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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20 12:51:456253 
계포란포열전(季布欒布列傳)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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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열전40. 季布欒布(계포란포)

계포(季布)는 초(楚)나라 출신이다. 의기와 협객으로 초나라에서 이름이 높았다. 항우에 의해 장수가 된 그는 한왕을 여러 번 곤경에 빠뜨렸다. 이윽고 항우를 멸한 고조는 천금의 상금을 현상금으로 계포의 몸에 걸고 감히 그를 숨겨준 사람이 있다면 삼족을 멸하겠다고 했다. 계포는 복양(濮陽)의 주씨(周氏) 집에 숨어 지냈다. 주씨가 말했다.

“ 한나라가 장군의 몸에 현상금을 걸고 급히 찾고 있어 조만간 저의 집에까지 추적해 올 것입니다. 장군께서 능히 제 말대로 할 수 있다면 저는 감히 장군께서 목숨을 구할 계책을 드릴 수 있으나 그렇게 못하시겠다면 원컨대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시기 바랍니다. ”

계포가 주씨의 말을 따르겠다고 허락했다. 주씨는 계포의 머리를 깎은 후에 목에 칼을 채우고 갈포옷을 입혀 광류거(廣柳車)에 태워 그의 가동(家僮) 수십 명과 함께 노나라의 주가(朱家)에게 팔았다. 주가는 마음속으로 가노로 팔려온 사람 중에 계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모른 체 하고 계포를 사서 밭일을 보게 했다. 주가는 그의 아들에게 밭일은 모두 그 가노에게 물어서 하고 식사도 항상 함께 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자신은 초거(軺車)를 타고 낙양으로 달려가 여음후(汝陰侯) 등공(縢公)을 찾아갔다. 등공은 주가를 자기 집에 머무르게 하면서 며칠 동안 같이 음식을 먹으며 접대했다. 주가가 기회를 얻어 등공에게 물었다.

“ 계포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황제께서 많은 상금을 걸고 급히 찾고 계십니까? ”

등공이 대답했다.

“ 계포는 어려 번 항우의 명을 받들어 황제폐하를 곤궁하게 만들었소. 그 일을 원통하게 생각한 황제께서 반드시 그를 찾아서 원한을 풀려고 하기 때문이오.”

주가가 말했다.

“ 계포는 어떤 사람입니까? ”

“ 현능한 사람이오.”

“ 제가 듣기에 모든 사람은 각기 그 주인에 위해 애써야 한다고 했는데 계포가 항적(項籍)을 위해 애썼던 일은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항적을 받들었던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야만 한다는 말입니까? 오늘 황제폐하께서는 천하를 얻으신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유독 자기의 사사로운 원한이 맺힌 한 사람만을 찾으시니 어찌하여 폐하의 도량이 협량하다는 사실을 천하에 보이시는 것입니까? 또한 계포는 현능한 사람이라 한나라가 이와 같이 그를 급하게 찾는다면 그가 만일 북쪽의 흉노에게 달아나거나 아니면 남쪽의 월나라로 달아날 텐데 무릇 장사를 버리는 일은 적국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써 옛날 초나라에서 버림을 받은 오자서가 오나라로 망명한 뒤에 다시 돌아와 초평왕(楚平王)의 묘를 파서 그의 시신을 채찍으로 쳐 원수를 갚은 일이 될 것입니다. 공께서는 어찌하여 황제께 이 일을 조용히 말씀드리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

마음속으로 주가가 대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등공은 계포를 그의 집에 숨겨 놓고 있다고 짐작했다. 등공은 황제께 말씀드려보겠다고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황제가 한가한 틈을 타서 주가가 한 이야기를 전했다. 황제가 즉시 계포를 사면했다.

그 당시 여러 공경들은 계포가 강직한 성격을 누르고 유연한 처세를 했다고 칭송하고 주가 역시 그 일로 이름이 당세에 높아지게 되었다. 계포가 황제를 알현하여 감사의 말을 전하자 황제는 계포를 낭중(郎中)1)에 임명했다.

효혜제 때 계포는 중랑장(中郞將)2)이 되었다. 흉노의 선우가 서신을 보내 여후를 희롱하며 매우 불손했다. 여후가 대노하여 여러 장군들을 불러 의논하게 했다. 상장군 번쾌(樊噲)가 말했다.

“ 신에게 10만의 군사를 내어 주시면 흉노의 땅으로 쳐들어가 그들의 땅을 맘껏 유린하겠습니다."

제장들은 모두 여후의 뜻에 아부하여 번쾌의 말에 찬동했다. 계포가 말했다.

