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테마연의
테마연의
고사성어
열국영웅전
· 오늘 :  268 
· 어제 :  364 
· 최대 :  2,389 
· 전체 :  1,683,218 
 
  2004-05-11 22:00:044573 
굴원이야기
양승국
일반

굴원(屈原) 이야기


기원전 295년 진(秦)나라의 새로운 왕에 소양왕(昭陽王 : 재위 기원전 295-251년))이 올랐다. 그는 얼마 전에 초나라가 제나라에 인질을 보내어 화친을 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초나라는 결국은 진나라를 배신하고 제나라와 강화조약을 맺으려 한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진소양왕은 즉시 군사를 일으켜 저리질(樗里疾)을 대장으로 삼아 초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초나라가 대장 경쾌(景快)를 보내 진나라 군사들을 막게 하였으나, 경쾌는 오히려 진나라 군사들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그 자신은 싸움 중에 사로잡혀 죽임을 당했다. 초회왕(楚懷王)이 매우 두려워하여 공포에 떨었다. 소양왕은 국서를 써서 사자에게 주어 초회왕(楚懷王)에게 전하게 했다.


“ 옛날에 저의 선왕이신 무왕(武王)과 형제의 의를 맺고 혼인으로 결맹한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께서는 우리 진나라의 뜻을 저버리고 제나라에 인질을 보내어 그들과 화친을 도모했으니 과인이 듣고 그 분을 참을 수가 없어 내가 군사를 동원하여 귀국의 변경을 침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인의 진정한 뜻은 초나라와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금일에 있어서 천하의 대국은 오직 초나라와 진나라뿐인데 우리 두 나라가 서로 사이가 나쁘게 지낸다면 어찌 제후들을 영(令)으로서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과인은 원컨대 대왕과 무관(武關)에서 서로 만나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 맺은 맹약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헤어졌으면 합니다. 맹약이 확인되면 우리가 빼앗은 초나라의 땅은 다시 돌려주고 다시 예전처럼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생각이니 오로지 대왕의 허락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왕께서 만일 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과인에게 절교를 한 것으로 생각하여 과인은 결코 초나라 영토 안에 주둔하고 있는 군사들을 물리치지 않을 것입니다.”


진왕(秦王)이 보내온 국서를 읽기를 마친 초회왕은 즉시 군신들을 불러들여 그 계책을 물으면서 말했다.


“ 과인이 회맹의 자리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진왕의 분노를 사게 될까 두렵고, 참석하자니 진나라에게 속을까 걱정되는데, 경들의 생각에 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가지 않으면 좋겠소?”


굴원(屈原)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 진나라는 마치 호랑이나 승냥이 같은 나라입니다. 초나라가 진나라에 속은 것이 어찌 한두 번 만입니까? 대왕께서 진왕을 만나러 갔다가는 절대로 돌아오시지 못할 것입니다.”


초나라의 상국 소저(昭雎)가 말했다.


“ 영균(靈均)의 말은 곧 충성스러운 마음의 표현입니다. 대왕께서는 가시지 말고 즉시 군사들을 정비하여 쳐들어오게 될 진나라 군사들의 공격에 대비하시면 될 것입니다.”


근상 “ 두 분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초나라가 결코 진나라를 적으로 대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과 등을 졌다가는 군사들은 싸움에서 패하게 될 것이고 많은 장수들은 죽게 될 것이고 남은 땅은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 들 것입니다. 금일 진나라 왕이 좋은 마음으로 우호관계를 맺자고 하는데 다시 우리가 거절하여 만약에 진왕이 진노하여 군사를 대거 동원하여 우리 초나라를 공격해 오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회왕의 동생 자란(子蘭)은 진왕의 딸을 그 부인으로 삼았기 때문에 두 나라가 혼인(婚姻)으로 맺은 관계를 믿은 나머지 초왕에게 회맹에 참석하라고 극력 권하면서 말했다.


