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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10 09:46:594178 
여인들의 중국사
운영자

【서울="뉴시스】



뛰어난 미모로 나라를 망친 여자, 남자에게 뒤지지 않고 전쟁터로까지 나선 여자, 정치를 어지럽히고 국가를 붕괴시킨 여자, 큰 포부와 이상을 품고 국가에 헌신한 여자, 후궁에서 암투를 벌이며 질투한 여자, 수렴청정을 하며 정권을 농락한 여자…. 미모와 지략, 술수와 야심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여자들이다.



이들의 면면에 중국사의 숨겨진 풍경이 있다. 이 여자들은 당당한 역사의 주체로 역사 흐름에 남자 이상의 영향을 미쳤다.



황제나 영웅호걸 등 권력을 손아귀에 쥔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 남자를 최고 권력자로 키우기도 하고 시원치 않으면 갈아치우기도 했다. 끝내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권력을 향한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의 와중에서 여성으로서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진시황(본명 영정)의 어머니 자초부인을 거상 여불위가 시첩으로 두고 있다가 회임시켜 진왕의 후보 가운데 하나였던 이인에게 들여보냈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그러나 ‘사기’의 기록을 분석하면 영정은 이인의 아들일 수 밖에 없다.



“조희(자초부인)가 임신을 한 채 시집갔다는 이야기는 여불위의 보호를 받기 위해 조희가 꾸며낸 계책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이인은 조나라의 인질로서 털끝 만큼의 권세도 없었고,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녀 역시 죽음을 면키 어려운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말처럼 재산이 많은 여불위라면 자신을 지켜줄 부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님 체면은 안 세워주더라도 부처님 체면은 세워주어야 한다’는 말처럼, 여불위가 제 자식 죽는 꼴을 그저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조희는 매우 총명한 여자였다. 비록 당시에는 여불위의 야심을 위해 시작된 일이었지만 그녀의 이러한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하는’방법은 여불위로 하여금 영정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나서게 하는 심리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또 자초부인은 불안한 상황에서도 어린 영정이 반드시 진왕이 되리라 믿고 최고의 스승을 구해 제왕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바탕에는 자초부인의 노력이 있었던 셈이다. 그녀가 없었으면 진시황도 없었을 것이다.



서한 성제의 왕후인 조비연은 가무에 능한 미녀였다. 후대의 작가가 쓴 소설에 그녀가 손바닥 위에서 ‘물찬 제비’처럼 춤추는 삽화가 들어갔을 정도다. 조비연이 황제를 유혹하려고 치마 뒷단을 살짝 뜯자 치마 뒤쪽을 트는 것이 유행, ‘신선치마(留仙裙)’라 부르며 하얀 다리를 보일 듯 말 듯하게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궁궐에서 입지를 다지고자 동생인 조합덕을 황제에게 바치는 엽기 행각을 벌인다. 조비연 자매는 서로 힘을 모아 황제를 색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한편 황제의 총애를 받은 다른 여자가 낳은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기까지 했다. 유방이 세운 한 황실이 대가 끊긴 이유다.



한족의 후예로 선비족의 후궁으로 들어갔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 여성 개혁가로 북위의 위상을 격상시킨 풍태후도 빠뜨릴 수 없다. 측천무후에 버금가는 여자다. 풍태후의 개혁은 각 민족 간 갈등을 완화했으며 훗날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그녀가 정적을 쳐 정권을 탈취하고 부패를 척결한 방법도 후대의 통치자들에게 교훈이 됐다.



“물론, 완벽한 인간은 없다. 풍태후도 사람들에게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 그녀는 황제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독한 어머니였다. 이것은 결코 떳떳하지 못한 방법이었고, 그녀의 일생에서 오점으로 남았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기회와 인연이 서로 모인 것이다. 생각해보라. 당시에 만약 풍태후가 정권을 독차지하겠다는 야심이 없었다면 개혁의 성대한 광경이 연출되었겠는가?”



