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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4-10 11:53:4412602 
중국의 시대별 보유 병력 수
운영자

중국의 시대별 보유 군사 수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로 중국은 거의 대부분 기간 세계 제일의 인구대국으로 군림했다.




중국의 인구는 한나라 이후로는 대체적으로 4000만 ~6000만, 으로 송나라에서 명나라 는 대체적으로 6000만 ~ 1억 5천만 (명말의 혼란기가 시작되기 전 무렵) 의 수준을 보여줬다. 따라서 중국은 당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대군을 보유할 수 있었다. 중국과 비슷한 대군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었던 전근대 제국은 중국과 비슷한 인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인도의 통일 제국 이외에는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통일된 중국의 총병력은 얼마나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나라를 제외하고는 중국의 통일왕조들은 전반적으로 60만 ~100만 정도의 총병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각 왕조별 총병력 수를 살펴보자면,







1. 은나라, 주나라:




은나라와 주나라의 군사제도는 여러 면에서 유사한 면을 보인다. 양 왕조가 다 전문무사 계층인 사(士)계층이 군의 주력이 된 것도 그렇고, 양 국가가 다 청동기와 전차가 중심이 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그렇다. 은나라의 병력규모는 문헌상으로는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갑골문(甲骨文)의 기사를 보면 대체적으로 1천, 3천, 1만 명 정도의 야전군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은나라의 야전군 동원능력과는 별개로 은나라의 총병력은 초기에는 3사(師, 은나라의 군단) 3만 여명, 후기에는 6사(師) 6만 여명 정도였다고 추정된다.




주나라는 은나라 보다는 좀더 영역도 넓어졌고 또한 인구도 더 많았으리라고 추정된다. 주나라는 은나라 보다는 더 세력이 강성해져서 총병력도 은나라에 비하면 더 늘어났다. 주나라의 총병력은 시경, 주례, 서경, 주대의 청동기 명문 등을 종합해보면 총 7만 5천 명 정도의 병력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2. 춘추, 전국 시대.




춘추시대의 군제는 주나라와 비교해 크게 변화한 점은 없었다. 주나라와 같이 각국은 여전히 전차가 주력이었고, 전문무사계층이 전장의 핵심이 된 점도 비슷하다. 다만 춘추시대는 주나라 보다 군사력이 더 필요해지고, 여러 나라가 병립함에 따라 각국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총합하면 주나라보다 훨씬 많아졌다. Cambridge History of Ancient China에 따르면 춘추시대의 동원병력은 강대국일 경우 3만 여명을 크게 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제후의 군대는 전차 1000량에 병사 1만 여명 정도였다.




그러다가 전국시대가 되어 징병제가 도입되고 전차 중심의 전쟁대신 청동기 대신 철기로 무장한 보병 중심의 전쟁이 확산되면서 각국의 병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대략 전국시대 초기 에는 동원병력이 최대 10만 여명 수준까지 늘어났다. 전국시대 후반 무렵 병력의 거대화는 더욱 가속화 되서 각국은 최대 수십만 대군을 동원할 수 있었으리라 보인다. 전국시대 말기에 대한 각종 기사를 보면 전국시대의 강대국인 진과 초는 총병력이 100만, 약소국이라도 10만 명의 병력은 동원할 수 있었다고 나와 있다. 전국시대 전쟁에 기록된 최대병력은 통일전쟁 시 진나라가 초나라를 상대로 동원했다고 하는 60만 병력이다.




전국시대의 병력을 기록한 각종 사서의 기록을 보면 각 전국시대 국가의 병력은,




진: 갑병 100만, 전차 1000량, 기병 1만 명

위: 보병 36만

주: 보병 수십만, 전차 1000량, 기병 1만 명

기: 총병력 수십만

초: 보병 100만, 전차 1000량, 기병 1만 명

연: 보병 10만 명, 전차 700량, 기병 6천 명




사서의 기록을 믿는다면 전국말기의 중국에 존재했던 병사의 수는 300만 명이 넘게 된다. 그런데 사서에서는 위의 수치를 각 국가가 위급 시에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병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문맥상으로 위 병력은 전투병력이 아닌, 노역부대, 보급부대, 방어군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10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다는 진나라와 초나라는 각기 인구가 500만 명 이었다. 위의 수치대로 한 다면 인구의 20퍼센트가 총병력이라는 이야긴데 이 수치는 전근대 국가에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성인남자의 비율과 거의 일치한다. 전근대 국가에서 노인, 아이, 여자를 제외한 15~60세 사이의 남자는 전체 인구의 20~25퍼센트 정도였다. 따라서 사서에 기록된 각 국가의 총병력은 실제로 각 국가가 보유하고 있었던 병력의 숫자라기보다는 각 국가에 등록돼 있었던 병역대상자의 총수가 강대국의 경우 100만에 육박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리고 위 병력에 노역부대, 방어군, 보급부대등이 포함돼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전국시대 국가의 총병력은 위에 언급한 병력의 반 이하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이다.