“ 진(秦)과 초(楚)는 서로 왕녀를 맞바꾸어 혼인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라 이보다 더 친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들의 병사가 쳐들어오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화의를 청해야 하는 처지인데, 하물며 그들이 좋은 마음으로 우리를 회맹장에 청하고 있는데 어찌 안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상관대부(上官 大夫) 근상(靳尙)의 말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대왕께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으시면 안될 것입니다.”


회왕은 초군이 진군에게 다시 지고 대장 경쾌(景快)마저 죽어, 마음속으로 진나라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품고 있던 차제에 다시 근상과 자란 두 사람이 부추기자 즉시 진왕에게 회맹에 참석하겠다는 답장을 써서 보내게 하였다. 초회왕은 점을 쳐서 택일을 한 다음 길을 떠날 때 단지 근상과 자란 두 사람만을 대동했다.


진나라의 소양왕(昭襄王)은 그의 동생 경양군(涇陽君) 회(悝)를 우모기(羽旄旗)가 꽂힌 왕이 타는 수레에 태우고 시위병(侍衛兵)들을 따르게 하여 자기 대신 진왕으로 가장한 다음 무관(武關)으로 나가 머물며 초회왕을 기다리게 했다. 장군 백기(白起)에게 일반의 병사를 이끌고 무관(武關) 안에 매복하고 있다가 초왕을 사로잡게 하고 장군 몽오(蒙驁)에게 다시 일만의 군사를 주어 무관 밖에 매복하고 있다가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한편 사자를 초왕에게 보내어 좋은 말로 위로하도록 하여 진나라의 사자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초회왕은 진나라가 호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믿고 진나라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서 이어서 그의 일행이 무관의 밑에 당도하게 되었다. 크게 열려 있는 무관의 성문에서 진나라의 사자가 다시 나와 초회왕의 일행을 환영하며 말했다.


“ 저희 진왕께서 관내에서 대왕을 기다린 지가 3일이 되었습니다. 감히 대왕의 수레와 수행원들을 초야에 묶게 하는 수고로움을 끼칠 수 없으니 청컨대, 관내에 있는 관사에 들으셔서 저희 진왕 님과 빈주지례(賓主之禮)를 행하십시오.”


회왕의 일행은 이미 진나라의 경내에 발을 디뎠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사양하는 말을 못하고 진나라 사자의 뒤를 따라 무관(武關) 안으로 들어갔다. 회왕이 무관의 성문을 통과하자마자, 포성이 한 번 울리더니 무관의 성문이 내려와 굳게 닫혀 버렸다. 초회왕이 마음속으로 의심이 들어 사자를 향해 물었다.


“ 관문을 어찌하여 저리 급하게 닫는 것이오?”


진나라의 사자가 대답했다.


“ 이것은 우리 진나라의 법입니다. 지금은 전시(戰時)라 어쩔수 없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왕이 다시 물었다.


“ 그대들의 왕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사자가 다시 대답했다.


“ 진왕께서는 먼저 공관에 들으셔서 대왕의 어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자가 말을 마치고 마부에게 수레를 빨리 몰라고 재촉하였다. 회왕의 일행이 약 2리 쯤 앞으로 갔을 때 멀리서 진왕의 호위병이 공관의 앞에서 일렬도 도열해 있는 것이 보였다. 진나라의 사자가 마부에게 수레를 멈추라고 명했다. 그러자 공관에서 한 사람이 회왕의 일행을 마중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회왕이 보니 그 사람은 비록 금포와 옥대를 둘렀지만, 그의 행동거지는 진왕처럼 보이지 않았다. 회왕이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주저하며 수레에서 내리려고 하지 않았다. 공관에서 나온 그 사람이 회왕의 어가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환영의 말을 하였다.


“ 대왕께서는 의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신은 실은 진왕이 아니라, 바로 진왕의 동생인 경양군(涇陽君)이라는 사람입니다. 청컨대, 대왕께서는 관사에 드시어 제가 전해드릴 말을 들어주십시오.”


초회왕은 할 수 없이 관사 안으로 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경양군과 초회왕이 서로 상견의 예를 행한 다음 서로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관사 밖에서 많은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더니 만여 명에 달하는 진나라 군사들이 공관을 포위하였다. 회왕이 물었다.


