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도리깨’, 유럽을 내리치다 - 레그니차 전투 Under Fire | 2008/07/26 05:00 capa1954

‘신의 도리깨’, 유럽을 내리치다 - 몽골군의 레그니차 전투 칸, 술탄, 샤, 아미르, 달라이 라마...이 다양한 단어들은 황제와 왕을 일컫는 뜻 이외에도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13세기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 제국의 후예들이라는 것이지요. 제국을 이루었던 정복자의 후손들이 아시아와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 통치자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몽골의 전성기, 제국의 영역은 약 300백만 제곱킬로미터로 아프리카 대륙의 크기와 비슷한 규모였습니다. 그것도 60여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정복한 땅이었습니다. 당시의 몽골 전체 인구는 100만 명 남짓이었고, 몽골군의 규모도 20만 명을 넘긴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죠. ‘신의 도리깨’라고 부를 정도로 무자비한 정복전을 펼쳤던 몽골군대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도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되어 황인종에 대한 공포증을 만들고 있을 정도입니다. 팍스 몽골리아, 대제국 몽골은 그 넓이가 아프리카 대륙의 면적과 비슷했습니다. 13세기 중엽, 유럽인들은 동쪽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에 몸서리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도시들이 불바다가 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사제와 수도자들마저 교회에 몰아넣어져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는 얘기였죠. 이 이교도 군대들에 대한 공포는 유럽인들에게 신의 저주라고 생각될 만도 했습니다. ‘러시아 모든 도시들의 어머니’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키에프’도 이 ‘지옥에서 온 군대’의 말발굽을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키에프의 한 수도원장은 자신이 목격한 광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의 피가 마치 홍수처럼 땅을 적셨다.”라고 말이죠. 얼마나 철저히 파괴되었던지, 몽골군의 침입이 있은 지 6년 뒤 이곳을 방문했던 한 여행자는 자신이 본 것이 “벌판에 흩어져 있는 무수히 많은 해골뿐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4만의 인구에 교회만 400여 개에 달하던 대도시가 말 그대로 황량한 폐허가 되고 만 것이었죠. 가까스로 목숨만 부지해 도망 온 피난민들은 이 난폭한 군대를 ‘타타르’ ('Tartar'는 사악한 영혼이 벌을 받는 지옥의 땅 'Tartarus'에서 잘못 유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 GOMPD 주) 인들이라고 전했습니다. 1241년 초, 헝가리의 왕 벨라에게 한통의 서신이 전달됩니다. 자신을 ‘하늘의 사자’라고 소개한 타타르의 총사령관 ‘바투’(칭키즈칸의 손자)는 오만한 어투로 ‘보잘 것 없는 헝가리의 왕은 즉각 항복할 것’을 요구합니다. 깜짝 놀란 헝가리 왕은 교황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전령을 보냈지만, 몽골군의 도착이 훨씬 빨랐죠. 15만 명에 달하는 몽골군은 둘로 나뉘어 1241년 4월 초, 500Km 떨어진 폴란드 슐레지엔 지방의 ‘레그니차’와 헝가리의 ‘모히’에 거의 동시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럽인들에게 몽골군의 출현은 지옥에서 온 군대를 연상시켰습니다. 1241년 4월 9일, 슐레지엔公 ‘하인리히 2세’가 이끄는 4만 병력이 레그니차에서 동남쪽으로 4Km떨어진 ‘발슈타트’에 포진합니다. 폴란드와 유럽 각국에서 모인 4만 군대를 하인리히는 각각의 출신 국가별로 5개 부대로 나누어 사다리꼴로 배치합니다. 제 1진은 폴란드 농민들로 구성된 보병대로 몽골군의 진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죠. 제 2진과 3진은 지방 영주를 중심으로 기사와 그 종자, 그리고 영지에서 징병한 농민 보병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4진과 5진은 결정적 시기에 승부를 마무리 할 중(重)장갑 기병으로,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와 독일의 기사단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유럽군 총사령관 하인리히는 제 5진에 본진을 두고 있었죠. 기사들은 무게가 10kg에 달하는 사슬갑옷과 투구를 쓰고 3미터 길이의 ‘랜스’ (장창)을 들고 있었죠. 이들이 타고 있는 말 또한 사슬갑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창과 도끼를 들거나 석궁으로 무장한 보병들도 기사들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죠. 유럽 기사단의 돌격, 폼은 그럴싸합니다만... 15만 명의 몽골군은 3만 명씩 모두 5개의 군단으로 나뉘어 사다리꼴로 배치된 유럽군을 포위하는 횡대 대형으로 전개합니다.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기사들의 눈에는 볼품없는 조랑말을 타고 변변한 갑옷도 걸치지 못한 채 짧은 칼이나 반궁으로 무장한 몽골군이 지옥에서 온 군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죠. 