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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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6 이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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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45:424833 
제90회. 六國兼相(육국재상) 被激往秦(피격왕진)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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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90회 六國兼相 被激往秦(육국겸상 피격왕진)

합종책을 유세하여 육국의 재상을 겸한 소진과

소진의 격심술로 진나라로 들어가는 장의

1. 羽毛不成, 不能高飛(우모불성, 불능고비)

- 털이 다 자라기 않는 새는 하늘을 높이 날 수 없다. -

한편 귀곡선생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고 하산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각기 주나라의 락읍(洛邑)과 위(魏)나라에 있는 자기들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원래 소진에게는 늙은 모친과 형님 한 분 그리고 동생 둘이 있었다. 그러나 형님은 이미 죽어 홀로 된 형수님이 식구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소진의 두 동생의 이름은 소대(蘇代)와 소려(蘇厲)라고 했다.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나게 된 지가 여러 해 만이라 온 식구들은 소진을 진정으로 반겨하며 기뻐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소진이 열국) 왕과 제후들을 방문하여 유세를 하는데 비용으로 쓰기 위해 노모와 식구들에게 가재를 털어 돈으로 바꾸어 달라고 청했다. 형수와 함께 모친이 극구 만류하면서 말했다.

「너는 수확물을 거두기 위해 농사를 짓거나 공인(工人)의 일이나 장사의 일에 힘써 착실하게 일 할의 이득을 구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변설로써 부귀를 취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얻지도 못할 이익을 헛되게 도모하다가 후일에 생계마저도 막막하게 되면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소대와 소려 두 동생도 말리면서 말했다.

「형님께서 유세술에 능하다면서 어찌하여 주왕(周王)에게 유세하지 않으십니까? 고향에서도 명성을 떨칠 수 있는데 하필이면 먼 나라까지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소진은 온 가족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별 수 없이 주현왕(周顯王)을 찾아가 부국강병의 계책에 대해 유세했다. 현왕이 소진을 관사에 머물게 했다. 주왕의 좌우에 있던 신하들은 소진이 농사와 장사를 하던 집안의 출신이라는 사실을 평소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이 헛되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의심하여 아무도 소진을 주왕에게 천거하지 않았다.

소진이 주나라의 관사에서 일 년 넘게 얹혀살았으나 주왕이 결코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을 수 없었다. 참다못한 소진은 집으로 돌아와 그의 집 전 재산을 처분하여 마련한 황금 백일의 돈으로 검은 담비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사서 예복으로 갖추고 거마와 종복들을 모집하여 열국으로 유세를 떠났다. 소진은 열국의 사이를 분주하게 왕래하며 각 나라의 산천과 지형 및 백성들의 풍토를 살펴서 천하의 모든 나라의 이해에 관해 상세하게 파악해 두었다. 그러나 소진이 몇 해 동안에 걸쳐 열국들을 돌아다녔지만 자기의 유세술을 받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위앙이라는 사람이 진나라에 들어가 진효공에게 중용되어 상군(商君)에 봉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의 행차를 서쪽으로 돌려 진나라의 도성인 함양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진효공은 이미 죽고 상군도 반역의 죄로 처형당하고 없었다. 소진이 진효공의 뒤를 이은 혜문왕(惠文王)의 접견을 청했다. 혜문왕이 소진을 궁전으로 불러서 물었다.

「불원천리하고 우리나라를 찾아오신 선생께서는 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하십니까?」

「신이 들으니 대왕께서 제후들에게 땅을 떼어서 진나라에 바치라는 령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편안히 앉아서 천하를 병합하겠다는 뜻이 아니십니까?」

「그렇소!」

「대왕의 진나라는 동쪽으로는 하수와 효산(殽山)으로 가로막힌 험애한 관문들이 있고, 서쪽의 한중(漢中)과 남쪽의 파촉(巴蜀), 북쪽의 호(胡)와 맥(貉)이라는 사방의 요새지로 둘러싸인 천해의 요충지입니다. 게다가 진나라는 비옥한 토지가 사방 천리에 뻗쳐있고 백만에 달하는 용감한 군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왕의 지혜와 사대부들과 일반 백성들의 노력에 저의 계책을 활용하신다면 제후들을 합치고 주왕실을 손안에 넣어 제왕을 칭하고 천하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음은 손바닥 뒤집기 보다 더 쉬운 일입니다. 어찌하여 편안히 앉아서만 일을 이루시려고 하십니까?」

상앙을 죽인지가 얼마 되지 않아 마음속으로 변설만 늘어놓는 유세객들을 매우 싫어하고 있던 혜문왕은 소진의 제안을 물리치며 말했다.

「내가 알고 있기에 ‘하늘을 날아 다니는 새도 그 털이 다 자라기 전에는 높이 날 수 없다’1)고 했소. 선생의 말씀하신 바를 내가 아직 취할 수 입장이 못 되고 몇 년을 더 기다렸다가 병사의 수와 국력이 다소나마 충족되었다고 생각되면 그 때에나 다시 의논하기로 합시다.」

소진이 즉시 혜문왕 앞에서 물러 나와 옛날의 삼왕(三王)2)과 오패(五覇)가 싸워 천하를 얻게 된 방법을 모두 10여 만 자의 글로 집대성한 책을 한 권으로 만들어 혜문왕에게 바쳤다. 혜문왕이 비록 소진에게서 책을 받아 읽어 봤지만 소진의 계책을 채용하려고 하는 마음은 갖지 않았다. 다시 소진이 진나라의 상국 공손연(公孫衍)3)을 접견하여 진왕에게 천거를 부탁했다. 그러나 오히려 소진의 재주를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공손연 때문에 진왕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2) 懸梁刺股(현량자고)

- 대들보에 상투를 묶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발분독서하는 소진-

소진이 진나라에 1년여를 지내면서 가산을 정리하여 마련한 황금 백일을 모두 소비하고 검은 담비가죽으로 만든 갖옷도 다 헤어져 더 이상 여비를 마련할 길이 없자 데리고 온 종복과 거마를 돈으로 바꿔 노자로 삼아 배낭 하나를 등에 지고 걸어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노모가 소진의 낭패한 모습을 보더니 세상의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베틀에 앉아서 천을 짜고 있던 소진의 처는 방으로 들어오는 소진의 모습을 보고도 맞이하지도 않았다. 소진이 배가 몹시 고파 그 형수에게 밥을 청했으나 그 형수는 땔감이 없다고 하면서 밥도 지어주지 않았다. 이 일을 노래한 시가 있다.

부귀하면 길 가던 나그네도 골육과 같고

가난하면 골육도 역시 길 가던 나그네와 같다.

헤진 담비가죽의 갖옷을 입고 돌아온 소진을 보더니

비록 가족들이었지만 남 대하듯이 하였다.

富貴途人成骨肉(부귀도인성골육)

貧窮骨肉亦途人(빈궁골육역도인)

試看季子貂裘敝(시간계자초구폐)

擧目雖親盡不親(거목수친진불친)

소진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이 한 몸이 빈천하게 되니 처가 나를 자기의 남편으로 생각하지 않고 형수는 나를 시동생으로 여기지 않으며 모친은 나를 자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이것은 모두가 내가 못난 탓이라 누구들 원망하겠는가?」

소진이 서랍 속의 책을 정리하다가 태공이 지은 <음부경(陰符經)>라는 책을 발견하자, 갑자기 자기가 하산할 때 귀곡선생이 그 책을 주며 당부하던 말이 생각나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귀곡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유세에 실패하거든 오로지 이 책만을 옆에 끼고 열심히 읽어 더욱 정진하도록 해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로 소진은 문을 안에서 틀어 잠그고 방안에 앉아 <음부경>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음부경의 오묘한 술법에 한없이 매료된 소진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밤이 되어 졸리면 송곳으로 자기의 허벅지를 찔러 흘러내린 피가 온 다리를 흠뻑 적셨다. 그렇게 해서 <음부경>라는 책을 깨달은 소진은 다시 자기가 옛날 열국을 주유할 때 살핀 각국의 형세를 좀더 자세히 연구했다. 그렇게 지내기를 일 년이 넘게 되자 천하의 대세는 마치 자신진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느낀 소진이 스스로 위로하며 말했다.

「내가 이룬 학문이 이와 같으니, 그 배움으로서 열국의 제후들을 설복 시킨다면 그 누가 나에게 황금과 옥과 그리고 아름다운 비단들을 내주며 경상의 자리를 주지 않으려고 하겠는가?」

소진은 즉시 동생 소대(蘇代)와 소려(蘇厲)를 불러 말했다.

