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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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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열전30. 魏豹彭越(위표팽월)


위표(魏豹)는 옛날 위나라 왕실의 공자출신이다. 그의 형 위구(魏咎)는 옛날 위나라가 망하기 전 영릉군(寧陵君)에 봉해진 바가 있었다. 진나라가 위나라를 멸하고 위구를 폐하여 남의 집 일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진승이 기의하여 왕을 칭하자 위구가 찾아가 따랐다. 진왕(陳王)이 위나라 사람 주불(周巿)을 시켜 위나라 땅을 순행하며 위무하도록 했다. 이윽고 위나라 땅이 모두 평정되자 진왕은 주불을 위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주불이 말했다.

" 천하가 혼란하니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왕을 뵈러 달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옛날 위나라 땅에서 모두 반진의 깃발을 들고 일어선 뜻은 바로 위왕의 후손을 찾아 그 뒤를 잇게 하라는 뜻입니다. "

그러자 제(齊), 조(趙) 등의 나라에서 각각 50승의 수레를 보내와 주불을 위왕(魏王)으로 옹립하려고 했다. 주불이 받아들이지 않고 위구(魏咎)를 진(陳)에서 맞아들이고 다섯 번이나 진왕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교섭한 결과 그때서야 비로소 위구를 위왕으로 세우는 데에 진왕의 허락을 얻어냈다.

진(秦)나라의 장수 장한이 진왕(陳王)의 군사를 격파하고 계속 진격하여 임제(臨濟)에서 위왕을 공격했다. 위왕은 즉시 주불을 제(齊)와 초(楚)에 사자로 보내 구원을 요청하게 했다. 제와 초 두 나라가 항타(項它)와 전파(田巴)에게 군사를 주어 위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장한이 주불을 살해하고 그 군사를 무찌른 후 임제에서 위구를 포위했다. 위구가 그 군민들을 위해 항복하기로 하고 장한과 약속한 후에 바로 불 속에 뛰어 들어 자살했다.

위표(魏豹)는 임제에서 탈출하여 초나라 군영으로 도망쳤다. 초회왕이 위표에게 수천 명의 군사를 주어 위나라 땅을 순행하여 위무하도록 했다. 초장 항우가 진군을 격파하고 진장 장한의 항복을 받았다. 그 사이 위표가 위나라 땅의 20여 개의 성을 공략하자 초나라는 위표를 위왕에 봉했다. 위표가 정예한 군사를 선발하여 항우를 따라 관중으로 들어갔다.

한 원년 기원전 206년, 항우가 제후들을 봉하고 옛날 양(梁)의 땅을 자기 직할령으로 삼기 위해 위왕의 봉지를 하동(河東)으로 옮기고 평양(平陽)에 도읍을 정하게 했다. 그래서 위표는 서위(西魏)의 왕이 되었다.

한중에서 나온 한왕이 삼진(三秦)을 평정하고 임진(臨晉)에서 하수를 도하하자 위왕 표는 나라를 들어 한나라에 귀속했다. 계속해서 한왕을 따라 종군하여 초나라의 팽성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항우의 반격을 받은 한나라는 싸움에서 패하고 후퇴하여 형양(滎陽)에서 항우와 대치했다. 그때 위표는 모친의 병문안을 위해 휴가를 청해 봉국으로 돌아가 하수(河水)의 도구(渡口)를 끊고 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위표가 배반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왕이 동쪽의 초나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곧바로 위표를 공격하지 못하고 역생(酈生)을 불러 말했다.

" 그대가 가서 완곡한 말로 위표를 설득하여 만약 그가 다시 우리에게 항복하여 귀순해 온다면 나는 그대를 만호의 후에 봉하겠소."

역식기가 하동의 위나라에 들어가 위표를 설득했으나 위표가 사절하며 말했다.

