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교사 절반이 '좌편향'인가

현 교과서, 김영삼 교육과정 따른 것"

[대담] 현직 역사교사들에게 교과서 현주소를 묻다

박병춘 (hayam) -오마이뉴스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이 거세다. 국방부와 통일부·대한상의 등이 교육과학기술부에 교과서 수정안을 전달했고, 한나라당에서도 교과서 개정논의가 나올 정도다.

이런 일련의 흐름에 대해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현직 역사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23일 저녁, 대전 서구 정림동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서 현직 역사교사들을 만났다. 윤세병(39. 대전과학고교 역사 교사), 이영길(40. 대전공업고교 역사 교사), 장유철(28. 대전둔원고 역사 교사) 교사와의 대담을 소개한다.

"교과서 수정론은 교육현장 고려 않은 정체 공세"

- 최근 교과서 수정론에 대해 일선 교사로서 남다른 느낌이 있을 것 같다.

윤세병 "당혹스럽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3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80년대 보도지침이 있었던 것처럼 현재의 상황은 역사 국정교과서가 부활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영길 "교육 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채 진행되는 정치 공세다. 정작 학교 안에서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와 학생에 대한 배려는 없는 것 같다. 자신들의 권력을 구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념적인 부분이 사용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장유철 "안타깝다. 교직에 들어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제시된 다양한 시각을 보고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지금의 상황이 올지는 몰랐다. "선생님!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가 좌편향이에요?"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교사들은 뭐라 설명해야 하는가?"

- 최근 갑자기 교과서 수정요구가 거세진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윤세병 "'내 이야기가 맞다'는 전제 하에 자기 것이 아닌 것은 좌로 몰아세우려는 의도가 깔린 전형적인 편 가르기식 사고라고 본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장유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는 이념 논쟁이라고 볼 수는 없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수사가 아닐까. 그래서 좌편향이란 말을 강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윤세병 "얼마 전 간첩 사건이 있었는데, 이미 우리 국민들은 성숙해 있기 때문에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국민들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다."

이영길 "어쨌든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논리를 보면 그들 나름대로 어떤 체계를 지니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모두 웃음)."

윤세병 "색깔은 논리가 아니다. 분위기로 때려 버리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도 반복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결국 믿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 정부에서 '좌편향~ 좌편향~' 하니까 대중들이 그렇게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장유철 "반복하면 내면화하게 되는 경향성이 문제인데, 그것은 기존의 군부 독재가 써먹었던 것 아닌가. 조중동을 중심으로 이런 전략이 먹혀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안하다. 7차 교육과정 이전 국정 국사 교과서는 일부의 사실을 선택적으로 가르쳤다. 7차 교육과정 이후 금성 교과서를 포함한 모든 교과서는 최근의 연구 성과나 다양한 관점들을 반영하고 있다. 과거의 이야기를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좌편향으로 본다는 데 문제가 있다."

"새마을운동은 본문에 천리마운동은 보조자료에, 이게 좌편향?"

이영길 "가령, 7차 교육과정 이후 국사 교과서를 보면 북한 사회와 관련된 부분에서 천리마 운동에 대한 서술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보면 왜 그 운동이 일어났고, 어떤 내용이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설명한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교과서가 천리마 운동을 찬양하는 식으로 기술했다고 비틀어서 이야기한다. 과연 이것이 맞는 지적인가?"

장유철 "교과서 수정을 요구하는 진영에서 새마을 운동과 천리마 운동을 논의할 때, 새마을 운동 부분은 서술 분량이 적고, 천리마운동은 상세히 서술했다고 주장한다. 교과서를 보면 새마을 운동 서술 부분은 본문에 배치되어 있고, 천리마 운동 부분은 보조 자료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한데도 수정 요구 진영은 사회주의 운동, 북한 관련 서술,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좌편향으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 주장대로 모든 개념을 반공이라는 잣대로 들이대고 보면 모든 게 좌편향이 되고 만다."

윤세병 "아프리카 세네갈이 프랑스 식민지였다. 프랑스는 땅콩 재배를 강요했다. 분명 프랑스는 땅콩 농사가 잘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땅콩을 가져오기 위해 땅콩철도도 가설했다. 또한 유럽인들도 아프리카를 수탈하기 위해 카카오 철도나 구리 철도를 만들었다. 그럼 그 철도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나?

이 사실을 우리나라로 옮겨와 보자. 현행 교과서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가 근대화를 촉진했다고 하는데 철도라는 것이 수탈과 군대 이동을 위해 건설한 것 아니었나. 철도 가설의 정치적 목적 등은 빼고, 철도를 가설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영길 "식민지 시기의 경제 발전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일제를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런 점을 빼고 일본이 식민지를 근대화시켰다고 하는 주장이 과연 옳은가. '수탈'이라는 근본 목적은 등한시한 채 통계 숫자만 들이대며 근대화론을 펼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장유철 "교과서 수정 진영이 말하는 친일파 청산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교과서 포럼이 만든 대안교과서는 금성교과서를 분석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이승만 대통령을 위시한 우파 집권 세력은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체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친일파 청산보다 내부 단결과 반공 태세가 더 급하다고 생각하였다'라고."