「내가 유세법을 이미 깨우쳐 부귀를 취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야 되겠다. 너희들은 노자를 준비하여 나를 도와라! 내가 열국을 유세하여 출세하게 되면 내 필히 너희들을 이끌어 주리라!」

그런 다음 소진은 <음부경>의 책 내용을 동생들에게 강독하였다. 소대와 소려도 역시 깨달은 바가 있어 각기 황금을 내어 소진의 노자에 보탰다.

소진이 그의 모친과 처 및 형수에게 작별인사를 드리고 진나라로 가려하다가 마음을 바꾸어 속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천하의 일곱 나라 중에 오로지 진나라만이 가장 강성하다고 할 수 있어 만일 내가 돕는다면 제업을 이루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옛날 진왕이 나를 받아주지를 않았다. 오늘 내가 다시 진나라를 찾아갔음에도 만에 옛날처럼 다시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고향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

3. 蘇秦合縱(소진합종)

- 연조(燕趙) 두 나라에 합종책을 유세하여 뜻을 얻은 소진 -

소진은 진나라를 버리고 열국들을 동심협력 하게 하여 진나라를 고립시킨다면 자기가 뜻을 이룰 수가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래서 소진은 동쪽으로 발길을 돌려 조나라로 들어갔다. 당시 조나라의 군주는 숙후(肅侯)였고 그 동생 공자성(公子成)이 조나라의 상국으로 있으면서 봉양군(奉陽君)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소진이 먼저 봉양군을 찾아가 유세했으나 그는 소진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진은 즉시 조나라를 떠나 북쪽의 연나라로 가서 연문공(燕文公)을 접견하려고 했으나 그를 연문공에게 천거해 줄만한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은 가서 일 년이 넘어, 가지고 갔던 노자가 다 떨어져 여관에서 굶기를 다반사로 했다. 여관의 주인이 알고 소진의 처지를 동정하여 그에게 돈 백전을 빌려주었다. 소진은 그 돈으로 그럭저럭 배는 곯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문공이 궁궐 밖으로 놀이를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소진은 길옆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이윽고 연문공을 태운 가마와 그 일행이 일행이 나타나자 갑자기 뛰어나가 큰소리로 외치며 접견을 청했다. 연문공이 성과 이름을 물어 그가 소진임을 알고 기뻐하며 말했다.

「선생께서 옛날 10만여의 글자로 부국강병책을 책으로 만들어 진나라 군주에게 바쳤다는 소식을 듣고 과인이 마음속으로 매우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직도 선생이 쓰신 책을 얻어 읽어보지 못하고 있음을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참입니다. 오늘 선생께서 다행히 이 먼 곳까지 왕림하여 저에게 깨우침을 주려고 하시니 참으로 연나라의 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문공이 놀이를 나가다 말고 소진을 수레에 태우고 궁궐로 돌아와 소진을 자기 앞으로 불러 스스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가르침을 청했다. 소진이 연문공에게 말했다.

「대왕의 나라는 싸움으로 지새고 있는 열국의 일원이 되어 그 땅은 사방 2천 리에, 기병은 6천 기에 불과하여 중원의 나라들에 비해 그 국력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나라 안에서는 쟁이와 병기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병거 달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또한 병거가 전쟁에서 패하여 부서지고 그 장수가 참수되는 병화를 입지 않으면서 이렇게 나라가 무사하게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과인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연나라가 병화를 입지 않음은 조나라가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는 가까이 있는 조나라와 결맹을 맺어야하는 이유를 모르시고 오히려 땅을 떼어 수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진나라에 바치고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됩니까?」

「신의 어리석은 의견으로는 우선 조나라와 친하게 지낸 다음에 열국들과 동맹하여 일심동체가 되어 서로 협력하여 진나라를 막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백세의 안정을 확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선생이 합종책(合縱策)으로 연나라가 안정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과인이 바라던 바이나 단지 제후들이 기꺼이 따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원컨대 조후를 접견하여 합종책을 따르겠다는 약정을 받아 내겠습니다.」

연문공이 크게 기뻐하여 황금과 비단을 노자로 주고, 장사들이 딸린 턱이 높은 커다란 수레를 내어주며 소진을 태워 조나라로 모시고 가게 했다.

그때 마침 조나라의 봉양군 조성(趙成)은 지병으로 이미 죽고 없었다. 조숙후는 연나라의 객경 소진이 조당에 당도하였다는 보고를 접하고 즉시 계단을 내려가 맞이하며 말했다.

「평소에 존경하던 선생께서 불원천리하고 이렇게 저를 찾아 주심은 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고 하십니까?」

「저는 천하의 초야에 묻혀있는 지혜로운 선비들은 하나같이 현군이신 군주님의 의로운 뜻을 앙모하여 군주님 앞으로 나와 충성을 바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봉양군께서 선비들의 재능을 시기하여 방해하는 바람에 지혜로운 선비들은 즐비하게 늘어서기는 했지만 군주님 앞으로 나와 입을 열고 진언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지금 봉양군께서 이미 운명을 달리하셨음으로 신이 비록 어리석은 충정에서나마 감히 몇 가지 계책을 올리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신이 듣기에 ‘나라를 보전하는 데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일보다 좋은 방법이 없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일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4)’라고 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태항산 서쪽의 나라로서 오로지 조나라만이 가장 국력이 강하다고 하겠습니다. 조나라는 그 영토가 사방 2천여 리에 갑병은 수십 만 명에 병거는 천승을, 기마병은 만기가 넘고 창고에 쌓인 식량은 수 년 간은 족히 견딜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진나라가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여 우선적으로 정벌을 하려고 하는 나라는 조나라입니다. 그러나 진나라가 감히 군사를 내어 감히 공격하지 않음은 한위(韓魏) 두 나라가 그들의 뒤를 공격하지 않을까 두려워해서 입니다. 그래서 조나라의 남쪽 국경을 진나라로부터 막아주는 나라는 한과 위나라인 것입니다. 한과 위 두 나라는 높은 산과 큰 하천의 험애가 없어 일단, 진나라 군사들이 관문을 열고 대군을 몰고 나와 공격한다면 두 나라는 결국은 항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 다음은 조나라의 차례가 될 것입니다. 신이 예전에 열국을 돌아다니며 천하의 지세를 살펴본 바에 의하면 열국의 영토는 진나라보다 사방 만 리는 더 넓고 제후국들의 모든 군사들은 진나라에 비해 10배나 많습니다. 만약 육국이 힘을 합쳐 하나로 된 다음 서쪽의 방향으로 군사들을 진군시킨다면 진나라의 점령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진나라에 대한 소신의 계책은 진나라가 제후들을 두렵게 생각함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그 땅을 떼어 육국에 바치며 화의를 구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무릇 아무런 이유도 없이 땅을 떼어 준다면 그것은 즉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일입니다. 다른 나라를 파멸시키는 일과 다른 나라로부터 파멸 당하는 일 중 어느 편이 더 이롭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는 열국의 군주들과 신하들을 원수(洹水)5)에 모이게 하여 맹회를 열어 결의형제를 맺고 하늘에 맹세하여 육국이 서로 입술과 이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고, 만일 진나라가 육국의 어느 한 나라를 공격한다면 나머지 다섯 나라는 같이 힘을 합하여 그 나라를 구하고, 또한 맹세를 저버리고 군사를 동원하여 힘을 합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제후들이 힘을 합하여 그 나라를 정벌하도록 하면 됩니다. 진나라가 비록 그 세력이 강하고 포악하다고 하나 어찌 감히 혼자의 고립된 힘으로 힘을 합친 여러 나라와 더불어 힘을 겨룰 수 있겠습니까?」

「과인은 나이가 어리고 나라의 역사는 일천하여 선생이 말씀하시는 신묘한 계책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선생께서 제후들을 규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려고 하는데 어찌 과인이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조숙후가 즉시 허리에 차고 있던 조나라 재상의 인장을 풀어 소진에게 주고 다시 커다란 저택과 호화로운 장식으로 치장한 수레 백승, 황금 천일, 백벽 백쌍, 금실로 수놓은 비단 천필을 하사한 후에 열국을 유세하여 합종의 맹약을 주재하도록 했다.

소진이 즉시 사람을 시켜 황금 백 근을 가지고 연나라에 가서 옛날에 자기가 묶었던 여관주인으로부터 빌렸던 백전의 돈을 갚도록 했다.

이윽고 소진이 날짜를 택하여 우선 한나라와 위나라로 가서 합종책에 대해 유세를 떠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조숙후가 소진을 불러 입조케 하여 긴급한 일에 대해 상의하려고 하였다. 소진이 황망 중에 달려와 조숙후를 알현하였다. 조숙후가 소진에게 말했다.

