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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3-1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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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노자․장자․신자(老子莊子申子)




1. 노자(老子)


노자는 초나라 고현(苦縣)①의 여향(厲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다.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고 주나라 왕실서고의 사관(史官)이었다.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禮)에 대해 묻자 노자가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예는 그것을 말했던 사람들의 뼈와 더불어 모두 썩어버리고, 오직 그 말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군자는 때를 얻으면 마차를 타고, 때를 얻지 못하면 떠돌아다닌다. 내가 듣기로는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이 감추어 마치 빈 듯이 하고, 많은 덕을 지니고 있는 군자는 마치 어리석은 겉모습을 한다고 했다. 그대는 교만한 기운과 많은 욕심, 잘난 체하는 태도와 잡념을 버려야만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그대 자신에게 무익할 뿐이다. 내가 그대에게 알려줄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다.」


공자는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새는 하늘을 잘 날아다지고, 물속의 고기는 헤엄을 잘 치며, 들판의 짐승은 잘 달린다고 하나, 달리는 짐승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싯줄로 잡을 수 있으며, 하늘을 나는 새는 주살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에 이르러서는 나는 능히 알 수가 없다.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용과 같았다.」

노자는 도와 덕을 닦았는데, 그의 학문은 이름을 내지 않기 위해 힘써 자신을 숨기는 일이다. 주나라에 오래 살다가, 주나라가 쇠퇴해지는 모습을 보고 드디어 그곳을 떠났다. 함곡관(函谷關)에 이르자 관을 지키는 수장(守將) 윤희(尹喜)가 노자를 보고 말했다.

「선생께서 장차 숨으려 하시니, 억지로라도 저를 위해 책을 써 주십시오.」

이에 노자가 도덕의 뜻을 5천여 자로 상하 두 편의 책을 써서 말하고 떠났다. 그가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노래자(老萊子)도 초나라 사람이다. 책 열다섯 편을 지어 도가의 운용을 말했고, 공자와 더불어 같은 시대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대개 노자는 160여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혹은 200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그는 무위의 도를 닦아서 장수를 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자가 죽고 129년 후에 사관의 기록에는 주나라 태사 담(儋)이 진헌공(秦獻公)을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했다.②

「처음에 진나라와 주나라는 한 나라로 합해지고, 합치고 나서 500년 후에 헤어집니다. 헤어진 지 다시 70년이 되면 패왕(覇王)이 나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담이 곧 노자다’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노자는 숨은 군자다.


노자의 아들은 이름이 종(宗)이고, 종은 위(魏)나라 장군이 되어 단간(段干)③을 봉토로 받았다. 종의 아들은 주(注)고, 주의 아들은 궁(宮)이며, 궁의 현손은 가(假)다. 가는 한문제(漢文帝) 때 벼슬했다. 그리고 가의 아들 해(解)는 교서왕(膠西王) 유앙(劉卬)의 태부가 되었음으로 그때부터 이씨들은 제나라에 살게 되었다.


세상에서 노자를 배우는 자는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 또한 노자를 배척한다.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상의할 수 없다.』고 했으니 이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노자는 인위적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 스스로 교화케 하고, 맑고 조용히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하였다.


2. 장자(莊子)

장자는 몽(蒙)④ 출신으로 이름은 주(周)다. 일찍이 송나라의 몽읍(蒙邑) 칠원성(漆園城)의 관리를 지낸 적이 있는 장주는 양혜왕(梁惠王)⑤과 제선왕(齊宣王)⑥과 같은 시대에 활약한 사람이다. 그의 학문은 언급하지 않은 분야가 없지만 그 요체는 노자의 설에 귀착된다. 그래서 10여 만 자로 된 그의 저서는 거의 대부분이 우화로 채워져 있다.

그의 저서 중 《어부(漁夫)》, 《<도척(盜拓)》, 《거협(胠篋)》등의 편은 공자를 따르는 무리들을 배척하고 노자의 도를 밝히기 위해서 쓴 책들이다. 《외루허(畏累虛)》, 《항상자(亢桑子》 등과 같은 편은 모두 꾸며낸 이야기로써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문장을 잘 짓고 문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 사물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방법으로 당대의 유가와 묵가들을 공격했으나 당대의 이름 높은 학자라 할지라도 자기가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여 그의 비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장자의 말은 바닷물과 같이 양양하고 스스로 자유분방하고 자기 멋대로였기 때문에 비록 왕공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를 부릴 수 없었다.

초위왕(楚威王)⑦이 장주가 현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사자에게 많은 예물을 주어 그를 맞이해 오도록 하여 재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 장주가 듣고 웃으면서 초나라 사자에게 말했다.