“ 내가 진왕의 말을 믿고 회맹에 참석하러 왔는데 어찌하여 그대들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가?”


경양군 “ 너무 근심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절대도 대왕을 상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진왕께서 마침 몸에 병이 들어 출입을 못하시게 되어, 다시 한번 대왕에게 신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을 걱정하시어 신 회(悝)로 하여금 대왕을 맞이하게 하신 것입니다. 군왕께서 한번 뜻을 굽히시어 저와 함께 함양에 들려 저희 진왕을 한번 만나주시면 됩니다. 저 밖의 얼마 되지 않은 군사들은 단지 대왕을 호위하기 위한 것이니 결코 사양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그때는 이미 초왕이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빠져 강제로 떠밀려 타다시피 하여 수레에 탔다. 몽오는 무관에 머물게 하여 혹시라도 뒤따르게 될지도 모르는 초나라 군사들을 막게 했다. 경양군(涇陽君)은 초회왕의 수레에 같이 타고 백기(白起)는 군사들을 지휘하여 초왕이 탄 수레의 사방을 철통같이 에워싸 호위하며 서쪽으로 나아가 함양성으로 달려갔다. 근상은 행렬에서 빠져나가 초나라도 도망쳐 버렸다. 초회왕이 한탄하였다.


“ 내가 상국 소저(昭雎)와 굴평(屈平)의 말을 듣지 않고 근상(靳尙)의 말을 들어 일이 이 지경으로 되었구나!”


초회왕은 끊임없이 눈물만 흘렸다.


회왕의 일행이 이미 함양성에 당도하자 소양왕은 진나라의 군신들과 제후들이 파견해온 사자들을 대거 장대(章臺) 밑에 모이게 한 다음 진왕이 남면하여 왕의 자리에 앉고 회왕으로 하여금 북면하여 번신(藩臣)의 예를 갖추어 자기를 알현하도록 시켰다. 초회왕이 대노하여 큰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 과인은 두 나라가 혼인의 관계를 맺은 것을 믿고 회합에 참석하기 위해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오늘 군왕께서 거짓말로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과인을 함양에 유인하더니 다시 무례하게 나를 대하니 이것은 도대체 무슨 속마음에서인가?”


소양왕이 대답했다.


“ 옛날에 군주께서는 나에게 초나라의 검중(黔中)의 땅을 넘겨준다고 약속했으나 아직까지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서로 상면하게 되었으니 원컨대 속히 옛날에 우리에게 한 약속을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군왕께서 검중의 땅을 바치고 나에게 조배를 올리면 즉시 군왕을 호위하여 초나라에 귀환시켜 드리겠습니다. ”


회왕 “ 진나라가 그 땅을 얻고 싶으면, 마땅히 좋은 말로 요구를 해야지, 어찌 하필이면 이와 같은 비열한 속임수를 쓴단 말이오!”


소양왕 “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군왕께서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입니다.”


회왕 “ 과인이 검중의 땅을 떼어 바칠 것을 저 하늘의 대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청컨대, 진나라의 장군 한 사람을 딸려 보내주신다면 그 장군 편에 검중의 땅을 돌려 드리기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소양왕 “ 군왕이 하는 맹세를 어떻게 믿는단 말입니까? 초나라 돌아가고 싶다면 먼저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 검중의 경계를 정하여 진나라에 할양한 다음에야 군왕께서는 이 나라를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나라의 군신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 초회왕에게 진왕의 말대로 하라고 권하였으나 회왕은 더욱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 너희들이 나를 속여 이곳까지 유인해 놓고 다시 나에게 땅을 떼어 바치라고 강요하니, 나는 죽으면 죽었지, 결코 너희들의 위협에 굴복할 수는 없다. ”


소양왕이 즉시 회왕을 함양성(咸陽城) 내에 거처를 마련하여 억류시키고 초나라에 돌려보내지 않았다.