「조금 전에 변방을 지키던 관리에게서 ‘진나라 상국 공손연이 군사를 대거 발하여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의 장수 용고(龍賈)를 사로잡고 그 군사 4만 5천 명을 참수했습니다. 위나라는 할 수 없이 하수 북쪽의 땅에 있는 10여 개의 성을 떼어 진나라에 바치고 화의를 맺었습니다. 공손연은 다시 군사들의 진공 방향을 돌려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급보를 받았습니다. 사태가 이러하니 지금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소진은 조숙후의 말을 듣고 놀라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진나라의 군사들이 만약 조나라에 쳐들어온다면 조후는 필시 위나라와 똑같이 진나라에 땅을 바치고 화의를 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추진하는 합종책이 성사되기 힘들 것이다!」

소진은 ‘사람이 급하게 되면 빠져나갈 방도가 생기는 법이다’라는 말을 생각해 내고 일단은 조숙후에게 안심하라고 이른 다음 그 순간을 모면하고 물러 나와 별도의 계책을 궁리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이윽고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낸 소진이 즉시 조숙후를 찾아가 태연한 표정을 짓고 두 손을 높이 들이 읍을 올린 후에 말했다.

「신이 살펴보건대 진나라 군사들은 위나라 군사들과의 싸움으로 피로하여 당장은 조나라에 쳐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일에 그들이 조나라에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신에게는 그들이 물러가게 할 별도의 계책이 있으니 근심하지 마십시오!」

「선생께서는 잠시 이곳에 머무르시어 진나라 군사들이 과연 쳐들어오지 않는 지를 확인하시고 열국에 유세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조숙후의 말은 소진의 뜻한 바를 정확히 맞추었다고 볼 수 있었다. 소진은 숙후에게 명대로 당분간 조나라에 머물겠다고 말하고음 그 앞에서 물러 나왔다.

소진이 상부에 돌아오자 문하의 심복 중이 이름을 필성(畢成)이라는 사람을 밀실로 불러 분부하며 하였다.

「나에게는 동문수학한 옛날 친구가 있다. 이름은 장의라고 하고 자는 여자(餘子)라고 하는데 대량(大梁) 사람이다. 내가 너에게 황금 천근을 줄 것이니 너는 장사꾼으로 분장하고 이름은 고사인(賈舍人)으로 바꾼 다음 위나라의 대량으로 가서 장의를 찾도록 해라. 네가 그를 만나게 되거든 내가 일러준 대로 행하라. 그리고 그를 데리고 조나라에 당도하거든 그때는 또 내가 별도로 일러준 대로 행하라. 너는 매사에 조심하여 나의 뜻한 바를 그르치지 말기 바란다.」

고사인으로 이름을 바꾼 필성이 소진의 명을 받들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의를 찾기 위해 위나라 대량성을 향해 달려갔다.

4. 화씨지벽(和氏之璧)

- 화씨벽의 유래 -

한편 장의는 귀곡선생의 문하를 떠나 위나라로 돌아왔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위혜왕에게 나가 벼슬을 구했으나 뜻을 얻지 못했다. 후에 위나라 군사들이 제나라와 진나라 군사들에게 연이어 계속해서 패하자, 장의는 그의 처를 데리고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에 가서 상국 소양(昭陽)의 문객이 되었다.

소양은 옛날 군사를 이끌고 동정하여 월나라를 멸하고 그 땅을 초나라 영토로 만든 후에 다시 북쪽의 위나라를 쳐들어가 위군을 대파하고 위나라의 양릉성(襄陵城) 외의 7개의 성을 점령한 초나라의 명장이었다. 초위왕(楚威王)6)이 소양의 공을 높이 사서 그에게 상으로 초나라 왕실이 지보로 간직해왔던 화씨벽(和氏璧)을 하사했다.

화씨벽의 내력은 원래 초려왕(楚厲王)7) 말년에 변화(卞和)라는 초나라 사람이 형산(荊山)8)에서 옥돌을 얻어 려왕에게 바쳤다. 려왕이 옥공을 불러 감정해보게 했으나 옥공이 ‘쓸모 없는 돌에 불과할 뿐입니다.’고 고했다. 려왕이 크게 화를 내며 임금을 기만했다는 죄명으로 변화의 왼쪽 발을 잘랐다. 려왕이 죽고 초무왕(楚武王)9)이 새로 서자 변화가 다시 옥돌을 초왕에게 바쳤다. 옥공이 다시 옥돌을 돌덩이라고 무왕에게 고했다. 무왕도 역시 크게 노하여 변화의 오른쪽 발마저 잘랐다. 이어서 무왕이 죽고 초문왕(楚文王)10)이 즉위하자 변화는 다시 옥돌을 새로운 왕에게 바치려 했지만 두 다리가 모두 잘려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변화는 옥돌을 가슴에 품고 형산 밑에서 사일 밤낮을 피눈물이 나올 때까지 쉬지 않고 통곡하였다. 초나라의 어떤 사람이 변화가 당한 일을 알고 찾아가 말했다.

「그대는 두 번이나 돌멩이를 옥이라고 왕에게 바쳐 두 다리를 잘렸으니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대가 혹시나 아직도 상을 바라고 옥돌을 다시 바치려고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그렇게 구슬피 울고 있는가?」

변화가 대답했다.

「내가 이렇게 슬피 우는 이유는 상을 받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한스럽게 생각하는 바는 본래 좋은 옥이 오히려 아무 쓸모없는 돌멩이라고 판정되어, 그것은 마치 올곧은 선비를 잘못된 선비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시비가 거꾸로 되었음에도 스스로 밝힐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이를 슬퍼하여 울고 있을 뿐입니다.」

초문왕은 변화가 통곡하며 울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옥돌을 가져오게 하여 옥공을 불러 그 겉을 걷어내게 하자 과연 흠집이 하나도 없는 아름다운 옥을 얻게 되었다. 문왕이 옥공에게 명하여 벽옥(璧玉)으로 만들게 하고 이름을 화씨벽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오늘도 양양부(襄陽府)11) 관하 남장현(南漳縣)12)에 있는 형산의 산정에 연못이 있는데 그 한쪽 켠에 포옥암(抱玉岩)이라는 석실이 있다. 그 석실이 바로 변화가 머무르면서 옥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던 곳이다. 초문왕이 변화의 지성에 감동하여 그에게 대부에 준하는 봉록을 내려 여생을 편하게 살게 하였다.

화씨벽은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라 소양이 월나라를 멸해 초나라에 병합하고 다시 북쪽의 위나라를 정벌하여 양릉 외의 7개의 성을 점령한 공적이야말로 초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여 화씨벽을 소양에게 상으로 내린 것이다. 소양은 화씨벽을 몸에 휴대하고 다니며 잠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5. 盜璧之怨(도벽지원)

- 장의가 초나라에 들어가 벽옥을 훔친 도적의 누명을 쓰고 원한을 품다. -

그러던 어느 날, 소양이 적산(赤山)으로 놀러나가려고 하자 사방에서 모인 손님들과 문객들 100여 명이 뒤를 따랐다. 적산 밑에는 옛날 강태공이 낚시를 하며 즐겼다고 전해지는 깊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그 연못 옆에 높은 누각이 있어 여러 사람들이 누각에 올라 술을 마시며 즐겼다. 이윽고 좌중에 술기운이 거나하게 되자 손님들 중, 화씨벽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던 어떤 사람이 소양에게 한 번 보여 달라고 청했다. 소양이 가동에게 명하여 수레 안의 상자 안에서 보물함을 꺼내 자기 앞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이윽고 가동이 보물함을 꺼내오자 소양이 직접 보물함의 열쇠를 따고 삼중으로 싼 비단 보자기를 풀었다. 보물함에서 나온 찬란한 광채는 주위에 에워싼 사람들의 얼굴을 비췄다. 손님들이 순서를 정해 차례로 구경을 하며 그 아름다움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칭찬했다. 여러 사람들이 화씨벽을 감상하고 있는데 좌우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소리를 쳤다.

「연못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가 물 위로 나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소양이 자리에서 일어나 누각의 난간 쪽으로 다가가자 여러 손님들도 일제히 같이 일어나 연못 안을 살펴보았다. 크기가 한 장도 넘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큰 대어 뒤를 수많은 고기들이 따르며 수면 위로 뛰어 다니면서 요동을 쳤다. 갑자기 호수의 동북 켠에 먹구름이 일더니 큰비가 몰아 닥쳤다. 소양이 좌우에게 명하며 말했다.