3. 진나라




진나라의 총병력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다만 사기(史記)의 기사에 진나라의 인구는 2000만 명이요, 강병(强兵)은 100만 이라는 언급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실제 진나라의 평상시 총병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진나라의 군제는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이 2년간 군에서 근무하는 징병제가 중심이 됐다. 중국 고대학자인 Michael Loewe 에 따르면 2년간 전 국민이 복무할 경우 그 총수는 병역면제자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 최대 인구의 2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이는 전근대 국가의 인구구조를 바탕으로 나온 연구결과 이다. 만약에 진나라의 인구가 2000만 명이었다면 징집병인 정졸(正卒)의 숫자는 40만 명 이하라는 결론이 나온다. 진나라가 강병 100만을 가졌다는 기사는 진나라가 비상시에는 추가징집으로 100만 명까지 병력을 늘릴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4. 한나라:




한나라 역시 진나라와 마찬가지로 총병력을 알려주는 명확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한나라 특히 전한에 대한 총병력에 대한 추정치는 Michael Loewe 가 당시 등록된 인구수와 병역제도를 바탕으로 계산한 수치만 있을 뿐이다. 그에 따르면 전한의 총병력은 한 무제 시절에는 269,347 ~ 1,077,388 명 정도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수치에서 고위관료, 중요장인 등 병역 면제자를 빼면 한나라의 총병력은 100만을 크게 넘지 않았을 것이다.




후한은 중국에서 직업군인의 시대를 열었다. 즉 진한(秦漢)시대 이후로 내려온 전민개병제(전 국민이 징집대상이 되는 제도)를 포기하고, 지원자나, 사회 하류층을 군에 편입시킨 모병제를 중심으로 군을 재편했다. 이후 중국은 농민병에 의존하는 군제에서 벗어나 군호(軍戶)를 지정해 군호 중에서만 한 가정에 한 명씩 군인을 선발한 제도나(삼국시대,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 거의 완전히 지원제에 의존한 군제 (당나라 말기, 송나라, 청나라)를 택하게 된다.




어쨌거나 후한의 병력은 수도와 국경을 지키는 직업군인으로 이루어진 중앙군이 약 4만 명 정도였다. 이외에 지방의 치안, 방어를 담당한 주군병(州郡兵)이 있었는데 한서에 따르면 조조가 패권을 장악할 무렵 천하에는 20군(軍)의 주군병이 있었다는 언급이 있다. 당시 한 나라의 1개 군이 약 1만 2,500 명 정도였으므로 주군병의 총수는 25만 명인 셈이다. 그렇다면 후한의 총병력은 중앙군 과 주군병을 합치면 약 30만 명 정도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5. 삼국시대:




삼국시대의 중국의 병제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는다. 전술적으로 보면 삼국시대를 전후한 등자의 도입으로 기병이 전장을 지배하게 됐다. 군제 상으로 보면 이후 여러 중국왕조에서 채택한 둔전병 제도의 시작이 삼국시대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후한 정부가 붕괴되고, 정부에서 파악되는 호구(戶口) 수가 후한말기의 거의 8분의 1 수준까지 급감하자 (실제 인구는 3분의 2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 더 이상 후한에서 채택했던 모병제로는 충분한 병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조조는 유랑민, 산적, 군벌들의 사병들을 모아 군호(軍戶, 민간인과는 구분되는 군인가족)에 등록시키고 군호에 등록된 가족은 대대로 1가구에서 1명의 병사를 제공하게 했다. 세병제로 조조의 위나라는 총 30만 명에 이르는 병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2년 동안만 군에서 근무했던 징병제와는 달리 세병제는 한 번 병사로 등록이 되면 20세~60세까지 계속 군에서 근무해야 했고,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이 대신하는 방식으로, 병사직이 대대로 세습됐다.




촉나라와 오나라도 비슷한 방법으로 병력을 확보했는데 촉나라는 총 10만 명의 병력을, 오나라는 멸망 직전 20만 명의 군세를 유지했다. 또한 위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도 오나라를 멸망시킬 때 약 50만 명의 군세를 확보할 수 있었다.







6. 서진 및 오호 십육국 시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한 서진은 구 오나라의 군대를 흡수시켜 총 70만 명의 병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서진이 멸망하고 이민족 왕조가 중국북부를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혼란기로 인구와 병력자원이 급격히 감소해 대체적으로 남조는 20만 명에서 10만 여명으로, 북조의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10만 ~30만 사이의 군세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수나라가 중국북부를 통일하고 통일전쟁을 할 무렵에는 동원한 군사가 518,000명에 이르렀다.







