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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2-17 05:48:454355 
위진남북조 대사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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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시대 대사연표






















































































연도


대 사


184


장각의 황건의 란 발생


189


동탁의 란


190


관동의 주군이 원소를 맹주로 동탁토벌군을 일으켰다.


192


1. 왕윤이 동탁을 죽이고 다시 동탁의 의해 중용되었던 채옹을 죽였다.

2. 동탁의 부장 이각과 곽사가 잔병을 수습하여 장안을 점령하여 관중에 대란이 일어났다.

3. 조조가 제북(濟北)에서 황건의 잔당을 토벌하여 30여 만의 병졸을 얻은 후에 그 중 정예를 뽑아 청주병이라고 칭했다. 조조가 이로써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195


손책이 장강을 건너 강동으로 들어가 근거지로 삼았다.


196


조조가 헌제를 맞아들여 허도에 모셨다. 이로써 조조는 황제를 등에 업고 정사를 오로지했다.


200


1.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를 격파하고 북중국을 장악했다.

2. 손책이 죽고 그의 동생 손권이 뒤를 이었다.


201


조조가 여남(汝南)에서 유비를 격파했다. 싸움에서 진 유비는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에게 달아나 몸을 의탁했다.


208


1. 형주목 유표가 죽자 조조가 형주를 점령했다.

2. 동진하던 조조는 적벽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과 대치했다.


209


유비가 형주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했다.


214


촉으로 들어간 유비가 익주의 관할지역을 전부 차지했다.


219


관우가 죽고 형주를 오나라에게 빼앗겼다.


220


1. 조조가 죽고 그 뒤를 이은 아들 조비가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위나라를 창건하고 황제가 되었다. 한나라는 이로써 망하고 삼국시대로 접어들었다.


221


유비가 칭제하자 손권은 오왕이라고 칭했다.


222


유비가 이릉에서 오군에게 대패했다.


223


유비가 죽고 그의 아들 유선이 뒤를 이었다.


226


조비가 죽고 그 아들 조예가 뒤를 이었다. 이가 위명제(魏明帝)다.


229


손권이 제호를 칭했다.


234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었다.



































































































연도


대 사


249


사마의가 정변을 일으켜 위나라 정권을 장악했다.


251


사마의 죽고 아들 사마사가 뒤를 이어 위나라 정권을 전단했다.


252


손권이 죽고 그 아들 손량이 뒤를 잇고 제각각이 태부가 되어 보좌했다.


255


1. 위나라의 진동장군 관구검과 양주자사 문흠이 수춘에서 거병했으나 싸움에서 지고 관구검은 살해되고 문흠은 오나라로 달아났다.

2. 사마사가 병으로 죽고 사마소가 계위했다.


263


촉이 위에 항복하여 망했다.


265


사마소가 죽고 그 아들 사마염이 뒤를 이었다. 사마염이 위나라 정권을 찬탈하고 대신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진(晉)이라고 칭했다.


280


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하여 점령하여 삼국은 진나라로 모두 통일되었다.


301


황제를 칭한 조왕 사마륜(司馬倫)으로 팔왕의 란 시작


307


낭야왕 사마예(司馬睿) 봉지를 건업(建業)으로 옮김


316


한(漢)의 유요(劉曜)가 장안을 함락시키고 서진의 마지막 황제 민제(愍帝)를 포로로 잡아 서진은 건국한지 50여 년 통일한지 36년 만에 망했다.


318


사마예가 건업에서 동진왕조를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319


유요가 국호를 조(趙)로 정하고 황제를 칭했다. 역사상 이를 전조(前趙)라 한다.


330


전조의 장군 유요의 전조를 멸하고 석륵이 황제에 올랐다. 역사상 이를 후조라고 칭한다.


350


1. 후조의 한족 장군 염민(冉閔)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위(魏)라 했다. 역사상 이를 염위(冉魏)라 한다.

2. 저족(氐族) 부건(苻健)이 장안을 점령하여 관중지방을 평정했다.


351


부건이 국호를 진(秦)이라 칭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역사상 이를 전진(前秦)이라고 칭한다.


352


전연(前燕) 왕 모용준(慕容儁)이 염민을 죽이고 위를 멸했다.


357


전진의 부건이 죽어 장남 부생(苻生)이 그 뒤를 이었다. 동생 부견(苻堅)이 그 형을 죽이고 자립했다.


370


전진이 전연을 멸하고 북방을 통일했다.


383


전진이 90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동진을 공격했으나 비수의 싸움에서 패퇴했다.


384


선비족 모용수가 연왕을 칭했다. 역사상 이를 후연(後燕)이라 한다.


385


강인 요장(姚萇)의 공격을 받은 전진의 부견은 장안에서 탈출하여 오장산(五將山)에 들어갔으나 요장에게 살해되었다.















































































연도


대 사


386


선비족 척발규(拓跋圭)가 나라를 다시 세우고 국호를 대(代)라고 칭했다가 다시 위(魏)로 바꿨다.


395


척발규가 후연의 대군을 삼합형(三合陘)의 싸움에서 섬멸했다. 후연은 전해에 전연을 멸했었다.


420


유우가 동진의 정권을 찬탈하여 국호를 송이라 칭했다. 역사상 이를 유송(劉宋)이라 한다. 동진(東晋)이 망함으로 해서 남북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439


북위가 북량을 멸하고 북중국을 통일했다.


479


유송의 장군 소도성(蕭道成)이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고 국호를 제(齊)라 했다. 역사상 이를 남제(南濟)라 한다. 송이 망했다.


494


북위가 그 도읍을 낙양으로 천도했다.


502


남제의 장군 소연(蕭衍)이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양(梁)이라고 했다. 남제가 망했다.


534


북위의 효무제가 승상 고환(高歡)의 횡포를 피해 장안의 우문태(宇文泰)에게 몸을 피했다. 고환은 효정제(孝靜帝)를 세우고 도성을 업(鄴)으로 옮겼다. 장안의 우문태는 효무제를 살해했다. 이로써 북위는 동서로 분열되었다.


547


동위의 장군 후경이 반하여 양(梁)에 투항했다.


548


후경이 양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켜 건강(建康)을 포위했다.


550


1. 고환의 아들 고양(高洋) 동위의 정권을 찬탈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에 국호를 제(齊)라 했다. 역사상 이를 북제(北齊)라 한다. 동위가 망했다.

2. 후경이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한(漢)이라고 했다.


557


1. 서위 우문태(宇文泰)의 뒤를 이은 우문각(宇文覺)이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고 국호를 주라고 칭했다.

2. 양의 장군 진패선(陳覇先)이 양을 멸하고 황제의 자리를 올라 국호를 진(陳)이라 칭했다.


577


북주가 북제를 멸해 북중국을 통일했다.


580


북주의 국구 양견이 어린 황제를 대신해서 정권을 오로지했다.


581


양견이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고 국호를 수(隋)라고 했다. 북주가 망했다.


589


수나라가 남조의 진을 멸하고 중국을 다시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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