「비바람이 몰아칠 것 같으니 이만 자리를 걷어라!」

가동이 자리로 돌아와 화씨벽을 수습하여 보물함에 넣으려고 했으나 그때는 이미 누구 손에 건네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소양은 누각 위의 연회장에 일대 소란을 피워 찾게 했으나 결국은 찾지 못하고 상부로 돌아와서 문객 중 한 사람에게 화씨벽을 훔쳐간 도적을 수소문해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문객이 소양에게 고했다.

「장의란 사람은 원래 가난뱅이라 평소에 그 행실에 좋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화씨벽을 훔쳐갈 사람은 장의 말고는 없습니다.」

자신도 마음속으로 의심을 하고 있던 차에 문객의 말을 믿은 소양은 사람을 시켜 장의를 붙들어 오게 한 다음 곤장을 치게 하여 자백을 받아내려 하였다. 장의는 옛날에도 남의 물건이라고는 훔친 적이 없는 사람이고 또한 화씨벽을 훔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가 훔쳤다고 자백을 할 리가 없었다. 장의는 자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백 대의 곤장을 맞고 온 몸이 부르트게 되어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렀다. 소양이 보니 장의가 숨을 넘겨 곧 죽을 것 같아 할 수 없이 풀어주었다. 곤장을 맞는 장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문객 한 사람이 아무 죄도 없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그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등에 들쳐 업어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매를 맞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장의롤 본 그의 처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신이 오늘 이렇게 욕을 본 원인은 모두가 유세술에 관한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농사나 지으면서 편안히 살았더라면 어찌 이런 변을 당했겠습니까?」

장의가 그의 처를 향해 입술을 내 보이며 살펴보라고 이르며 대답했다.

「내 혀는 아직 붙어 있소?」

그의 처가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아직 건재합니다.」

「혀가 온전하니 아직 내게는 밑천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소. 한 때 재수가 없어 당한 변이니 그다지 크게 근심하지 마시오!」

그런 다음 장의는 얼마간 휴식을 취하며 요양을 하다가 어느 정도 몸에 차도가 있자 처는 초나라에 남겨 둔 채 위나라로 돌아와 버렸다.

6. 被激往秦(피격왕진)

- 소진의 격심술로 진나라에 들어가 입신양명하는 장의 -

소진의 밀명을 받은 고사인이 장의를 만나기 위해 조나라를 출발하여 위나라에 당도했을 때는 장의가 초나라에서 돌아온 지 이미 반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 때 소진이 조숙후에게 유세를 한 결과 그 뜻을 얻었다는 소문을 들은 장의는 그를 한번 방문해 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장의가 밖에 볼일이 있어 문을 나서는데 그의 집 대문 밖 거리에서 수레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고사인을 만나 서로 수인사를 나누던 중에 그가 조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의가 고사인에게 물었다.

「소진이라는 사람이 조나라의 상국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과연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선생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나라 상국과 옛날에 교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어찌하여 물으십니까?」

장의가 조나라 상국으로 있는 소진이 자기와는 동문수학하며 결의형제를 맺은 사이라고 말해주었다. 고사인이 듣고 말했다.

「선생이 진정 소상국과 그렇게 막역한 사이라면, 어찌하여 조나라에 한 번 들러 상국을 만나보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상국께서는 필시 선생을 조후에게 천거해 줄 것입니다. 마침 저의 장사 일이 끝나 조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던 참입니다. 만일 선생께서 저의 미천한 신분을 개의치 않으신다면 원컨대 선생과 함께 이 마차를 타고 가시면 어떻겠습니까?」

장의가 흔쾌히 허락하고 고사인을 따라 조나라로 가기로 했다. 이윽고 장의가 탄 고사인의 수레가 조나라 도성인 한단성 교외에 이르자 고사인이 장의를 향해 말했다.

「저의 집은 도성 밖에 있는데 제가 집에 볼일이 있어 잠시 헤어져야 되겠습니다. 성안으로 들어가시면 각 성문 주위에는 여관이 많이 있어 멀리서 온 손님들이 편안히 묶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 잠시 머무르시고 계시면 제가 집안의 일을 보고 며칠 후에 뵈러 오겠습니다.」

장의가 수레에서 내려 고사인과 작별인사를 한 다음 헤어져 성안으로 들어가 여관을 잡고 그 곳에서 유숙했다.

다음 날, 장의가 명패를 하나 만들어 조나라의 상부(相府)에 들러 소진의 접견을 신청하려고 했다. 소진은 미리 상부의 문을 지키는 하인들에게 절대로 외부의 손님을 안으로 들여보내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해 놓았다. 장의가 5일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그의 접견을 청하는 명패를 상부에 접수시킬 수 있었다. 소진은 자기의 일이 너무 많이 밀려 있다고 하면서 장의와의 접견 일을 별도로 정해서 통고하겠다고 하인을 시켜 알려왔다. 장의는 다시 며칠을 더 기다렸으나 소진을 만날 수가 없어 가슴속에서 분노가 끓어 위나라로 돌아가려고 했다. 여관의 주인이 돌아가려는 장의를 붙들고는 말했다.

「선생께서 이미 상부에 상국의 접견을 청하는 명패를 접수시켜 놓고 아직 그에 대한 통고도 받지 못한 돌아가시려고 하십니까? 내일이라도 만일 상국께서 찾으시기라도 한다면 제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비록 반년이나 한해가 걸린다 할지라도 상부의 통고를 받지 않고는 감히 이곳을 떠나시면 안 됩니다.」

장의가 마음속으로 고민을 심히 하다가 문득 고사인이 생각나서 그에 관해 여관주인에게 물었으나 그에 대한 행적도 전혀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서 장의는 명패에 이만 돌아간다는 내용을 써서 상부(相府)에 접수시켰다. 소진이 장의가 쓴 명패의 내용을 보고 사람을 보내 다음날 만나겠다는 말을 전하게 했다. 장의가 여관주인에게 의복과 신발을 빌리고는 이윽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상부로 가서 소진과의 접견을 기다렸다. 의관을 정제하고 위엄을 갖추고 당상에 좌정한 소진이 사람을 시켜 중문을 열고 자기와의 접견을 청한 손님들을 들어오게 하였다. 상부에 들어가 소진을 본 장의가 계단을 통해 당상에 오르려고 했다. 그러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장의를 제지하며 말했다.

「상국께서 아직 공무가 다 끝나지 않았으니 손님께서는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장의가 계단 밑에 서서 기다리며 눈을 들어 당 앞을 보니 소진을 배알하기 위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관속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에 대한 접견이 끝나자 다시 여러 사람이 줄을 이어 소진 앞으로 나아가 자기들의 업무를 품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덧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상에서 소진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찾아온 손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

좌우에 서있던 시종들이 장의를 향해 말했다.

「상국께서 선생을 부르고 계십니다.」

장의가 의관의 옷깃을 바로 하고, 소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를 맞이하며 자리를 권할 것을 기대하며 계단을 통하여 당상으로 올랐다. 그러나 장의의 생각과는 달리 소진은 자기 자리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의가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고 소진 앞으로 나가 두 손을 높이 들어 읍을 올렸다. 소진이 자리에 일어서더니 손을 가볍게 흔들어 답례를 하면서 장의에게 말을 건넸다.

「여자(餘子)는 그 동안 무양하셨는가?」

장의가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어떻게든 응대를 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아무 말도 못했다. 소진이 좌우의 시종들에게 명하여 점심을 내오게 하고는 장의를 쳐다보며 말했다.

「공사가 너무 다망하여 자네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 지금 너무 시장한 듯 보이니 일단 간단한 식사를 한 다음에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나누기로 하세!」

소진이 좌우의 시종들에게 명하여 당하에 자리를 준비하여 식사를 내오게 하였다. 소진은 당상에 그대로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그 요리는 진수성찬으로 식탁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당하의 장의에게 내온 식탁에는 고기와 채소 각기 한 접시와 현미로 지은 밥 한 공기에 불과하였다. 처음에는 밥상을 물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던 장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에 식사를 하였기 때문에 배가 매우 허기가 진 상태였고, 더욱이 지금까지 여관에 체제하면서 그 주인에게 진 빛이 적지 않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저 오늘 소진을 접견하여 바라는 것이라고는, 비록 그의 천거에 힘입어 조나라에서 벼슬은 얻지 못하더라도, 얼마간의 비용을 얻어 여관의 외상 밥값을 갚고 남은 돈으로 돌아갈 노자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 처마가 낮은 집에 들렀는데, 누구인들 머리를 숙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라는 속담이 말하고자 하는 처지였다. 이윽고 장의는 어쩔 수 없이 수치심을 가슴에 묻고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하다가 눈을 들어 소진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술잔과 접시가 식탁 위에 즐비하게 놓여있고 그 남은 음식을 좌우에 있던 시종들에게 상으로 나누어주는 음식만 해도 장의가 먹은 음식보다 훨씬 양도 많았고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장의의 마음속에는 한편으로는 수치심과 다른 한편으로는 울분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식사가 끝나자 소진이 좌우를 시켜 자기의 말을 장의에게 전하게 했다.