한편 근상(靳尙)이 도주하여 초나라에 돌아와 소저에게 회왕이 진나라에 잡혀간 일의 전말을 전하며 말했다.


“ 진왕이 우리나라의 검중의 땅을 욕심내어 왕을 억류시켰습니다.”


소저 “ 왕께서 진나라에 가셨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또한 태자는 인질로 제나라에 잡혀 있으니, 만약에 제나라와 진나라가 모의하여 다시 태자를 보내주지 않고 태자를 억류시킨다면 우리 초나라는 군주가 없어 망하게 될 것이오. ”


근상 “ 공자란(公子蘭)이 나라 안에 있는데 어찌하여 왕으로 모시지 않습니까?”


소저 “ 태자가 선지 이미 오래라, 오늘 왕께서 진나라에서 살아계심에도 갑자기 왕의 명을 버려 적자를 버리고 서자를 세운다면 후일에 다행히 왕께서 살아서 귀국이라도 하신다면 우리가 무슨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오? 오늘 우리가 거짓으로 왕께서 돌아가셨다고 제나라에 부고를 내고 태자를 맞이해 온다면 제나라는 필시 우리를 믿고 태자를 보내줄 것이오.”


근상 “ 제가 주군을 수행했다가 제대로 모시지 못했으니, 태자를 모시러 가는 이번 행차는 제가 마땅히 맡아 미력한 힘이나마 전력을 다하여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소저(昭雎)가 즉시 근상을 사자로 삼아 제나라에 보내며 거짓으로 초왕이 이미 병으로 죽었다고 고하고 태자를 맞이하여 상을 주제하고 초왕의 자리를 이어야 한다고 했다. 제민왕(齊湣王)은 그의 상국 맹상군 (孟嘗君)을 불러 말했다.


“ 초나라에 군주가 없으니, 내가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태자를 미끼로 회수(淮水) 북쪽에 있는 초나라의 땅을 요구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맹상군 “ 불가합니다. 초왕에게는 지금 이곳에 억류되어 있는 태자 한 사람만 아들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태자를 억류시켜 원하는 땅을 얻게 된다면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초나라가 다른 공자를 옹립하여 초왕의 자리에 앉힌다면 우리는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불의한 나라라는 오명(汚名)만 뒤집어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태자를 장차 어디다 써먹겠습니까?”


제민왕은 맹상군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서 예를 갖추어 태자 횡(橫)을 초나라로 귀국시켰다. 이 횡이 초나라에 귀국하여 왕의 자리에 오르니 이가 곧 초경양왕(楚頃襄王)이다. 자란(子蘭)과 근상 (靳尙)은 예전의 관직을 그대로 지니게 되었다. 초나라가 사자를 진나라에 보내어 고했다.


“ 초나라의 사직을 지켜주시는 조상신들의 도움으로 나라에 이미 새로운 왕이 서게 되었습니다.”


진나라의 소양왕이 초회왕을 억류시켜 검중(黔中)의 땅을 얻으려고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진왕은 노리던 땅을 얻지 못하게 되자 한편으로는 챙피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즉시 백기(白起)를 대장(大將)으로 몽오(蒙驁)를 부장(副將)으로 삼아 10만의 대군을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백기와 몽오는 초나라의 15개의 성을 빼앗은 다음 회군하였다. 초회왕이 진나라에 억류된 지 일년이 지나자 회왕을 지키던 군사들의 주의가 해이해 지기 시작했다. 초회왕이 그 틈을 이용하여 변복을 하고 함양성을 몰래 빠져나와 동쪽으로 나가 초나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진소양왕은 회왕이 도망친 것을 알고 군사를 내어 그 뒤를 추격하게 했다. 회왕은 감히 동쪽으로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방향을 북쪽으로 바꿔 지름길을 이용하여 조나라로 빠져나갔다.




