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사기
본기(本紀)
서(書)
연표(年表)
세가(世家)
열전(列傳)
평설(評說)
원전(原典)
· 오늘 :  232 
· 어제 :  344 
· 최대 :  2,389 
· 전체 :  1,682,155 
 
  2004-05-12 12:01:558187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3-2
양승국
 한비.jpg  (220.6K)   download : 141
일반

한비(韓非)

열전3-2

1. 세난(說難)

- 유세의 어려움-

한비는 한(韓)나라의 공자 출신이다. 형명학(形名學)과 법술(法術)을 좋아하였으나 결국은 황제(黃帝)와 노장(老莊) 사상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눌변(訥辯)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어 책으로 써서 전했다. 옛날에 그는 이사(李斯)와 함께 순경(荀卿)에게서 배웠다. 이사는 스스로 자기의 재주가 한비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국세가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는 한나라를 본 한비는 여러 번에 걸쳐 한왕(韓王)에게 자기의 생각을 글로 써서 말했으나 한왕은 그의 생각을 받아서 쓸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한비는 한왕이 나라의 법제를 정비하고 밝힘과 동시에 그 신하를 제어하여 권세를 장악하고 어진 인재를 구하여 임용함으로써 부국강병에 힘쓰는 대신, 오히려 나라를 좀먹는 허랑방탕한 자들을 임용하여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들 위에 올려놓은 행위에 가슴아파했다. 유가들은 글로써 나라의 법을 어지럽히고, 유협들은 무기로써 나라에서 금한 법도를 범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한 나라가 평화로울 때는 명예로운 사람을 써야 하나, 나라가 위급할 때는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사람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의 한나라는 위급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사람만 기르고 소용이 되는 사람들은 기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한 한비는 청렴하고 강직한 사람들이 사악하고 못된 사람들에게 용납되지 않는 세태를 슬퍼하며 옛날 역사에서 성공과 실패의 변화를 관찰하여 《고분(孤憤)》,《오두(五蠹)》,《내외저(內外儲)》,《세림(說林)》,《세난(說難)》 등의10여 만 자의 글을 지었다. 그러나 《세난(說難)》 편을 지어 유세의 어려움을 상세하게 설파한 한비도 결국 진나라에 들어가서 화를 면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는 《세난(說難)》에서 말했다.

『무릇 유세가 어렵다는 말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써 상대방을 설득시키가 어렵다는 말이 아니며, 나의 구변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명백히 밝히지 못하는 일이 어렵다는 말도 아니다. 또한 내가 감히 거리낌 없이 말을 구사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남김없이 다 표현하는 일이 어렵다는 말도 아니다.

무릇 유세의 어려움이란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 나의 말을 거기에 맞추는데 있다.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이 높은 명예를 얻고자 하는데, 오히려 이(利)를 가지고 설득하려고 한다면, 상대방은 곧 나를 품위를 갖추지 못한 비천한 사람으로 대하며 필시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하게 된다.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이 큰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오히려 명예를 가지고 설득하려고 한다면 상대방은 나를 생각이 없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필시 받아주지 않게 된다.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많은 이득을 취하려고 하면서도 겉으로는 높은 명예를 구하는 척 하여, 내가 명예로써 그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그는 겉으로는 유세자를 받아들이는 척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멀리하게 된다. 또 그렇다고 해서 많은 이득으로써 그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그는 속으로는 몰래 그 말에 귀를 기울이겠지만 겉으로는 그 사람을 버린다. 남을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은 이 점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무릇 무슨 일이건 비밀을 지키게 되면 성공하게 되고, 일이 사전에 누설되면 실패하게 된다[事以密成, 語以泄敗]. 그러나 상대방의 일을 꼭 누설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대화 중에 어쩌다가 그가 숨기려고 하는 일에 대해 언급하게 될 때는 이 사람의 신변은 위험하다.

군주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유세자가 분명한 어조와 훌륭한 말로 지적하게 되면, 그 유세자의 신변은 위태롭다.

군주의 총애가 아직 충분히 내리지 않았음에도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능력을 발휘하여 올린 진언이 채택되어 공을 세우더라도 그는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또한 군주가 그의 진언을 실행했으나 성공하지 못할 경우는 의심을 받게 되어 그 신변이 위태롭다.

무릇 군주가 남의 계책을 이용하여 자신의 공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유세자가 그 내막을 알게 되면 그의 신변은 위태롭다.

군주가 기필코 행하지 않으려는 바를 억지로 강요하거나, 혹은 그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을 저지하려는 자는 그 신변이 위태롭다.