“ 번쾌를 참수형에 처해야 합니다. 일찍이 40만의 장병을 이끌고 계셨던 고제께서도 평성(平城)에서 곤경에 처하셨는데 오늘 번쾌는 십만의 병사만으로 어떻게 흉노 땅을 유린하겠다는 것입니까? 이는 면전에서 태후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더욱이 진나라는 흉노 정벌에 지나치게 국력을 낭비해서 진승 등이 반기를 드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오늘까지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에도 번쾌는 태후의 면전에서 아첨하여 천하를 동요시키려고 합니다. ”

그때 전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계포의 말에 두려움에 떨었다. 태후가 조회를 파하고 다시는 흉노를 공격하는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계포는 하동태수(河東太守)가 되었다. 효문제 때 어떤 사람이 계포가 현능하다고 천거하자 문제가 불러 그를 어사대부에 임명하려고 했다. 다시 어떤 사람이 그가 용기는 있지만 술 때문에 가까이 두기에는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사저에 한 달 동안이나 머물렀으나 황제는 불러서 접견을 행하지 않았다. 계포는 대전으로 나아가 말했다.

“ 신은 세운 공이 없음에도 폐하의 은총을 훔쳐 하동의 태수를 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아무런 까닭 없이 신을 부르신 이유는은 필시 어떤 사람이 신에 대해서 폐하를 속였을 것입니다. 오늘 신이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경사에 당도했으나 아무런 임무도 받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라 하시니 이것은 필시 어떤 사람이 신을 폄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릇 폐하께서는 한 사람이 저를 칭찬하자 부르시고, 다시 한 사람이 신을 폄훼하자 신을 버리셨습니다. 천하에 식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 이 일을 보고 폐하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을까 신은 두렵습니다. ”

황제가 말을 못하고 무참한 얼굴을 하다가 말했다.

“ 하동은 우리 한나라의 수족과 같은 군(郡)이오. 그래서 특별히 그대를 불렀소. ”

계포가 감사의 말을 올리고 원래의 하동태수 직에 부임했다.

초나라 사람 조구생(曹丘生)은 변술에 능했다. 여러 번 권세가와 귀족들에게 아부하여 돈을 벌었다. 조구생은 일찍이 권세가 조동(趙同) 등을 받든 적이 있었고 또한 두장군(竇長君)3)과도 교분이 깊었다. 계포가 듣고 편지를 써서 두장군에게 간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 제가 듣기에 조구생은 장자(長子)가 아닙니다. 그와 왕래를 하지 마십시오. ”

이윽고 조구생이 고향인 초나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두장군을 찾아가 편지를 얻어 계포를 만나려고 했다. 두장군이 조구생에게 말했다.

“ 계장군은 그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를 만나지 않은 편이 좋을 것입니다. ”

그래도 조구생은 고집하여 두장군의 편지를 얻어 계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조구생은 사람을 시켜 두장군의 소개서를 먼저 계포에게 보냈다. 계포는 과연 크게 노하여 조구생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조구생이 당도하자 계포에게 읍을 하고 말했다.

“ 초나라 사람들 사이에 '황금 백일(百鎰)을 얻는 것보다는 계포의 승낙 한 번 받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어떻게 하여 그와 같은 명성을 양나라나 초나라 땅에서 얻게 되었을까요? 하물며 저 또한 초나라 사람이고 장군 역시 초나라 사람입니다. 제가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장군의 이름을 선양한다면 장군의 명성은 천하에 떨치고 몸은 중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장군께서는 저를 그렇게 심하게 박대하십니까?”

계포가 크게 기뻐하여 안으로 안내하여 수 개 월을 머물게 하고 상객으로 모신다음 떠날 때는 후한 선물을 주어 보냈다. 계포의 명성이 더욱 사람들 사이에 높아지게 된 것은 조구생이 돌아다니며 선양했기 때문이다.

계포의 동생 계심(季心)은 의기가 관중을 덮을 만큼 높았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공손하게 대하며 협객으로 소문이 나서 사방 수천 리의 선비들이 달려와 다투어 그를 위해 죽음을 다투었다. 일찍이 사람을 죽이고 오(吳) 땅으로 도망치자 그때 오나라의 상국으로 있던 원앙(袁盎)이 숨겨주었다. 그는 원앙을 형님으로 모시고 관부(灌夫)와 적복(籍福) 등을 동생처럼 감싸주었다. 그는 얼마 후에 중사마(中司馬)4)가 되었는데 중위(中尉) 질도(郅都)조차도 감히 예를 갖추어 대해야만 했다. 젊은 사람들이 여러 번 계심의 이름을 도적질하여 행세하곤 했다. 당시 계심은 용기로써, 계포는 한 번 허락하면 반드시 지키는 사람으로써 관중에서 이름이 높았다.

