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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43:115660 
제86회. 殺妻求將(살처구장) 鼓琴取相(고금취상)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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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86회 殺妻求將 鼓琴取相(살처구장 고금취상)

처를 죽여 장수가 된 오기(吳起)와

거문고를 빗대 치국의 도를 설파하여 상국이 된 추기

1. 모사불귀(母死不歸)

- 모친이 죽었음에도 고향에 가지 않아 증삼(曾參)에게 파문을 당한 오기 -

한편 오기란 위인은 시기심이 많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 수천금의 가재를 털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벼슬을 구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은 그의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 그의 고향 사람들이 그의 행위에 대해 비웃자 오기는 자기를 비방하던 사람 30여 명을 죽이고 위나라 도성의 동쪽으로 난 곽문(郭門)을 통하여 도망치면서 자기의 두 팔목을 이빨로 물어뜯고 가슴을 두드리며 그 모친에게 맹세했다.

「이 기가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어머님과 작별을 해야 되겠습니다. 제가 학문을 배운 다음 경이나 상국이 되어 절모(節旄)①를 앞세운 큰 수레를 타지 않고는 이 위나라 땅에 들어와 어머님을 뵙지 않겠습니다.」

그 모친이 눈물을 흘리며 그냥 집에 머물라고 만류하였으나 오기는 기어코 위성(衛城)의 북문으로 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노나라를 향해 달려갔다. 노나라에 당도한 오기는 공자의 유명한 제자인 증삼(曾參)의 문하생이 되어 밤과 낮의 구분 없이 글을 열심히 읽으며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 제나라의 대부 전거(田去)가 노나라에 들렸다가 책을 놓지 않고 학문에 열심인 오기를 보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오기와 담론을 즐겼는데 오기의 말은 끝이 없이 이어져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었다. 전거가 감동하여 자기의 딸을 오기에게 주어 그의 처로 삼게 했다. 오기가 증삼의 문하에 기거한 지도 어느덧 몇 년의 세월이 흐르자 증삼은 그의 고향집에 노모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증삼이 오기에게 물었다.

「너는 이곳에서 학문을 배운지가 이미 6년이 되도록 한 번도 집에 가서 부모에게 인사를 드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어찌 사람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느냐?」

오기가 증삼의 말에 대답했다.

「이 기는 이미 집을 떠날 때 어머님의 면전에 대고 ‘직위가 경상(卿相)의 자리에 이르지 않고는 결코 위성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의 말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 한 맹세라면 몰라도 어찌 자기 모친 앞에서 한 말을 맹세라고 할 수 있느냐?」

증삼이 이후로 오기의 인간됨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나라에서 편지가 당도하여 모친의 죽음을 알려왔다. 오기가 하늘을 향해 세 번을 크게 부르짖고, 이어서 눈물을 거두더니 평상시처럼 글을 열심히 읽었다. 증삼이 보고 노하여 말했다.

「오기란 놈은 자기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달려가 모친의 상을 치르려는 생각도 하지 않으니 이는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린 금수같은 행위다. 무릇 물이 없는 샘은 말라 버리고, 뿌리가 없는 나무는 죽게 되는 법인데 사람이 본분을 잃는다면 어찌 능히 그 생애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겠는가? 오기는 더 이상 나의 제자가 아니다!」

증삼이 제자들에게 명하여 오기를 파문한다고 전하게 하고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

오기가 할 수 없이 유학(儒學)을 배우기를 포기하고 병법을 배우기 시작하여 3년 만에 학문을 완성하고 노나라에서 벼슬을 구했다.

2. 살처구장(殺妻求將)

- 처를 죽여 장수의 자리를 구하다. -

노나라의 상국 공의휴(公義休)가 오기와 함께 병사의 일에 대해 자주 논하다가 그의 재능을 알게 되어 목공(穆公)에게 천거하여 대부의 직을 제수하게 하였다. 오기가 녹봉을 받기 시작하여 재산이 불어나자 처첩과 시녀들을 많이 사들여 스스로의 음락을 즐겼다. 그때 제나라의 상국 전화(田和)는 제후(齊侯)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전화는 제나라의 국권을 찬탈할 경우 제나라의 공실과 대대로 혼인 관계를 맺고 있는 노나라가 자기를 토벌하는 경우를 미리 대비함과 동시에, 옛날 애릉(艾陵)에서의 싸움②에서 오나라를 도운 노나라에게 원한을 갚을 겸해서 군사를 대거 일으켜 노나라를 공격했다. 노나라의 상국 공의휴가 노목공에게 진언했다.

「오기를 장군으로 써야만 제나라의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노목공이 입으로는 비록 그리 하겠다고 했지만 머뭇거리며 결국은 오기를 쓰지 않았다. 제나라 군사들이 계속 진격하여 이윽고 성읍(郕邑)③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는 급보가 당도했다. 공의휴가 다시 노목공에게 청했다.

「사태가 이미 매우 급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오기를 기용하면 제나라의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시지 않으십니까?」

「오기에게는 장군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이미 알고 있소. 그러나 그는 제나라의 전씨 종족의 딸을 부인으로 두고 있소. 세상에는 부부사이의 사랑만큼 깊은 정이 없다고 하는데 만일 오기를 우리 노군의 대장으로 삼을 경우 그가 그 부인 때문에 관망만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겠소? 그런 이유로 내가 주저하며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소.」

공의휴가 목공 앞에서 물러 나와 자기의 집무실인 상부(相府)로 갔다. 상부에는 오기가 이미 공의휴를 접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오기가 공의휴를 보고 물었다.

「제나라의 침략군이 이미 우리나라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주공께서는 달리 훌륭한 장수감을 얻으셨는지요? 오늘 제가 스스로를 천거한다고 하여 상국께서 괘념치 않으시고 저를 장수로 삼아 주신다면, 노나라를 침략한 제나라 군사들의 병거를 단 한 대일지라도 돌려보내지 않겠습니다.」

공의휴가 오기에게 목공의 말을 전했다.

「내가 세 번이나 천거했으나 주공께서는 그대가 제나라의 전씨의 딸과 혼인을 하여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어 그 결정을 주저하고 있소.」

「주공의 의심을 푸는 일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오기가 공의휴와 헤어져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그의 처인 전씨에게 말했다.

「사람이 그 처로 인하여 귀하게 된다고 했는데 무엇 때문인지 아오?」

「바깥일은 남편이 집안일은 부인이 맡음으로 해서 집안의 도가 이루어집니다. 처가 있음으로 귀하게 된다는 말은 가업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남편의 작위는 경상에 이르고 작록은 만종(萬鍾)에 달하며, 그가 세운 공은 죽간이나 비단에 적혀 그 이름을 천고에 남기는 공적도 가업을 크게 일으키는 일 중의 하나요. 어찌 부인된 도리로써 그 남편에게 바라는 바가 아니겠소?」

「당연하신 말씀이십니다.」

「내가 부인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소. 부인은 마땅히 나를 위해 들어주어야 하겠소.」

「저는 부군의 아내이온데 어찌 그 남편을 도와 공과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데 도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까?」

「지금 부인의 친정나라인 제나라가 군사를 보내 노나라를 공격하고 있소. 노후가 나를 장수로 삼아 제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싶어도 내가 제나라 여인을 부인으로 데리고 있다고 의심하여 나를 장수로 삼으려고 하지 않고 있소. 미안하지만 그대의 머리를 얻어 노후의 의심을 풀어야 되겠소. 그리되면 나는 노나라의 장군이 되어 공을 이루게 되어 이름을 얻을 수 있소.」

전씨가 크게 놀라면서 입을 열어 대답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오기가 칼을 빼들고 한번 휘두르자 전씨의 목이 잘려 땅에 떨어졌다. 사관이 이를 두고 지은 시가 있다.

부부란 하룻밤을 새도 백날의 은혜를 주고받는데

무고한 부인을 잔인하게 죽여 원혼을 만들었다.

모친상도 돌아보지 않은 인륜도 끊은 자라

하찮은 부인과 자식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一夜夫妻百夜恩(일야부처백야은)

無辜忍使作冤魂(무고인사작원혼)

母喪不顧人倫絶(모상불고인륜절)

妻子區區何足論(처자구구하족론)

오기가 비단보에 전씨의 머리를 넣어 가지고 와서 노목공을 접견하면서 말했다.

「신이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려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주공께서 저의 처로 인하여 의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이 오늘 저의 처를 참하여 여기 그 머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로써 저의 마음은 노나라에 있지 제나라에 있지 않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목공이 전씨의 목을 보고 참혹한 심정이 되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장군은 잠시 기다려보기 바라오.」

이어서 잠시 후에 공의휴가 조당으로 들어오자 목공이 말했다.

「오기가 그의 처를 죽이고 노나라의 장수가 되려고 하고 있소. 이것은 참으로 잔인한 짓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소.」

「오기가 자가의 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가 공명(功名)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공께서 만약 그를 버리고 장수로 기용하시지 않으신다면 그는 필시 우리 노나라를 버리고 제나라로 갈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공의휴의 말을 따르게 된 노목공은 오기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설유(泄柳)와 신상(申詳)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 2만을 주어 제나라 군사들을 막도록 했다. 오기가 대장으로 임명된 후로 군중에서 사졸들과 함께 복식과 음식을 같이하며, 누워 잘 때는 침상도 깔지 않고 길을 걸을 때는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사졸들과 같이 걸어 다녔다. 또한 양식을 짊어진 사졸들이 무거운 배낭으로 힘들여 하면 그 짐을 나누어서 짊어졌다. 사졸들 중 병이 나거나 종기가 나면 오기가 친히 약을 지어서 먹이고 종기는 친히 자기의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 주곤 했다. 이윽고 사졸들은 오기의 은혜에 감격하여 마치 부자지간처럼 지내게 되었다. 노나라 군사들은 주먹을 문지르고 손바닥을 비비며 제나라 군사들과 한바탕 해보려고 싸움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한편 전화(田和)가 대장 전기(田忌)와 단붕(段朋)을 이끌고 거침없이 진격하여 곧바로 노나라의 남비(南鄙) 땅을 공격했다. 이어서 오기가 노군의 대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전화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 자는 우리 전씨 종족들의 사위인데 여자만을 밝히는 자라. 어찌 군사의 일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그런 자를 노나라가 대장으로 임명한 처사는 싸움에 일부러 지고 싶어서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구나!」

이윽고 제와 노 두 나라 군사들은 서로 진영을 세우고 대치 상태로 들어갔다. 그러나 제군은 오기가 싸움을 걸어오지 않자 아무도 몰래 사람을 시켜 노나라 진영을 정탐해 오게 했다. 정탐꾼이 노나라 진영에 잠입하여 살펴보니 오기는 군사들 중 가장 직급이 낮은 자들 중에 섞여 아무 것도 깔지 않고 땅 바닥에 그냥 앉아 국물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었다. 정탐꾼이 돌아와 자기가 본 오기의 모습을 전화에게 보고하였다. 전화가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장군이란 위엄을 갖추어야만 사졸들이 두려워하여 명령에 따르게 되고, 명령을 두려워한 사졸들은 힘을 다하여 싸움에 임하게 된다. 오기는 오히려 사졸들 틈에 끼어 행동거지를 같이하고 있으니 어찌 능히 여러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겠는가? 내가 싸움에 지지나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전화가 자기가 사랑하는 장수 장축(張丑)을 시켜 거짓으로 강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노나라 진영으로 보내어 오기가 과연 싸울 의사가 있는지를 다시 살펴보게 하였다. 오기는 노나라의 정예 군사들을 모두 후진에다 숨겨 놓고 남은 노약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제나라의 사자 눈에 띄게 하였다. 이어서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장축을 맞이해 들이며 극진한 예를 취했다. 장축이 오기를 향해 말했다.