「손님을 이곳으로 모셔라!」

장의가 눈을 치켜뜨고 살펴보니 소진은 식사하기 전에 했던 것처럼 거만하게 자리에 앉아서 장의가 올라왔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의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당상으로 뛰어 올라가 큰 소리로 소진을 향해 꾸짖었다.

「계자(季子)야! 나는 네가 옛날 친구를 잊지나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고 먼 길을 마다 않고 이렇게 너를 찾아왔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까지 욕보이는 것이냐? 동문수학하고 결의형제를 맺은 옛날의 친구의 정은 어디로 갔단 말이냐? 」

소진이 듣고 느릿느릿한 말투로 대답했다.

「자네의 재주로 보아 나는 자네가 나보다 먼저 뜻을 얻은 줄 알았지, 이렇게 곤궁한 처지에 있는 줄은 몰랐네! 내가 어찌 자네를 조후에게 천거하여 자네를 부귀하게 만들 만한 능력이 없겠는가? 그러나 내가 걱정하는 바는은 자네의 포부와 재능이 쇠퇴하여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천거한 내가 그 허물을 뒤집어쓰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네!」

「대장부가 스스로 노력하여 부귀를 취해야지 어찌 너 따위에게 천거를 받겠느냐?」

「자네는 능히 스스로 부귀를 취할 능력이 있다하면서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보자고 했는가? 내가 자네와 동문수학한 정을 생각해서 황금 한 홀(笏)을 내주겠으니 고향으로 돌아갈 때 노자에 보태 쓰도록 하게나!」

소진이 말을 끝내고 좌우에게 명하여 금덩이를 내와 장의에게 주도록 했다. 장의가 분을 참지 못하고 금덩이를 땅 위로 팽개쳐버리고 노기발발하여 소진의 부중에서 물러 나왔다. 소진도 역시 장의를 만류하지 않았다.

장의가 여관에 돌아와 보니 자기가 자던 방에는 자신의 침상과 덮을 것만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물건들은 모두 밖에다 내 놓고 있었다. 장의가 그 연고를 물으니 여관 주인이 대답했다.

「오늘 선생께서 상국을 접견하셨으니 필시 잠자리를 넓히시고 더 좋은 음식을 청하실 것 같아 이렇게 다른 사람의 짐을 밖으로 내 놓았습니다.」

장의가 여관 주인의 말을 듣고 머리를 가로 저으며 자세한 사정을 말하지 않으면서 탄식하는 소리만 연속 질러 대었다.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로다!」

장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의복과 신발을 벗어 여관주인에게 반납했다. 여관주인이 물었다.

「상국이 선생과 동문수학한 사이라면서 어째서 경솔하게 이렇게 의관과 신발을 돌려주십니까?」

장의가 주인의 소매를 붙잡고 옛날에 소진과 동문수학하며 결의형제를 맺으며 우정을 나누며 지냈으나 오늘에 이르러 그가 자기를 대했던 전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여관의 주인이 말했다.

「상국께서 비록 선생에게 오만하게 대했다고는 하나, 상국의 지위는 높고 권세는 막중하여 예의에 크게 벗어났다고는 볼 수 없겠습니다. 또한 선생에게 황금 한 홀을 내렸으니 그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습니까? 선생께서 그 금덩이를 받아 가지고 와서 저에게 진 빚을 갚고 나머지 황금으로는 고향에 돌아가는 노자로 쓰시면 되었을 것을 구태여 그렇게 내동댕이치실 필요는 없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한 때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 금덩이를 땅에다 던져버려 지금 저의 수중에는 무일푼이라 이것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여관의 외상값 문제로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옛날에 자기를 조나라까지 태워다 준 고사인이라는 사람이 여관 문을 열고 안으로 달려와서 장의와 서로 수인사를 나눈 다음 말했다.

「본의 아니게 오래 동안 찾아뵙지 못해 선생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선생은 그 사이에 소상국을 이미 접견하셨습니까?」

장의가 고사인의 말을 듣자 다시 가슴에 맺혀있던 화가 머리끝까지 다시 뻗쳐 여관 방안 있던 탁자를 손으로 두드리며 소진을 향해 욕을 해대었다.

「그 각박하고 의리 없는 도적놈에 대해서는 다시 입에 올리지 마시오.」

「선생의 말씀이 매우 과격하신데 어찌하여 이렇듯 화를 내십니까?」

여사의 주인이 장의가 소상국을 접견했던 일의 전말을 장의를 대신하여 상세하게 설명하며 말했다.

「제가 지금 밀린 여관비도 갚지 못하고, 또한 노자도 없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어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원래 제가 선생을 부추겨 이곳까지 오시게 만들어 결국은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당하게 했으니 이것은 즉 제가 선생에게 누를 끼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원하옵건대 선생을 대신하여 여관의 밀린 방값과 밥값을 대신 갚고 수레를 준비하여 선생을 고향으로 모셔다 드리고 싶은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비록 고향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빈손이라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습니다. 이번에 진나라에 가서 유세를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그곳에 갈 수 있는 노자가 없어 그저 한스러울 뿐입니다.」

「선생이 진나라에 가셔서 유세를 한다고 하시니 혹시 진나라에도 같이 공부한 친구나 아니면 형제분들이 있어서 입니까?」

「진나라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천하의 일곱 나라 중에 오로지 진나라만이 가장 강성한 나라입니다. 진나라의 힘이라면 조나라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제가 진나라에 가서 다행히 임용되어 뜻을 얻는다면 내가 소진에게 당한 복수를 갚을 수 있어서입니다.」

「선생이 만약에 다른 나라로 가시겠다면 제가 그 뜻을 받들 수가 없겠으나, 진나라로 가시겠다면 제가 마침 그 나라에 가서 친척을 찾아야 됨으로 지난 번처럼 저와 함께 수레에 같이 타고 서로 간에 말동무나 해가며 간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장의가 고사인의 말을 듣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세상에 이렇듯 높은 의인이 계시니 제가 족히 소진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에 못 이겨 죽음에 이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두 사람은 결의형제를 맺었다. 고사인은 밖에 수레를 대령해 놓고 여관으로 들어가 장의의 여관비를 계산한 다음 장의와 같이 수레에 올라 서쪽의 진나라를 바라보고 출발했다. 길을 가던 중에 고사인은 장의를 위해 의관과 복식을 포함하여 종복에 이르기까지 장의가 필요한 것들은 모두 빠짐없이 돈을 지불하여 구해주며 그 비용에 대해서는 추호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이윽고 두 사람이 진나라에 당도하자 다시 고사인이 황금과 비단을 크게 내어 진나라의 혜문왕을 모시고 있는 총신들에게 재물을 바쳐 장의의 이름을 알렸다.

그때 혜문왕은 옛날 찾아온 소진을 잡지 못한 일을 후회하고 있던 참이라 좌우의 총신들이 천거를 하자 즉시 장의를 입궐하라 하고 몇 마디 말을 나눠 보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객경으로 임명했다. 혜문왕은 장의를 제후들과의 관련된 일을 맡아보도록 했다. 장의가 진나라에 임용되는 것을 확인한 고사인은 작별인사를 올렸다. 장의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참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을 때 그대의 도움을 입어 결국은 진나라까지 와서 벼슬을 얻고 몸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대에게서 입은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렇듯 서둘러 돌아가려고 하십니까?」

고사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선생의 재능을 알아본 것은 소인이 아니라 바로 소상국입니다.」

장의가 크게 놀라며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물었다.

