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군의 대장군 한신(韓信)은 한왕 유방의 명을 받고 위(魏)나라로 쳐들어가 위군을 대파하고 위왕 위표(魏豹)를 사로잡았다. 승세를 탄 한신이 조(趙)나라로 진군하자 조나라는 장군 진여(陳餘)에게 20만의 군사를 주어 한신의 한군을 막도록 했다. 진여는 전략상의 요충지인 정형구(井陘口)에 성채를 구축하고 한신의 군대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정형구는 지금의 하북성 성도 석가장시(石家莊市) 서쪽 30키로 되는 곳으로 산서성과 하북성을 경계짓는 태항산맥의 좁은 협곡이다. 이에 앞서 조나라의 군사참모 이좌거(李左車)는 조군의 대장 진여에게 ' 한군의 배후를 돌아 그들의 양도를 끊어 정형도의 협곡에 한군 본대를 협도 안에 가두어 고사시키자고 건의했으나 진여는 이를 듣지 않았다. 그 소식을 첩자를 통해 전해들은 한신은 한군의 진군을 재촉하여 협도를 통과하다가 출구를 10리쯤 앞둔 곳에서 멈추고 진을 세웠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한신은 부하 장수 한 사람에게 2,000여 기의 한나라 기병을 거느리고 조나라의 성채 뒷산에 매복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말했다.

“ 본대(本隊)는 내일 싸움에서 조군을 성채에서 끌어내기 위해 거짓 패주(敗走)할 것이다. 우리 한군 본대를 추격하기 위해 조군이 성채를 나오게 되면 그 틈을 타서 성채를 점령하고 군사들에게 모두에게 미리 준비시킨 한나라 깃발을 모두 꽂도록 하라!”

이어서 한신은 1만여 군사를 협도 출구 쪽으로 보내어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背水之陣]'한 다음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성채를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그러는 시간은 여명이 되어 성채를 향해 진군해 오고 있는 한군을 발견한 조군의 모든 군사들은 성채를 나와 한군을 공격했다. 두세 차례의 접전 끝에 한나라 군사는 퇴각하자 강가에 주둔하고 있던 본대가 영문을 열고 한신과 장이의 군대를 맞아들였다.

조군이 과연 그들의 보루를 비워놓고 한나라의 대장기와 의장들을 서로 다투어 차지하기 위해 한신의 뒤를 추격했다. 그러나 한신의 선봉군을 맞아들인 강을 등지고 있던 한군 본대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어 결사적으로 조군의 공격에 대항했다. 한신이 미리 조군 진지 부근에 매복시켜 놓은 2천 명의 경기병들은 조군이 그들의 진지를 비워놓고 모두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 진지 밖으로 출동하자, 그 틈을 타서 신속하게 조군의 보루로 들어가 그들의 기치를 모두 뽑아 버리고 2천 개의 붉은 한나라 깃발을 세웠다. 그때 이미 조군은 한군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도 없고, 또한 한신 등의 한나라 장수들을 사로잡을 수도 없게 되어 일단은 자기들 보루로 돌아가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진영에 한나라의 붉은 기가 꽂혀 있는 것을 본 조군은 조왕(趙王)과 그 장수들이 모두 한군의 포로가 된 것으로 생각했다. 곧이어 조군은 혼란에 빠지더니 모두 제각기 대열에서 이탈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조나라 장수들이 달아나는 병사들 중 몇 명의 목을 베었지만 결코 막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한군은 앞뒤에서 협공하여 조군을 크게 무찔렀다. 계속해서 달아나던 조군의 뒤를 추격하여 저수(泜水)의 강안에서 성안군 진여의 목을 베고 조왕 헐(歇)은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