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전(東夷傳)의 문제점.

(2) 뿌리없는 역사관 / 이재환

19세기부터, 일본의 역사학자들은『일본서기』가 8세기에 쓰여졌고『삼국사기』는 그보다 훨씬 뒤인 12세기에 쓰여졌기 때문에(무려 400여년이라는 차이가 남)『삼국사기』의 기록은『일본서기』에 있는 것보다 정확하지 않으며『삼국사기』는 신라가 무너진 뒤 200년이나 지난 뒤에야 쓰여진 책이므로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삼국사기』는 신라가 무너진 뒤 200년 뒤에, 고구려와 백제가 무너진 뒤 500년 만에 정리되어 나온 역사책이기 때문에 기록이 정확할 리가 없고 후대에 부풀려지거나 꾸며진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일본서기』는 『삼국사기』보다 400여년 전에 쓰여졌고 시기도 고구려 · 백제가 무너진 뒤로 '겨우' 1세기 정도밖에 안 지난 시점에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며 믿을 수 있다고 선전돼 왔다. 따라서『삼국사기』에 나타나는 기록이라도『일본서기』에 나오지 않거나『일본서기』의 기사와 들어맞지 않으면 '엉터리'로 여겼고 왕의 연대나 '고대국가'로 등장하는 때도『일본서기』에 나타나는 연대를 기준으로 다시 짜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삼국유사』의 단군사화를 뜯어 고친 '원죄'를 품고 있는 금서룡(今西龍)은 "근초고왕(서기 346~서기 375 재위)에 이르러서야 그 이름이『일본서기』에 보인다."고 말하고 "『삼국사기』백제기에서 계왕(서기 344~ 서기 346 재위) 까지의 기사는 전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온조왕에서 계왕까지의 기사는 "백제 중세에 위조된 것"이라고 보았다. 또 금서룡과 같은 시기에 활약했던 츠다 소키치(津田 左右吉. 진전 좌우길)는 금서룡과 마찬가지로 "『삼국사기』백제본기의 기록은 근초고왕(서기 346 - 서기 375 재위)때의 기록부터 신용할 수 있다." 고 하였고 한술 더떠서 "「신라본기」의 실성왕(서기 402년 - 서기 417년 재위)대까지의 기록도 명백히 허구로 볼 수 있는 것이 있어 신용할 수 없다." 고 했다. 이에 따라 '실재했던 삼국 역사' 는 무려 3~400년이나 깎아 내려졌고 거기에 광개토 태왕비에 나오는 왜倭 와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왔다'는 구절을 '증거'로 들어『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神功)과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합리화 했으며 일본에서 나온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을 '백제 왕세자가 일본에 바친다.'는 내용으로 풀이해 가야라는 나라를 부정하고(대신 그 자리에 임나 일본부를 집어 넣었다) 한반도의 남쪽을 일본이 식민지로 지배한 사실이 있었던 것처럼 꾸며냈다. 하지만 왜곡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인 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객관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중국 사서에 있는「동이전」을 중심으로 한국의 고대사와 열국시대, 사국시대, 삼국시대 역사를 썼다. 단군사화가『사기(史記)』「조선 열전」이나『한서(漢書)』「조선전」에 나오지 않으므로 단군사화는 고려시대 일연이 꾸며낸 엉터리이고, '한사군'을 설치한 기록이 보이고 그 이전에는 조선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지 않으므로 조선 역사는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따라서 한민족은 태어날 때부터 지배당하고 예속된다고 주장하였다. 4~5 세기쯤에야 백제의 이름이「동이전」에 나오고, 6세기가 되어서야 신라의 이름이「동이전」에 나온다는 사실을 들어 "중국 기록에 나오는 사실이 4세기쯤에야 백제가 마한을 완전히 통합하고 나라의 기틀을 닦았다는『일본서기』의 기록과 일치하므로, 백제는 그때 간신히 '부족국가'에서 벗어나 '고대국가' 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중국 역사책에 6세기 쯤에야 신라의 이름이 나오는 사실로 보아 신라는 그때 비로소 '부족국가'에서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이는 서기 200년 경의 '임나일본부' 보다 늦은 것이기 때문에 조선에는 국가성립이 일본보다 늦었으며 일본보다 '열등' 함을 말해준다. 중국 기록도 이를 '증명' 하고 있지 않느냐?" 라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중국 사서와 일본 사서에 있는 기록이어야만 믿을 수 있고, 한국의 사서에 쓰인 내용은 믿을 수 없다. 설령 한국 사서에 나와있는 부분이라도 그것이 중국이나 일본 사서에 나와있지 않거나 들어맞지 않으면 틀린 것이다. 따라서 중국 기록이나 일본 기록에 맞도록 뜯어고쳐져야 한다' 고 기본 틀을 세워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먹혀들어가려면 몇가지 문제를 풀어야 했다. 