「그대의 황금과 비단으로 내 노자로 충당했는데 어찌하여 소상국 운운하시오?」

「소상국께서는 오랜 노력 끝에 가까스로 합종책을 제창하여 그 뜻을 이루려는 순간에 왔는데, 만일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한다면 상국의 합종책이 와해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진나라에 중용되어 권력을 잡아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선생 외는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소인을 장사꾼으로 분장시켜 조나라로 데려오게 하셨습니다. 그런 상국께서는 선생께서 조나라에서 작은 벼슬에 만족하고 머물러 있을까 걱정하여 일부러 태만하게 대하여 선생으로 하여금 격노케 하였습니다. 선생은 과연 상국의 생각대로 진나라에 와서 유세할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상국께서는 우리가 조나라에서 출발할 때 황금과 비단을 크게 내주며 선생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대주어 반드시 진나라에 중용되어 권력을 잡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선생님은 이미 진나라의 객경 벼슬에 앉게 되었으니 신은 빨리 돌아가 소상국께 보고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돌아가기를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의가 고사인의 말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오호라! 내가 소진의 손바닥 안에 놀고 있었으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나야말로 소진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구나! 그대는 돌아가 내가 고맙게 생각하더라고 전하라! 내 마땅히 소진을 위해 ‘조나라를 공격해야 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음으로써 소진의 크나큰 은혜를 갚으리라!」

장의와 헤어진 고사인이 조나라에 돌아와 소진에게 그간의 일을 보고했다. 소진은 즉시 조숙후를 찾아가 말했다.

「진나라 군사들은 결코 우리나라를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

7. 六國兼相(육국겸상)

- 합종을 성사시켜 육국의 재상을 겸임한 소진 -

이윽고 진나라의 위협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소진은 그 즉시 조숙후에게 인사를 올리고 조나라 상국의 신분으로 한나라로 들어가 선혜공(宣惠公)을 접견하고 합종책을 유세했다.

「한나라의 땅은 사방 9백 리에 군사는 수십 만 에 불과하나 천하의 강궁(强弓)과 쇠뇌는 모두 한나라에 나옵니다. 오늘 군주께서 진나라를 받들고 있는데 진나라는 필시 한나라에게 진왕에게 바치는 예물로 땅을 떼어 달라고 할 것입니다. 진나라의 청을 들어주고 나면 진나라는 다음 해에 다시 다른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한나라의 땅은 유한한데 진나라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계속해서 땅을 떼어 주다보면 한나라의 땅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 닭대가리는 될지언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15)라고 했습니다. 대왕의 지혜로움과 한나라 특산의 성능이 좋은 무기로 무장한 군사들을 갖고도 소꼬리가 되려 하신다면,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신은 생각합니다.」

선혜공이 소진의 말에 수긍하며 말했다.

「원컨대 이 나라의 장래를 선생에게 맡겨 조나라와 합종을 하겠오.」

한선혜공도 역시 소진에게 황금 백일을 하사했다. 한나라를 떠난 소진은 위나라로 가서 위혜왕을 접견하고 합종책을 유세했다.

「위나라 땅은 사방 천리에 불과하나 백성들과 거마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진나라에 대항할만한 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위나라 외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 신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위나라가 땅을 떼어 바쳐 진나라를 받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진나라가 끝없이 위나라의 땅을 요구한다면 그때는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말에 귀를 기우려 육국이 서로 친하여 힘을 모아 진나라를 제압한다면 앞으로 영원히 진나라에 대한 근심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이 오늘 조왕의 명을 받들어 이렇게 위나라에 온 목적은 합종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과인은 어리석고 불초하여 스스로 화를 불러 들여 싸움에서 패하고 욕됨을 입었소. 오늘 선생이 훌륭한 계책으로 과인을 깨우치니 어찌 내가 따르지 않겠소!」

위혜왕도 역시 소진에게 황금과 비단을 실은 수레 한 대를 하사했다. 위나라와 합종을 성사시킨 소진은 방향을 동쪽으로 돌려 제나라에 들어가 제선왕을 접견하고 자기의 합종책에 대해 설명했다.

「신이 보기에 임치의 도로에는 지나가는 수레들의 바퀴가 서로 얽히고 길을 걷는 보행자들은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번화하여 천하에 비할 나라가 없음에도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받들려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치욕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제나라는 진나라에 멀리 떨어져 있어 진나라 군사들의 공격이 미치지 못하는데 있음에도 어찌하여 진나라를 받들려고 하십니까? 신은 원컨대 대왕께서 조나라와 합종의 맹약을 맺어 육국이 서로 친하게 지내며 진나라에 대항하여 서로 간에 구원을 하고자 합니다.」

「삼가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소진은 다시 제나라에서 수레의 방향을 서남으로 돌려 초나라로 향했다. 초위왕(楚威王)을 접견한 소진이 말했다.

「초나라의 땅은 사방 5천 리에 달하는 강국이라 천하에 당할 자가 없습니다. 진나라가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는 초나라입니다. 초나라가 강해지면 진나라는 약해지고, 진나라가 강해지면 초나라가 강해집니다. 오늘 열국의 선비들은 아무도 연횡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무릇 합종이라는 것은 제후들이 장차 그들의 땅을 떼어 초나라에 바치게 됨을 말하고, 연횡(連橫)이라는 것은 즉 초나라가 스스로 땅을 떼어 진나라에게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 계책은 그 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크다고 하겠습니다.」

「선생의 말씀은 초나라의 복입니다.」

8. 錦衣還鄕(금의환향)

- 육국의 재상인을 허리에 두르고 금의환향한 소진

소진은 열국에 유세를 끝내고 조나라에 가서 조숙후에게 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북쪽으로 길을 가다가 자기의 고향인 낙양을 지나게 되었다. 제후들이 각기 사자들을 보내 소진을 환송하는데 화려한 의장에 수많은 정기를 들고 앞에서는 길을 트고 뒤에서는 호위하며 소진이 이끄는 수레와 기병 및 짐수레는 20여 리를 계속해 뻗쳐 행렬이 끊어지지 않아 마치 그 위용은 제후나 왕의 행렬과 같았다. 길가에 늘어선 관원들은 먼지를 무릅써가며 길에 엎드려 소진에게 절을 올렸다. 주현왕도 소진이 장차 낙양성을 지나갈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을 동원하여 길을 청소하라 이르고 성 밖에 장막을 치고 소진을 맞이하는 잔치를 벌였다. 소진의 노모는 지팡이를 짚고 나와 길가에서 소진의 행렬을 구경하다가 그 사람이 바로 자기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 탄식했다. 두 동생과 형수, 그리고 그의 처 등도 길가에 서 있다가 감히 눈을 들어 소진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소진이 지나가자 땅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소진이 수레 안에 타고 있다가 그 형수를 보고 말했다.

「형수께서 나에게 밥도 지어주시지 않으시더니 오늘은 어찌하여 그렇게 공대하십니까?」

소진의 형수가 대답했다.

「그것은 계자(季子)께서 지금은 지위가 높아지시고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어 제가 공대하지 않으면 저를 받아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형수의 말을 듣고 탄식했다.

「변화무쌍한 세상물정에 따라 사람의 얼굴도 높아졌다가 낮아 졌다 하니 오늘 내가 이룩한 부귀가 결코 작다고 생각되지 않는구나!」

소진이 말을 마치고 자기의 친족들을 수레에 태우고 같이 고향에 들어갔다. 소진은 고향의 옛집에 큰집을 짓는 공사를 시작하게 하고 집이 완성되면 같이 모여 함께 살게 하고 황금 천금을 주어 종족들을 부양하라고 했다. 오늘도 하남부(河南府) 성내에 그 당시 소진이 지은 저택의 유적이 남아 있는데 후세로 전해 내려오다가 어떤 사람이 그 유적지를 파서 황금 덩어리 100개를 얻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에 그 곳에 살던 소진의 종족들이 묻어 둔 것이라고 했다. 소진의 동생 소대와 소려도 그 형이 현달하여 부귀를 얻은 것을 보고 그들도 역시 <음부경>를 숙독하여 유세술을 학습하였다.

9. 원수회맹(洹水会盟)

- 육국의 제후들의 원수에 모여 합종을 맹약하고 소진은 합종장이 되다. -

소진이 생가에서 며칠을 보내고 다시 수레를 움직여 조나라로 들어갔다. 조숙후는 합종책에 대한 제후들의 동의를 받아낸 소진의 공을 치하하여 소진을 무안군(武安君)에 봉하고 제(齊), 초(楚), 위(魏), 한(韓), 연(燕) 오국의 제후들에게 사자를 각각 보내어 모두 원수(洹水)에 모여 회맹을 갖자고 했다. 소진이 조숙후와 같이 원수에 미리 도착한 다음에 단을 쌓고 제후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한 다음에 그들의 도착을 기다렸다. 연문공에 이어서 한선혜공이 도착하고 며칠 후에 위혜왕, 제선왕, 초위왕 등의 순으로 연이어 회맹장에 당도했다. 소진이 먼저 각국의 대부들과 만나 제후들의 서열에 대해 의논하였다. 대부들이 의논하기를 연과 초는 건국한지가 오래된 나라이고, 제, 한, 조, 위 나라는 모두 사직이 바뀐 신생국들이라고 하면서 서열을 정하는데 의견이 분분했다. 대부들이 논쟁을 한 결과 나라의 크기로 그 서열을 정하기로 의견이 모였다. 초나라의 영토가 제일 크고, 제나라가 다음이며 위, 조, 연, 한의 순서로 정했다. 그 중에 초, 제, 위나라는 이미 왕호를 칭하고 있고 나머지 세 나라는 그때까지 제후로 칭하고 있어 서열을 정하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소진은 다 같이 왕호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육국의 군주들을 소진의 제안을 받아 들여 모두 칭왕하기로 하였다. 조왕이 맹주가 되어 주인의 자리에 앉고 초왕 등은 그 서열의 순서에 따라 손님의 자리에 앉은 다음에 먼저 회맹을 위해 준비한 내용에 대해 의논했다. 이윽고 때가 되자 각국의 제후들은 회맹을 위한 제단으로 올라 순서에 따라 도열했다. 소진이 계단을 통하여 제단 위로 오른 다음에 입을 열어 각국의 왕들에게 고했다.