유럽군의 제 1진을 지휘하는 모라비아 변경백의 아들 ‘볼레슬라프’가 공격 명령을 내립니다. 선두에 선 보병이 석궁을 발사하자 몇 명의 몽골 기병이 말에서 떨어지고, 랜스를 단단히 쥔 기사들의 돌격 앞에 몽골군은 말을 돌려 도망치기 바쁩니다. 사실 경기병인 몽골군은 일대일로 겨룬다면 중무장한 기사의 적수가 아니었죠. 기세가 오른 기사들과 종자들, 농민병 들이 쫓겨 가는 몽골군의 뒤를 쫓아 달려 나갑니다. 전공을 다 뺏길세라 초조해진 유럽군의 제 2진도 몽골군의 뒤를 쫓습니다. 대열이 흐트러지는 것에 당황한 하인리히가 이들을 제지하려 하지만, 여러 나라 출신들로 이루어져 의사소통 자체가 힘들고 통일된 지휘계통 조차 확립되지 않았던 유럽군은 무질서한 추적을 멈추지 않았죠. 몽골군은 말위에서 자유자재로 화살을 퍼부었습니다. 문득 이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유럽군 1, 2진 모두가 본진과 동떨어져 벌판 한가운데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별안간 함성소리와 함께 수 만 명의 몽골 기병들이 이들을 에워싸기 시작합니다. 닿을 듯 말듯 거짓 패주로 유럽군을 유인했던 몽골의 전위부대도 말머리를 돌립니다. 하늘을 시꺼멓게 덮을 정도로 날아 오른 화살은 이내 소나기처럼 유럽군대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죠. 변변한 방어 수단이 없는 보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슬 갑옷을 걸친 기사들도 별 도리 없이 화살 세례의 제물이 되어갔습니다. 화살촉에 독까지 발라 놓았을 정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공격 앞에 유럽군은 몰살당할 처지가 되고 맙니다. 눈앞에서 아군이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 것을 본 유럽군의 3진이 진격을 개시하지만, 채 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새롭게 나타난 몽골군의 공격을 받고 혼란에 빠집니다. 파국을 막아야겠다고 결심한 하인리히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웁니다. 최후의 결전 병력으로 남겨 둔 제 4, 5진의 출격을 명령한 것입니다. 자긍심 높은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 기사단, 그리고 독일 기사단이 성호를 긋고 일제히 박차를 차고 나갑니다. 그런데 전원이 말을 탄 기병으로 이루어진 몽골군에 비해 유럽군대의 기사단은 모두 말을 타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사의 시종들과 자신의 영지에서 데리고 온 농민들로 이루어진 보병들이 기사의 싸움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사타구니에서 불이 나도록 달려야만 했던 것이죠. 기병의 최대 강점인 기동력을 발휘하는 것이 유럽의 기사단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겁니다. 더군다나 상대는 걸음마를 하기도 전에 말위에서 잔뼈가 굵은 초원의 전사들이었습니다. 또 유럽군의 석궁은 사정거리와 파괴력이 강하긴 했어도 결정적으로 연사 능력이 떨어져 1분에 2발을 쏘는 것이 고작이었죠. 같은 시간 동안에 10발의 화살을 날릴 수 있었던 몽골군의 반궁에 의해 제일 먼저 유럽군의 석궁병들이 표적이 되어 쓰러져갔습니다. 죽어가는 유럽 병사들의 시신이 쌓여가는 가운데 유럽의 정예 기사군도 사냥감이 되어 무너져 가죠. 화살에 맞고 말에서 떨어진 하인리히의 참수된 목이 몽골군의 깃대 높이 올라가는 것으로 전투는 막을 내립니다. 몽골군의 완벽한 승리였죠. 당시 몽골군이 전과를 확인하기 위해 유럽군 전사자의 한쪽 귀를 잘라낸 것이 커다란 자루 아홉 개에 가득 찼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몽골군대의 힘은 엄정한 군기와 기동력에 있었습니다. 몽골군대는 열 명, 백 명, 천 명, 만 명 등 10진법 단위로 구성되어 각 단위 지휘관의 책임 아래 엄격한 군기가 유지되었습니다. 전장에서 동료를 저버리고 도망하는 자는 사형으로 처벌했죠. 유럽의 기사단이 개인기를 뽐내는 스타플레이어 위주였다면, 몽골군은 철저하게 조직적으로 사냥감을 사냥하는 늑대떼였습니다. 유목민족답게 말을 이용하는데 뛰어난 몽골군은 하루 평균 12km, 최고 200km의 기동력을 자랑했죠. 폴란드의 서쪽 끝 레그니차는 오늘날의 독일 국경과 가까운 곳이었고, 당시 독일은 군소 국가들로 나뉘어져 있어서 몽골군의 진격을 막을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유럽의 심장부까지 쭉 뚫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만일 몽골군이 유럽의 심장부로 진입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돌연 몽골군은 진로를 돌려 동쪽으로 사라집니다. 바람 앞에 등불 같던 유럽이 기사회생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습니다. 그 해 12월 칭기즈칸의 후계자 ‘오고데이칸’이 세상을 떠났고, 후계자 선출을 위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바투가 군대를 되돌렸기 때문이었죠. 이후 분열된 몽골 제국은 다시는 유럽을 공격할 만한 힘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몽골군에 대한 두려움은 황인종에 대한 공포로 일반화되어 유럽인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있습니다. http://blog.ohmynews.com/gompd/152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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