역자 주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에 대한 풍몽룡(馮夢龍)의 열국지(列國誌) 원전이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내용은 대체적으로 일치한다고 보나 1974년 장사(長沙)의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굴된 백서(帛書)의 내용과는 상이하다. 우선 장의는 진무왕(秦武王) 원년인 310년에 죽고 소진은 그 35년 후인 제민왕 17년인 기원전 285년에 죽어 오히려 장의가 소진보다 한 세대 빠른 전시대 사람이다. 따라서 사기(史記)와 열국연의(列國演義) 내용 중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친구사이였으 며, 소진이 장의를 격분시켜 진나라로 가서 연횡책(連橫策)을 유세 (遊說)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기록은 잘못이다.


그 해에 초회왕(楚懷王)이 진나라의 감시가 소흘한 틈을 타서 탈출하여 조나라로 도망쳐 왔으나 조혜왕(趙惠王)과 여러 신하들이 의논한 결과 만일 초왕을 받아 주었다가는 진나라의 노여움을 살뿐만 아니라 주보(主父)인 무령왕도 멀리 떨어진 대(代) 땅에 있어 감히 혜왕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즉시 관문을 닫고 초회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갈 데가 없어진 초회왕은 할 수 없이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위나라의 대량성(大梁城)을 향했으나 진나라 군사들의 추격을 받아 결국은 사로잡히게 되었다. 초회왕은 다시 경양군(涇陽君) 에게 함양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회왕은 울화가 치밀어 입에서 피를 한 말 넘게 토하더니 이어 병이 나서 얼마 있지 않아 죽었다. 진나라 는 즉시 초왕의 시신을 초나라에 보내 주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회왕이 진나라에 의해 속임을 당하여 외국의 땅에서 객사(客死)한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초왕의 시신을 맞이하러 나와서 통곡하는데 마치 자기의 부모형제가 죽은 것처럼 슬퍼하였다. 제후들은 모두가 진나라가 무도하다고 생각하여 다시 합종책(合縱策)을 택하여 진나라 에 대항하려고 하였다.


초나라 대부 굴원(屈原)은 회왕(懷王)이 진나라에서 숨을 거두었 다는 소식을 듣고 애통해 했다. 회왕은 자란(子蘭)과 근상(靳尙)의 잘못으로 죽은 것인데, 두 사람은 계속해서 옛날의 자리에 그대로 남아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초경양왕(楚頃襄王) 이나 그를 모시고 있는 신하들은 모두가 일신의 안락함을 탐한 나머지 회왕의 원수를 갚을 생각을 도무지 하지 않자 굴원은 누누이 앞으로 나가 간하여 경양왕에게 어진 사람을 쓰고 망신(妄信)을 멀리하며 장수들을 뽑아 군사들을 훈련시켜 회왕이 진나라에 잡혀가 죽은 치욕을 갚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란(子蘭)은 굴원이 뜻한 바를 깨닫고 근상(靳尙)을 시켜 경양왕 앞으로 나가 굴원을 참소하도록 했다.


“ 원래 굴원은 자기가 공실과 동성임에도 불구하고 중용 되지 않아 가슴속에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대왕이 진나라에 대한 원한을 잊고 있으니 불효한 사람이고 , 자란(子蘭)등은 진나라에 대한 정벌을 주장하지 않으니 불충한 자라며 떠들고 다닙니다. ”


경양왕이 크게 노하여 굴원의 관직을 빼앗고 향리(鄕里)로 쫓아 내었다. 굴원에게는 이름이 수(嬃)라는 누이가 있었다. 수(嬃)가 시집가서 멀리 살고 있다가 굴원이 추방되어 향리에 돌아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夔)이라는 고을의 옛날 집에 살고 있던 굴원을 찾아왔다. 그때 굴원은 산발을 하고 세수를 하지 않은 얼굴에는 떼가 잔뜩 끼고 그 몰골은 야위어 수척해져 있으면서 강변에 나가 실성한 사람처럼 시만 읊어 대고 있었다. 수가 굴원을 보고 말했다.