「여기 산동의 여러 제후들께서는 그 지위는 모두 왕의 자리에 있고 그 다스리는 땅은 넓고 군사들은 많아 모두 하나 같이 스스로 패자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분들이십니다. 서쪽의 진나라는 말을 키우던 천출의 자손들인데 함양의 험한 지세에 의지하여 열국들의 영토를 갉아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군주님들은 능히 북면의 예를 취하여 진나라를 받들 수 있겠습니까? 」

제후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원컨대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합종을 맺어 진나라를 물리치는 계책은 옛날에 여러 군주님들을 찾아다니며 이미 설명을 드린 바 있음으로 오늘은 단지 희생을 잡아 삽혈의 의식을 행하여 천지신명 앞에서 맹세하고, 다같이 결의형제를 맺어 어느 한 나라가 환난을 당하게 되면 나머지 다섯 나라가 돕기로 맹약하는 것입니다.」

여섯 나라의 왕들이 모두 두 손을 높이 들어 인사를 하며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소진이 즉시 희생의 피를 받은 쟁반을 두 손으로 받들며 천지신명과 육국의 조상신들을 향해 고하기를 어느 한 나라가 합종의 맹약을 어기면 나머지 다섯 나라가 힘을 합하여 그 나라를 정벌하기로 하였다. 미리 준비한 여섯 통의 서약문을 육국의 왕들에게 나누어주어 서명을 하게 한 다음 각기 간수하도록 하고 이어서 합종이 되었음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벌렸다. 조왕이 일어나서 말했다.

「소진은 합종책이라는 커다란 계책을 내어 우리 여섯 나라의 정세를 안정시켰습니다. 마땅히 높은 작위에 임명하여 육국을 왕래하게 하면서 지금 행한 합종의 맹약이 견고하게 지켜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나머지 다섯 나라의 왕들이 일제히 말했다.

「조왕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래서 여섯 나라의 왕들은 소진을 합종장으로 추대하고 여섯 나라 상국의 인장과 금패 그리고 보검을 허리에 차고 다니면서 여섯 나라 백성들을 총괄하도록 하였다. 다시 육국의 왕들은 각기 황금 백일, 양마가 이끄는 수레 10승을 소진에게 감사의 표시로 주었다. 여섯 나라의 왕들은 회맹을 끝내고 각기 자기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소진은 조왕과 같이 조나라로 돌아갔다.

때는 바로 주현왕 36년, 기원전 333년의 일이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소진의 일을 논했다.

육국의 왕들이 원수에 모여 천지신명께 맹세 하여

순치의 관계를 맺어 서로 골육의 정으로 의지하기로 했네

만일에 소진의 합종책이 끝에 가서 깨어지지 않았다면

어찌 육국이 협력하여 고립된 진나라를 멸할 수 없었겠는가?

相要洹水誓明神(상요원수서명신)

脣齒相依骨肉親(순치상의골육친)

假使合縱終不解(가사합종종불해)

何難協力滅孤秦(하난협력멸고진)

그 해에 위혜왕과 연문왕이 모두 죽고 위양왕(魏襄王)과 연이왕(燕易王)이 그 뒤를 이었다.

< 제 91회로 계속 >

주석

1)羽毛不成, 不能高飛(우모불성, 불능고비)

2)삼왕(三王)/ 하(夏)나라를 세운 우(禹)임금, 상(商)나라를 세운 탕(湯)임금, 주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을 말함.

3) 공손연(公孫衍)/ 전국때 종횡가(縱橫家)로, 성은 희(姬)이고, 씨는 공손(公孫), 이름은 연(衍)이다. 서수(犀首)는 그의 호(號)이다. (일설에 의하면 서수는 공손연이 위나라에서 받은 관직 이름이라 했다.) 위나라 음진(陰晉 : 지금의 섬서성 화음현(華陰縣) 동) 사람이며 위나라 공족 출신이다. 처음에 진나라에 들어가 진혜왕(秦惠王)에게 유세하여 신임을 받고 중용되었다. 진혜문왕 5년 기원전 333년 대량조(大良造)에 임명되어 진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공격하여 그 장군 용고(龍賈)를 사로잡고 조음(雕陰 : 지금의 섬서성 감천(甘泉) 서)을 점령했다. 다시 진나라를 위해 제(齊)와 위(魏)에 유세하여 세 나라가 힘을 합쳐 조나라를 공격하여 소진(蘇秦)의 합종책(合縱策)을 무너뜨렸다. 후에 장의(張儀)와 사이가 벌어져 위나라로 들어가자 위혜왕(魏惠王)은 그를 위나라의 대장으로 삼았다. 그는 한(韓), 조(趙), 위(魏), 연(燕), 중산(中山) 등의 5국의 재상이 되어 합종을 이끌고 진나라의 세력에 대항했다. 이어서 위혜왕(魏惠王) 후원년(後元年) 16년 기원전 319년 위(魏), 조(趙), 한(韓), 연(燕), 초(楚) 등의 5국의 군사를 일제히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고 다시 진나라의 서쪽에 자리잡은 의거(義渠)의 군주와 통하여 진나라의 배후를 기습하도록 하여 동서 양쪽에서 진나라를 공격하여 곤경에 처하도록 했다. 새로 즉위한 진무왕(秦武王)은 장의(張儀)를 쫓아내어 죽도록 하고 공손연을 불러들여 재상으로 삼았다. 공손연을 진나라의 재상이 된 후에도 허리에는 5국의 재상인을 차고 다니며 연횡(連橫)의 약장(約長) 노릇을 했다. 진무왕 4년 기원전 307년 감무(甘茂)에 의해 참소 당하여 진나라에서 다시 쫓겨나 위나라로 돌아갔다. 이어서 얼마 안 있어 어떤 사람에게 모함을 당하여 위왕에게 살해당했다.

4)保國莫如安民(보국막여안민), 安民莫如擇交(안민막교택교)

5)원수(洹水)/ 지금의 태항산(太行山) 남록(南麓)인 하남성 북부에서 발원하여 안양시(安陽市)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던 황하(黃河)의 지류(支流)

6)초위왕(楚威王)/ 이름은 웅상(熊商)으로 재위 전339 - 329년.

7)초려왕(楚厲王)/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 편에 의하면 려왕(厲王) 이라는 칭하는 초왕은 없다. 초무왕(楚武王) 웅통(熊通)의 바로 직전의 왕은 무왕의 형 웅현(熊眴)이고 시호는 분모(蚡冒)이다. 즉 연의(演義)의 문맥으로 보아 초려왕(楚厲王)은 분모(蚡冒)를 칭한 것 같다. 참고로 초나라가 왕호를 처음 시작한 것은 초무왕 때부터다.

8)형산(荊山)/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남장현(南漳縣) 서남 무당산(武當山) 동남. 저수(沮水)와 장수(漳水)의 발원지다.

9)초무왕(楚武王)/ 웅통을 말하며 분모(蚡冒) 웅현(熊眴)의 동생으로 분모의 아들인 조카를 죽이고 스스로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재위 전742-689년

10)초문왕(楚文王)/ 무왕의 아들로 이름은 웅자(熊貲)다. 초나라의 도성을 단양(丹陽)에서 영도(郢都)로 옮기고 강수와 회수 사이의 중소제후국을 합병하여 초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는데 기반을 마련하였다. 재위 기원전 689-677년이다. 초문왕의 뒤는 그의 장자인 도오(堵敖)가 이었으나 재위 5년 만인 기원전 672년에 초문왕의 차자인 웅운(熊惲)이 도오를 죽이고 자립하였다. 웅운이 바로 초성왕(楚成王)이다.