「제가 군중에서 들으니 장군께서는 부인을 죽이고 노나라의 장군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사실입니까?」

오기가 듣고 몹시 두려워하는 태도로 대답했다.

「소장이 비록 불초하나 과거에 이미 성인의 문하에서 배움을 익혔는데 어찌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겠습니까? 저의 처는 병이 들어 스스로 죽었는데 그때 마침 제가 대장으로 임명되어 장군께서 그런 소문을 들으셨지 사실이 아닙니다.」

「장군이 만약 우리 제나라의 전씨들의 호의를 저버릴 생각이 없다면 원컨대 장군과 결맹하여 강화를 맺고 싶습니다.」

「저는 한낱 글 밖에 읽은 것이 없는 일개 서생에 불과한데 어찌 감히 제나라의 전씨들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제가 제나라 군사들과 강화조약을 맺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제가 바라고 있는 일입니다.」

오기가 장축을 군중에 머무르게 하고 3일 밤낮을 술을 마시며 접대했다. 이윽고 장축이 제나라 진영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순간까지 오기는 병사의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장축도 노나라 진영의 영문을 나설 때까지 오기에 대해 공경하는 태도를 극진히 하며 거듭해서 강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축이 돌아가자 오기는 즉시 병사들과 장수들을 불러 3대로 나눈 후에 장축의 뒤를 미행하게 했다. 전화는 장축이 돌아와서 오기의 군사들은 노약하고 또한 싸울 뜻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보고를 받고 오기가 이끌던 노군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갑자기 진영의 군문 밖에서 북소리가 크게 일어나더니 노나라 군사들이 나타나 제나라 진영으로 돌격을 감행해 오자 전화는 크게 놀랐다. 제군은 말에 갑옷을 입히지도 못하고 다시 병거에 말을 멜 틈도 없어 큰 혼란에 빠졌다. 전기가 전화를 구하기 위해 보군을 이끌고 달려오고 단붕은 화급하게 명을 내려 군사들을 정돈한 후에 병거에 오르게 하여 노나라 군사들을 막게 했다. 그러나 제나라 진영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고 설유와 신상이 이끄는 노나라의 좌군과 우군의 군사들이 일제히 양쪽에서 협공하자 제나라 군사들은 도저히 당해내지 못했다. 이윽고 싸움에서 크게 패한 제군은 전사한 동료들의 죽은 시체를 노나라의 남비 들판에 가득 남겨두고 평륙(平陸)의 길을 통해 제나라로 달아났다. 노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출전한 오기는 제나라 군사들을 패주시키고 대승을 거두었다. 노목공은 그 공으로 오기를 상경으로 삼아 그 벼슬을 올려주었다.

전화가 싸움에서 지고 제나라에 돌아가 장축을 불러 오기의 계책에 넘어간 죄를 물었다. 장축이 말했다.

「저는 오기가 행한 것만을 보았지 어찌 그것이 오기가 나를 속이기 위한 계책인 줄 알았겠습니까?」

전화가 탄식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오기의 용병은 마치 손무나 사마양저가 행한 병법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만약에 노나라가 오기를 계속해서 그들의 대장으로 삼는다면 제나라의 화근이 될 것이다. 내가 한 사람을 노나라에 보내 비밀리에 강화를 청하고 두 나라는 서로 그 국경을 범하지 않기로 하겠다. 그대가 노나라에 가서 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원컨대 명을 받아 노나라에 가서 공을 세워 지난 번 싸움에서 지은 죄를 씻겠습니다.」

전화가 즉시 상인으로 변장시킨 장축에게 돈을 주고 산 제나라의 두 미녀와 황금 천일을 주고 노나라에 가서 은밀히 오기에게 뇌물로 바치라고 했다. 오기는 원래 재물을 탐내고 여자를 밝히는 성격이라 장축이 바친 뇌물을 받으면서 말했다.

「제나라 상국께 감사하다는 나의 뜻을 전해 주기 바랍니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범하지 않는다면 어찌 노나라가 제나라를 침범하겠습니까?」

장축이 노성의 시정으로 나가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들고 고의로 자기가 오기에게 뇌물을 바쳤다는 사실을 말하고 다녔다. 이어서 노성의 시정에는 의견이 분분하더니 결국은 오기가 뇌물을 받고 제나라와 내통을 하기로 했다는 소문으로 변했다. 목공이 소문을 듣고 말했다.

「내가 원래 오기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했는데 과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노목공은 오기의 작록을 깎고 제나라에서 뇌물을 받아 챙긴 죄를 추궁하려고 하였다. 오기가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그의 가권들을 버려두고 위나라로 도망쳐서 적황의 집에 묵게 된 것이다.

3. 吴起爲西河守(오기위서하수)

- 오기가 위나라의 서하태수가 되다. -

그때 마침 문후와 적황이 서하의 땅을 지킬 장수를 찾고 있던 차제에 적황이 오기를 문후에게 추천하였다. 위문후가 오기를 불러 물었다.

「내가 들으니 장군은 노나라에서 큰공을 세웠다고 하던데 어찌된 연유로 이런 구차한 나라에 어려운 걸음을 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소.」

「노후가 소인배들의 참소하는 말을 듣고 결국은 저를 믿지 않아 이렇게 죽음을 피하여 이곳으로 도망쳐 오게 되었습니다. 군후께서는 하사(下士)에게까지 신의를 지키시어 세상의 호걸들이 모두 모여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원컨대 수레 앞에서 군후님의 말고삐라도 붙들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군후님으로부터 몽은을 입어 쓰임을 당한다면 비록 간과 뇌가 쏟아져 흙과 뒤범벅이 된다할지라도④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문후가 즉시 오기를 서하의 수장으로 명했다. 오기가 서하에 부임하여 성을 새로 수축하고 해자를 다시 파며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무예를 단련시켰다. 오기가 사졸들을 사랑하기를 예전의 노나라에서 하듯이 하였다. 서하에 성을 크게 쌓아 섬진의 공격에 대비하게 하여 이름을 오성(吳城)이라 이름지었다.

이때 진(秦)나라에서는 혜공(惠公)이 죽고 태자 출자(出子)가 그 뒤를 이었다. 이때의 진나라 군주 계승 과정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조공(操公)이 재위 14년 만인 기원전 429년에 죽었으나 아들이 없었음으로 그의 동생 회공(懷公)이 섰다.

회공이 재위 4년 만인 기원전 425년, 서장(庶長) 조(晁)와 대신들이 힘을 합하여 자신을 공격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공의 태자는 소자(昭子)였으나 일찍 요절했기 때문에 손자인 영공(靈公)이 뒤를 었다.

영공이 재위 13년만인 기원전 412년에 죽었으나 그의 아들 헌공(獻公)이 즉위하지 못하고 영공의 막내 숙부인 도자(悼子)가 뒤를 이었다. 이가 간공(簡公)이다. 간공은 소자의 동생이며 회공의 막내아들이다.

간공이 재위 16년 만인 기원전 399년에 죽고 그의 아들 혜공(惠公)이 즉위하였다.

혜공이 재위 13년만인 기원전 387년에 죽자 아들 출자(出子)가 뒤를 이었다. 옛날 영공이 죽었을 때 그 아들 사습(師隰)이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군신들이 간공을 받들어 섬진의 군주로 세웠었다. 이로써 간공에게 전해진 섬진의 군주의 자리는 3전 되어 출자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사습의 나이는 장년이 되었다. 사습이 섬진의 대신들에게 말했다.

「이 나라는 나의 부친의 것이었는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세자의 자리에서 폐한 것이오?」

대신들은 사습에게 대꾸할 말이 없자 이윽고 서로 상의하여 출자를 죽이고 사습을 섬진의 군주로 세웠다. 이가 진헌공(秦獻公)이다. 섬진의 군위 다툼 때문에 국내가 어지러워지자 그 틈을 타서 오기가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여 하서의 다섯 성을 취했다. 한과 조 두 나라가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와 위나라가 하서를 차지한 일을 칭하했다.

4. 李克薦相(이극천상)

- 이극이 다섯 가지의 기준을 들어 재상을 천거하다.

위문후가 갑자기 죽은 재상의 후임을 새로 세우기 위해 이극을 불러 물었다.

「선생은 옛날에 나를 깨우쳐 주기를 ‘ 집안이 가난할 때는 어진 아내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어진 재상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지금 비어 있는 재상 자리에 위성과 적황 중 누구를 세워야 하겠습니까?」

「신이 듣기에 ‘신분이 비천한 사람은 존귀한 사람의 일에 관여를 하면 안 되고 관계가 소원한 사람이 친한 사람들의 일에 관여를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신은 궐문 밖에 사는 비천하고 관계가 소원한 사람입니다.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선생은 눈 앞의 일을 사양하시지 말고 나를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주군께서는 어찌 살피시지 않으십니까? 쓰시고자 하는 사람이 평소에 친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이 재산을 모았을 때 같이 지내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가 현달했을 때 천거하는 자가 누구인가? 그가 어려움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행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그 사람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에도 취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⑤ 이 다섯 가지를 살피신 후에 뜻을 정하신다면 결코 실수가 없을 터인데 어찌 이 이극에게 구태여 물어 보십니까?」

「선생의 취사선택하는 말에 따라 과인은 누구를 재상으로 삼을 지를 이미 정했습니다.」

이극이 문후의 앞에서 물러 나와 적황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적황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극을 보고 물었다.

「오늘 제가 들으니 주군께서 선생을 불러 후임 재상으로 누구를 삼을지를 물으셨다고 하던데 과연 누구를 천거하셨습니까?」

「위성을 재상으로 삼으라고 말씀을 드렸소.」

적황이 듣고 얼굴색을 바꾸며 화를 내며 말했다.

