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조언해 줄 사람이 옆에 있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저보다 운이 더 좋은 사람은 없을 것 같군요.
어제부터 다시 오지랍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신입사원교육문제가 남아있기는 하나, 내부업무가 그런대로 별 무리없이 돌아갈 수 있다고 판단이 서고, 어떤 식으로든 화물을 집하하지 않으면 사무실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어렵다는 판단도 서서요.
지금 본사에서는 상해발 콜롬보향 수출운송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화동지역(상해, 강소성, 절강성)에 위치한 한국섬유업체들이 자사의 물건을 스리랑카로 많이 보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소량입니다. 그런 소량을 화물을 가지고 있는 업체들은 웬만한 큰 선박회사나 포워딩에 가면 구박받기 딱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 수출업체들만 화물만 전문적으로 집하하는 포워딩이 생겨났는데, 이런 소량의 화물만 따로 집하해서 콘테이너 하나를 다 채운 후에 자사의 명의로 선박회사에 운송을 위탁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이를 Co-Loader라고 하는데, 이익이 쏠쏠합니다.
하지만, 그런 운송에 대한 노하우가 전무한 저로서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조언을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그래서 오늘 그 첫 번째로 D해운의 K현지대표를 방문했습니다. K대표님은 중국에서 10년 가까이 생활을 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곳 사정에 정통하시리라 생각했고, D해운은 저의 회사와도 오래 전서부터 거래를 해왔기 때문이지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 말씀은 지금까지 상해에서 Co-Loader를 한 한국업체는 없었다, Co-Loader일은 이익은 괜찮은 편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운송시간을 제대로 못 맞추거나, 통관에 문제가 생겨서 중국세관으로부터 제재를 당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그런 소량의 수출업체들을 많이 끌어들여야 하는데 시간이 두고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고 당부하십니다. 그러면서 우선은 독자적으로 할 생각을 하지말고, 주변에 아는 중국현지기업하고 이익을 나누어 가면서 같이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귀띰해 주시더군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별로 안 바쁘신 것 같기도 하고...) 굳이 시간을 내주셔서 이렇게 조언을 해주시니...
이야기 도중에 제가 하소연을 좀 했습니다. 최근에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는 교통부 규정 때문에 정말 죽을 맛이다라고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80만위안이나 되는 거금을 거두어들이게 되면 저희 같은 영세한 업체들은 장사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를 바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지요.
그랬더니, 오히려....
중국정부를 찬양(?)하시는 게 아닙니까 ! 중국정부에서 아주 잘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우리나라가 더 비정상적이라고 하시는군요.
우리나라에 포워딩업체가 몇 개냐 ? 3000개 가까이 된다, 자본금이 턱없이 낮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운송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만약 무슨 사고라도 나 보아라, 화물이라도 파손되면 어떻게 하는가, 자금력이 눈꼽만치도 없는 업체들이 그런 불의의 사고를 무슨 재주로 감당해 낸단 말인가, 결국 화주들만 피해보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정부는 각 기업의 능력을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 자가배정이라는 있는 나라가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 한국 밖에 없다 ! 관세도 안 내고, 수출대금이 제대로 지불됐는지 불분명한 화물을 화주가 임의대로 창고를 지정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 화주가 지정한 창고가 화주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 뻔한데, 그런데 사고가 생기면 도대체 어떻게 감당을 할 생각인가....! 중국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너무나 비정상적인 것이다...
그 분의 말씀을 듣자니 저의 머리에 쥐가 나는 기분입니다. 그분이 바라보는 중국은 또 다른 중국이니까요. 너무나 많은 중국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분 말씀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중국의 교통부규정이라는 것도 아메리카의 FMC(연방해사기구)의 규정을 그대로 본 따 만든 것입니다. 아메리카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법을 만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 선하증권의 특수성, 즉 유가증권으로 성격과 화물에 대한 권리를 띄는 증명서적인 성격으로 봤을 때 아무나 발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국가에서 책임지고 관리, 감독하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한국인들은 중국을 대할 때 우리식대로만 생각이 경향이 있다는 것이 그 분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한국적인 것은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비정상에 익숙해진 상태로 중국을 대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을 상대할 때, 정치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중국을 찬양하는 것이든, 비판하는 것이든 무조건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차라리 축구가 좋다고 하시는군요. 중국인들을 상대할 때, 정치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당부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첫 번째는 미둥님...)
그러면서 오전에 따로 약속을 정한 것이 있냐고 물어보십니다. 아마도 그 동안 가슴에 맺힌 것들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이번 기회에 몽땅 풀어놓고 싶은 것 같더군요. 하지만, 따로 또 약속이 있어서 그러진 못하고,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아본 한국인들은 그러지 않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가끔씩 답답하고, 때로는 분노까지 느낀다는 사실 말입니다. 저도 작년말 에 귀국을 해서 옛 직장동료들하고 한 잔 하는데...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중국역사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중국에 가서 생활해 본 적도 없는 이가 저보다 중국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 같더군요.
