이 이윽고 우나라 도성 밖에 당도하였으나 성문 위에는 한 사람의 대장 복장을 한 장군이 서 있는데 살펴보니 리극(里克)이 투구와 갑옷을 선명하게 차려 입고 난간에 의지하여 위풍도 당당하게 우공을 향하여 말을 했다.




" 예전에 군주가 길을 빌려준 은혜를 입어 괵나라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다시 군주께서 나라까지 빌려주시어 감사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공이 대노하여 성문을 향하여 공격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러자 성 위에서 갑자기 딱다기 소리가 커다랗게 들리더니 화살이 마치 비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우공은 즉시 수레를 뒤로 물리라고 명한 다음 전령을 시켜 뒤따라오는 후군에게 명령을 전달하게 하여 행군을 빨리하여 달려오도록 하였다. 전령이 돌아와 우공에게 보고하였다.




" 뒤에 천천히 따라 오던 군사들은 진나라 군사들에 의해 길이 끊겨 일부는 항복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 군사들의 병장기와 거마들은 모두 당진의 군사들이 가져가 버렸습니다. 당진의 군주가 대군을 이끌고 우리 뒤를 따라 진군해 오고 있는 중입니다."




우공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이 되어 한탄하며 말했다.




" 궁지기(宮之寄)의 간언을 듣지 않는 것이 후회되는 구나!"




우공이 곁에 있던 백리해를 쳐다보며 말했다.




" 그대는 그때 어찌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가?"




백리해 " 주군께서 궁지기의 간언도 듣지 않았는데 어찌 제가 간하는 말을 들었겠습니까? 신이 간언은 드리지 않았지만 정작 몸은 빼지 않고 지금까지 주군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때 위급한 사항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우공(虞公)을 향해 수레 한 대가 달려왔다. 가까이 다가온 그 사람을 보니 옛날에 괵공(虢公)을 모시다가 당진에 항복한 주지교(舟之橋)였다. 우공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띄웠다. 주지교가 우공을 보고 말했다.




" 군주께서 감언이설에 속아 진나라의 말을 듣고 괵을 버리신 결과 목전의 모든 것을 이미 잃으셨습니다. 오늘날 군주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란 이곳을 탈출하여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것뿐인데 차라리 당진에 항복하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당진의 군주는 덕이 많고 도량이 크신 분이라 틀림없이 아무 해도 가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군주의 처지를 동정하여 후하게 대하실 것이니 군주께서는 의심하시지 마시고 부디 항복하시어 여생을 아무 탈없이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공이 주저하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헌공이 당진군(唐晉軍)을 이끌고 우공이 있는 곳에 당도하여 사람을 보내 만나기를 청했다. 우공이 헌공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우공이 당도하자 헌공이 웃으며 말했다.




" 과인이 이곳에 온 것은 벽옥(璧玉)와 굴산지마(屈産之馬)를 찾고자 함이오!"




헌공은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우공을 수레에 태워 뒤따르게 하고는 당진의 군중에 머물게 하였다. 백리해가 우공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따라 다니며 모셨다. 곁에 있던 사람이 어째서 망한 우공 곁을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백리해가 말했다.




" 내가 우공의 녹을 오랫동안 받아 이렇게 모심으로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




헌공이 성안으로 들어와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순식이 왼손에는 벽옥을 들고 오른손에는 굴산지마의 고삐를 끌고 헌공 앞으로 대령하여 말했다.




" 신이 세운 계책이 이미 행해져 금일 벽옥은 부고(府庫)에 굴산지마(屈産之馬)는 마구간에 다시 넣어두기를 청합이다."




헌공이 크게 기뻐하였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우공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璧馬區區雖至寶(벽마구구수지보)

벽옥과 굴산지마(屈産之馬)가 비록 천하의 보물이었다지만




請將社稷較何如(청장사직교하여)

어찌 한 나라의 사직과 비교를 할 수 있겠는가?




不夸荀息多奇計(불과순식다기계)

지혜있는 순식의 교묘한 계책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하더라도




還笑虞公眞是愚(환소우공진시우)

정말로 우공의 어리석음을 비웃지 않을 수 없도다!







헌공이 우공을 당진에 데려온 후에 죽이려고 하자 순식이 듣고 말했다.




" 그자는 한낱 보잘 것 없는 미물에 불과한데 살려둔다 한들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순식은 우공(虞公)을 망명객에 대한 예로써 대하고 별도로 벽옥과 말을 주면서 말했다.




" 군주께서 저에게 길을 빌려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




주지교는 진나라에 와서 헌공으로부터 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주지교가 백리해의 현명함을 알고 헌공에게 추천하였다. 헌공이 백리해를 쓰고자 하여 주지교를 보내어 그 뜻을 전하게 하였다. 백리해가 듣고 말했다.




" 옛날에 모시던 군주가 아직 살아 있는데 어찌 다른 임금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주지교가 듣고 부끄러워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 백리해가 한탄하면서 말했다.




" 무릇 군자라면 원수의 나라에 몸을 담고 있으면 안 되는 법인데 어찌 벼슬까지 바란단 말인가? 내가 장차 벼슬길을 구한다 할지라도 원수의 나라인 이곳 당진(唐晉)은 아닐 것이다."




주지교는 백리해가 한 말을 전해 듣고 자기의 잘못을 꼬집는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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