「귀와 눈이 달려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보고 기억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내가 위성보다 못하단 말입니까? 서하의 수장으로 오기를 추천하여 그 곳의 방비를 굳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하서의 다섯 성을 우리 위나라의 영토로 삼았고, 주군이 업도(鄴都)의 정치가 어지러워 근심하고 계실 때 제가 서문표를 천거하여 업도가 잘 다스려지게 되었습니다. 주군께서 중산을 정벌하시려고 하자 내가 악양을 천거하여 그를 대장으로 삼아 중산이 우리나라 땅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중산을 지킬 수장이 없다하여 제가 선생을 천거했습니다. 또한 태자에게 선생이 없다하여 제가 굴후부(屈侯鮒)를 주군에게 천거하여 태부로 삼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제가 위성보다 못하다고 하십니까?」

「이 극을 천거한 목적이 장차 그대가 사사로운 마음으로 큰 관직을 얻기 위해서 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군께서 묻기를 ‘성(成)과 황(黃) 중에서 누구를 재상으로 삼아야 하겠는가?’라고 하시기에 이 극이 대답하기를 ‘ 쓰시고자 하는 사람이 평소에 친한 사람이 누가인가? 그 사람이 재산을 모았을 때 같이 지내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가 현달했을 때 천거하는 자가 누구인가? 그가 어려움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행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그 사람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에도 취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라고 말씀 드리고 이 다섯 가지를 충족시키는 사람을 재상으로 삼으시면 될 일을 어찌하여 저에게 물으십니까?’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군께서 깨달으셨음으로 재상은 곧 위성이 되리라고 나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대가 어찌 위성과 비교해서 낫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위성의 봉록은 천종인데 그 중 9할은 바깥일에 사용하고 1할은 집안일에 사용하여 우리 위나라 동쪽 땅에서 복자하(卜子夏), 전자방(田子方), 단간목(段干木)을 얻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주군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대의 식록은 모두 그대를 위해 쓰고 있고, 그대가 천거한 다섯 사람은 모두 주군의 신하인데 어찌 그대가 위성과 겨룰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적황이 할 말을 잊고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이극을 향해 절을 하며 말했다.

「이 황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이 사람을 선생님의 문하의 제자로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후로는 위나라에는 장수들과 재상의 재목들이 몰려들어 나라가 안정되었다. 이로써 위나라는 삼진 중에서 그 국력이 가장 강성하게 되었다.

5. 田氏代姜齊(전씨대강제)

- 전씨가 강씨의 제나라 국권을 차지하다. -

제나라의 상국 전화(田和)는 위나라가 강성하게 되고 다시 위문후의 어진 이름이 천하에 떨치자 위나라와 깊은 우호를 맺었다. 이어서 그의 군주인 제강공(齊康公)을 동해의 바닷가로 옮겨 살게 하고 한 개의 성만을 주어 식읍으로 삼게 한 후에 나머지 제나라의 영토는 모두 전씨의 소유로 하였다. 또 사람을 위문후에게 보내어 자기를 위해 주천자에게 청원을 드려 삼진의 예에 따라 제후의 반열에 설 수 있도록 부탁했다. 그때는 이미 주위열왕(周威烈王)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주안왕(周安王) 교(驕)가 뒤를 잇고 있었는데 당시 주나라의 세력은 더욱 미약해져 있었다. 이윽고 주안왕 16년 기원전 386년 안왕은 위문후의 청원을 받아들여 전화를 제후(齊侯)로 봉했다. 이가 전태공(田太公)이다. 진(陳)나라의 공자 완(完)이 제나라로 망명하여 제환공에게 출사하여 대부의 직에 제수된 이래 그 13세인 전화의 대에 이르러 제나라의 군주가 된 것이다.⑥ 강씨들의 제나라 사직은 이로써 끊어졌다.

6. 刺客聶政(자객섭정)

- 엄수(嚴遂)를 위해 원수를 갚아준 자객 섭정 -

당시 삼진(三晋)은 훌륭한 사람을 찾아서 재상에 임명하는 일을 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국의 권한이 다른 제후국에 비해 강했다. 위나라는 이극의 천거를 받은 위성(魏成)이, 조나라는 공중련(公仲連)이, 한나라는 자를 협루(俠累)라고 부르는 한괴(韓傀)가 재상의 자리에 있었다. 협루가 빈한하게 살고 있을 때 복양(濮陽) 출신의 이름이 수(遂)라고 하는 엄중자(嚴仲子)와 결의형제를 맺고 지냈다. 협루의 집은 가난했고 엄수의 집은 부유했기 때문에 수가 협루에게 일용할 양식과 의복을 대주고 다시 천금을 내어 그가 다른 나라에 가서 유세하여 벼슬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왔다. 한나라에 임용되어 그 지위가 상국의 자리에 이르게 되어 한나라의 정사를 주재하게 된 협루가 제법 위엄을 부려 사사로이 자기를 만나려는 사람을 문전에서 막게 하였다. 엄수가 한나라에 당도하여 협루의 집을 찾아가 접견을 청하고 한 달을 기다렸으나 결코 협루를 만날 수 없었다. 엄수가 자기가 지참한 돈을 전부 털어 한나라 군주의 좌우에게 뇌물을 바쳐 한열후(韓烈侯)를 배알했다. 열후가 엄수의 말에 감복하여 그를 높은 자리에 중용하려고 했다. 협루가 알고 엄수의 단점을 한후에게 알려 엄수가 중용되지 못하게 막았다. 협루 때문에 한나라에서 중용되지 못했다는 알게 된 엄수는 가슴에 커다란 원한을 품고 한나라를 떠나 천하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구해 협루를 죽여 자기의 원한을 갚으려고 했다.

엄수가 제나라에 들려 길을 가다가 푸줏간에서 커다란 도끼를 손에 들고 소를 잡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 장사가 소를 도끼로 내리치는데 도끼가 닿는 곳은 모두 뼈와 살이 발라지며 힘들어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그 도끼의 무게를 어림짐작해 보니 가히 30여 근도 더 되어 보였다. 엄수가 그 장사가 참으로 이인이라고 생각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신장은 팔 척에 달했으며 붉은 고리눈에 곱슬 모양의 턱수염을 했는데 광대뼈가 유난히도 앞으로 튀어나왔고 말을 하는데 제나라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다. 엄수가 자리를 마련하여 그를 초대하여 서로 상면하고 그 사람의 이름과 내력을 물었다. 그 장사가 대답했다.

「나의 성은 섭(聶)이고 이름은 정(政)이라고 하는데 위(魏)나라 사람입니다. 나의 고향집은 지읍(軹邑)⑦의 심정리(深井里)라는 곳입니다. 태생이 천하고 성격이 강직하여 고향에서 죄를 얻어 노모와 누이를 모시고 이곳으로 옮겨와 몸을 피해 살고 있으면서 소를 잡아 노모와 누이를 봉양하고 있습니다. 」

자기의 신상에 대해 말하기를 마친 섭정도 엄수의 성명을 물었다. 엄수가 자기의 성과 이름을 말해주고 갑자기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아침 엄수가 의관을 정제하고 섭정을 찾아가 큰절을 올린 후에 주막집으로 그를 초대했다. 두 사람이 주막집에서 자리를 잡고 주인과 손님이 행하는 예를 갖추어 서로 대했다. 술잔이 세 번 돌아 주흥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엄수가 황금 백일을 꺼내어 섭정에게 주었다. 많은 황금을 까닭 없이 자기에게 주는 엄수를 섭정은 괴이하게 생각했다. 엄수가 섭정을 향해 말했다.

「섭형께서 노모를 모시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변변치 않으나 사사로운 생각으로 나를 위해 노모를 봉양하셨으면 해서 드리는 성의입니다.」

「엄형이 나의 노모를 봉양을 하고자 함은 필시 나를 쓰실 곳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시지 않으신다면 나는 결코 이 황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와 협루 사이의 은원(恩怨)에 관한 일을 섭정에게 상세하게 이야기한 엄수는 지금 자기가 그와 같이 행동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섭정이 듣고 말했다.

「옛날 오나라의 전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노모가 계시니 제가 감히 그 부탁을 들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엄형께서는 별도로 용사를 구하시어 원수를 갚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형을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처지에 귀한 황금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

「제가 섭형의 높으신 의기를 앙모하고 있으니 원컨대 결의형제를 맺으려고 하는데 어찌 감히 섭형께서 노모를 봉양하는 효도의 길을 막겠습니까? 이것은 내가 사사로운 마음으로 노모를 봉양하는데 보태 쓰라고 드리는 성의이니 결코 사양하지 마십시오.」

섭정은 엄수가 강권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황금을 받아 그 반은 자기의 누이인 섭앵(聶罃)에게 주고 남은 절반은 매일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노모를 공양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자 섭정의 노모는 병이 들어 죽었다. 엄수가 찾아와 조문을 가서 통곡을 하며 섭정을 대신하여 상을 치렀다. 이윽고 장례 치르는 일이 끝나자 섭정이 엄수를 향해 말했다.

「오늘부터는 나의 몸은 형님의 것입니다. 오로지 소용이 되시는 곳이 있으시면 쓰십시오. 결코 저는 애석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엄수가 섭정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계책을 묻고 수레와 말에 장사들을 태워 딸려 보내겠다고 했다. 섭정이 듣고 말했다.

「나라의 상국이라면 매우 귀한 사람이라 출입할 때는 군사들의 호위를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서 호종합니다. 때문에 마땅히 기습을 해야만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힘으로는 결코 성사시킬 수 없습니다. 원컨대 잘 드는 비수 한 자루만 구해주시면 가슴에 품고 있다가 기회를 엿보다가 일을 도모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형님과 작별하면 살아서는 다시 상면할 수 없으니 형님도 역시 나의 일에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섭정이 한나라에 당도하여 도성인 평양성(平陽城)의 교외에서 머무르면서 휴식을 취했다. 3일 째 되는 날 아침 일찍 성안으로 들어가자, 그때 마침 조당에서 물러 나와 사마(駟馬)가 이끄는 큰 수레를 타고 앞뒤에서 과를 든 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는 듯이 달려가고 있는 협루의 행차를 만나게 되었다. 섭정이 협루의 행차를 미행하여 뒤를 밟았다. 이윽고 상국부에 당도한 협루가 수레에서 내려 집무실로 들어가 미결 사항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상국부의 대문에서 당으로 오르는 계단까지는 병장기를 든 갑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삼엄하게 시위하고 있었다. 섭정이 대청 위를 멀리서 살펴보니 협루가 탁자에 기대어 의자 위에 앉아있었고 그 앞에는 결제를 받기 위해 공문서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매우 많았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협루가 문서에 결제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가려고 하자 섭정이 그들의 경계태세가 느슨해 진 틈을 타서 갑자기 소리를 쳤다.