유세자가 대신들에 관해서 군주에게 언급한다면, 군주는 유세객이 자기와 대신들 사이를 이간시키려 한다고 의심하고, 직급이 낮은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한다면 자기의 권세를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대해 논한다면 유세객이 그 총신의 힘을 빌리려 한다고 의심하게 되고,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대해서 논하면 자기의 마음을 시험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유세객이 말을 간결하고 직접적으로 한다면, 군주는 그가 재능과 지혜가 부족하다고 행각하고 무시와 욕됨을 당하게 된다. 그렇다고 말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장황하게 말한다면, 말이 너무 많고 지루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순리에 따라 조심스럽게 자기의 의견을 개진한다면 군주는 그 유세객이 겁이 많고 유약한 자라 할 말을 다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심모원려(深謀遠慮)하나 지나치면 촌스러우며 거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움이니 알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무릇 유세의 요지는 상대방이 자랑하려는 대상을 칭찬하고, 상대방이 싫어하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덮어 주는 마음가짐이다. 상대방이 자기의 계책을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면 그의 약점을 들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되며, 스스로 자기는 용기와 과단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에 반대되는 다른 일을 말하여 그로 하여금 화를 내게 하면 안 된다. 또한 군주 스스로가 자기의 능력을 자랑한다면 그 어려운 점을 들어 가로막으면 안 된다. 유세객은 군주가 하려는 일이 다른 사람이 행했던 일과 다른 점과 같은 점이 무엇인가를 살피고, 군주와 같은 행동을 한 다른 사람을 칭송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아름답게 꾸며 칭송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행적을 손상키면 안 된다. 혹시 군주와 같은 실패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유세하는 사람은 그 실패한 일을 명쾌히 꾸며 그 일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고 말해야 한다. 크게 충성스러워 그 군주에게 거슬리지 않는 말로 군주를 깨우치려고 하더라도 배척받는 일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한 뒤에라야 비로소 자기의 변설과 지혜를 드높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군주의 곁에서 모시면서 의심받지 않고, 마음속에 품고 있으나 군주에게 감히 말하기 어려운 자기의 뜻을 모두 이야기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군주의 은혜가 매우 두터워지게 되면 깊은 계책을 내어도 의심을 받지 않게 되고, 비록 군주와 언쟁을 하게 되더라도 죄를 얻지 않게 된다. 그리되면 드디어 이해(利害)에 대한 계책을 올려 공을 이루고, 옳고 그름에 대해 바로 지적할 수 있어 그 자신의 영화로운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이러한 일을 잊지 않고 계속 행하면 그 유세는 성공시킬 수 있다.

이윤(伊尹)은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였으며, 백리해(百里亥)는 공녀가 시집갈 때 데리고 가던 노예의 신분이었으나 그 두 사람은 모두가 이 일로 해서 그 군주에게 기용되어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세상으로 나오는데 그와 같은 천한 일에 스스로 몸을 빼낼 수 없었으니 재능 있는 선비라면 이러한 일을 수치로 여기면 안 된다.』

2. 非知之難 處之則難(비지지난 처지즉난)

- 아는 것은 쉬운 일이나, 아는 것으로 어떻게 해동하느냐가 어려운 것이다. -

송(宋)나라에 부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비가 내려 담장이 무너졌다. 그 아들이 말했다.

「담을 쌓지 않으면 도적이 들게 됩니다.」

그 이웃 집 노인도 역시 담을 쌓지 않으면 도적을 맞게 된다고 말했다. 이윽고 저녁이 되자 과연 도적이 들어 재물을 크게 잃었다. 그러자 집 주인은 자기의 아들은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이웃 집 노인은 도적으로 의심했다.

옛날 정무공(鄭武公)이 호(胡)나라를 정벌하여 국토를 넓히려고 했다. 그러나 무공은 오히려 자기의 딸을 호나라 군주의 처로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무공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내가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는데 어떤 나라를 정벌하여야 하는가?」

관기사(關其思)가 무공의 뜻을 짐작하고 말했다.

「호나라를 정벌해야 합니다.」

정무공이 관기사를 죽이면서 말했다.

「호나라는 우리와 혼인으로 맺어진 형제지국이다. 어찌하여 그대는 호나라를 정벌하라고 하여 형제지간의 우의를 깨뜨리려고 하는가?」

호나라 군주가 정무공이 한 말을 듣고 정나라는 자기 나라를 형제지국으로 생각한다고 안심하여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았다. 정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기습하여 호나라를 정복하여 자기 땅으로 했다. 앞서의 두 이야기는 모두가 당연한 일을 말했음에도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심하게는 주륙을 당하고 가볍게는 의심을 샀다. 아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아는 것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어려운 일이다.(非知之難也, 處之則難矣)」

옛날 미자하(彌子瑕)라는 사람이 위나라 군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의 국법은 군주의 어가를 훔쳐 탄 사람은 그 발을 자르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미자하의 모친이 병이 들자 어떤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밤을 도와 달려 미자하에게 알렸다. 미자하는 군주의 명을 빙자하여 어가를 타고 모친에게 달려갔다. 군주가 후에 그 사실을 알고 그를 벌주는 대신에 오히려 칭송하였다.