「예물로 보낸 천금은 많은 재물이고, 경상(卿相)의 자리는 매우 존귀한 자리요. 그런데 그대는 교제(交祭)를 지낼 때 희생(犧牲)으로 바치는 소를 보지 못했소? 맛 잇는 음식으로 몇 년 동안 먹이고 아름답게 수놓은 비단 옷을 몸에 두르고 태묘에 끌려갈 때는 비록 그가 어린 돼지가 되고 싶다한들 어찌 가능하겠소? 세속의 일로 내 몸을 더럽히지 마시고 그대는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정녕코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거워할지언정 나라를 갖고 있는 자들에게 구속받지 않겠고. 종신토록 벼슬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살겠소.」


3. 신불해(申不害)

신불해는 경(京)⑧ 출신으로 원래 정나라의 미천한 관리다. 법가의 술을 배워 한소후(韓昭侯)⑨에게 간하자 소후는 그를 상국에 임명하여 안으로는 정치화 교육을 정비하고 밖으로는 제후들과 친선관계를 유지했다. 신불해가 15년 후에 죽을 때까지 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군사는 강했음으로 제후국들 중 어느 나라도 한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신자의 학문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에 기본을 두고 형명(刑名)을 주로 했다. 두 편으로 된 저서가 있는데 책명은《신자(申子)》다.


주석

1)고현(苦縣) : 지금의 하남성 녹읍현(鹿邑縣)으로 춘추 때 진(陳)나라 성읍이었으나 후에 진나라가 초나라에 의해 멸망당하고 초나라의 성읍이 되었다.

2)공자가 죽은 해는 기원전 479년으로 그로부터 129년 후는 기원전 350년이다. 한편 진본기에는 태사담이 이 일을 언급한 해는 진헌공 11년 기원전 374년의 일이라고 했다. 진본기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죽고 105년 후에 일어난 일이다.

3)단간(段干) : 사기지명고에 따르면 단간목이 태어난 곳으로써 세 가지 설이 있다고 했다. 1. 지금의 산서성 안읍현 동남의 하단리(下段里), 2. 안읍현 서남의 上段里 , 3. 芮城縣 서북 27리 되는 山麓의 段村. 단간목의 묘는 예성현 동복 15리 되는 곳에 있음으로 단간의 봉읍지는 안읍과 예성의 사이의 땅이라고 비정된다.

4)몽(蒙) :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商丘市) 동북에 있었던 춘추전국 기간 동안 송(宋)나라 땅이다.

5) 양혜왕(梁惠王) : 기원전 400년에 태어나서 319년에 죽은 전국 때 위나라 군주로 이름은 앵(罃)이다. 즉위 초 강대한 세력으로 한(韓)과 송(宋)을 차례로 공격했으며, 한조(韓趙) 연합군을 회수(澮水) 북안에서 대파하고 피뢰(皮牢)를 점령하는 등 패자로 군림했다. 주현왕 25년 기원전 344년 후(侯)를 바꾸어 왕호(王號)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외 관계에 있어서 합종과 연횡을 수시로 바꿔 제후국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 진나라와의 사움에서 3번이나 패하고 다시 계릉(桂陵)과 마릉(馬陵)의 싸움에서 제나라에게 대패했다. 진나라에게 하서와 하동의 7백리 땅을 빼앗기고 초나라에 패하여 국세가 쇠퇴했다. 세력을 만회하고자 몸을 낮추고 많은 재물을 들여 현사들을 초빙하여 추연(鄒衍), 순우곤(荀于髡), 맹가(孟軻) 등이 찾아왔으나 결국은 그들을 쓰지 못했다. 노환으로 죽었다.

6) 제선왕(齊宣王)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319년에 즉위하여 301년에 죽은 전국 때 제나라 군주다. 이름은 벽강(辟彊)이고 제위왕(齊威王)의 아들이다. 즉위 초, 전영(田嬰)을 상국으로 등용하여 내정 개혁에 힘쓰고 대외적으로는 함종을 강화하여 국세가 크게 신장되었다. 주난왕(周赧王) 14년 기원전 301년 연나라의 내정에 무력으로 개입하여 연나라의 혁신세력을 진압했다. 학술을 중시하여 천하에 유세객이나 학자들을 자신이 학술단지로 조성한 직하(稷下)라는 곳으로 초빙하여 학문을 진흥시켰다.

7) 초위왕(楚威王) : 기원전 339년에 즉위하여 329년에 죽은 전국 때 초나라의 군주다. 미(羋) 성에 이름은 웅상(熊商)이다. 주경왕 36년 기원전 333년 제나라 군사와 서주(徐州)에서 싸워 이겼다. 서주는 지금의 산동성 등주시(滕州市) 동남이다.

8) 경(京) :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경내다

9) 한소후(韓昭侯)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363년에 즉위하여 337년에 죽은 전국 때 한나라 군주로 한리후(韓釐侯)의 아들이다. 즉위하자 진(秦), 송(宋), 위(魏) 등의 열국들로부터 여러 번 침략을 받아 많은 군사를 잃고 국토를 침탈당했다. 후에 신불해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국세를 신장시켜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으나 만년에 사치한 생활에 빠져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을 구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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