티베트로 시집간 당나라 황녀 문성공주가 있다. 한족은 주변의 이민족과 끊임없이 갈등해왔으며, 한족의 통치자들은 간단하면도 거친 해결책을 동원하고는 했다. 선진시대의 견융에서 진한시대의 흉노에 이르기까지, 다시 남북조 시기에는 선비족이 장강을 마주하고 대립했다. 긴 세월에 걸쳐 전란이 이어지자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양쪽 다 정권의 안정을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일부 영명한 제왕들은 ‘화친’의 방식을 택해 변경의 안정을 유지했다. 한나라 원제 때 흉노족 선우에게 시집간 왕소군도 이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오랑캐의 나라’로 시집간 수많은 한족 공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당나라 태종 때 토번의 순챈감포에게 시집간 황녀 문성공주다. 문성공주가 먼 토번으로 시집감으로써 당왕조와 토번의 변경지대는 몇십년간 안정됐다. 한족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토번의 장족(藏族)은 큰 발전을 일궈냈다. 오늘날까지도 티베트인들은 문성공주를 신처럼 받들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명말 청초에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한 기생 진원원도 있다. 연기에 능했던 그녀는 오삼계와 관계를 맺었다. 오삼계는 명나라의 유명한 장수였지만 그녀를 되찾으려는 욕망에 청나라로 투항했다. 청나라에서 평서왕으로 봉해지고 명예와 부귀를 한 몸에 얻었건만 나라를 판 오삼계에게 이미 애정이 식어버린 진원원은 오삼계의 비참한 결말을 예감, 조용한 암자로 거처를 옮겨 죽음을 면했다. 그녀는 한 때 황제의 여자가 돼 최고 권력과 부귀를 누리려 했으나 결국 권력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청나라 초창기에 중원 정복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는 데 큰 공을 세운 여자도 있다. 손자인 강희제를 성군으로 키워낸 효장태후다. 누르하치의 아들인 황태극의 부인으로 타고난 재능과 정치적 두뇌를 이용해 남편을 힘껏 도왔다. 나중에 손자인 강희제가 14세 때 친정을 시작하자 권신인 오배가 어린 강희제를 견제하고 나섰다. 할머니인 효장태후는 오배를 제압한다.



“강희제가 친정을 시작한 것은 열네 살 때였다. 오배는 어린 군주를 무시하여 정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면서 황제에게 권력을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전횡을 일삼고 어린 황제를 힘으로 눌렀다. 아울러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태황태후는 손자의 권력이 위협을 받게 되자 오배를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심혈을 기울여 시나리오를 쓰고 재미있는 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을 맡았다. 그녀는 강희제에게 소년 경호대를 만들게 하고 늘 궁중에서 포고(布庫·몽골씨름과 유사한 운동)를 하게 했다. 오배는 조정에 나갈 때마다 그 경호대와 마주쳤고 그들도 오배를 피하지 않았다. 오배는 강희제가 아직 어려서 놀기를 좋아한다고 판단하고는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배가 조정으로 나가는데 씨름을 하던 소년들이 왁자하게 몰려오더니 갑자기 오배를 부둥켜 안았다. 오배는 그들이 장난을 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결박을 당하자 비로소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았다. 오배는 파면되어 구금되었고, 나머지 일당은 사형에 처해졌다. 태황태후는 이러한 계책으로 오배를 제거함으로써 손자의 지위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정권을 되찾은 강희제는 관리를 잘 가려 뽑고 백관들이 상서를 올리는 것을 장려해 청대 정치사에 새로운 한 장을 장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밖에도 경국지색의 대명사 격인 당 현종의 귀비 양옥환, 전무후무한 여제 무측천, 청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매국노 자희태후(서태후) 등 중국사를 수놓은 독특한 개성과 카리스마를 지닌 여자들의 활약상을 담았다. 왕번강(王本剛·중국역사학자) 지음, 구서인 옮김, 325쪽, 1만3000원,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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