7. 당나라




당나라의 기본군제는 군호(軍戶)에 등록된 병사들이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고 1년에 일정기간을 수도에 교대로 올라가 훈련을 받는 부병제였다. 통일직후의 당나라는 아직 지방군벌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고 중앙정부의 지배력도 지방까지 완전히 미치지 못해서 아직 많은 수의 부병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당나라 초기의 당나라군은 총 35만 여명 정도의 병력을 국가가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나라의 지배력이 좀더 완전해 지고 국가가 파악 가능한 인구수도 급격히 늘어나 서기 640년 경 무렵에는 병력이 총 60만 명으로 늘어났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병에 속한 병사들이 사회 하류층, 노인 등 질이 낮은 병사들로 채워지게 되자 병력의 질의 하락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서기 670년 경 무렵부터 국경지방의 병사들은 전투경험이 풍부한 병사를 위주로 한 모병제로 채우기 시작했고, 8세기 중반 무렵에는 거의 모든 병사가 지원자로 이루어진 군대가 되었다. 이 시기의 총병력은 당태종 무렵과 비슷한 60만 명 정도였다. 그러다가 안록산 의 난이 일어나고 절도사들이 지방군벌화 하자 당나라의 병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서기 805년에는 당나라의 총군세가 80만 명으로 늘어났고, 그 이후 총병력은 100만 까지 늘어났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군세의 대부분이 지방의 절도사 군의 병력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병력은 늘어났어도 중앙정부의 세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야기해 결국 당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됐다.







8. 송나라




송나라도 기본적으로는 당나라 말기와 같이 모병제로 군을 충원했다. 즉 봉급을 주고 병사를 가려 뽑아 60세가 될 때 까지 군에서 근무하게 한 것이다. 당나라와 또 다른 차이점은 당나라 말기의 군대가 거의 지방 절도사 휘하의 군대인데 반해, 송나라의 군대는 모두가 황제의 손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송나라의 병력은 송 태조가 나라를 세울 무렵에는 22만, 태종 (976~997)때는 66만 명, 진종 (997~1022) 때에는 91만 명, 인종 (1022~1063) 무렵에는 126만 명 까지 증가했다. 동시기의 중국인구도 1107년에 한 호구조사에 따르면 2천 만호 (약 1억 명)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그러나 늘어난 인구에도 불구하고 80년 동안의 급격한 군세확장은 송나라의 군사비 지출부담을 늘려 인종 무렵에는 1년 예산의 70~80 퍼센트가 군사비로 소모됐다.







9. 원나라




몽골족이 건국한 원나라의 군제는 기본적으로 세병제였다. 즉 국가에서 작성한 군호에 소속된 가족은 1호 마다 1명의 병사를 보낼 의무가 있었고, 한 번 뽑힌 병사는 60세가 될 때까지 군에서 근무해야 했다. 원나라는 몽골족이 원래 중국을 정복할 때 데리고 온 유목기병이 주축이 되고 대게 보병은 구 남송군, 금나라 군 이나 그의 후예들이 부족한 병력을 채우는 방식이었다. 이런 병사들에게는 각기 2~5호(戶)의 첩군(貼軍)을 배정해 병사들의 비용을 부담하게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원나라는 전성기에 총 100만 여명의 군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10. 명나라




명나라도 기본적으로 원나라의 군제를 답습했다. 즉 민간인과는 구분되는 군호(軍戶)를 작성해 군호에 등록된 병사로 군대를 충원한 것이다. 원나라와의 차이점은 원나라가 군인들에게 몇 가구를 배정해 한 명의 병사를 지원하게 한 데 비해 명나라는 군인 중에 일부를 땅을 경작하게 하는 이른바 둔전제(屯田制)적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즉 국경지방에서는 3명의 병사 근무할 때 7명의 병사는 경작을 하고, 내륙지방에서는 방어군(근무하고 있는 병사) 대 둔전병(농사를 짓고 있는 병사)의 비율이 2: 8이었다. 따라서 명나라의 정부장부에 등록된 병사가 전성기에는 280만 ~330만 에 이르렀지만 실제로 복무하고 있는 병사는 대략 100만 여명 안팎이었다. 명나라의 병사는 원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대로 병사가 세습되는 제도였다.







