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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4-07 15:36:363009 
고공단보에 의한 주족의 이주로
양승국


고공단보는 후직(后稷)과 공유(公劉)의 업을 되살려 덕을 쌓고 의로운 일을 행하였다. 백성들이 모두 받들어 존경하였다. 융적(戎狄) 가운데에 훈육(薰育)1)이라는 부족이 침입하여 주나라의 재물을 약탈해 가려고 했다. 고공단보가 재물을 모아 그들에게 주어 물러가게 하였다. 다시 훈육이 쳐들어와 그때는 주족과 그 영토를 빼앗아 가려고 하였다. 백성들이 모두 분노하여 훈육을 공격하려고 했다. 고공단보가 백성들을 향 해 말했다.

“ 백성들이 그 군주를 옹립하는 것은 그에게서 백성 모두들의 이익이 되는 것을 이루어 주도록 생각해서 이다. 현재 융적이 침범해 온 목적은 우리들의 땅과 백성들을 빼앗고자 해서인데, 백성들이 나를 따르던, 융적을 따르던 그들에게 있어서는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백성들이 나로 인하여 싸움을 하게 된다면 이는 내가 백성들의 부자(父子)나 형제(兄弟)들을 희생 (犧牲)시켜서 그들의 군주 노릇을 하게 되는 일일 것이다. 그 일은 내가 차마 하지 못하겠다.”

그런 다음 고공단보는 백성들을 이끌고 빈(豳)2) 땅 을 떠나 칠수(漆水)와 저수(沮水)3)를 건너 다시 양산(梁山)을 넘어 기산(岐山) 밑에 당도하여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살았다. 빈읍(豳邑)에 살던 모든 백성들이 노약자들은 부축하고, 어린아이들은 가슴에 안고 고공단보의 뒤를 따라 기산으로 옮겼다. 이웃나라에 살던 다른 백성들도 고공(古公)이 어질고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달려와 그에게 귀의하였다. 그래서 고공은 백성들로부터 융적의 풍속을 없애버릴 수가 있었으며 성곽(城郭)을 축조하고 궁궐을 짓고 각기 나누어 살도록 했다. 나라의 일을 오관(五官)4)을 두어 돌보게 했으며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며 노래를 부르며 고공단보의 덕을 칭송했다.

미주 1) 훈육(薰育)/ 훈육(獯鬻)이라고도 하며 고대 북방에 살던 이민족으로써 하(夏)나라 때는 훈육(薰育), 주나라 시대에는 험윤(玁狁), 전국(戰國), 진한(秦漢) 때에는 흉노(匈奴)라 했다.

2) 빈(豳)/ 현 섬서성(陝西省) 순읍현(旬邑縣) 서남쪽

3) 칠수(漆水)와 저수(沮水)/ 지금의 섬서성 빈현(彬縣) 서쪽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위수(渭水)와 합류한다. 칠수는 상류를 저수는 하류를 말한다.

4) 오관(五官)/사마(司馬), 사도(司徒), 사공(司空), 사구(司寇), 사사(司士)등의 다섯 관직을 말하며 사마(司馬)는 군사의 일을, 사공(司空)은 토지의 관리와 토목공사를, 사사(司士)는 례(禮)를, 사구(司寇)는 법률의 집행을, 사도(司徒)는 교육을 맡았다.

5)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의 청묘지습(靑廟之什) <천작(天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天作高山 大王荒之(천작고산 대왕황지)

하늘이 기산을 높이 만드시고, 태왕께서 이를 닦으셨네




彼作矣 文王康之(피작의 문왕강지)

님께서 이루신 것을, 문왕께서 평안하게 하셨네




彼徂矣 岐有夷之行(피저의 기유이지행)

님께서 그 곳에 이르시어, 기산에 평평한 길을 닦으셨다.




子孫保之(자손보지)

자손들은 대대로 이를 잘 보전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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