이른바, "돌팔이 중국통"이지요. 중국 땅에서 늙어죽기로 작심한 저조차도 늙어 죽는 그 순간까지 이 나라를, 아니 상해 이 도시조차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조심하십시오. 아예 모르는 사람은 환자가 생기면 바로 들쳐 없고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돌팔이 의사는 자기가 치료한다고 나섰다고 오히려 멀쩡하게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영영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조언도 듣고, 충고도 듣고 하니 참 좋긴 합니다. 그 분과의 만남에서 저는 또 다른 모습의 중국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안목을 넓히기 위해서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동시에 알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이래저래 머리털이 더 빠지게 생겼습니다.
안 그래도 앞머리가 허전한데....
* 보충글
하는 일이 운송이라 자꾸 운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아까 자가배정이라는 이야기를 했지요 ? 설명을 드리지요.
수입화물이 들어오게 되면, 두 가지의 중요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의 국가의 입장에서 중요한 일이고, 또 하나는 운송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외국산수입물품은 관세를 지불하여야 "외국에서 생산된 국내물품"으로써 국내에서 자유로이 판매 혹은 처분될 수 있습니다. 관세를 지불하지 않으면 ? 안됩니다. 세관원들 모두 길거리로 내몰립니다. 그리고 운송인 입장에서 보면 아주 정확하게 화물을 인도 받아야 할 사람에게 화물을 무사히 인도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수입화물이 들어올 때, 이른바 "하선신고"라는 것을 운송인은 해야합니다. 하선신고라고 하는 것은 어떤, 어떤 수입화물이 어디로 거할 것인가를 관세청에 신고하는 것입니다. 당해 항구(혹은 공항)통관을 할 것인가 ? 아니면 보세운송(관세부과를 유보한 상태에서 내륙목적지로 운송, 그 곳 관할세관에서 수입 통관함)을 할 것인가 ? 당해 항구에서 통관하게 되면 어디서 할 것인가 ? 부두에서 할 것인가 ? 아니면 근처 창고에서 할 것인가 등등... 국가입장에서는 관세를 내지 않은 물건은 항상 통제범위에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세관에서 그것을 일일이 다 통제하기가 어려우니 운송인이 하선장소를 지정해야 한다는 이치입니다. 왜냐하면 국가입장에서 보면 운송인은 "선량한 관리자"입니다. 아주 중립적인 입장에서 화물을 취급하는 것이지요. 운송인은 운송인대로 자기가 세금 내는 것이 아니니 아쉬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운송인은 운송인대로 이른바 Right Party에게 화물을 인도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Right Party라는 것은 물품대금을 지불한 사람입니다. 물건값을 내야 비로소 그 물건이 자기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무역계약을 맺은 대로 수입업자가 Right Party가 될 수도 있지만, 수입자가 물품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때에 따라서는 은행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수출자가 계속 Right Party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즉, 신용장방식의 무역거래인데, 수입업자가 그만 망해버리든지, 아니면 물품대금을 지불을 못한 상태에서, 환어음이 이미 Opening Bank(신용장개설은행)에 내도한 상태라면, 이 물건의 임자는 그 은행이 됩니다. 왜냐하면 환어음을 Advising Bank(수출자의 환어음을 물품대금을 주고 인수한 수입지은행)에서 인수했을 당시에 이미 물품대금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입자가 Opening Bank에 역시 동일액수의 물품대금을 지불해야 비로소 환어음이 수입자의 손에 들어가고, 그래야 수입자가 비로소 Right Party가 될 수 있습니다.(그 외에도 여러 가지 경우가 잇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사고의 위험성이 도사린다는 것이지요. 수입자가 맘만 먹으면 물품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물건을 빼돌릴 수 있는 위험성이 항상 있습니다. 물론 관세도 지불하지 않고요. 그런 불행한 사고를 당한 경우가 왕왕 있지요.
자가배정이라는 것은 선하증권상에 명기된 수입자가 화물을 어느 창고로 넣어달라, 일체의 모든 과정을 자기가 직접 하겠다는 뜻입니다. 물론 수입자들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국가와 운송인 입장에서 보면 상당한 리스크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수입자가 지정한 창고업자가 누구의 눈치를 볼 것인가는 명약관화하기 때문이지요.
하는 일이 운송업인지라 자꾸만 전문적인 쪽으로 이야기가 흐르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하지만 이해바랍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2004-05-13 11: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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