「상국께 급하게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섭정이 대문 밖에서 소매를 걷어부치고 곧바로 협루가 앉아 있던 곳으로 달려들자 갑사들이 그 앞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모두 섭정과 부딪쳐 나가 떨어졌다. 나는 듯이 계단을 뛰어올라 협루가 앉아있던 상국의 자리에 당도한 섭정은 가슴에 품고 있던 비수를 꺼내어 협루를 향해 찔렀다. 협루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고 하였으나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가슴에 칼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당 위에서는 큰 혼란이 일어나며 사람들이 외쳤다.

「자객이 침입하여 상국을 죽였다.」

갑사들이 즉시 대문을 닫고 섭정을 잡기 위해 달려왔다. 갑사 몇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으나 결코 그곳을 빠져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 섭정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보게 되면 엄수에게 해가 미칠 것이라고 걱정하여 손에 들고 있던 비수로 자기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다시 두 눈을 찔러 뽑은 다음 자기의 목을 찔러 죽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이 한열후에게 달려가 협루가 자객에게 살해된 일을 알렸다. 열후가 물었다.

「자객은 누구인가?」

그러나 아무도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어서 섭정의 시체를 성중의 저잣거리에 내보이고 그가 누구인지 알리는 사람에게는 천금의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한열후는 그 자객의 성명과 내력을 알아내어 상국인 협루의 원수를 갚아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주일이 되도록 성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섭정의 시체를 살펴보고 갔지만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일에 대한 소문이 이윽고 섭정의 고향인 위나라의 지읍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섭정의 누이 섭앵이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며 말했다.

「그 사람은 내 동생이 틀림없다.」

그 즉시 하얀 비단 천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길을 떠나 한나라에 당도한 섭앵은 저잣거리에 버려진 섭정의 시신을 보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어루만지며 매우 애통해 하였다. 시정의 관리들이 섭앵을 붙잡아 데려가서 물었다.

「너는 죽은 사람과는 어떤 관계인가?」

「죽은 사람은 바로 나의 동생 섭정입니다. 나는 곧 그의 누이 섭앵이라는 사람입니다. 내 동생 섭정은 지읍 심정리의 소문난 용사였습니다. 그가 상국을 죽인 죄가 커서 그 피해가 누이인 나에게 미치게 됨을 두려워하여 자기의 눈을 파고 얼굴의 가죽을 벗겨내어 자기의 이름을 숨겼습니다. 내가 어찌 일신의 죽음에 연연하여 내 동생의 이름이 묻혀 세상에서 알려지지 않게 되는 일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

시정의 관리가 말했다.

「죽은 자가 너의 동생이라면 그가 자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인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일을 시켰는가? 네가 만약 그 일을 밝힌다면 내가 주상에게 청하여 죽음만은 면하게 해 주리라!」

「제가 죽음을 각오하지 않았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내 동생이 자기의 몸을 돌보지 않고 천승지국의 재상을 죽여 다른 사람의 원수를 갚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내 동생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 묻는 일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제 동생의 의로운 일을 망치는 일입니다.」

섭앵이 말을 마치자 즉시 시중의 우물가 정자의 돌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 시정의 관리가 한열후에게 섭앵의 일을 보고했다. 열후가 탄식하며 두 사람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치러 주도록 하고 한산견(韓山堅)을 상국에 명하여 협루의 뒤를 잇게 했다.

그리고 한열후가 얼마 후에 죽고 아들 문후(文侯)가 뒤를 이었다. 한열후는 기원전 400년 즉위하여 13년 동안 재위에 있다가 기원전 387년에 죽은 것이다. 다시 문후가 재위 9년 만인 기원전 376년에 죽자 아들 애후(哀侯)가 문후의 뒤를 이었다. 그러자 원래 애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한산견이 기회를 노리다가 결국 애후를 시해했다. 애후는 재위 5년 만인 기원전 371년에 한산견에 의해 시해된 것이다. 한나라의 군신들이 힘을 모아 한산견을 죽이고 애후의 아들 약산(若山)을 세웠다. 이가 의후(懿侯)이다. 의후가 재위 12년 만인 기원전 359년에 죽고 아들 소후(昭侯)가 섰다. 한나라의 군주 자리에 오른 소후는 신불해(申不害)를 상국으로 발탁했다. 신불해⑧는 형명학(形名學)에 밝아 한나라는 크게 다스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나중의 일이다.

7. 舟中敵國(주중적국)

- 군주가 선정을 베풀지 않으면 이 배 안의 사람들도 모두 적국으로 변할 것이다. -

한편 주안왕 15년 기원전 387년, 위문후가 병이 들어 위독하게 되었다. 문후가 중산국에 가있던 태자격을 불렀다. 조나라는 위나라의 태자가 중산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군사를 동원하여 기습한 끝에 중산을 빼앗아 갔다. 이 일로 해서 조나라와 위나라는 틈이 벌어졌다. 태자격이 안읍에 당도한 때는 문후는 이미 죽은 다음이었다. 도착한 즉시 장례를 주관하여 상을 마친 태자격이 위후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위무후(魏武侯)다.

그리고 얼마 후에 무후가 안읍을 떠나 순행을 하기 위해 오기와 같이 배를 타고 하수의 물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중류되는 곳에 다다르자 주위의 경치를 보고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도다, 이 험고한 산하여! 이 위나라의 보배로다!」

오기가 듣고 말했다.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보배는 덕이지 험고한 산하가 아닙니다. 옛날 삼묘씨(三苗氏)⑨가 세운 나라는 왼쪽으로는 동정호(洞庭湖), 오른쪽으로는 팽려호(彭蠡湖)⑩를 끼고 있었으나 덕으로써 정치를 하지 않고 신의를 세우지 않아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하나라의 걸왕이 도읍으로 삼았던 곳은 하수와 제수(濟水)가 왼쪽에, 화산(華山)과 태산(泰山)이 오른 쪽에 있었으며, 남쪽에는 이궐(伊闕)⑪이, 북쪽에는 양장(羊腸)⑫이 있었지만 선정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에 상나라를 세운 탕임금에게 멸망당했습니다. 또 상왕조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의 나라는 왼쪽으로는 맹문산(孟門山)⑬ 오른쪽으로는 태항산(太行山), 북쪽으로는 상산(常山)⑭이 있고 남쪽에는 하수가 지나고 있었지만 덕으로써 정치를 하지 않아 결국은 주무왕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나라를 보존하는 중요한 수단은 덕이지 산천의 험고한 지세가 아닙니다. 주군께서도 덕과 신의로 정치를 행하지 않는다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모두 적국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무후가 탄식하며 말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오!」

8. 田文論功(전문논공)

- 전문이 공을 논하여 오기를 설복시키다. -

오기가 서하의 태수가 되어 그 이름이 더욱 높아졌으나 위무후는 전문(田文)을 상국으로 임명했다. 오기가 이를 불쾌하게 생각하여 전문을 찾아가 말했다.

「그대와 함께 누가 더 높은 공을 세웠는지 토론해보고자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좋습니다.」

「삼군을 이끌며 그 사졸로 하여금 싸움에 임해 즐거운 마음으로 죽음을 불사하게 만들어 적국으로 하여금 감히 이 나라를 넘보지 못하게 만든 일은 그대와 나 둘 중에 누가 공이 높다 하겠소?」

「이 문의 공이 장군보다 높지 못하오.」

「백관을 다스리고, 만민과 친근하게 지내며, 나라의 부고를 가득채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일은 그대와 나 둘 중에 누가 더 공이 높다 하겠소?」

「나의 공이 그대보다 높지 못하오.」

「서하의 땅을 굳게 지켜 진나라가 감히 동쪽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고, 한과 조 두 나라가 사신을 우리 위나라에 보내 복종을 하게 만든 일은 그대와 나 둘 중 누가 더 공이 높다 하겠소?」

「나의 공이 그대보다 높지 못하오.」

「이 세 가지 점에서 나보다 그대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그 지위는 나보다 높단 말이오?」

「지금 주상께서는 나이가 어리고 나라의 사대부들은 그것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소. 또한 백성들도 아직 신군을 낯설게 생각하고 있으며 대신들도 마음으로 복종을 하지 않고 있소. 바로 이러한 어려운 때에 재상의 자리에 당신을 앉게 하겠소? 아니면 나를 앉게 만들겠소?」

오기가 전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대가 재상으로 적합하다고 하겠소.」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를 차지한 까닭이오.」

오기는 비로소 자기의 재능이 전문보다 못하다고 승복했다.

9. 提婚測心 旁加幹擾(제혼측심 방가간우)

- 혼인으로 마음을 떠보라고 하면서 뒤에서는 방해하여 오기를 초나라로 쫓아내는 공숙좌 -

그리고 얼마 후에 전문이 죽자 공숙좌(公叔痤)가 그 뒤를 이었다. 위나라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공숙좌는 평소에 오기의 재주를 시기하고 있었다. 오기를 해치기 위해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공숙좌에게 그의 하인이 말했다.

「오기가 이 나라를 떠나게 만드는 일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어떤 방법이 있는가?」

「오기라는 위인은 절조가 있고 명예를 중히 여깁니다. 대감께서 주공에게 ‘오기는 재능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위나라는 영토가 작을 뿐만 아니라 강국인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신은 그가 과연 우리 위나라에 오래 머물려고 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라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공께서 ‘어찌하면 좋겠소?’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대감께서 ‘시험 삼아 공주를 아내로 주겠다고 하면서 그의 마음을 떠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대답하십시오. 그런 다음 오기를 대감의 집으로 초대하여 그 앞에서 공주의 화를 일부러 돋우어 대감을 업신여기도록 하십시오. 오기는 공주가 대감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틀림없이 주공의 제안을 거절할 것입니다.」

이윽고 공숙좌의 집에 들린 오기는 공주가 위나라의 재상인 공숙좌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과연 위무후의 혼인 요청을 거절했다. 위무후는 오기가 두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여 그 후로는 그를 중용하지 않고 한직에 머물게 했다. 오기는 죄를 얻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다.

10. 伏身王尸 死後報仇(복신왕시 사후보구)

- 왕의 시신 위에 엎드려 죽음으로써 자신의 원수를 갚다.-

그때 초나라의 왕은 도왕(悼王) 웅의(熊疑)였다. 도왕은 평소에 오기의 재주에 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오기를 한번 보자 즉시 초나라의 재상의 인장을 주었다. 도왕의 후대에 감격한 오기가 결연한 의지로 부국강병의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자임했다. 오기가 도왕에게 상주했다.