계포의 외삼촌 정공(丁公)은 초나라 장수였다. 정공이 항우의 장수가 되어 고조를 팽성(彭城)의 서쪽에서 추격하여 단병접전을 벌렸다. 다급하게 된 고조가 정공을 향해 말했다.

“ 우리 두 사람은 모두 현능한 사람인데 어찌 서로 해칠 수 있습니까?”

이에 정공은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음으로 한왕은 포위망에서 벗어나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왕이 돌아와 항왕을 멸하자 정공이 고조를 알현했다. 고조가 정공을 데리고 군중을 순시하며 말했다.

“ 항왕의 신하로써 나를 풀어주어 항왕에게 불충함으로 해서 항왕으로 하여금 천하를 잃게 만든 자는 바로 정공이다. ”

고조는 곧바로 정공을 참수시키고 말했다.

“ 후세로 하여금 무릇 남의 신하된 자로써 정공을 본받으면 안 될 것이다. ”

란포(欒布)는 양나라 사람이다. 옛날 양왕 팽월(彭越)이 평민이었을 때 서로 교유를 맺었다. 생활이 곤궁하여 제나라에서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다가 다시 주막에서 심부름하며 살았다. 몇 년 후에 팽월은 거야택(巨野澤)으로 들어가 도적이 되었으나 란포는 다른 사람에게 붙잡혀 연나라에 팔려가 가노(家奴)가 되었다. 란포가 그 집 주인을 위해 원수를 갚아주자 당시 연나라의 장군 장도(臧荼)가 알고 그를 불러 도위(都尉)로 삼았다. 한나라가 섰으나 장도는 한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의 토벌군이 연나라를 공격하여 란포는 포로가 되었다. 양왕 팽월이 소식을 듣고 황제에게 부탁하여 란포를 위해 속죄금을 내고 양나라의 대부로 삼았다.

얼마 후 제나라에 사자로 갔다가 미처 돌아오기 전에 팽월을 소환한 고조가 모반했다는 죄명을 씌어 팽월을 죽이고 그의 삼족을 멸했다. 고조는 팽월의 머리를 낙양 성 밑에 걸어두고 조명을 내렸다.

“ 감히 팽월의 시신을 거두는 자가 있다면 즉시 체포하여 옥에 가두라!”

제나라에서 돌아온 란포는 낙양으로 달려와 팽월의 시신을 거두어 제나라에 사자로 다녀온 일을 복명하고 그 앞에서 제사를 지내며 곡을 했다. 관리가 란포를 체포해서 황제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란포를 소환한 황제가 그의 행위를 꾸짖으며 말했다.

“ 너도 팽월과 함께 모반한 것이냐? 내가 그 누구도 팽월의 시신을 거두지 말라고 명을 내렸는데 너 혼자 시신을 거두어 제사를 지내고 곡을 했으니 너는 팽월과 더불어 모반을 획책했음이 분명하다. 너를 끓은 물에 삶아 죽여야 하겠다. ”

이윽고 관리들이 물이 끓고 있는 가마솥에 던지려고 하는 순간에 란포가 황제를 향해 말했다.

“ 원컨대 한 마디만 올리고 죽게 해주십시오.”

황제가 물었다.

“ 무슨 말이냐? ”

“ 바야흐로 황제께서 팽성에서 항우와 싸워 곤경에 처하고 형양(滎陽)과 성고(成皐) 지간에서 패했음에도 항왕이 서쪽으로 계속 진격하지 못했던 이유는 팽왕이 양나라 땅을 지키면서 한나라와 합종을 맺어 항왕을 괴롭혔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팽왕이 한 번 시선을 돌려 초나라를 쳐다봤다면 한나라가 지고, 한나라를 쳐다봤다면 초나라가 지게 되어있었습니다. 또한 해하(垓下)의 회전(會戰)에서 팽왕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항왕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천하의 형세가 이미 정해지자 팽왕에게 부절과 함께 양왕으로 봉해 그 역시 만세에 그의 작위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양나라에 징병을 명하자 몸이 아픈 팽왕이 종군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빌미로 폐하께서는 팽왕이 반역을 꾀한다고 의심하셨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흔적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작은 문제를 트집 잡아 가혹한 형벌을 가해 팽왕을 죽이고 그 종족들을 멸족시켰습니다. 신이 걱정하는 바는 이 일로 인해 공신들마다 스스로 목숨이 위험하다고 여기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팽왕이 이미 죽었으니 신은 사는 것 보다는 죽는 것이 더 좋으니 청컨대 삶아 죽여주십시오.”