" 인생이란 마치 흰망아지가 문틈 사이로 나타났다가 잠깐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짧은 시간과 같은데 한왕은 사람을 오만하게 대하고 모욕을 주기를 좋아하면서 제후나 군신들을 희롱하고 욕하기를 마치 노예 부리듯이 합니다. 한왕은 근본적으로 상하에 대한 예절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이라 제가 어찌 다시 한왕을 보고 싶어 하겠습니까? "

그래서 한왕은 한신을 보내 서위(西魏)를 토벌하도록 했다. 한신은 위표를 하동(河東)에서 사로잡아 한왕이 머물고 있던 형양(滎陽)으로 압송했다. 한왕은 위표의 봉국 서위를 폐하고 한나라의 군현으로 삼고 위표로 하여금 형양의 수비를 맡도록 했다. 이윽고 항우의 초군이 형양을 포위하고 맹공을 가해 형양성이 매우 위급하게 되자 마침내 위표의 배반을 의심한 주가(周苛)가 살해했다.


팽월은 창읍(昌邑) 출신으로 자는 중(仲)이다. 항상 거야택(巨野澤)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다가 무리를 모아 도적떼가 되었다. 진승(陳勝)과 항량(項梁)이 진나라에 반하여 기의하자 무리 중의 어린 소년 하나가 팽월에게 말했다.

" 여러 호걸들이 다투어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고 있습니다. 당

신도 그 뒤를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

팽월이 대답했다.

" 두 용이 서로 싸우고 있으니 잠시 때를 기다는 것이 좋겠다. "

그리고 1년여가 지나자 호수 주변의 소년들 백여 명이 무리를 지어 팽월을 찾아와 말했다.

" 청컨대 우리의 대장이 되어주십시오. "

팽월이 대답했다.

" 나는 여러분들과 함께 행동을 같이 하고 싶지 않다. "

그러나 소년들이 여러 번 간청을 하자 이내 허락했다. 그래서 그들과 그 다음날 아침 다시 모이기로 하고 늦는 자는 참수하겠다고 했다. 이윽고 다음날이 되어 해가 떴음에도 시간에 맞게 도착하지 못한 사람이 10여 명에 달했고 가장 늦게 온 자는 해가 중천에 가서야 도착했다. 그래서 팽월이 말했다.

" 나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강권하여 나를 대장으로 삼았다. 오늘 약속시간이 지났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늦게 도착했다. 내가 모두 죽일 수는 없고 가장 후에 온 사람만 죽이도록 하겠다. "

팽월이 소두목에게 명하여 그 자의 목을 베도록 했으나 사람들이 모두 웃으며 말했다.

" 어찌 정말로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청컨대 다음부터는 절대로 약속시간을 어기지 않도록 하겠으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팽월이 친히 그 사람을 끌어내어 목을 베고 제단을 만들어 맹세하고 무리들에게 령을 밝혔다. 도적의 무리들이 모두 크게 놀라 팽월을 두려워하여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리고 호수를 나와 여러 지방을 공략하여 제후들의 흩어진 군사 천여 명을 얻었다.


패공(沛公)이 탕현(碭縣)에서 나와 북진하여 창읍(昌邑)을 공격하자 팽월이 달려가 도왔다. 창읍을 함락시키지 못한 패공은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버렸다. 팽월 역시 그의 부하들을 이끌고 거야택 주변에 주둔하면서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흩어진 위나라 군사들을 모았다. 관중으로 들어간 항적(項籍)에 의해 왕으로 봉해진 제후들이 돌아와 자기 봉국에 취임했으나 팽월과 그의 만여 명에 달하는 부하들은 아무데고 소속이 되지 않아 갈 곳이 없었다.

한원년 기원전 206년 가을, 제왕(齊王) 전영(田榮)이 항왕(項王)에게 반기를 들고 사람을 보내 장군의 인장을 팽월에게 주고 제음(濟陰)으로 나와 초나라 군사들을 향해 진군하라고 독촉했다. 초나라가 소현(蕭縣)의 현령 각(角)을 장수로 삼아 팽월을 막도록 했으나 팽월은 초군을 크게 무찔렀다.

한왕 2년 기원전 205년, 한왕이 위왕 표(豹) 및 여러 제후들과 함께 동쪽으로 진군하여 초나라를 공격할 때, 팽월은 그가 거느리고 있던 3만여 명의 군졸을 이끌고 외황(外黃)으로 나아가 한나라에 귀의했다. 한왕이 팽월에게 말했다.