「초나라의 영토는 수천 리가 되며 그 군사들은 백만이 넘습니다. 이러한 국력이라면 마땅히 제후들 위에 우뚝 서서 그들을 제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를 이어 맹주의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나라가 열국들 위에 군림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군사를 양병하는 방법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병의 도란 무릇 먼저 재정을 튼튼히 만든 후에 강력한 군사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지금 조당에는 관직을 꿰차고 있는 불요불급한 인사들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먼 공족들이라 할지라도 막대한 공실의 재물을 축내는 반면 비록 목숨을 걸고 싸움터에 나가는 군사들에게는 나누어 줄 수 있는 양식은 겨우 한 말 남짓합니다. 그러니 어찌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게 할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계책을 허락해 주신다면 우선 불요불급한 관직을 없애고 관계가 먼 공족들의 봉록을 몰수하여 생긴 재물들을 용감한 군사들에게 나누어주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나라의 국위가 선양되지 않는다면 신은 그때 가서 엎드려 죽음을 청하겠습니다.」

도왕이 오기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초나라의 여러 신하들은 오기의 계책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주청 했지만 도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기는 관제를 대폭 축소하여 불요불급한 관직을 없애고 수백 명의 관원을 쫓아냈으며 대신의 자제라 할지라도 연줄이나 뇌물을 써서 관직에 오른 자들은 록을 받지 못하게 했다. 다시 공족 중에 5대 이상의 먼 친척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숙식을 해결하게 하고 평민의 호적으로 옮겨 그들과 같이 살게 하였다. 5대 이내의 공족들은 멀고 가까운 계보를 참작하여 순서를 정해 식록을 주었다. 그 결과 절약한 수만 종(種)의 양식을 비용으로 사용하여 나라 안에서 따로 선발한 장정들을 아침저녁으로 훈련시켜 정예한 군사로 변모시켰다. 그들의 장비와 무기를 수시로 검열하면서 장수들과 사병들에게 차등은 두었지만 각기 그 식록을 몇 배나 더 많이 후하게 주었기 때문에 사졸들은 모두가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훈련에 열중했다. 초나라는 이윽고 정예하고 강한 병사들을 갖게 되어 천하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삼진과 제(齊), 진(秦) 등의 모든 열국들이 두려워하여 결국은 도왕의 치세에 이르러서는 어떤 나라도 감히 군사를 내어 초나라를 침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초도왕은 초나라의 국세가 뻗어나가는 중도에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고 말았다. 도왕의 시신을 관에 안치하기도 전에 오기로 인하여 봉록을 잃거나 깎인 초나라의 공족대부들과 대신들의 자제들이 도왕이 죽은 틈을 타서 란을 일으켜 오기를 죽이려고 하였다. 다급해진 오기가 궁궐 안의 왕의 침실로 도망쳐 들어갔으나 그들은 각기 활을 들고 오기의 뒤를 추격했다. 오기가 힘으로는 그들을 당할 수 없음을 알고 도왕의 시신을 끌어안고 엎드렸다. 그들은 오기를 향해 소나기가 퍼붓듯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날아와 오기를 고슴도치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도왕의 시신에도 무수히 꽂혔다. 오기가 큰소리로 외쳤다.

「저의 죽음은 그다지 애석한 일은 아니나 여러 신하들이 돌아가신 선왕에게 원한을 품어 그 시신에게 화살을 날리니 이것은 대역무도한 짓입니다. 어찌 그들이 초나라의 국법을 피해 갈 수 있겠습니까?」

오기는 말을 마치고 절명했다. 란을 일으킨 공족들과 대신의 자제들은 오기가 한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모두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태자 웅장(熊臧)이 뒤를 이어 초나라의 왕위에 올랐다. 이가 초숙왕(楚肅王)이다. 이윽고 도왕의 장례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나자 숙왕은 도왕의 시신을 향해 활을 쏜 자들의 죄를 묻기 위해 그의 동생 웅량(熊良)을 시켜 군사를 끌고 가서 란을 일으킨 자들을 그 일가족과 함께 모조리 잡아들여 죽이게 했다. 그때 잡혀서 멸족한 초나라의 공족대부들은 모두 70여 집안에 이르렀다. 염옹이 시를 지어 한탄했다.

그렇게도 바라던 대신이 되었으나 몸은 죽게 되었다.

처를 죽이고 모친을 버려 인륜을 저버린 사람인데

노위 두 나라에서 이룬 공업은 모두 흐르는 강물과 같았지만

마침내 초인에게 죽임을 당할 줄 누가 알았으랴!

滿望終身作大臣(만망종신작대신)

杀妻叛母絶人伦(살처반노절인륜)

誰知魯魏成流水(수지노위성유수)

到底身躯喪楚人(도저신구상초인)

또 다른 한 편의 시가 있는데 오기가 왕의 시신을 안고 죽어 그 원수를 갚은 일은 죽음에 임해서도 지혜를 짜냈다고 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버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으나

교묘하게 적도들의 화살을 왕의 시신으로 향하게 하여

비록 왕법에 따라 적도들을 멸족시켰지만

왕의 원수가 아니라 자기의 원수를 갚았도다!

爲國亡身死不辭(위국망신사불사)

巧將賊矢集王尸(교장적시집왕시)

雖然王法應誅滅(수연왕법응주멸)

不报公仇却報私(불보공구각보사)

11. 鼓琴取相(고금취상)

- 거문고의 악론에 빗대어 정치를 논해 제나라 상국이 되다.-

한편 강씨의 제나라 국권을 찬탈하고 제후(齊侯)로 피봉된 전화(田和)는 2년 후인 주안왕(周安王) 17년인 기원전 385년에 죽었다. 그 뒤를 아들 전오(田午)가 이으니 이가 제환공(齊桓公)이다. 환공은 다시 그의 아들 인제(因齊)에게 왕위를 전했다. 인제가 제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른 해는 주안왕(周安王) 23년으로 기원전 379년이다⑮. 제나라의 국력과 군사력이 강성함을 믿고 자만한 제위왕은, 남방의 야만국이라고 여기고 있던 초나 월 두 나라가 보내는 사자들이 제나라에 들려 명을 전할 때 모두 왕호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제나라가 그들의 밑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제왕(齊王)이라고 스스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이가 제위왕(齊威王)이다. 그때 위나라는 위무후가 죽고 아들 위앵(魏罃)이 군주의 자리에 있었다. 제후(齊侯)가 왕호를 칭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앵이 말했다.

「위나라가 어찌하여 제나라보다 못하단 말인가? 」

위후도 역시 위왕이라고 참호하였다. 이가 논어에서 언급한 양혜왕(梁惠王)이다. 이때부터 다른 나라의 군주들도 제와 위 두 나라의 전례에 따라 왕호를 칭하기 시작했다.

한편 제위왕이 제나라 왕위에 올랐으나 매일 주색과 풍악소리에만 묻혀 살면서 국사는 전혀 돌보지 않았다. 제위왕이 즉위하고 9년 동안에 한(韓), 위(魏), 노(魯), 조(趙) 등의 네 나라는 제위왕이 주색에 빠져 있는 틈을 타서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의 변경을 쳐들어와 변방을 지키는 제군을 패주시키고 그 땅의 백성들과 재물을 약탈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선비 한 사람이 제나라 도읍인 임치성 안의 대궐문 앞에 찾아와 자기의 이름을 밝히며 위왕(威王)의 접견을 청했다.

「성은 추(騶)이고 이름은 기(忌)라 하며 본국 사람입니다. 제가 제법 거문고 소리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들으니 대왕께서 음악에 조예가 깊으시다하여 이렇게 특별히 찾아와 저의 거문고 소리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위왕이 허락하고 추기를 불러들여 자리에 앉히고 좌우에게 시켜 탁자를 준비하게 한 다음 그 위에 거문고를 가져다놓게 하였다. 추기가 거문고의 줄을 어루만질 뿐 타지 않았다. 위왕이 물었다.

「선생께서 거문고를 잘 탄다고 해서 과인이 한번 아름다운 소리를 들어보려 했소. 그런데 지금 거문고만 어루만지고 있을 뿐 타지 않고 있으니 가져온 거문고가 좋지 않아서 입니까? 아니면 과인에게서 잘못된 점이 있어 그로 인하여 거문고를 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서 입니까?」

추기가 이윽고 거문고를 내려놓더니 얼굴에 정색을 하며 위왕을 향해 말했다.

「신이 대왕께 들려드리려는 것은 거문고 소리에 대한 이치입니다. 거문고를 타서 내는 아름다운 소리는 악공의 일입니다. 신이 비록 거문고 소리의 이치를 알고는 있다고는 하나 들으신다면 왕을 욕보이지나 않을까 걱정되어서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거문고의 이치가 어떠하단 말이오? 내가 한 번 들어 볼 수 있겠소?」

「거문고를 뜻하는 금(琴)이라는 글자는 금(禁) 자와 통합니다. 즉 음탕하고 사악한 행위를 금하여 모든 사물을 올바르게 돌려 논다는 뜻합니다. 옛날 상고시대에 복희씨(伏羲氏)가 거문고를 만들 때 길이를 세 자 여섯 치 일곱 푼으로 하여 일 년 365일을 본땄으며 그 넓이는 여섯 치로 하여 육합(六合)⑯을 상징했습니다. 앞은 넓고 뒤는 좁은 이유는 귀천을 구분하기 위해서이며, 위는 둥글고 밑은 네모난 이유는 하늘과 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줄이 다섯 개인 까닭은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오행(五行)을 말하고, 큰 줄은 군주를 작은 줄은 신하를 말합니다. 소리에 완급이 있음은 청탁을 표현하고자 함이니 탁한 소리는 너그럽되 절제가 있으니 이는 임금의 도를 말하고, 청한 소리는 깨끗하나 어지럽지 않으니 이것은 신하의 도리를 뜻합니다. 첫 번째 줄은 궁(宮)이고, 두 번째 줄은 상(商), 세 번째 줄은 각(角), 네 번째 줄은 치(徵), 그리고 다섯 번째 줄은 우(羽)라 합니다.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께서 각기 한 줄씩을 더했으니, 문왕께서 더한 줄은 소궁(小宮)이고, 무왕께서 더한 줄은 소상(小商)이라 하여 이로써 군주와 신하가 은혜로써 서로 그 뜻을 합쳤음을 의미합니다. 군신 간에 서로 믿게 되면 정령은 화합됨으로, 치국의 도는 바로 거문고의 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말씀이오! 선생께서 이미 거문고의 이치를 깨닫고 계시니 필시 그 음에도 정통하리라고 생각하오. 원컨대 선생은 나를 위해 거문고를 한번 타보시기 바랍니다.」

「신의 업은 거문고의 도리를 깨닫는 일이라 거문고의 음리에 정통함은 당연하오나 대왕의 업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인데 어찌하여 치국의 도리에 정통하지 못하십니까? 오늘 대왕께서 나라를 어루만지기만 할뿐 다스리지 않으시니 어찌 신의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타지 않는 경우와 같지 않겠습니까? 신이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타지 않으면 대왕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릴 수 없듯이 대왕께서도 나라를 어루만지기만 하고 다스리지 않으시면 백성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실 수 없는 법입니다.」

위왕이 듣고 악연히 깨달으며 말했다.