11)양양부(襄陽府)/ 명나라 때 행정구역의 하나로 치소는 지금의 양번시(襄樊市)에 있었음.

12)남장현(南漳縣)/ 지금의 하남성 남장현(南漳縣)을 말하며 양번시 서 20키로에 있음.

13)在他矮檐下(재타왜첨하), 誰敢不低頭(수감불저두)

14)홀(笏)/ 고대의 중량을 재는 단위로 홀은 10량을 가리킨다. 춘추 때의 한 량은 16그람임으로 한 홀은 160그람에 해당한다.

15)寧爲鷄口 勿爲牛后(영위계구 물위우후)

[평설]

전국시대 초기 위나라가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을 때, 전쟁의 목적은 춘추시대와 마찬가지로 주로 대국이 소국에 대한 영도적 지위를 확보하고 조공의 이익과 천하의 질서를 유지하는 패권국으로서의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소국을 병탄하는 일은 이미 춘추시대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소국들이 계속해서 소멸해 감으로 해서 대국과 대국은 서로 국경을 접하게 되었고 그 결과 대국 상호간에 병탄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각 대국들의 국력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 최강의 대국은 세력이 약한 국가를 병탄하기 위해 각개격파라는 전략을 취한 반면에 세력이 비교적 약한 국가는 자기의 보존을 위해 서로 연합하여 강대국에 대항했다. “ 육국의 합종장이 된 소진이 되어 장의를 격분시켜 진나라로 들어가게 해서” 연횡(連橫)을 추진하게 한 것은 그 배후에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위나라가 쇄락하자 중국의 세력판도는 서쪽에는 진(秦), 동쪽에는 제(齊)가 강국으로 등장하고 그 사이에 남북으로 연(燕), 조(趙), 위(魏), 한(韓) 및 초(楚)가 있었다. 남북을 다른 말로 말하면 종(縱)이다. 합종(合縱)이란 중원의 중심에 자리잡은 한(韓), 위(魏), 조(趙)가 북쪽의 연(燕) 및 남쪽의 초(楚)와 연합하여 동서의 진과 제 두 강국으 겸병책에 대항하기 위해 발생한 외교방침이다. 합종국들은 진나라에 대항할 때는 제나라와 연합하고, 다시 제나라에 대항할 때는 진나라와 연합했다. 약소국들이 합하여 하나의 강대국을 공격하는 전략인 것이다. 동서는 횡(橫)이다. 연횡이란 다른 강대국과 여러 약소국을 공격한다는 전략이다. 제와 진 양강이 무력으로 약소국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명을 따르게 하고, 어떤 때는 그 약소국들을 병탄하려고 했던 책략이다.

소진과 장의는 모두 민간출신의 외교가들로 합종설과 연횡설을 창시한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비록 동문수학했지만 활동기간은 내내 정적으로 지냈다. 그 동안 전통적인 설은 소진이 장의보다 연장이고 장의보다 먼저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한나라 때의 역사가로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비록 이 점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는 했지만 원래의 전통적인 설을 따랐다. 후세의 사가들은 부단히 다른 견해들을 제출했지만 믿을만한 자료의 부족으로 단정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1973년 말 장사(長沙)의 마왕퇴(馬王堆) 3호 한묘(漢墓)에서 <전국종횡가서(戰國縱橫家書)>가 발굴되었다. 전 27장 중 15장 이상이 소진의 서신으로 기존의 사기나 동주열국지에 기술된 설과 다른 것이 증명되었다. 기존의 설과는 달리 소진은 장의보다 먼저 죽지 않았으며, 그는 59세까지 살았으며, 장의보다 26년 후에 죽은 것이다. 장의가 진나라의 재상에 있을 당시는 소진은 갓 태어난 갓난아이에 불과했기 때문에 결코 소진은 생전에 장의와 교제를 나눌 수 없었다. 실제로 장의의 정적은 공손연(公孫衍)이었다. 그래서 합종설의 창시자는 소진이 아니고 공손연이다.

합종과 연횡은 비록 전국시대 때 특수한 역사적 배경에 의해 탄생한 전략이지만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결맹사상은 보편적인 의의를 담고 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결맹을 맺는 것은 유대를 강화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장의의 연횡론은 강국의 보호를 받아 생존권을 보장받으려는 약소국의 요구에 영합하고, 다시 약소국의 전략구상을 하나하나 수습하려는 진나라의 정책에 부합하려고 한데서 나온 것이다. 공손연의 합종설은 진나라가 여러 번에 걸쳐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자 동방의 각 나라는 살기등등한 진나라의 위세를 보고 자기도 조만간에 진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해 영토가 잘려나갈 것이라고 생각한 시점에서 나온 전략이다. 그러나 각 당사국들의 이해는 같지 않았다. 혹자는 비록 이해가 일치하더라도 그 이익의 크기는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합종은 수시로 변화하고 분열하고, 다시 이루어지곤 했다.

위나라가 마릉(馬陵)에서 제군에게 대패하자 진나라는 위나라를 멸하고 동쪽으로 나아가 천하를 통합려고 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에 진나라는 쉴 새 없이 위나라를 공격하여 그 영토의 많은 부분을 잠식하고 동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도로를 닦았다.

바야흐로 진나라의 국토가 황하의 동안으로 확장될 시점에서 장의의 연횡책을 실행에 옮겼다. (기원전 328년 진나라는 장의를 상국으로 임명했다.) 그는 얼르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면서 강온 양면 작전을 쓰서 위나라를 압박하고 초나라를 공격했다. 그는 진나라가 점령한 포양(蒲陽)의 땅을 위나라에 다시 주고 다시 공자 요(繇)를 위나라에 인질로 보내기도 했다. 장의의 전략을 눈치 채지 못한 위나라는 빼앗아 간 땅을 돌려주고 다시 인질까지 보낸 진나라의 유화정책에 감격하여 진나라와 연횡을 맺었다. 이로써 진나라가 동진하여 천하를 병탄하려는 전략의 기초가 잡혔으며 그 위세는 중원 제국들을 진동시켰다.

그러나 기원전 324년 진군이 위나라 령인 겹성(郟城)을 점령하자 위나라는 그 외교방침을 수정했다. 기원전 323년 위나라는 연(燕), 조(趙), 중산(中山), 한(韓) 등의 나라와 오국 연합군을 결성하여 진(秦), 제(齊), 초(楚) 세 강대국에 대항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연히 오국 연합은 제(齊)와 초(楚) 양국의 반대에 부딪쳤다. 장의는 그 기회를 틈타 제와 초의 집정대신들을 설득하여 위혜왕으로 하여금 ‘위나라는 진․한(秦韓)과 연합하여 제와 초를 공격한다.’라는 전략을 받아들이게 하고 동시에 장의를 위나라의 재상에 임명하도록 했다.

장의가 위나라의 재상이 된 목적은 합종을 깨고 위나라로 하여금 진나라와 연횡을 하게끔 해서 다른 나라에게 본보기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이에 위나라가 장의의 제안을 거절하고 연횡을 파기하자 진군은 다시 대거 위나라를 침략하여 곡옥(曲沃)의 땅을 점령했다.

진나라로부터 쉴새없이 침략을 받아오던 위나라를 보고 산동의 여러 제후국들은 살기등등하게 동진해 오고 있는 진나라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趙), 한(韓), 초(楚), 연(燕) 등의 나라가 합종을 성공적으로 맺고 그 합종장에 초회왕을 추대했다. 기원전 318년 합종을 맺은 사국은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로 쳐들어가 함곡관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진군에게 싸움에 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1차 합종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합종에 참가한 국가들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나라는 북방에 자리잡고 있어, 진나라와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진나라를 공격하는데 적극성을 발휘하지 않았다. 초나라는 전투의 선두를 삼진(三晋)에게 양보하여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쌍방간 그 힘이 약화되면 자기들은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하여 합종에 의해 구성된 사국 연합군의 힘은 분산되었고, 그 결과 제일차 합종은 당연히 실패로 끝나버렸다..

그렇다면 진나라가 추진한 연횡책은 무엇 때문에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는가? 위나라를 정복 혹은 지배하려고 했던 진나라에 대해 그 밖의 진나라를 위해 차례로 선두에 섰었던 조(趙), 연(燕), 한(韓), 초(楚), 제(齊) 등의 제후국들이 곧이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진나라의 천하를 병탄하기 위한 동방 진출 전략에 가장 먼저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나라는 위와 한 두 나라였다. 진나라가 위나라에 압박을 가하여 연횡에 끌어들인 외교전략은 바로 통일천하를 이루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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