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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열전(伯夷列傳)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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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伯夷列傳(백이열전)

열전1

무릇 학자들이 공부하는 서책은 비록 광범위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믿을 수 있는 기록은 단지 『육경(六經)』①일 뿐이다.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은 비록 결손되어 완전하지 않다고는 하나, 우(虞)나 하(夏)② 시대 때의 글을 보면 선양(禪讓)에 관한 일을 알 수 있다. 당요(唐堯)가 임금의 자리에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우순(虞舜)에게 양위했고, 우순이 양위할 때는 사악(四嶽)③과 12목(牧)④의 추천을 받아 하우(夏禹)를 일정한 자리에 올려 시험 삼아 십 수 년 동안 그 직을 수행하게 하고, 그 공적의 결과가 나타난 연후에야 정권을 넘겨주었다. 이는 천하는 귀중하고, 제왕이란 가장 중요한 법통이기 때문에 천하를 전하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혹자는 말한다.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許由)⑤에게 전하려고 하자, 허유는 이를 받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치욕으로 느끼고 도망가 숨어버렸다. 이어서 하나라 때는 변수(卞隨)와 무광(務光)⑥과 같은 은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은자들이 칭송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태사공이 말한다.

「내가 기산(箕山)⑦에 올랐었는데, 그 산 위에는 허유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공자가 옛날 인자(仁者), 성인(聖人), 현인(賢人) 등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오태백(吳太伯), 백이(伯夷)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상세하게 말하고 있다. 나도 허유와 무광의 덕행이 고귀하다는 사실은 알고는 있다 하나 『시(詩)』와 『서(書)』에는 그들에 대해 조그만 기사도 나타나 있지 않으니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이, 숙제는 남의 지난날 저지른 잘못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으로부터 원망 받는 일이 드물었다.」⑧

또 말씀하셨다.

「그들은 어짐을 구해 어짐을 얻었으니 구태어 원망할 필요가 있겠는가?」⑨

그러나 내가 백이의 마음이 비통하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일시(軼詩)⑩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⑪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왕의 두 아들이다. 고죽국 왕이 숙제를 그 후계로 세우려고 하다가 미처 행하지 못하고 죽었다. 숙제가 왕위를 백이에게 양보하려고 하자 ‘부왕의 명이었다.’라고 말하면서 달아나 버렸다. 숙제도 역시 왕위에 오르는 일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고죽국의 국인들은 가운데 아들을 왕으로 세웠다. 서백(西伯) 창(昌)이 노인들을 잘 공경한다는 소문을 들은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로 달려가 귀의하려고 했다. 이윽고 그들이 당도했을 때는 서백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무왕이 서백 창을 받들어 문왕이라고 추존한 후에 나무로 만든 그의 신위를 병거에 싣고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나아가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려고 했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이 탄 수레를 끌던 말의 고삐를 붙잡고 출전을 만류하며 간했다.

「부친이 죽어 아직 장사도 지내고 않고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일으키니 이것을 하늘의 도리에 따른 효라 할 수 있습니까? 더욱이 신하된 자가 자신의 군주를 살해하려고 하는 행위를 인의(仁義)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무왕의 곁에 있던 군사들이 두 사람을 죽이려고 하자 태공 여상(呂尙)이 말했다.

「저 사람들은 의인이다!」

상보가 사람을 시켜 백이와 숙제를 부축하여 돌아가도록 하였다. 이윽고 무왕이 상나라 주왕(紂王)의 폭정을 평정하자 천하는 모두 주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자신들이 주나라의 백성이 되었음을 치욕으로 여기고 인의(仁義)를 지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수양산(首陽山)⑫으로 들어가 산나물을 뜯어먹으며 배를 채워 연명했다. 이윽고 그들이 굶주림 끝에 죽으려고 할 때 노래 한 수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 가사는 이러했다.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어 먹자꾸나

폭력을 폭력으로 바꾸었으면서도

그 일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구나!