「선생이 거문고로 과인에게 간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과인은 선생의 말씀에 따르리라!」

위왕은 추기를 자기 침소의 오른쪽 방에 머물도록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위왕이 목욕을 하고 몸을 깨끗이 한 다음 추기를 불러 치국의 도리에 대해 물었다. 추기는 위왕에게 다음의 사항을 고려하여 나라를 다스려 패왕의 업을 이루라고 권했다.

- 술을 절제하고 여인을 멀리할 것[節飮遠色(절음원색].

- 나라의 일은 실리와 명분을 위주로 운영할 것[核名實(핵명실)].

- 신하들은 충신(忠臣)과 망신(妄信)을 구분할 것[別忠佞(별충영)]

-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면서 싸우는 기술을 가르칠 것[息民敎戰(식민교전)].

- 궁극적으로 패왕의 업을 도모할 것[經營覇王之業(경영패왕지업)].

위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추기를 제나라의 상국으로 임명했다.

12. 心有靈犀(심유영서)

- 이심전심으로 대화를 나누는 추기와 순우곤 -

그때 순우곤(淳于髡)이라는 유세객이 있었는데 거문고의 악론으로 재상의 인끈을 쉽게 얻는 추기를 보자 마음속으로 불복하여 그의 제자들을 이끌고 추기를 찾아갔다. 추기가 순우곤을 매우 공손하게 대했다. 순우곤이 거만한 자세로 추기가 사는 집의 대청으로 곧바로 들어가 상석을 차지해 앉으며 추기에게 말했다.

「이 곤에게 어리석은 생각이 하나 있는데, 원컨대 상국 앞에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상국께서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컨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자식은 부모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하고 아내는 그 지아비 곁을 떠나면 안 되는 법이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결코 군주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추나무로 수레바퀴를 만들어 돼지기름을 바르는 이유는 수레가 잘 구르도록 하기 위함인데, 굴대의 구멍을 네모나게 뚫으면 수레가 굴러갈 수 없는 법이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일을 처리할 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거스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활과 방패를 비록 아교로 단단히 붙였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떨어지게 되고, 수많은 강물들은 흘러가 바다에서 하나가 되는 일은 모두 자연의 뜻에 부합되는 이치요.」

「삼가 가르침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만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여우가죽으로 만든 갖옷이 헤졌다고 해서 개가죽을 대서 기우는 일은 부가하오.」

「삼가 가르침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현인들을 발굴하여 쓰고 불초(不肖)한 인간들이 그 틈에 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수레바퀴와 바퀴살이 한 치라도 차이가 나면 수레를 만들 수 없고 금슬(琴瑟)이 서로 완급을 맞추지 못한다면 음을 이룰 수 없소.」

「삼가 가르침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법령을 새로이 정비하고 간사한 관리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감독하겠습니다.」

순우곤이 이윽고 말을 잇지 못하고 묵연히 있다가 추기를 향해 재배를 올린 다음 일어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들의 일행히 추기의 집 대문을 나오자 순우곤을 따르던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께서 상국을 처음 대하실 때는 오만하시더니, 나오실 때는 상국에게 재배를 올리고 물러나오니 어찌하여 몸을 굽히셨습니까?」

「내가 비유의 말로 다섯 가지를 물었으나 상국은 내가 묻는 말에 각기 적절하게 대응하여 나의 뜻하는 바를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참으로 큰 인물이라! 내가 따를 수 없음에서다!」

13. 鄒忌照鑑(추기조감)

- 미남 추기가 거울을 보다 -

추기는 원래 신장이 8척이 넘고 풍체가 뛰어난 미남이었다. 어느 날 아침 추기가 관복을 입고 관모를 쓰면서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보고 그의 부인에게 말했다.

「나와 성의 북쪽에 사는 서공(徐公) 중 누가 더 미남이라고 생각하오?」

그의 부인이 대답했다.

「당신의 훨씬 더 미남입니다. 서공 같은 사람이 어찌 당신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성의 북쪽에 사는 서공은 제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남이었다. 추기는 자기가 서공보다 미남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아 다시 그의 첩에게 물었다.

「나와 서공 중에서 누가 더 미남인 것 같은가? "

그의 첩이 한술 더 떠 대답했다.

「서공이 어찌 당신보다 더 미남일 수 있단 말입니까?」

다음 날, 밖에서 손님이 한 사람이 찾아왔다. 추기가 동석하여 한담을 나누다가 그에게 물었다.

「나와 서공 중에서 누가 더 잘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손님이 대답했다.

「서공은 당신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다음 날 마침 추기의 집을 방문한 서공의 용모를 자세히 관찰한 추기는 자기는 결코 서공과 겨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녁에 침대에 누워 자기와 서공의 용모에 대한 일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 말했다.

「내 부인이 내가 서공보다 미남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녀가 나를 편애해서이고, 첩이 내가 미남이라고 말한 까닭은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해서다. 또한 손님이 나보고 미남이라고 한 것은 나에게 잘 보여 바라는 바를 얻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 조당에 나간 추기가 제위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말했다.

「어제 서공을 만난 본 저는 확실히 용모가 그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저를 편애했던 이유로, 나의 첩은 내 기분이 상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던 이유로, 나의 손님은 나에게 원하는 바가 있었던 이유로, 그들은 모두 제가 서공보다 미남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제나라는 사방 천리의 강토에 120개의 성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궁중의 비빈과 근신들 중 누가 대왕을 편애하지 않겠으며, 조당의 대신들 중 누가 대왕의 마음을 거슬려 죄를 얻게 됨을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전국의 만백성들 중 누가 대왕에게서 구하는 바가 없겠습니까? 이것으로 보아 대왕께서는 감언이설에 가려 사리를 밝히는데 매우 어렵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제위왕이 듣고 말했다.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즉시 명을 내렸다.

「능히 내 면전에서 나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대소 관리나 백성들에게는 상등의 상을, 서면으로 나에게 간하는 자가 있다면 중등의 상을 내리겠다. 또한 능히 공공의 장소에서 나의 과오를 비평하는 자가 있어 그 말이 나의 귀에 전해진다면 나는 그에게 하등의 상을 내리리라!」

제위왕의 명이 하달되자 수많은 대신들이 앞 다투어 간언을 올리고 궁문 앞이나 궁전의 뜰에는 나인들로 들끓어 마치 시장바닥처럼 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자 시도 때도 없이 궁궐로 달려와 간언을 올리는 백성들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자 간언을 올리고 싶어도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14. 烹阿封卽墨(팽아봉즉묵)

-아읍대부는 팽살하고 즉묵대부는 봉지를 더해주다.-

그 이후로 유세객들이 추기의 명성을 전해 듣고 아무도 감히 제나라에 와서 제왕에게 유세를 하려는 사람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항상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다.

「읍을 지키는 수령 중에 누가 가장 어질고, 누가 가장 불초한가?」

조당에 있던 관리들은 모두 아읍(阿邑)⑰대부가 어질다고 극구 칭찬하고 즉묵(卽墨)⑱대부를 폄하했다. 추기가 대부들의 의견을 위왕에게 전했다. 위왕이 미심쩍어하면서 시간이 있는 대로 좌우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좌우의 사람들의 대답도 추기가 하는 말과 거의 비슷했다. 그래서 다시 아무도 몰래 사람을 두 고을에 보내 그곳이 어떻게 다스려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했다. 조사를 하러 갔던 사람들로부터 복명을 받은 위왕은 교지를 내려 두 대부를 소환했다. 즉묵대부가 먼저 조당에 당도하여 위왕을 배알했다. 위왕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즉묵대부를 물러가서 기다리게 했다. 좌우의 사람들이 의아해 하며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아읍대부가 당도하였다. 위왕이 여러 군신들을 모두 모이게 한 다음에 두 대부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하겠다고 선포하였다. 여러 대부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상상했다.

「아읍대부는 필시 큰상을 받고 즉묵대부는 벌을 받아 큰 화를 당하겠구나!」

여러 문무대신들의 조현을 받기를 마치자 위왕은 즉묵대부를 앞으로 나오도록 명하고 말했다.

「그대가 즉묵의 수령이 된 이래 그대를 비난하는 말과 글이 매일 빗발쳤다. 그래서 내가 사람을 시켜 즉묵의 상태를 살펴보게 하였다. 즉묵은 황무지를 개발하여 전답으로 바꾸고 백성들의 생활은 풍요로웠으며 관아에는 송사가 없이 잘 다스려 동쪽의 변경지방을 평안하게 하였다. 그대는 즉묵을 다스리는데 전념하고 나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환심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비방을 받게 되었다. 그대야말로 진실로 어진 관리라고 할 수 있겠다.」

위왕이 즉시 명하여 만 호의 읍을 그의 봉지에 더해 주었다. 이어서 아읍대부를 불러 말했다.

「그대가 아읍대부가 된 이래 그대를 칭찬하는 말과 글이 매일 빗발쳤다. 내가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한 바 논과 밭은 황폐하게 되어 잡초만 무성하고 백성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다고 했다. 옛날 조나라 군사들이 그대의 관할지에 쳐들어왔건만 그대는 달려가 구하지도 않았다. 그대는 단지 많은 폐백과 황금으로 나의 좌우에 뇌물을 주어 환심을 사서 그대를 칭송하게 만들었다. 그대보다 못한 불초한 수령이 어디 있겠는가?」

아읍대부가 머리를 숙이고 죄를 용서하여 주면 잘못을 고치겠다고 했다. 위왕은 허락하지 않고 주위의 장사를 불러 솥을 준비하여 물을 채우고 불을 지피도록 했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솥 안의 물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위왕이 아읍대부를 결박하여 물이 펄펄 끓는 솥 안으로 던지도록 명했다. 다시 자기를 좌우에서 모시면서 평소에 아읍대부를 칭송하고 즉묵대부를 폄하 했던 자기의 시종 수십 명을 불러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희들은 나를 좌우에서 수발하면서 과인의 입과 귀 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사사로이 뇌물을 받고 일의 옳고 그름을 뒤바꾸어 놓아 과인을 속였다. 신하된 자가 이와 같으니 어디다 쓴단 말인가? 모두 가마솥에 던져 삶아서 죽여야 마땅한 일이다.」

끌려나온 시종과 신하들은 모두 엎드려 절을 하며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위왕은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하고 다른 날을 택하여 특히 아읍대부와 친하게 지내던 십여 인을 다시 가려내어 모두 가마솥에 삶아 죽였다. 중신들은 모두 부들부들 떨었다. 이것을 말한 시가 있다.