“ 초왕이 너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너로서는 온 마음을 다하여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데, 너 혼자 이렇듯 노심초사한들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 다행히 집안의 전답이 있으니 힘들여 밭을 갈아 스스로의 먹을 것을 해결하여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굴원이 자기 누이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즉시 가래를 들고 나가 밭을 갈았다. 동네 사람들은 굴원이 충신임에도 불구하고 조정에서 추방당한 것을 알고 이를 불쌍히 여겨 모두 달려와 굴원의 밭가는 일을 도와주었다. 굴원이 한 달 넘게 열심히 밭가는 일에 열중하자 수(嬃)는 조금 안심이 되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굴원이 한탄하며 말했다.


“ 초나라가 어찌하여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나는 차마 초나라가 망하는 것을 살아서는 보지 못하겠다. ”


굴원은 그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날 갑자기 새벽에 일어나더니 돌을 가슴에 품고 멱라수(汨羅水) 에 빠져 죽고 말았다. 굴원이 강물에 빠져 죽은 날이 5월 5일이라 단오절의 기원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굴원이 몸을 강물에 던졌다는 소식을 듣고 서로 다투어 작은 배를 끌고 나와 강심으로 나가 굴원을 찾으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나무 잎에 세모지게 싼 기장밥을 강물에 던져 굴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다. 기장밥을 색실에 메달아 강물에 던졌는데 그것은 물 속의 고기들이 달려와 가로채서 먹을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멱라수 강변에 살던 사람들은 굴원이 죽은 5월 5일이 되면 작은 배들을 끌고 나와서 강은 빨리 건너기 위한 용주(龍舟) 시합을 하였다. 이것도 역시 굴원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배를 몰고 나온 것에 시작되었는데 지금도 초나라와 오나라의 강변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해마다 단오절이 되면 하는 민속놀이의 한가지가 되었다. 굴원이 갈던 밭에서 백옥과 같은 하얀 쌀을 얻었는데 그 밭의 이름을 ‘옥미전 (玉米田)’ 이라고 불렀다. 동네 사람들이 굴원을 위해서 사당을 짓고 그 곳의 이름을 자귀향(姊歸鄕)이라고 했다. 지금의 형주부(荊州 府) 관하 귀주(歸州)인데 그 이름 역시 자귀향(姊歸鄕)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송조(宋朝) 원풍(元豊) 연간에 굴원을 청렬공(淸烈 公)에 봉하고 굴원의 누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당을 세워 그 이름을 자귀묘(姊歸廟)라 불렀다. 후에 다시 굴원(屈原)에게 봉호를 더하여 충렬왕(忠烈王)이라 하였다. 염옹(髥翁)이 이곳을 지나가다 <충렬왕 묘시(忠烈王廟詩)>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굴원을 노래했다.


峨峨廟貌立江傍(아아표모입강방)

강변에 우뚝 솟아 있는 사당에


香火爭趨忠烈王(향화쟁추충렬왕)

충렬왕을 기리기 위한 향불은 오늘도 타오른다.


佞骨不知何處朽(영골부지하처후)

간신배의 뼈는 어디에 썩어 있는지 몰라도


龍舟歲歲弔滄浪(용주세세조창랑)

용주는 해마다 푸른 물결 일으키며 그 넋을 기리는 구나!



목록
7014
[일반] 대기만성 백리해-들어가는 이야기

대기만성이라는 고사성어의 원 주인공은 강태공(姜太公)입니다. 그는 제가 보는 관점에서 봤을 때 참으로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양승국 04-05-11
[일반] 백리해2 - 당진이 펼친 가도멸괵 작전에 의해 망하는 우(虞)나라

2. 당진의 가도멸괵(假道滅虢) 작전에 떨어진 우공(虞公) 우(虞)나라와 괵(虢)나라는 주왕실과 같은 희(姬) 성의
양승국 04-05-11
[일반] 백리해6. 의형(義兄) 건숙(蹇叔)을 진목공에게 천거하는 백리해

백리해6. 의형(義兄) 건숙(蹇叔)을 진목공에게 천거하는 백리해 진목공은 백리해가 재주가 매우 출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상경(上卿)
양승국 04-05-11
[일반] 백리해9. 90의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돌아간 건숙과 백리해