신농(神農), 우순(虞舜), 하우(夏禹)의

시대는 홀연이 지나가버렸으니

우리는 장차 어디에 의지해야 한단 말인가?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아! 우리는 죽음뿐이로구나!

登彼西山兮(등피서산혜)

采其薇矣(채기미의)

以暴易暴兮(이폭이폭혜)

不知其非矣(부지기비의)

神農虞夏(신농우하)

忽焉沒兮(홀언몰혜)

我安適歸矣(아안적귀의)

于嗟徂兮(우차조혜)

命之衰矣(명지쇠의)

마침내 두 사람은 수양산에서 굶어죽고 말았다. 이 노래에서 두 사람은 원망하는 마음을 노래했는가? 아니면 원망하지 않는 마음을 노래했는가?

어떤 사람은「천도는 무사(無私)해서 항상 착한 사람들 편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백이와 숙제는 선인이 아니란 말인가? 그들과 같이 인의와 고결한 덕행을 쌓았지만 굶어죽지 않았는가? 또한 공자는 70여 자기제자들 중 유독 안연(顔淵)만이 학문에 싫증을 내지 않았다고 천거했다. 그러나 안연도 가난해서 조강(糟糠)으로도 배를 불리지 못하다가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하늘이 선한 사람들에게 복을 내린다고 한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매일 죄 없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그 간을 꺼내어 회쳐서 먹으며 흉악무도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며 수천 명의 도당을 이끌고 천하를 횡행했던 도척(盜跖)⑬이라는 도적은 종내는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그것은 도대체 도척이 행한 어떤 덕행에 의해서인가? 선한 사람이 비참하게 죽고 악인들이 천수를 누리다 죽은 일들은 하늘에 도가 없다는 지극히 크고 뚜렷한 사례들이다. 근자에 들어서서, 올바르지 않은 품행으로 정도를 걷지 않고, 오로지 사람이 꺼리고 금하는 일만 골라서 하면서도, 그 몸은 종신토록 인생을 즐기며 부귀와 영화를 대대로 이어 끊어지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발을 내 딛을 때는 항상 조심해서 마른 땅만을 고르고, 자기의 생각을 말할 때는 몇 번이고 생각한 후에 행하고, 길을 갈 때는 지름길이나 좁은 길을 택하지 않으며, 공명정대하지 않은 일에는 결코 힘써 행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화를 입게 되는 경우가 말할 수 없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⑭ 나는 이런 이치를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만약에 이런 것이 천도라고 한다면 과연 천도가 옳은가, 옳지 않은가?

공자가 말하기를 「道不同(도부동), 不相爲謀(불상위모)⑮」라고 했는데, 그것은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로 말하기를 「만약 부귀가 구해서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비록 그것을 얻기 위한 일들이 채찍을 들고 행하는 천한 일⑯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 일을 하겠다. 그러나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쫓겠다.」⑰라고 했다. 또한 「추운 겨울이 되어야만 송백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법이다.」⑱라고 했다. 온 세상이 혼탁해졌을 때야 청렴한 선비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법이며, 그것은 바로 세속의 사람들은 부귀를 중시여기고 청렴한 사람은 이처럼 부귀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⑲

공자는「군자는 자기가 죽은 뒤에 그 이름이 칭송되지 않을까를 걱정한다.」⑳라고 말했고, 가의(賈宜)㉑는「탐욕스러운 사람은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烈士)는 명분 때문에 목숨을 바치며, 권세를 과시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일반 중인들은 자기의 목숨에만 매달린다.」㉒라고 말했다. 또한 역경(易經)에는「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가 비추어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감정으로 통한다. 또한 구름은 용을 따라 다니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 일어난다. 그와 같이 성인이 나타나면 세상 만물이 모두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나게 되어있다.」㉓백이와 숙제가 비록 현인이기는 했지만 공자의 칭송을 듣고서야 그의 이름이 더욱 빛나게 되었고, 안연이 비록 학문을 즐겨하기는 했지만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야㉔ 비로소 그의 덕행이 더욱 뚜렷해 졌다. 산으로 들어가 굴속에서 사는 은사들은 출세와 은퇴를 시의에 맞게 행하는데 그와 같은 사람들의 이름이 인멸(湮滅)되어 버린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시골의 벽진 곳에 살면서 덕행을 연마하여 이름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으로써 청운(靑雲) 거사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의 이름을 후세에까지 전할 수 있겠는가?