권력이란 군주의 측근에게서 나오는 법이라

시비가 전도되어 폄하와 칭송이 뒤바뀌게 된다.

아읍대부를 팽살하고 즉묵대부를 포상한 자가 누구인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제위왕의 공명한 도를 칭송했다.

權歸左右主人依(권귀좌우주인의)

毁譽繇來倒是非(훼예요래도시비)

誰似烹阿封卽墨(수사팽아봉즉묵)

更將公道頌齊威(갱장공도송제위)

그리고 나서 제위왕은 유능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각 고을의 수장들을 모두 교체했다. 단자(檀子)로 하여금 남성(南城)⑲을 지키게 하여 초나라의 공격에 대비하였으며, 전힐(田肹)로 하여금 고당(高唐)⑳을 지켜 조나라를 막게 했다. 다시 검부(黔夫)로 하여금 북쪽 변경의 서주(徐州)㉑를 지켜 연나라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어서 종수(種首)는 사구(司寇)로, 전기(田忌)를 사마로 삼아 제나라는 크게 다스려져서 열국의 제후들은 모두 두려워하여 제나라에 복종했다. 위왕이 추기(騶忌)를 하비(下邳)㉒에 봉하면서 말했다.

「과인이 뜻을 이룰 수 있었음은 모두가 그대의 덕분이오.」

그래서 추기에게 성후(成侯)라는 봉호를 내렸다. 추기가 감사의 말을 올리고 다시 위왕에게 상주하였다.

「옛날 제환공과 진문공이 오패 중에서 가장 세력을 크게 떨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나라를 받들어 그 명분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주나라 왕실이 비록 쇠약해져 있다하나 구정(九鼎)이 아직 그곳에 있습니다. 대왕은 어찌하여 주나라에 들려 조근(朝覲)의 예를 행하지 않으십니까? 주왕의 총애를 구실로 제후들 위에 군림하면 환공과 문공이 이룩한 패업에 못지않은 공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과인이 이미 왕호를 칭하고 있는데 오늘 왕의 신분으로써 왕을 조근하는 일이 가능하겠소?」

「무릇 왕호를 칭한 자는 제후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이지 천자에게 대항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만약 이번에 조근의 예를 행하면서 잠시 왕호 대신에 제후(齊侯)라 칭하신다면 필시 대왕의 겸양지덕에 대해 크게 기뻐한 천자는 대왕에게 영예로운 명을 내릴 것입니다.」

위왕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어가를 준비하게 하여 주나라에 들려 천자를 조현했다. 때는 주열왕 6년 기원전 370년의 일이었다.

그때 주왕실의 세력은 더욱 미약하게 되어 제후들은 오래 동안 조현을 하러 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제나라의 군주만이 왕도에 와서 천자에게 조례를 드리겠다는 소식을 듣고 주나라의 상하 모두는 뛸 듯이 기뻐했다. 열왕이 창고를 크게 열고 주나라의 보물들을 찾아 제위왕에게 하사했다. 위왕이 천자에게 조례를 마치고 귀국하자 연도의 백성들이 제왕의 어진 덕을 칭송하느라 지르는 소리가 온 나라를 진동시켰다.

《제 87회로 계속》

주석

①절모(節旄)/ 군주가 사자로 보내는 신하에게 신표(信標)로 주는 기. 모(旄)는 깃대 끝에 다는 소의 꼬리털.

②애릉(艾陵)에서의 싸움/ 오나라의 부차가 노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아 들여 제나라를 공격하여 애릉에서 제군(齊軍)을 대파한 싸움을 말한다. 본서 82회 내용 참조

③성읍(成邑="郕邑)" / 현 산동성 곡부(曲阜) 북쪽 25키의 영양현(寧陽縣) 경내에 있었던 노나라 소속의 고을로, 원래 주모왕의 아들 성숙무(成叔武)가 봉해진 제후국이었으나 춘추 초기 정장공(鄭庄公)과 제희공(齊僖公)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멸하고 제나라의 위성국(衛星國)이 되었다. 후에 다시 노나라에 편입되어 노나라 삼환씨 중의 하나인 맹손씨(孟孫氏)의 식읍(食邑)이 되었다.

④간뇌도지(肝腦塗地)/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다란 뜻으로 전란(戰亂)중의 참혹한 죽음을 형용한 말. 출전은 사기(史記) 유경열전(劉敬列傳)이다. 유경은 고조에게 [폐하께서는 촉땅과 한을 석권하고, 항우와 싸워 요충지를 차지하도록까지 대전(大戰) 70회, 소전(小戰) 40회를 치렀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간과 골이 땅바닥을 피칠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자식이 들판에서 해골을 드러내게 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使天下之民, 肝腦塗地,父子暴骨中野, 不可勝數).]라고 하였다.

⑤居視其所親, 富視其所與, 達視其所擧, 窮視其所不爲, 貧視其所不取

⑥전씨들의 선조인 진경중(陳敬仲) 완(完)이 제나라에 망명해와 제환공에게서 대부의 직을 받은 해가 기원전 672년의 일이고 전화(田和)가 강씨들을 대신하여 제나라의 군주로 피봉된 해는 기원전 386년의 일이다. 즉 전화는 진경중의 13대 손이며 그가 제나라로 망명한 이래 286년 만의 일이다.

⑦지(軹)/ 위(魏) 나라 땅인 지도(軹道)를 말하며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제원현(濟源縣) 동남에 있다

⑧신불해(申不害)/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337년에 죽었다. 전국 때 학자로 신자(申子)라고 불리우며 정나라의 경성(京城) 사람이다. 상앙(商鞅)과 함께 법가를 대표하는 사상가이며 정치가이다. 한소후 8년 기원전 355년 한나라의 재상에 임명되어 내정을 정비하고 위나라와 동맹을 맺어 주위의 제후국들을 견제했다. 이로써 한나라는 국력이 신장되어 이웃국들의 침략을 받지 않게 되었다.

⑨삼묘씨(三苗氏)/ 장강(長江), 회수(淮水) 및 형주(荊州) 일대에 분포되어 살던 고대의 소수민족 이름. <오제본기> 순임금 조에 삼묘씨가 삼위(三危)로 옮겨가 서융(西戎)이 되었다고 했다.

⑩팽려호(彭蠡湖)/ 지금의 강서성의 파양호(鄱陽湖)를 말한다.

⑪이궐(伊闕)/ 이궐새(伊闕塞)를 말한다. 지금의 하남성 낙양의 남쪽에 있으며 두 산봉우리가 이수(伊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어 마치 궁궐과 같이 보인다고 해서 이궐이라 했다. 기원전 293년 진나라의 백기(白起)가 한위(韓魏) 두 나라의 연합군을 이 곳에서 격파하고 그 군사 24만을 참수했다. 후에 용문(龍門)이라고 했으며 유명한 용문석굴(龍門石窟)이 있는 곳이다.

⑫양장(羊腸)/ 태항산(太行山 : 지금의 하북성과 산서성의 경계를 이루는 산맥의 이름으로 옛날부터 태항산 서쪽은 산서, 동쪽은 산동이라 칭했다.)을 남북으로 통하는 산길로써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한 길이라고 해서 양장판(羊腸坂)이라 칭했다. 후에 조나라의 장군 조사(趙奢)가 진나라의 군사를 대파한 곳이다.

⑬맹문산(孟門山)/ 지금의 하남성 휘현 서쪽의 십자령(十字嶺)을 말함.

⑭상산(常山)/ 항산(恒山)의 별명. 중국 오악(五嶽) 중 북악. 한문제(漢文帝)의 이름이 유항(劉恒)이었던 관계로 그 휘(諱)를 피하여 상산(常山)이라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하북성 곡양현(曲陽縣) 서북과 산서성과의 접경지대에 걸쳐 있다.

⑮연의(演義) 원전에는 제위왕(齊威王) 인제(因齊)가 제후(齊侯)의 자리에 오른 해는 주안왕(周安王) 23년 이라고 했는데 이 해는 사기연표에 따르면 기원전 379년이다. 그러나 사마천《사기(史記)》의《육국연표(六國年表)》와 《진경중완세가(陳敬仲完世家)》에는 주안왕 24년 기원전 378년이라 했다. 이는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의 잘못이고 또한 이를 참고한 열국연의(列國演義)의 원작자인 풍몽룡(馮夢龍)의 잘못이다. 미주❷의 환왕(桓王). 위왕(威王), 선왕(宣王), 민왕(湣王)의 재위연도에 관한 기사를 참조 바람.

⑯육합(六合)/ 천지(天地)와 동서남북(東西南北)의 사방(四方)을 합하여 육합이라 함.

⑰아읍(阿邑)/지금의 산동성 료성시(聊城市) 양곡현(陽谷縣) 아성진(阿城鎭)을 말한다. 하북성 및 하남성과의 접경 지역임.

⑱즉묵(卽墨)/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래서시(萊西市) 남 약 30km 되는 곳의 평도현(平度縣) 경계의 동남에 있었던 고을이다. 지금의 청도시 북쪽의 즉묵시와는 북서로 약 50키로 떨어져있다.

⑲남성(南城)/ 무성(武城), 남무성(南武城)이라고도 함. 전국때 제나라 땅으로 지금의 산동성 비현(費縣) 서남 20키로

⑳고당(高唐)/ 지금의 산동성 고당현(高唐縣) 동북

㉑서주(徐州)/ 평서(平舒)라고도 하며 지금의 하북성 대성현(大城縣)으로 강소성의 서주(徐州)와는 반대방향이다.

㉒하비(下邳)/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비주시(邳州市) 경내 남. 서주(徐州)시 동 50키로.

미주

❶섭정에 관한 이야기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사마천의 자객열전에 따른 본서의 내용이고, 둘째는 전국책 한책의 내용이며, 세 번째는 삼국 때 저명한 학자 채옹(蔡邕)의 저서인 <금조琴操>의 내용이다.

《전국책(戰國策)·한책(韓策)》

협루의 이름은 한괴(韓傀)이며 한나라 공족 출신이다. 이때 엄수도 협루와 같이 한나라의 대부자리에 있었다. 두 사람은 사사건건 양보하지 않고 시기했다. 마음이 올곧은 엄수가 협루의 비행을 한열후에게 고했다. 협루가 공식석상에서 엄수에게 모욕을 가하자 그는 칼을 빼들어 협루를 죽이려고 했다. 사람들이 말려 그 자리는 무사히 끝났으나 협루에 의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한 엄수는 한나라에서 도망쳤다. 엄수는 자기의 원한을 갚아 줄 자객을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제나라에 들렸을 때 섭정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섭정은 엄수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되어 협루를 살해하여 엄수의 원한을 갚아주었다. 그 와중에 한애후도 같이 살해되었다. 이것은 한애후 3년인 기원전 376년에 일어난 일이다. 사기(史記)에는 섭앵(聶罃)은 섭영(聶榮)으로 나온다.