우선 그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역사책인『일본서기』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 ― 왕들이 산 기간과 임금 자리에 있던 기간이 120년을 거뜬히 뛰어넘고 무려 열 명 이상이 그렇다는 점과 일본서기에 나와있는 왕들의 이름이 그 왕들이 활약했다는 시기의 한국 · 중국 사서에는 전혀 안 나온다는 사실, 신공왕후가 대군을 이끌고 신라를 친다고 하는 3세기에 적은 중국 기록인 『삼국지三國誌 위지 열전列傳 동이東夷 왜인조倭人條』- 줄여서 [삼국지 위지 왜인전] - 에는 왜국이 부족국가 수준이라고 적혀 있는 점, 그리고 '일본역사'를 다룬 책이라는『고사기古事記』와『일본서기』에서 어째서 일본의 기사보다 한국의 역사가 많이 나오고 80% 이상이 한국 역사책에서 베껴온 기사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지 등 ― 을 '해명'(사실은 왜곡)해야 했고,『일본서기』나『동이전』을 부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될 한국 사람 스스로가 쓴 한국 역사서를 한국인들의 손에서 빼앗아서 불태워 없애야 했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는 1910년 "조선의 관습과 제도조사"라는 명목을 내세워 "불온서적(조선사람들이 쓴 조선의 옛 역사서)"들을 빼앗았다. 서울 종로 일대의 서점이나 지방의 서사(:서점), 향교, 서원, 양반 집안, 세도가를 샅샅이 뒤졌고 심지어 민간인의 집에 내려오는 기록까지도 예외없이 뒤져서 압수했다. 1911년 12월 말까지 "51종 20여만 권"(문정창文定昌 씨의 증언)을 판매금지하고 압수했다. ― 이는 조선총독부 관보에서 밝히고 있는 사실임. 이 책들은 "단군 관계 조선 고사서古史書, 조선지리, 애국충정을 고취하는 위인전기 · 열전류 및 … 장지연張志淵의『대한 신지지 大韓 新地誌』, … 신채호의『을지문덕』"등 그냥 내버려둘 경우『동이전』과『일본서기』를 반박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왜곡된 사관을 싣는 데 방해가 되는 '위험한 자료들(총독부 입장에서)' 이었다. 총독부 취조국은 단군조선과 가야, 대진국(발해) 역사가 빠져 있는 김부식의 책『삼국사기』나, 단군조선을 신화로 다룰 뿐인 일연의『삼국유사』처럼 단군조선과 상고사 말살에 필요한 자료들만 빼고 모두 불에 태워 없애버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조선 안에 있던 사서들을 다 없애지는 못해서 3년이 아닌(애초에는 3년만 뒤지면 역사서를 모두 빼앗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한다) 6년으로 기간을 늘려잡아 수색했지만, "정보를 갖고 찾아가면 또다른 사서류가 나왔다." 그래서 총독부는 새로 빼앗은 수십만권의 고서적들을 모두 왕실 도서관에 옮겨놓고, 누구도 볼 수 없도록 철저히 접근을 막아버렸다. 그 뒤『동이전』,『삼국사기』(안에 있는 부정적인 기록),『삼국유사』,『일본서기』를 중심으로 하고 설화나 전설, 구전, 다른 기록들은 싹 무시한 채 일본 학자들이 '조선사朝鮮史'를 지었으며 이들은 사서의 구절을 최대한 많이 써먹으면서도 실증을 하려 들지 않았다.(말로는 '실증'을 떠들었지만) 이들은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에 바탕을 두었고『일본서기』보다 훨씬 훗날에 만들어 졌으므로「실증」과「과학적 증거」에 바탕을 두고 볼 때 믿을 수 없다. 따라서 기록도 가짜이다.'라고 주장 하면서도『삼국사기』에 가야의 기록이 빠져 있고 신라가 '가야' 대신 '왜倭'와 자주 싸운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을 들어 '이것이『일본서기』의 기록이 '정확(?)' 하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냐? 가야라는 나라는 없었고 대신 경상남도에는 일본이 세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대신 들어가 있었다. 신공의 한반도 남부 '정벌'은 사실이며 신라가 반란을 일으킨 일이 '왜倭'와 싸웠다는 구절로 나타난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백제가 세자(사실은 태자)를 왜에 인질로 보냈다는 기록을 들어 '백제는 일본의 속국이었다'고 주장하고『삼국사기』에 단군조선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사실은 일부분에 나옴 - 필자) 단군조선이 있었다는 말은 거짓이라고 떠벌렸다. 또『삼국유사』가 고려가 원의 속국이던 때 쓰여졌다고 해서 "단군은 일연이 꾸며낸 이야기이며 몽고에 억눌리는 울분을 풀려고 거짓말을 지어낸 것이다."는 말을 '실증'을 내걸면서 주장했다. 『고사기』나『일본서기』에 나와있는 한국 관련 기사들은 "신공황후 이래 삼한三韓이 일본의 속국이자 영토였기 때문" 에 나온다고 설명되었고『동이전』의 나라들이 '자그마한 부족국가'로 나오고 힘이 약한 나라로 나오고 있으므로 '임나일본부'를 세웠을 때 무너진 것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설명되었다. 『동이전』에 나오는 나라들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충성했다'는 부분은 곧이곧대로 해석해 '이들 나라는 중국에 충성하는 변방국가 였다' 고 주장했고『삼국사기』에서 신라 김춘추가 당에 가서 백제를 쳐 달라고 비는 구절이나 신라가 당 조정에 당을 찬양하고 떠받드는 노래를 지어 바치는 부분이『동이전』에 나오는 '허약하고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으며 통일되지 못한 부족국가(?) 이고 중국을 떠받드는' 동이족 나라들과 잘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실증과 비판'은 오직 조선사람이 쓴 조선 역사서에만 적용되었고, 그 결과 백제와 신라의 역사는 무려 3~400년이나 깎아내려 졌으며, 대진국(발해)이 조선 역사에서 빠져버렸고 단군조선은 부정당했다. 