" 팽장군은 위나라의 10여 개에 이르는 성읍을 수습하여 하루빨리 위나라 후손을 찾아 나라를 세워야 하오. 지금 서위왕 위표 역시 위왕 구(咎)의 사촌동생이라 위표야말로 위나라 왕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소. "

한왕은 즉시 팽월을 위나라 상국으로 임명하고 그가 거느린 군졸들을 자기 임의대로 지휘하여 양나라 땅을 공략하도록 했다.

이윽고 항우가 치소로 삼고 있던 팽성으로 쳐들어간 한왕은 싸움에서 패하고 서쪽으로 후퇴하자, 팽월은 그 동안 점령했던 양나라 땅의 성읍들을 모두 잃고 군사들을 이끌고 북쪽의 하상(河上)으로 나아가 주둔했다.

한왕 3년 기원전 204년, 팽월은 한나라를 위해 쉬지 않고 유격활동으로 초군을 공격하여 양나라 땅에서 초군의 군량미 보급선을 끊었다.

한왕 4년 기원전 203년, 항왕과 한왕이 형양에서 대치할 때 팽월은 수양성(睢陽城)과 외황(外黃)의 17개 성을 함락시켰다. 항왕이 듣고 조구(曹咎)를 성고(成皐)의 수장으로 임명한 후 동쪽으로 나아가 팽월에 의히 함락된 성읍들을 모두 초나라로 찾아왔다. 팽월이 그 군사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도주하여 곡성(穀城)에 주둔했다.

한 5년 기원전 202년 가을, 항왕이 남쪽으로 양하(陽夏)로 달아나자 팽월이 다시 남하하여 창읍과 그 주위의 20여 개의 성을 합락시키고 곡식 10여 만 석을 얻어 모두 한왕의 군량미로 보냈다.

  한왕이 항적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한왕은 사자를 보내 팽월로하여금 전력을 다해 초나라의 배후를 공격하도록 했다. 팽월이 말했다.

“ 위나라 땅을 평정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초나라를 두려워하고 있는 백성들 때문에 아직 초나라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한왕이 후퇴하는 항우의 뒤를 추격하다가 고릉(固陵)에서 반격을 받아 싸움에서 패했다. 한왕이 장량을 향해 말했다.

" 제후들의 나를 도우러 오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오? "

장량이 말했다.

" 한신(韓信)을 제왕으로 세운 일은 왕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신은 자기의 지위가 공고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팽월은 원래 양나라 땅을 평정하여 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위나라 공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위표를 왕으로 봉하고 그는 단지 위나라 상국의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팽월은 지금 위표가 죽어 비어 있는 위왕의 자리에 앉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아직도 그 후임을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왕께서는 두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두 나라가 출전하여 항우를 무찌른다면 수양(睢陽) 이북에서 곡성(穀城)까지의 땅에 팽월을 왕으로 봉하고 진성(陳城) 이동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의 땅은 모두 제왕 한신의 영지로 하사하겠다고 약속하십시오. 한신의 집은 초나라에 있으니 그 옛 고을들을 다시 수복하겠다는 뜻을 밝히십시오. 그런 다음 그 땅을 모두 두 사람의 봉지에 각각 더하여 준다면 두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왕의 령을 받들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업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왕은 그 즉시 사자를 팽월에게 보내 장량의 계책대로 행하게 했다. 사자는 당도하여 한왕의 명을 전하자 팽월은 휘하의 전 군사를 이끌고 해하(垓下)로 출격하여 초나라 군사를 파했다. 마침내 그 싸움에서 항적이 죽었다. 그 해 봄에 팽월을 양왕(梁王)에 봉하고 치소를 정도(定陶)로 삼게 했다.

한왕 6년 기원전 200년 진현(陳縣)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조현을 드렸다.

한왕 9년과 10년 모두 장안으로 들어가 조현을 올렸다.

한왕 10년 가을, 진희(秦稀)가 대(代)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고제(高帝)가 친히 정벌하기 위해 출격하여 한단에 이르러 양왕에게 군사를 이끌고 종군하기를 명했다. 양왕이 병을 칭하고 휘하의 장수와 군사를 대신 한단으로 보냈다. 고제가 노하여 사자를 보내 양왕을 책망했다. 양왕이 두려워하여 친히 고제을 뵙고 사죄하려고 했으나 그 부하 장수 호첩(扈輒)이 말했다.