「참으로 효자로다! 모친의 병구완을 가기 위해 다리가 잘리는 형벌마저도 마다하지 않았구나!」

미자하와 위군(衛君)과 같이 과수원으로 놀러 나갔다. 미자하가 복숭아 한 개를 따서 먹다가 너무 맛이 있이 다 먹지 못하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위군에게 바쳤다. 위군이 복숭아를 받아먹고 말했다.

「미자하는 진실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자기가 먹을 것도 잊고 나를 생각하다니!」

그러다가 미자하의 미색이 쇠퇴해져 군주의 총애가 식어 소원하게 되었을 때 그는 군주에게 죄를 얻게 되었다. 위군이 미자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 자는 옛날에 이미 내 명을 사칭하고 어가를 훔쳐 탄 적이 있으며, 다시 후에 자기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으라고 바친 일이 있다.」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과 하나도 달라진 바가 없었으나 예전의 행위는 어질다고 하다가 후에는 형벌을 받게 된 원인은 군주로부터 애증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군주로부터 총애를 받을 때는 그 지혜가 군주의 마음에 들어 더욱 친해지고, 미움을 받을 때는 같은 행위라 할지라도 군주로부터 죄를 얻어 더욱 멀어지게 되는 법이다. 따라서 간언을 올리는 유세자는 그 군주의 사랑하고 미워하는 바를 살펴본 연후에 유세를 해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 한비의 저서를 가지고 진나라에 가서 진시황에게 바쳤다. 진시황이 한비의 저서 중 《고분(孤憤)》,《오두(五蠹)》 등의 책을 읽고 말했다.

「참으로 애석하도다! 내가 이 책을 지은 사람을 얻어 같이 사귈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이사(李斯)가 옆에 있다가 말했다.

「이 책을 지은 사람은 한비라는 사람입니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세차게 공격했다. 한왕이 처음에 한비를 기용하지 않았다가 사태가 위급하게 되자 한비를 진나라에 사자로 보냈다. 진왕이 한비를 보자 매우 기뻐하기는 했지만 믿고 기용하지는 하지 않았다. 한비의 재능을 시기한 이사(李斯)와 요가(姚賈)가 그를 해칠 마음이 있어 진왕에게 모함했다.

「한비는 한나라의 공자 출신입니다. 오늘 대왕께서 천하의 제후들을 모두 병탄하려고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한비가 결국은 진나라보다는 한나라를 위해 힘을 쓰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대왕께서는 등용하지 않고 오랫동안 억류시켜 놨다가 돌려보낸다면 이후로는 한비의 존재는 진나라의 근심거리로 변하게 됩니다. 차라리 죽여버리는 편이 좋겠습니다.」

진왕이 이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한비를 잡아서 옥에 가두도록 했다. 이사가 사람을 시켜 독약을 한비에게 주어 자살하도록 했다. 한비가 진왕을 접견하기를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진왕이 후회하는 마음이 들어 사람을 보내 사면을 하려고 했으나 그때는 이미 한비는 죽고 없었다.

신자(申子)나 한자(韓子)는 모두 책을 저술하여 그 주장하는 바를 모두 후세에 전하니 그것을 배운 학자들이 많이 있다. 나는 다만 한비가 《세난(說難)》이라는 책을 저술하고도 본인은 그 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몸이 죽었으니 이를 슬퍼한다.

태사공이 말한다.

신자(申子)는 형명학에 부지런히 힘썼으며, 한자(韓子)는 법에 따라 모든 세상사의 시비를 결단하고 분명히 했으나 너무 가혹하여 배푸는 일에 각박했다. 이들의 학설은 모두 도덕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는 했지만 그 중 노자가 가장 심오하다.

▶한비자의 주요 내용

세난(說難) : 한비자 제12편으로 세(說)란 다른 사람을 말로써 설득하여 동감하게 만드는 유세(遊說)의 의미이다. 그래서 세난이라 하면 남을 유세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뜻이 된다. 전국시대 유세의 행위란 재주 있는 자들의 벼슬을 얻을 수 있는 등용문이었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이의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고분(孤憤) : 제11편으로 고분이란 말은'외롭게 홀로 울분에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본장의 내용은 고립무원에 처한 법술가(法術家)들은 대개가 권신들의 방해를 받아서 자신의 재주와 지혜를 중용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비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토로하고 있는 장이다.