채옹의《금조(琴操)》

전국 때 섭정(聶政)의 부친은 한나라 왕을 위해 칼을 만들다가 기한을 넘기도록 만들지 못해 한왕의 명령에 의해 살해 되었다. 그때 섭정은 태어나기 전이었다. 유복자로 태어난 섭정이 장성하자 그의 모친은 부친이 당한 일을 말해주었다. 이때 섭정은 한왕은 죽여 그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가 맹세했다.

섭정은 스승을 찾아 무예를 배워 어느 정도 검법에 익숙해 졌다고 행각하여 기와를 굽는 장인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들의 행렬에 섞여 궁내에 잠입하여 한왕은 암살하려고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섭정은 궁안에서 도망쳐 태산으로 들어갔다가 한 사람의 선인을 만나 거문고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에 의해 신분이 탄로 날 것을 두려워한 섭정은 온 몸에 옻칠을 하여 사납게 보이게 하고 다시 숯을 삼켜 그 음성을 변하게 함으로 해서 그 모습을 완전히 변모시켰다. 이와 함께 이빨까지 뽑은 후에 고된 연습에 온 정신을 집중시켜 10년 만에 결국은 거문고에 정통하게 되었다. 섭정은 그의 사부에게 작별을 고한 후에 한나라로 들어갔다.

10년 만에 한나라에 돌아온 섭정이 저잣거리에서 한 번 거문고를 올리기 시작하면 그것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와 행렬을 이루고 지나가던 소나 말도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우렸다. 섭정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 결국은 한왕의 귀에 들어갔다. 한왕은 명을 내려 섭정을 궁궐로 불러 그의 거문고 소리를 감상하려고 했다. 섭정은 한왕의 호위병들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 예리한 단도를 거문고 속에 숨기고는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한왕의 궁궐로 들어갔다. 한왕 앞에 인도된 섭정은 혼신의 힘을 기우려 거문고를 연주했다.

그 거문고 소리는 마치 신선이 내는 소리와 같아 한왕과 그 주위의 호위무사들을 취하게 만들었다. 그 기회를 틈단 섭정은 재빨리 거문고 속에 숨겨둔 단검을 꺼내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어 무방비의 한왕을 그 자리에서 칼로 찔러 죽였다. 섭정은 자기의 행위로 인해 그 모친에게 화가 미칠 것을 걱정하여 단검으로 자기의 얼굴 모습을 훼손하고 팔다리를 잘라 아무도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 볼 수 없도록 했다.

섭정이 죽자 한나라는 그의 시체를 저잣거리에 메달아 놓고 그가 누구인지 알리는 사람에게 많은 돈을 주겠다고 현상금을 걸었다. 하루는 한 늙은 부인이 시체 곁으로 달려오더니 시체를 부여잡고 통곡을 하며 말했다.

「이 사람은 내 아들 바로 섭정이라! 그의 부친을 위해 원수를 갚았으나 후에 내가 죄에 연좌될 것을 알고 그의 얼굴과 형체를 스스로 훼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비록 여자의 몸이기는 하지만 어찌 그의 영용한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않고 일신상의 안위만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부인은 계속 울기만 하다가 결국은 동맥을 끊어 죽었다.

후세에 이르러 <섭정자한왕(聶政刺韓王)> 즉 <광릉산(廣陵散)>이라는 노래 이름으로 거문고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연주되어 섭정의 이름을 기리고 있다. 특히 서진 때 혜강(嵇康)의 광릉산 연주는 유명하다.

미주❷

전국시대 제나라의 군주 재위연도가 맞지 않아 정정한다. 이 부분에 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그 밖의 사서인 죽서기년(竹書紀年), 맹자(孟子), 전국책(戰國策)등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청대 이후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상기 네 왕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이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첫번째로는 환공(桓公) 오(午) 전에 9년간 재위에 있었던 제후(齊侯) 염(剡)의 기록이 누락되었다.

두 번째로는 환공 오는 18년 동안 재위에 있었으며 6년은 잘못이다. 그래서 후의 위왕(威王), 선왕(宣王), 민왕(湣王) 세 왕의 재위 연대를 22년을 늘렸고 민왕이 재위한 기간 17년을 40년으로 연장했다.

[평설]

『거문고를 연주하여 상국의 자리를 얻은 추기(鄒忌)』편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제위왕의 발탁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제위왕의 선조는 원래 진(陳)나라 출신의 공자 진완(陳完)이다. 기원전 672년 진나라에 변란이 일어나자 제나라로 망명한 진완을 제환공(齊桓公)이 전(田) 땅의 대부로 임명했다. 이후로 진완의 자손들은 대를 이어 제나라에서 벼슬을 하게 되어 성씨를 전(田)으로 삼았다. 진완의 10대 손으로 제나라의 상국이 된 전화(田和)가 삼진(三晋) 중 가장 국세를 떨치고 있었던 위나라의 군주 위문후가 어진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 있음을 보고 자기도 역시 강씨를 대신하여 제후에 피봉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화는 제강공(齊康公)을 동해의 외딴 섬으로 옮겨 벽지의 조그만 땅으로 보내 살게 하고 스스로 제나라 군주 자리에 올랐다. 전화는 공손한 어조로 위문후에게 주천자에 청하여 자기를 제나라의 군주로 인정받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원전 389년 명목상으로만 천자 노릇을 하고 있던 주안왕(周安王)은 전화를 제나라 군주로 임명했다. 이로써 강씨들의 제나라는 전씨의 나라로 변했다. 이것은 노예제도에 기반을 둔 제나라가 신흥지주 계급을 기반으로 한 나라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태공(太公) 전화의 뒤를 제후(齊侯) 섬(剡)이, 섬의 뒤는 위왕(威王) 인제(因齊)가 이었다. 제나라의 군주 자리에 오른 인제는 초(楚)와 월(越) 같은 남만의 나라에서 보내 온 문서에 모두 초왕과 월왕 등의 왕호를 보고 그들 보다 낮은 칭호를 갖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제나라가 왕호를 칭하기 시작하자 위(魏)나라도 역시 따라서 왕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비록 다른 제후보다 왕호를 먼저 칭하여 우위를 차지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룬 것은 하나도 없이 그저 노예제 사회의 지배계층이 행하는 악취 나는 부패한 행동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었다. 그가 음악과 색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자 인접 국가들 모두 제나라 변경을 서로 앞을 다투어 공격했다. 그러나 국경을 지키던 장수들을 모두 싸움에서 패하여 제나라의 국경은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그때 그런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추기란 인물이 거문고의 이치를 논한다는 구실로 제위왕에게 치국의 도를 진언했다. 이에 추기의 간언을 받아들인 제위왕은 자기의 나쁜 점을 고치고 올바른 길로 들어서서 패업을 이룩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기원전 357년 제위왕은 추기를 재상으로 임명하여 제나라의 내정에 대한 개혁을 추진했다. 마침내 제나라는 제위왕의 개혁조치들로 인해 신흥지주계급들은 새로운 기상을 갖고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군주를 모실 때는 만전을 기해야 하며, 다른 신하들과는 화목을 이루어야만 하고, 만백성들을 사랑하고, 군자들 사이로 끼는 불초한 자들을 막아야 하며, 법령을 개정하여 언론을 바로 잡고, 온 마음을 다하여 치국에 힘써야만 한다는 순우곤(淳于髡)의 조언을 받아들인 추기는 그의 말은 모두가 사람을 쓸 때 주의해야할 사항이라고 생각해서 관리들 중 현명하고, 불초한 자를 골라 제위왕에게 보고했다.

당시 조정의 관원들은 모두가 아읍대부(阿邑大夫)를 칭송하고, 즉묵대부(卽墨大夫)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위왕은 쉽게 믿지 못하고 자기의 심복을 현지에 파견하여 조사를 하게 한 바, 실제로는 그와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읍대부는 평소에 위왕의 측근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자기에 대해 호평하게 만들었다. 즉 아대부는 행적으로 얻은 좋은 명성이 아니라 백성들의 재물을 갈취하여 그 돈으로 샀음을 의미했다. 자고로 어진 이름에는 거짓이 많다. 여러 사람이 칭송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진실로 훌륭한 사람은 아니며, 여러 사람들이 또한 비난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좋고 나쁜 평판은 그 사람이 주는 뇌물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또한 그 뇌물을 원하고 있느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법이다. 제위왕은 그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는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행하여 왕으로써의 위엄을 보였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어질지 않다고 했으나 실제적으로는 어진 즉묵대부에게는 높은 상을 주고, 고의적으로 조정에 뇌물을 돌려 허위로 날조한 아읍대부의 시비를 밝혀 그를 팽살시켰다. 제위왕이 그와 같은 방법으로 관리들을 다스리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일이다. 특히 자기에게 거짓 보고를 행한 측근들 10여 명을 팽살시킨 것은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이 실제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데 능하고, 부패한 관리들을 원수처럼 미워하며, 선행을 장려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군주가 있는데, 어찌 감히 그 밑의 관리들이 부정직한 마음으로 뇌물을 주고받으며 일을 잘못 처리하겠으며, 권세에 빌붙어 감히 사실을 날조할 수 있겠는가? 나라의 정치가 어찌 맑아지지 않겠는가?

악명을 명성으로 바꾸어 자기의 공적을 거짓으로 조작한 아읍대부가 실은 불초한 자로써 사람을 속여 어진 이름을 얻은 아읍대부를 처형한 제위왕은 어진 인재들을 찾아 임용하고 다시 일단의 인사들을 지방관으로 새롭게 임명함과 동시에 조정의 사구(司寇)와 사마(司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자 제나라는 치세가 와서 다른 나라의 제후들이 제나라를 두려워하여 복종해 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제위왕은 군사가 손빈(孫臏)을 등용하여 무력을 증강시키자 제나라는 제후국들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

제나라는 위나라가 갖고 있던 패권을 이어받아 전국 초기 동방의 강대국으로 부상되었다. 초, 위, 한, 조, 연 등의 대국들은 모두가 제나라와 군사력을 겨룰 수 없게 되었다.

국력이 약했던 제나라가 강국으로 돌변한 과정을 살펴보면 인재의 등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위왕은 관리들의 기강을 새롭게 세웠으며, 형식에 얽매인 나라의 기풍을 바로 잡고, 과감하게 실제를 추구함으로 해서 후세 사람들에 의해 부국강병을 이루어 역사성 불후의 위업을 달성한 군주로 칭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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