" 왕께서 처음에는 명에 응하지 않았다가 책망을 들으시고야 마지못해 가신다면 바로 사로잡히게 될 뿐입니다. 차라리 군사를 일으켜 반기를 드십시오."

양왕이 듣지 않고 병을 칭하고 가지 않았다. 그때 양왕은 그의 태복에 대해 노하여 그를 참수하려고 했다. 태복이 도망쳐 도성으로 들어가 양왕이 호첩과 함께 모반을 모의했다고 고변했다. 그래서 황제는 사자를 보내 양왕을 압송해오라고 시켰다. 사자는 양왕이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체포해서 함거에 싣고 낙양으로 압송했다. 관리가 양왕의 죄를 추궁하여 모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밝혀내고 법에 따라 처결할 것을 황제에게 청했다. 황제가 사면을 하고 서인으로 만들어 촉 땅의 청의(青衣) 땅으로 들어가 살도록 했다. 팽월이 정(鄭)2)나라 땅에 이르렀을 때 장안에서 고제를 만나기 위해오고 있던 여후를 만났다. 팽월이 여후를 찾아가 자기의 무죄를 눈물로 호소하며 자기의 고향 창읍(昌邑)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여후가 허락하고 팽월을 데리고 낙양으로 들어갔다. 여후가 고제를 만나 말했다.

" 팽월은 장사인데 지금 그를 촉 땅으로 들여보내면 장차 화근이 될 것입니다. 지금 즉시 죽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를 안심시키고 이곳으로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

여후는 곧바로 사람을 보내 팽월이 다시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고변하자 정위 왕염(王恬)이 팽월을 멸족시켜야 한다고 주청했다. 황제가 가납했다. 그래서 팽월의 종족은 멸족되었고 나라는 없어졌다.


  태사공이 말한다.


위표와 팽월은 원래 비록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천리의 땅을 석권하고 남면하여 고(孤)라 칭하여 피비린내 나는 전장터에서 이름을 얻었다. 반역의 뜻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일이 실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고 구차하게 목숨을 건져 포로가 되어 죄수의 몸으로 결국 형을 받아 죽었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중간 지위의 인물도 그와 같은 행위를 큰 치욕으로 여기는데 하물며 왕의 신분인 사람에게는 있어서는 어찌해야 했었겠는가? 그것은 다른 데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지혜와 가슴에 품고 있는 포부가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컸음에도 자기 행동에 대해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그만 권력을 손에 넣자 그것을 기화로 구름을 불러 용으로 변해 평소에 품고 있었던 생각을 도모하려고 했기 때문에 자신은 포로가 되어 구금되어 살해 되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위표․팽월열전끝>


주석

1) 주가(周苛)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204년에 죽었다. 서한의 개국공신 주창(周昌)의 사촌형이다. 패현(沛縣) 출신으로 한고조 유방과 동향이다. 진말 사수정(泗水亭)의 졸사(卒史)로 고조가 기의할 때 따라 모사(謀士)의 직책인 장중빈객(帳中賓客)에 임명되었다. 후에 내사(內史)의 직으로 옮겼다가 고조가 관중으로 들어가 진나라를 멸할 때 종군했다. 고조가 한왕이 되어 한중으로 들어갈 때 어사대부가 되었으며 다시 한중에서 나와 삼진을 평정할 때 항우군을 격파했다. 한 3년 기원전 204년 초나라가 형양(滎陽)을 포위하고 맹공을 가하자 고조가 형양성을 빠져나가면서 주가에게 성을 굳게 지키라는 임무를 맡겼다. 항우에 의해 성이 함락되어 포로가 된 주가는 항복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항우를 꾸짖자 항우는 주가를 팽살형에 처했다. 고조가 그의 공을 기려 그의 아들 주성(周成)을 고경후(高京侯)에 봉했다

2) 정(鄭)/ 지금의 하남성 화주(華州)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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