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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07 11:59:355096 
크림 반도와 2차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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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차대전 발발 직전 스탈린은 우크라이나를 탄압함. 무리한 식량 수탈 등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인 수백만 명이 아사함.



1941년 6월 나치독일 총통 히틀러는 "발바롯사" 작전 발동(소련 침공 작전)해 수년 전에 스탈린과 맺은 불가침 조약을 깨고 약 3백 50만 대군을 동원해 전격적으로 기습함. 이후 독소전이 개전하고 채 3개월이 지나지 않아 소련군 주력(개전 직전 독일군의 2배 정도 병력)이 궤멸 상태에 빠짐.



궤멸 원인은 1. 개전 초반에 크게 당황한 스탈린이 주요 지휘관들에게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지 못함. 전쟁 지휘부 전체가 우왕좌왕 2. 병력은 우세했으나 장군 등 주요 지휘관들의 역량에서 독일이 압도적으로 뛰어남 3. 소련이 전투기, 전차 등에서 양적인 우...
세는 점했으나 질적인 면에선 별 차이가 없음. 당시 독일 전차를 압도하는 신형 전차가 일부 배치되기 시작했으나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요인때문에 의미가 없어짐. 결국 독일을 위협할 수 있었던 일부 신형 장비들은 지휘부 혼란 속에 각개격파당하는 신세가 됨



마침내 겨울이 코 앞에 닥친 11월이 되자 독일군은 북부에선 레닌그라드(현 페테스부르크, 표트르 대제가 세운 신도시)를, 중부에선 모스크바를 목전에 둠. 남부에선 이미 여름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가 함락됨.

이때 모스크바 최후 방어선엔 고작(?) 50만 명을 전개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받음. 개전 직전 소련군 주력은 5백만 명을 상회했으나 북부, 중부, 남부 전 전선에서 궤멸당함. 특히 남부 전선 키에프 함락시 100만 소련군이 포위섬멸당한게 치명타임.



그러나 다행히도 히틀러의 오만이 결정적인 오판을 부름. 겨울이 닥치기 전 모스크바를 점령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동계 장비를 전혀 보급하지 않았으며 히틀러 자신이 모스크바 점령을 등한시해 독일군 주력을 키에프 함락전에 돌리는 실수를 저지름.

독일군 공세에 압도당한 소련군은 이미 기동성을 상실하고 고착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독일군 주력을 모스크바로 곧장 진격시키고 나머지 전력으로 모스크바에 대한 원군을 차단하면 그만인 상황이었음. 겨울 전에 충분히 함락할 수 있었음.

그러나 히틀러는 키에프 포위전을 우선시함.(소련 주력이 대부분 키에프로 내몰렸기 때문이며 또한 우크라이나가 소련 최대 곡창지대이기 때문)



이때문에 모스크바를 독일군 시야에 넣은 것은 겨울이 닥치고 난 뒤였음. 동계 장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모스크바 전선에 전개한 독일군들은 말 그대로 얼어죽기 시작함.



반면 동계 작전에 익숙한 소련군은 곧 반격을 개시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모스크바 전선에서 독일군을 멀리 밀어내는데 성공함. 시간을 버는데 성공한 소련군은 신규 병력 충원, 병기 생산 증대로 공백을 메꿀 수 있었음.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인들은 스탈린의 폭정, 탄압에 분노해 침공해온 독일군을 대대적으로 환영함. 그러나 독일 국방군의 뒤를 이어 들어온 나치독일 친위대가 "열등한 슬라브인"들로 간주해 우크라이나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기 시작함.



겨울이 지나고 42년 봄이 오자 독일 장군들은 드디어 모스크바 함락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함. 그러나 히틀러는 더이상 모스크바에 관심이 없었음. 바로 소련 최대 유전지대인 바쿠를 포함한 소련 남부 코카서스 지역을 최우선 목표로 둠.

장군들 대부분은 이에 반대했으나 히틀러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음. 마침내 해빙기가 지나고 땅이 단단하게 굳어 차량 통행이 가능해지자 총통은 "블라우 작전"(코카서스 지역 점령 작전)을 발동함.



독일군 주력은 이제 모스크바를 버려둔 채 우크라이나를 지나 코카서스 지역으로 쇄도해 들어감. 이때 우크라이나 남부의 크림 반도가 드디어 독일군 총공세의 첫 목표로 등장함.



크림 반도의 군항 세바스토플은 소련 최고의 전략 요충지 중 하나임. 노도처럼 밀려오는 독일군이 세바스토플을 완전히 포위했으나 수비대는 항복할 생각이 추호도 없음.



독일군은 수천 문의 대포를 동원해 세바스토플을 끊임없이 집중 포격함. 그러나 세바스토플 수비대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함. 단 며칠로 계획되어 있던 독일의 점령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수개월이 지나고나서야 겨우 세바스토플을 함락함.



독일군은 마침내 코카서스의 관문인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 볼가 강의 도시)에 도달했으나 소련군이 또다시 치열하게 저항함. 공방 끝에 스탈린그라드 거의 대부분이 독일군 수중에 떨어짐.

그러나 소련군은 대반격을 준비 중이었음. 스탈린그라드 외곽엔 독일군 모르게 이미 수백만 대군이 비밀리에 집결했음. 독일군은 이것도 모르고 스탈린그라드 수비대 포위에만 신경 씀.



마침내 소련군 반격의 포문이 열림.(천왕성 작전) 단 일주일 만에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한 독일 제 6군은 오히려 기백만 소련군 포위망에 빠지는 신세가 됨.



히틀러는 절대사수를 주장하며 포위된 독일군의 퇴각을 가로막음. 이는 히틀러의 망상에 불과함. 마침내 2월 2일 포위되었던 독일 제 6 군 25만 명 중 그때까지 살아남은 9만 명이 항복함. 이후 포로 중 단 6천여명이 전쟁 종결 후 독일로 생환함.



p.s 1941년 겨울 독일의 모스크바 공략이 실패했다. 42년 봄이 되자 장군들은 기회라 생각했으나 히틀러는 바쿠 유전 등 코카서스를 최우선시했다. 이제 보니 미국 참전(41년 12월 7일 일본제국의 진주만 기습 결과)에 대비하는 게 히틀러 의도였다.



미국 참전 이후론 히틀러 안중에 소련은 없었고(열등한 슬라브인일뿐) 미국 생각만 온통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강년 facebook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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