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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 모용황의 고구려 침입(342년)
운영자

선비족 모용황의 고구려 침입




북방유목민족으로 선비족(鮮卑族)의 일파인 모용 부족이 중국 북서부에 나타난 것은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선비족은 자신들의 추장 이름을 부족명으로 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에, 이 부족은 아마 '모용'이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으로 부족국가를 형성했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 하북성 상류에다 근거지를 마련하였는데, 중국대륙이 혼란한 틈을 타서 모용외는 세력을 확대해 3세기 초에는 요하의 지류인 대릉하 유역으로 진출하였다. 모용외는 이곳에서 선비대도독(鮮卑大都督)이라고 칭한 뒤 흉노의 난을 피해 투항해 온 한인들을 포섭하여 요동지역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대했다. 서진이 망한 뒤에 양자강 유역의 남경에 세워진 동진은 모용외를 무시할 수 없어 그를 요동군공(遼東君公)으로 봉했다.




모용외는 한인들을 관리로 등용하여 중국식으로 체제정비를 하여 국가의 터전을 닦은 뒤 고구려를 포함한 요동 주변의 여러 국가를 격파하였다. 모용외가 죽자 그의 아들인 모용황이 요동군공의 자리를 물려받아 크게 세력을 확대했다. 모용황 또한 난세의 영걸이었다. 그는 유연이 세운 후조와 손잡고 선비족을 통일하였으며, 나중에는 후조까지 하북지방에서 몰아내 버렸다. 그런 뒤 모용황은 종주국인 동진과의 관계를 끊고 스스로 연왕에 즉위하여 극성(棘城)에 도읍을 정했다. 이처럼 모용황의 연나라도 중국대륙의 혼란을 이용해 영토를 넓히려 했던 점에서는 고구려의 미천왕과 같았고, 두 나라는 국운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연나라 모용황과 언젠가는 일전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고국원왕은 평양성을 중축하고 만주 북쪽에 신성을쌓아 모용황의 침입에 대비하는 한편,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맹군을 확보했다. 그러자 모용황은 즉시 신성을 공격했다. 고국원왕은 할 수 없이 모용황에게 세자를 볼모로 보내 형식적으로 연나라에 조공을 하였다. 그리고 환도성을 수리하고 국내성을 다시 쌓아 전쟂ㅇ에 대비했다.




342년 8월. 고국원왕은 도읍을 평양에서 환도성으로 옮겼다. 그러나 모용황도 도웁을 용성으로 옮겨 고구려와의 일전에 대비했다. 모용황은 먼저 고구려를 항복시키고, 이어서 우문씨를 복속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중국 대륙까지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1월 모용황은 고구려 공격을 단행했다. 그들은 환도성의 방어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선봉장 모용한(慕容翰)의 다음과 같은 전략이 그것을증명한다.




"고구려국은 반드시 우리 대군이 북도로 쳐들어올 줄 알고 북도만을 엄중하게막고 남도를 소홀하게 할 것이니 우리는 정예병을 남도로 집중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 전략에 따라 모용황 군대는 주력군을 남도에 배치하고 고구려군의 눈을 속이기 위해 환도성 북도부터 먼저 침입하였다.




고구려는 예상대로 북도에 주력군을 투입했다. 고국원왕의 아우 무(武)가 정예병 5만을 이끌고 북도로 침공하는 적을 막았다. 고국원왕 자신은 약한 군대를 이끌고 남도를 방어하러 나갔다.




험한 산으로 둘러싸인 환도성은 대병력 이동이 쉽지 않았다. 고국원왕은 모용황이 이끄는 4만의 정예병을 저지할 수 없었다. 전투는 순식간에 끝나고 적은 환도성으로 물밀듯이 진격해왔다. 형세가 얼마나 급박했던지 고국원왕은 환도성을 버리고 홀로 단웅곡(斷熊谷)까지 도망쳐야 했다. 이 와중에서 고국원왕의 어머니인 왕모 주씨가 모용황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북도를 막으러 갔던 고구려군 역시 적에게 허를 찔려 괴멸당하는 참패를 당했다.




환도성을 함락한 모용황은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주력군이 고구려에 있는 틈을 타서 또 ㄷ른 적이 공격해 올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용황은 단웅곡으로 도망가 있는 고국원왕을 공격하지 않고 사자를 보내 환도성으로 돌아오라고 권했다.




말하자면 해치지 않을 테니 항복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고국원왕은 환도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버텼다. 본국의 사정이 급했던 모용황이 철군하려고 하자 좌장사 한수(韓壽)가 말했다.




"고구려의 땅은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그 왕이 도망가고 백성들이 흩어져 산 속에 숨었습니다만, 우리 대군이 돌아가면 저들은 틀림없이 다시 모요들어 또 다른 후환을 만들 것입니다. 청컨대 망브의 시체를 파서 싣고 가고, 또 그 생모를 사로잡아 고국원왕이 항복한 뒤에 돌려보내소서."




모용황은 그 건의를 받아들였다. 고국원왕의 아버지인 미천왕릉이 파헤체졌고, 창고에 있던 수많은 보물도 약탈되었다. 모용황의 군대를 미천왕의 시체와 보물, 고구려인 5만여 명을 사로잡는 등의 전과를 올리고 철군했다. 그들은 떠나면서 궁궐을 불태우고 환도성의 성벽을 몽땅 헐어버렸다.




이듬해 고국원왕은 아우를 연나라게 파견하여 모용황에게 항복을 표시했다. 미천왕의 시체와 왕모를돌려받기 위해 고국원왕의 아우는 스스로 신하라 맹세하고 값진 보물 1천여 점을 바쳤다. 그러나 모용황은 미천왕의 시체만 돌려주고 왕모는 계속 붙잡아 두었다. 고국원왕은 할 수 없이 도읍을 평양의 동황성으로 옮기고 후일을 도모했다.




348년 모용황이 죽고 그의 아들인 모용준(慕容寯)이 연왕에 즉위했다. 고국원왕은 계속 볼모를 보내며 왕모를 돌려달라고 했으나 모용준은 거절하다가 355년에서야 왕모를 돌려보냈다. 납치한 지 14년 만의 일이었다. 이때 고국원왕은 연왕 모용준으로부터 낙랑공왕(樂浪公王)에 봉해져 정동대장군(征東大將軍) 영주자사(營州刺史)란 벼슬을 받았다.







(다음 신지식-임병주 "한권으로 읽는 삼국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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