백리해 9. 90의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은퇴하는 건숙과 백리해 섬진의 목공이 정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세 장수의 비밀스런 보고를
양승국 04-05-11
[일반] 관중의 경제정책

기원전 7세기 경 관중의 경제정책 <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관중(管仲)이 제환공에게 발탁되어 부국강병책
양승국 04-05-11
[일반] 결초보은(結草報恩)

결초보은 진경공(晉景公)은 순림보(荀林父)가 로국(潞國)1)을 토벌(討伐)하는데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스스로 대군을 끌고 직산(稷山)2
양승국 04-05-11
[일반] 굴원이야기

굴원(屈原) 이야기 기원전 295년 진(秦)나라의 새로운 왕에 소양왕(昭陽王 : 재위 기원전 295-251년))이 올랐다. 그는 얼마 전에 초나라가 제
양승국 04-05-11
[일반] 너무나도 처절한 보은의 조씨고아 이야기

너무나도 처절한 보은(報恩) 이야기 옛날 기원전 550년 대인 춘추시대 중반의 일이다. 공자가 기원전 551년에 태어났으니 공자보다
양승국 04-05-11
[일반] 합려의 며느리

합려의 며느리 때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려 하던 기원전 500년 경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중국의 정세는 신흥 세력인 오나라가
양승국 04-05-11
[일반] 합려의 딸

합려의 딸 합려(闔閭)라는 사람은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에 나오는 주연 배우 중 한 사람입니다. 오나라는
양승국 04-05-11
[일반] 제환공과 삼흉(三兇)

춘추오패 중 제일로 치는 제환공(齊桓公 : 재위 기원전 685- 643년)에게는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라는 신하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는 수조(竪
양승국 04-05-11
[일반] 제환공 사후 그 아들들의 후계자 싸움

나이순 이 름 시호 군위에 오른 순서 비고 1 无虧 무휴 없음 1 환공에 의해 세자로 책봉된 공
양승국 04-05-11
[일반] 당진의 군제 변천표

당진(唐晉)의 군제(軍制) 변천표 1. 문공 4년 기원전 633년 성복대전(城挓大戰) 직전의 편제 군별(軍別) 주장(主將) 부
양승국 04-05-11
[일반] 제환공의 형제 자매들

제환공의 아버지인 제희공의 아들 딸 계보만 잘 이해하면 열국연의의 1/4정도는 통달하게 됩니다. 제희공의 아들 딸들이 시집가고 장가가서 벌리는 행
양승국 04-05-11
[일반] 한비자의 최후

한비자의 최후 진시황이 이사의 계책에 따라 내사등(內史騰)을 장수로 삼아 10만의 군사를 주어 한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 그때 한나
양승국 04-05-11
[일반] 무당을 하백에게 심부름 보낸 서문표 이야기

그때 업도(鄴都)1)에 수장(守將)이 비어 마땅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적황이 말했다. " 업도는 상당(上党)2).과 한단(邯鄲) 사이에
양승국 04-05-11
[일반] 서문표 외전

서문표(西門豹) 외전 서문표가 업도(鄴都)의 태수(太守)가 되어 다스리다가 일년만에 위문후(魏文侯)에게 시정을 보고하기 위해 안
양승국 04-05-11
[일반] 서문표, 그리고 60년 후의 제위왕은....

<사마천의 사기-진경중(전제) 세가 중 위왕 기사) 제위왕(齊威王:재위 기원전 357- 319년)이 처음에 즉위하자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모
양승국 04-05-11
[일반] 가신(家臣)들의 귀감(龜鑑) 개자추(介子推) 이야기-상

가신(家臣)들의 귀감(龜鑑)-개자추(介子推) 다시 중이(重耳)의 일행이 길을 걸어 십여 리를 갔으나 더 이상 배가 고파 길을 걸을 수 없어
양승국 04-05-11
[일반] 거시기 열전

일찍이 여불위는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와 있던 진소양왕의 증손자 이인(異人)을 기화가거(奇貨可居)라고 알아보고 전 재산을 투자하여 진왕의 자리에
양승국 04-05-11
1 [2][3][4][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