그나마 부정적으로 조선 역사를 말한 부분이나『동이전』이나『일본서기』에 들어맞는 부분만이 '믿을 수 있는 기록' 이 되어 받아들여졌다. 이를 비판하고 반박할 조선 역사서가 사라졌고, 구전이나 신화, 전설은 채택되지 않았으며('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믿을 수 없다' 는 구실을 붙여서) 남아 있는 역사서라고는『동이전』과『일본서기』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는『삼국사기』나『삼국유사』 정도였다. 또 만약 역사서나 자료를 조선사편수회(오늘날의 국사편찬위원회)나 조선 총독부의 견해와 어긋나게 해석 · 발표하면 '사상범'으로 처벌받았고 그 사람의 주장도 학계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식민지로 지배받는 현실과 겹쳐져서 '조선은 반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발전을 못한다'는「반도 사관」과, '항상 지배받고 굴복하는 게 조선인의 숙명이었고 한번도 자주적이었던 때가 없었다.'는「식민사관」이 서서히 뿌리 박히게 되었다. 신채호나 박은식 선생이 식민사관에 맞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쓰는 글을 내놓았지만, 이들은 망명자 신세였고 조직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정식 역사기관' 으로 인정받고 조선 총독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연구하는 조선사 편수회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 이었다.(주장은 옳았으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얘기임) 1945년 광복을 맞은 뒤 식민사학자들 ― 대표적인 예가 이병도 ― 은 마땅히 처단되어야 했고 식민사관도 뿌리뽑혀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들 식민사학자들은 다시 역사학자로 등용되었고, 식민사학의 대부인 이병도 교수(그는 만리장성을 한반도 황해도까지 끌어들인 장본인 이었다)가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를 맡았다. 또 '실증' 이라는 개념은 이들에겐 '자기 나라 역사를 될 수 있으면 아래로 깎아내려야 하고 그래야「믿을 수 있는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병도는 금서룡(今西龍)처럼 백제 역사를 깎아내려 "백제는 서기전 18년 온조가 세운 게 아니라 8대 고이왕이 서기 260년에 건국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도 '실증' 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나라 사람이 쓴 자기 나라의 역사서를 거짓이라고 보며 역사를 깎아내린 것이다.(하지만『삼국사기』의 기록들이 '엉터리' 라고 주장하며 '실증' 해서 연대를 깎아내린 이병도나 금서룡도,『일본서기』나『동이전』의 기사를 의심하거나 '실증' 해서 사실을 밝혀내는 일은 거부했다) 여기에 조선조 500여년동안 내려온 사대주의 ― 우리나라의 역사는 중국보다 못하며 뭐든지 중국의 아류이고 독창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 ― 가『동이전』에 대한 비판이나 의문을 던지지 못하도록 막았고『삼국사기』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신라의 간섭을 받지 않은 자료'인『동이전』에 기대는 결과를 낳았다. 설사 비판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물적 증거'가 모자란다는 점에서 식민사학자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일제가 단군이나 열국시대, 사국시대, 삼국시대 역사서들을 모두 거두어가 버려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민사학자 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었던 사학자들 ―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 등― 은 이미 죽거나 납북당해서 더이상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식민사학자들이 주도권을 차지한 학계에서 이들은 쫓겨나다시피 했다.(원래 법학자셨던 최태영 박사님이나 단국대 윤내현 교수를 빼고, 제도권 학자들은 이병도가 만든 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해 왔다) 결국 이런 구조와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뜯어고치고 새롭게 태어나지 못한 식민사관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삼국사기』기록의 불신 문제나 한군현의 위치, 기자조선설(기자동래설), 남북국 시대냐 '통일(?)신라'냐 하는 용어 사용의 문제까지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 맥락에『동이전』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사관이라는 문제가 들어있으며 '동이전에 쓰여 있어야 객관적(?)인 역사고 그 밖의 역사는 다 가짜' 라는 인식이 들어 있으면서 역사학계와 교과서에 큰 해독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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