『백이열전 끝』

주석

①육경(六經) :공자가 편찬한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경(禮經), 악경(樂經), 춘추(春秋), 역경(易經)을 말한다. 이중 악경은 일실 되었고, 서경은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없어졌다가 후세 사람들이 다시 편집했다.

②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시경과 서경의 일부가 없어진 일을 말하며, 『상서(尙書)』의 『요전(堯典)』, 『순전(舜典)』, 『대우모(大禹謨)』 편에 선양에 대한 상세한 기사가 있다. 요(堯)는 당(唐), 순(舜)은 우(虞), 우(禹)는 하(夏)로 병칭한다.

③사악(四嶽) :요(堯) 임금 때 사방의 제후들이 거느리고 있던 관리들을 관장하던 벼슬의 명칭. 태악(太岳)이라고도 한다.

④12목(牧) :요임금이 전국을 12주로 나누고 그 지방장관을 목(牧)이라고 불렀다. 이어서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이 천하를 구주(九州)로 다시 나누었다.

⑤허유(許由) :요임금 때 은자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요임금이 그에게 임금의 자리를 선양하려고 하자 받지 않고 영수(穎水) 북쪽의 기산(箕山)으로 달아나 숨어버렸다. 그 뒤 다시 요임금이 불러 구주(九州)의 장을 맡기려고 했으나 그 말은 들은 허유는 자기 귀가 더렵혀졌다고 영수의 물가로 달려가 그 귀를 씻었다고 했다. 허유의 이야기는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서무귀(徐無鬼)』, 『양왕(襄王)』 등의 편에 수록되어 있다.

⑥변수(卞隨)와 무광(務光) :상나라 때의 은자들이다. 하걸(夏桀)을 멸한 상탕(商湯)이 임금의 자리를 이 두 사람에게 물려주려고 하자, 이 두 사람은 이를 치욕으로 생각하고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다. 출전:『장자(莊子)』 『양왕(襄王)』 편

⑦기산(箕山) :지금의 하남성 등봉시(登封市) 동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하본기(夏本紀)에 ‘익(益)이 우임금의 아들 계(啓)에게 제(帝)의 자리를 선양하고 기산(箕山)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라는 기사가 있다.

⑧논어 공야장(公冶長) 편에 나오는 문구로 원문은 ‘ 不念舊惡(불념구악) 怨是用希(원시용희)’이다.

⑨논어 述而(술이) 편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 求仁得仁(구인득인), 又何怨乎(우하원호)?’이다

⑩일시(軼詩) :본문 아래에 나오는 『채미(采薇)』라는 시를 가리킨다. 일(軼)은 잃어버렸다는 일(佚)과 통한다. 즉 백이가 수양산에 들어가 불렀다는 채미라는 시는 시경에 수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일시라고 칭했다.

⑪공자는 논어에서 백이가 자기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사마천은 『采薇(채미)』라는 시에는 세상을 원망하는 뚯이 있다고 생각했다.

⑫수양산(首陽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하동(河東) 포판관(蒲阪關) 화산(華山)의 북쪽과 하곡지중(河曲之中)의 설이 가장 유력하다. 지금의 산서성 영제현(永濟縣) 남쪽의 뇌수산(雷首山)을 말한다.