이에 황제는 란포를 석방하고 도위(都尉)에 임명했다.

효문제 때 란포는 연나라 상국이 되었다가 장군의 직위까지 올랐다. 현달한 란포가 큰소리로 말했다.

“ 곤궁할 때 몸을 굽히고 뜻을 낮출 수 없는 사람은 인걸이 아니고, 부귀할 때 생각했던 바를 실행할 수 없는 사람도 인걸이 아니다. ”

그래서 그가 일찍이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에게는 후하게 보답을 하고 원한을 품었던 사람들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법을 적용하여 파멸시켰다. 오나라가 반하자 종군하여 공을 세워 유후(兪侯)에 봉해지고 다시 연나라 상국이 되었다. 연제(燕齊) 지간에 살던 모든 사람들은 란포를 위해 사당을 세우고 란공사(欒公社)라고 불렀다.

경제 중5년 기원전 145년 란포가 죽었다. 그 뒤를 이은 아들 란분(欒賁)은 태상(太常)이 되었다가 제사를 지낼 때 희생(犧牲)이 법령에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를 얻어 후국을 잃었다.

태사공이 말한다.

초나라의 이름을 떨친 항우의 기개로도 계포의 용기만을 덮지 못했다. 그는 친히 적군을 소멸시키고 적군의 군기를 빼앗기를 여러 번 했으니 계포야 말로 장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형벌을 받고 다른 사람의 노복이 되는 불우한 신세가 처했음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으니 얼마나 비겁한 짓인가? 그러나 그것은 필시 자기의 재능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욕됨을 입고도 결코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처 발휘하지 못한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려는 욕망 때문에 참고 견디어 마침내 한나라의 명장이 되었다. 현능한 사람은 진실로 그의 죽음을 중히 여긴다. 저 천한 비첩이나 천인들이 비분강개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계획을 다시 고쳐 실행할 용기가 없기 때문일 뿐이다.

란포가 팽월을 위해 곡을 하고 가마솥에 던져져 삶겨 죽는 일을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한 행위야 말로 그가 진실로 곤궁한 처지애 놓여있을 때 어디에 몸을 두어야할 지를 알았기 때문이지 자기의 죽음을 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옛날의 열사라 할지라도 어찌 이보다 더 할 수 있겠는가?

<계포난포열전 끝>

주석

1) 랑중(郞中)/ 진나라가 설치하고 한나라가 답습한 관제로 궁정의 숙위 및 성문의 출입 감시, 궁내의 제반사에 대한 관리 및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는 관리들을 랑(郞)이라고 했으며 그 맡은 바 임무에 따라 황제와 비빈들이 묶고 있는 곳을 드나들며 시위하도록 했던 직위를 중랑(中朗), 궁중에 거하며 황제를 시위했던 직위를 낭중(郎中), 궁중 밖에서 황제를 시위했던 직위를 외랑(外朗)이라 하고 9경 중의 한 명인 그 우두머리는 랑중령이라고 했다가 한무제 때 광록훈(光祿勛)으로 개명했다.

2) 중랑장(中郞將)/ 중랑의 우두머리로 녹봉은 2천석이다.

3) 두장군(竇長君)/ 서한의 외척으로 이름은 건(建)이고 장군(長君)은 자(字)다. 지금의 하북성 무읍(武邑)인 청하(淸河) 관진(觀津) 출신이다. 두태후(竇太后)의 오빠로 그의 여동생이 문제(文帝)의 황후가 되자 주발 등의 대신들은 외척이 발호하여 여씨의 재판이 될 것을 걱정하여 두장군을 위해 예의가 바르고 절의가 있는 사람을 사부와 빈객으로 뽑아 곁에 두도록 했다. 장군 역시 그것으로 인해 겸양(謙讓)의 미덕을 갖춘 군자의 기풍을 갖추게 되어 감히 귀척의 신분이면서도 교만에 빠지지 않았다. 문제 때 죽었으나 미처 후에 봉해지지 못해 두태후가 이를 심히 한스릅게 생각했다. 경제가 서자 그의 아들 두팽조(竇彭祖)를 남피후(南皮侯)에 봉했다.

4) 중사마(中司馬)/ 중위사마(中尉司馬)의 속관이다. 구경의 일원으로 수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중위(中尉) 밑에서는 두 명의 승(丞), 후(候), 사마(司馬), 천인(千人) 등 주로 경호와 경비 임무를 담당하는 무관들을 속관으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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