11. 청나라:




청나라의 군제는 만주족 출신이 주축이 된 팔기군(八旗軍)과 주로 한인 지원병으로 이루어진 녹영병(綠營兵)으로 양분화 됐다. 팔기군은 청나라가 중국에 들어올 무렵에는 약 15만 명 이었으나, 점차 군세를 늘려 20만 명까지 늘어났다. 녹영병은 오자서의 난 이후에 군세가 급격히 확장됐는데 강희 초반에는 40만 명, 18세기 중반 무렵에는 그 총수가 60만 명까지 늘어났다. 그래서 청나라의 총병력은 18세기 무렵에는 총 90만 명에 달했다.







정리하자면, 중국의 역대 왕조별 총병력 수는 대략 다음과 같다. (추정인구는 “Atlas of World Population History를 주로 참고)




은나라 중기 이전: 총 3만 명

은나라 후반기: 총 6만 명

서주: 총 7만 5천 명

춘추시대: 강대국이 3만 여명 안팎

전국시대 초반: 10만 여명 안팎

전국시대 후반: 최대 수십만 명

진나라: 평상시 정졸 40만 명, 비상시 100만 명 가능 (인구 2천 만 명)

전한: 100만 명 안팎 (무제 시절의 인구 5300만 명)

후한: 30만 명 안팎 (인구 5700만 명)

서진: 총 70만 명 (등록인구 약 1600만 명, 추정인구 4천만 명)

오호 십육국 시대: 각 국가가 10만 ~ 30만 명 사이

당나라 초기: 35만 명 (등록인구 약 1200만 명, 추정인구 4천만 명)

당 고종~현종 초반: 60만 명 (인구 약 5천 만 명)

당 현종 말기: 80만 명 (인구 약 5천 만 명)

당나라 말기 (9세기 이후): 100만 명

송나라 건국시기: 22만 명 (인구 약 6천만 명)

송 태종 무렵: 66만 명 (인구 약 6천만 명)

송 진종 무렵: 91만 명

북송 11세기 중반 이후: 126만 명 (인구 7500만 ~ 1억 명)

전성기 원나라(1340년 무렵): 총 100만 명 (등록인구 6천 만 명, 추정인구 9천만 명)

명나라 초기: 총 180만, (인구 6천만 명)

명나라 15세기 초반: 총 280만 명 (등록인구 5200만 명, 추정인구 7500만 명)

명나라 말기: 총 330만 명 (등록인구 6200만 명, 추정인구 1억~1억 5천만 명)

청나라 강희제 초반 무렵: 약 60만 명 (등록인구 8천만 명, 추정인구 약 1억 4천만 명)

청나라 전성기: 약 90만 명 (인구 2~3억 명)







11. 중국왕조의 야전군 동원능력




각 왕조의 총병력수와는 별개로 각 왕조가 원정군에 동원할 수 있었던 야전군의 규모는 대군을 보급하는 어려움으로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국가간의 무한경쟁으로 거의 전 국민이 전쟁에 동원됐던 전국시대 후반기를 제외하면, 통상적인 중국의 야전군 규모는 대게 2만 ~5만 명 사이였다. 그리고 중요한 원정에서 동원되는 원정군의 규모는 대략 10만 명 안팎이었다. (예, 백제 원정 시 소정방의 13만 대군) 황제가 직접 관련될 정도로 대규모의 군대는 대게 20만 ~ 30만 명이 일반적인 중국의 야전군의 한계치였다. 이러한 20만 대군 이상이 동원된 경우는 중국역사 중에서도 드문데, 20만 대군이 동원된 예로는 진나라가 삼국통일 전쟁에서 동원한 20만 대군, 역시 조조가 적벽에서 동원한 20만 대군, 송나라가 요나라를 상대로 동원한 20만 대군 등이 있다. 20만 이상을 동원한 전쟁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데, 수나라가 통일전쟁을 하면서 동원한 518,000 명의 대군이나, 명나라가 몽골을 상대로 동원한 50만 대군 그리고 수양제가 고구려를 상대로 동원한 대군 등 손으로 꼽을 정도 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중국왕조의 총병력은 대체적으로 60~100만 정도였다. 여기에서 유일한 예외는 300만 이상의 총병력을 보유했던 명나라 이지만 명나라도 실질적으로 복무하고 있는 병력은 100만 명 정도였다. 대게 중국의 통일왕조들이 5~6천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중국의 통상적인 군대는 전 인구의 약 1~1.5 퍼센트 사이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왕조들은 100만의 병사를 동원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은 일반적으로 100만 대군을 동원할 수 없었다. 총병력과는 별개문제로 중국왕조들이 동원할 수 있었던 야전군의 규모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20만 명을 크게 넘지 않아, 중국에서 100만 대군을 동원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총병력과 동원병력은 별개문제 이므로...)




* 출처 - 네이버 오픈백과 trebla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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