⑬도척(盜跖) :장주(莊周)가 지은 장자(莊子)라는 책의 편명으로 중국 고대전설 상의 유명한 도적 이름이다. 장주가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하고 그의 제자가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한다. 춘추 때 노나라의 대현으로 추앙받고 있는 유하혜(柳下惠) 전획(展獲)은 도척의 형이다. 직도(直道)를 지켜 임금을 섬기고 진정한 화(和)를 이룬 사람이라고 해서 맹자, 이윤(伊尹), 백이(伯夷),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형제간에 현인과 대악인이 있을 때 이들에 비유하였다.

⑭원문은 ‘ 操行不軌, 專犯忌諱, 以終身逸樂, 富厚累世不絶. 或擇地而蹈之, 時然后出言, 行不由徑, 非公正不發憤, 而遇禍災者, 不可勝數也.’다.

⑮논어 『위영공(衛靈公)』 편에 나오는 말로 ‘걷는 길이 서로 같지 않은 사람과는 같이 일을 도모할 수 없다.’라는 뜻이다.

⑯원문은 執鞭之士(집편지사)로 채찍을 들고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당시 이런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수레를 모는 어자마부, 둘째는 제왕이나 제후들이 행차할 때 채찍을 들고 그 앞길을 정리하는 길잡이, 셋째는 채찍을 들고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관리가 있었다.

⑰논어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 富貴如可求,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다.

⑱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松柏之後凋(송백지후조)로 직역하면 ‘ 소나무와 잣나무는 제일 나중에 시든다’ 혹은 ‘ 소나무와 잣나무는 더디 시든다.’이다.

⑲원문은 豈以其重若彼, 其輕若此哉로 해석이 분분하다.

1. 史記索隱은 ‘ 백이가 동생에게 군주의 자리를 양보한 덕은 중하나,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죽은 일은 부귀를 가볍게 여긴 행동이다..’ 라고 말한 것은 각주 14번 ‘操行不軌, 專犯忌諱, 以終身逸樂, 富厚累世不絶. 或擇地而蹈之, 時然后出言, 行不由徑, 非公正不發憤, 而遇禍災者, 不可勝數也.’의 뜻과 통하는 말이다.

2. 史記正義에는 ‘ 盜跖 등의 흉악한 사람이 향락을 누리다가 천수를 다하고 죽은 일을 중하게 여기고, 백이, 숙제, 허유(許由), 무광(務光) 등의 청빈한 인사들은 곤궁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일은 가볍게 여겼다.’라는 뜻이다.

3. 명청교체기의 학자 고염무(顧炎武)의 설은 ‘ 其重若彼라는 말은 속인들은 부귀를 중하게 여기는 말이고, 其輕若此라는 말은 청렴한 선비들은 부귀를 가볍게 여기는 말이다’라고 했다. 고염무의 설을 취했다.

⑳논어 『위영공(衛靈公)』 20장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이다.

㉑가의(賈誼) :락양(洛陽) 출신으로 기원전 200년에 낳고 기원전 168 에 죽은 서한 초기의 천재적인 정치가이자 문장가이다. 굴원의 뒤를 이은 초사의 작가이며 33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대표작으로 진나라가 멸망한 원인을 분석한 과진론(過秦論)과 이상적인 한나라의 정치체제 구축하기 위한 책문인 신서(新書)와 자신의 불운한 운명을 굴원의 죽음에 빗대어 애도한 조굴원부(弔屈原賦)라는 시가가 있다.

㉒원문은 ‘ 貪夫徇財, 烈士徇名, 誇者死權, 衆庶馮生’으로 가의(賈誼)의 복조부(鵩鳥賦)의 구절이다.

㉓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 作而萬物睹’ 이다.

㉔원문은 ‘부기미(附驥尾)’로 천리가의 꼬리에 붙어서 천리를 간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공자와 같은 성인으로부터 칭송을 받음으로써 그의 명성이 후세에 까지 떨치게 된 것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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