윤세병 "또한 그들은 금성교과서를 분석하면서 '프랑스 나치 협력자 대숙청과 한국의 반민족행위자 처벌은 역사적 상황이 매우 상이하다'고 하며 '나치는 점령 기간에 대량의 학살을 자행하는 반인륜 범죄를 저질렀다. 그에 비해 한국은 일본과의 전쟁으로 점령된 것이 아니며, 그 기간도 35~40년의 장기에 걸쳤으며, 국내에서 반일 전선이 공개적으로 형성된 적이 없으며, 일제가 학살과 같은 반인륜 범죄를 자행한 적도 없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을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들의 수정요구가 반영된 교과서가 등장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암담하다."

"국가수준 교육과정 준거안도 좌편향이란 논리"

- 수정 요구 진영은 금성교과서를 포함한 6종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보는데, 금성 교과서는 학교 현장에서 절반이 넘는 채택률을 보이고 있다. 역사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짚어보았으면 한다.

윤세병 "교과서를 만들려면 대단원·중단원·본문 내용까지 국가가 마련한 준거안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심지어 용어까지도 규제한다. 가령 8·15는 '해방'이 아니라 '광복'으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의거한 준거안이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좌편향이라고 주장하는 교과서가 어떻게 검정을 통과하였는가."

이영길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편찬 체계라는 것이다. ①국가수준 교육과정을 결정하고(국가수준 교육과정은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에 만들어졌다.) ②근·현대사 내용 전개 준거안을 마련하여 근·현대사 검정 기준을 정한 후 ③검정 기준을 고려한 집필 작업을 진행하고 ④검정에서 통과되어야 공식적으로 교과서가 발행된다.

이러한 편찬 체계를 놓고 볼 때, 과거 국정 교과서와 7차 교육과정 이후의 교과서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결국 김영삼 정부 시절에 이루어진 큰 틀 속에서 현재 교과서가 존재한다. 이것을 좌편향이라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 아닌가. 현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면 그 모태인 국가수준의 교육과정과 준거안도 좌편향이란 논리 아닌가."

"일선교사 과반 이상이 금성출판사 교과서 채택한 이유는..."

- 그렇다면 현재 세 분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채택한 교과서는 무슨 교과서인가?

모두 : "(동시에) 금성교과서요!(웃음)"

장유철 "현재 발표에 의하면 전교조 조합원수는 전체 교사 대비 18.2%라고 한다. 그런데 금성교과서 채택률은 전국적으로 절반을 넘어선다. 교과서 수정 요구 진영에서는 전교조의 입김으로 교과서가 절반 넘게 채택되었다고 하는데, 수치상 18.2%인 전교조의 입김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그만큼 일선 역사 교사들이 금성교과서를 채택한 이유는 이념성 때문이 아니라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풍부한 학습 자료와 학생 활동을 담아 학생 스스로 역사를 탐구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윤세병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이 만든 대안교과서 집필진을 보라. 12명 집필자 가운데 과연 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가. 역사를 모르는 자격 미달자들이 현 정권의 이념과 맥을 같이 하여 대안교과서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16개 시도교육감과 교장단까지 나서서 일선 학교가 선호하는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도록 강요하는 것은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자들의 횡포에 불과하다. 우리는 역사를 전공한 역사교사로서 단순 의견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역사교과서로 수업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진정으로 이념을 강조하는 교과서는 현장에서 우리 역사 교사들이 아이들과 탈 없이 상호작용하며 가르치고 있는 6종 교과서가 아니라, 바로 교과서 포럼이 만든 대안교과서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장유철 "현재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국방부와 통일부가 교과부에 교과서에 대한 수정의견을 제시했다. 국방부는 전두환과 5공 정권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교과서 수정을 요구해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통일부 역시 '햇볕정책'을 '화해협력 정책'으로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교과부가 이미 상반기에 정부의 각 부처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기에 국방부와 통일부와 비슷한 요구들이 계속해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영길 "역사는 과거 사람들의 삶을 성찰하는 학문이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다양한 시각에서 제시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한가지의 잣대를 가지고 점령군처럼 강요할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하는 사람들과 역사연구자와 현장 교사들이 함께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한 대담은 자정을 훨씬 넘겨 새벽 1시 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기사로 대체할 수 없는 하소연과 절망적 탄식은 후일담으로 미루기로 한다. 우리 사회가 마지막에 이 교사가 말한 것처럼 공론의 장이 마련될지는 미지수다.

대담에 함께 한 교사들이 특별하게 공감한 사실이 있다.

"뜬금없이 이념 논쟁으로 치닫는 이명박 정부는 현재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심히 우려된다. 역사를 장악하려는 현 정부의 행위도 분명히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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