오두(五蠹) : 제49편으로 나라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좀벌레에 비유하여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섯 가지의 좀벌레에 해당하는 부류로는 유가(儒家), 유세객(遊說客)와 종횡가(縱橫家), 유협(遊俠)의 무리들, 권문귀족(權門貴族), 상공인(商工人)을 들고 있다.

세림(說林) : 제22편, 23편으로 세(說)란 유세한다는 말이며 각종 사물들이 모여져 있으면 수풀과 같다고 하여 림(林)이라 하였다. 즉 무림(武林)이라 유림(儒林)의 림(林)과 같은 뜻으로 쓴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때 유세가 횡행하던 풍조에서 한비는 유세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 참고로 쓰이게 하고자 하면서 하나의 편으로 엮어 세림이라 명하고 상하로 나누어 모두71개의 고사를 담고 있다.

- 한비자 끝 -

목록
8816
[일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70-I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1 태사공자서는53만 자의 한자로 저술된 사기(史記)의 총130편 중 마지막 편으로 서문에 해당하며 사마천(司馬遷) 자신의
288.0K 양승국 04-05-12
[일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70- 2

太史公自序-2 499.維昔黃帝(유석황제), 옛날 황제 헌원씨(軒轅氏)는 ▶황제(黃帝) 중국이 원시사회를 벗어나려고 하던 시기의 부족국
304.0K 양승국 04-05-12
[일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70-3

태사공자서-3 1049. 末世爭利(말세쟁리), 세상이 말세가 되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이익을 다투게 되나 1050. 維彼奔義(유피분의)
176.0K 양승국 04-05-12
[일반] 백이열전(伯夷列傳) 1

伯夷列傳(백이열전) 열전1 무릇 학자들이 공부하는 서책은 비록 광범위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믿을 수 있는 기록은 단지 『육경(六經)』①일
양승국 04-05-12
[일반] 관안열전(管晏列傳)2-1

관중(管仲) 열전2-1 관중(管仲) 이오(夷吾)는 영상(潁上)① 출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관중과 같이 다녔던 포숙아(鮑叔牙)는 그가 슬기로운
양승국 04-05-12
[일반] 관안열전(管晏列傳)2-2

안영(晏嬰) 열전2-2. 안영(晏嬰)의 자는 평중(平仲)으로 래(萊)①의 이유(夷維)② 사람이다. 제나라의 영공(靈公)③, 장공(莊公)④,
양승국 04-05-12
[일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3-1

노자․장자․신자(老子莊子申子) 1. 노자(老子) 노자는 초나라 고현(苦縣)①의 여향(厲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다.
양승국 04-05-12
[일반] 이사열전(李斯列傳) 27

열전27 이사(李斯) 1. 鼠在所居 人固择地(서재소거 인고택지) - 쥐도 거처하는 곳에 따라 다르니 사람이야 말로 머무를 데를 택해야 한다.-
양승국 07-05-27
[일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3-2

한비(韓非) 열전3-2 1. 세난(說難) - 유세의 어려움- 한비는 한(韓)나라의 공자 출신이다. 형명학(形名學)과 법술(法術)을 좋아하였으나 결국
양승국 04-05-12
[일반] 사마양저열전(司馬穰苴列傳)4

사마양저(司馬穰苴) 열전4. 사마양저(司馬穰苴)는 전완(田完)①의 후예다. 제경공(齊景公)② 때에 진(晉)나라가 아(阿)③와 견(甄)④
양승국 04-05-12
[일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5-2. 손빈(孫臏)

손빈(孫臏) 열전5-2. 1. 陷入刖刑(함입월형) - 함정에 떨어져 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다. - 손무(孫武)가 죽고 백여 년 후에
양승국 04-05-12
[일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5-3. 오기(吳起)

열전5-3. 오기(吳起) 1. 殺妻求將(살처구장) - 부인을 죽여 장군이 되다. - 오기(吳起)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병사의 일을 즐겨했
양승국 04-05-12
[일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5-1. 손무(孫武)

열전5-1. 孫武列傳(손무열전) 손자(孫子) 무(武)는 제나라 사람이다. 병법으로 이름이 나, 오왕 합려(閤閭)를 접견하게 되었다. 합려가 말했다.
양승국 04-05-12
[일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6

오자서(伍子胥) 열전5. 1073. 維建遇讒(유건우참), 태자건(太子建)이 비무극으로부터 참소를 당해 1074. 爰及子奢(원급자서), 그 화가 오
양승국 04-05-12
[일반] 외전. 도주공(陶朱公) 범려(范蠡)

외전 범려(范蠡) 범려외전(范蠡外傳)은 사마천의 사기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편과 화식열전(貨殖列傳)의 범려 부분을 발췌
양승국 04-05-12
1 [2][3][4][5][6][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