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인 백제명장 흑치상지(黑齒常之)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가 풀릴 것 같다.‘당서(唐書)’에 백제 서부인으로 돼 있는 이 비한국계 성(姓)의 장수가 중국과 베트남 경계지역인 광서성(廣西省)에 있었던 흑치국(黑齒國) 사람이거나 흑치국을 봉(封)함받은 백제 사람일 것이라는 사실이 외교관 출신 소진철(蘇鎭轍) 교수가 ‘백산학보’에 실은 논문에서 밝혀졌다. 흑치국 수수께끼는 5세기 중국의 송나라 정사인‘송서(宋書)’의 백제 영토를 적은 대목에서 비롯된다. 중국 땅인 진평(晋平)군 진평현도 백제 영토였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5세기 후기의‘양서(梁書)’에는 진평이군(二郡)으로 나온다. 이 진평현의 위치를 알고자‘중국고금지명대사전’(商務印書館 刊)을 보니 송나라에서 설치한 현으로 광서(廣西)국경 지역에 있었다 했다. 그렇다면 백제가 베트남 접경지역의 중국에 식민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소 교수의 논문에서 그 접경지역의 도시인 옹녕현(邕寧縣) 옹녕시에 백제 이름이 붙은 길이며 관공서를 확인하고 이 진평현과 백제의 연결 고리로 추정했다.

지금도 소수민족인 장족(壯族)의 자치지역이 돼 있는 이 지방은 고대의 흑치국으로 주(周)나라 성왕 때 흰사슴과 흰말을 바쳤다는‘먼 서쪽 변방의 오랑캐’로 적고 있다. 빈랑이라는 열매를 씹어 이빨이 검어졌다 해서 흑치국으로 불린 환상의 이 지역이 백제의 식민지라는, 다른 연결 고리로 망국 백제를 수복하려던 명장 흑치상지가 이 식민지 출신이란 추정이다. 중국 문헌인‘만성통보(萬姓統譜)’에 중국성으로 흑치성이 있으며 그 성을 가진 사람으로 흑치상지가 올라 있다. 이로써 당서에 기록된 백제 서부인은 서부 백제사람이 아니라 백제 서쪽 먼 중국 식민지 사람이란 뜻일 수 있다. 백제멸망 후 중국에 들어가 주로 변방 흑치국 지역에서 티베트족이나 돌궐족 침입을 막아 큰 공을 세운 것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중국 땅의 백제 식민지라는 상상하기 너무 아스라한 역사적 명제를 우리 사학계는 떠맡았으며 이를 밝힘으로써 삼국시대 한국 프론티어십의 화려한 지평을 넓혔으면 한다.

(조선일보 이규태칼럼)

[동아일보]

백제의 영향력이 랴오시(遼西)지방 등 중국 동해안 지역뿐 아니라 베트남과 연결되는 중국 최남단까지 이르렀을 가능성을 제기한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원광대 소진철 교수(고대정치사·사진)는 ‘백산학회보’ 최근호에 발표한 ‘위서(魏書)의 흑치국(黑齒國)은 어디인가’라는 논문에서 백제 장군 흑치상지(黑齒常之·630∼689)가 중국 최남단 광시(廣西)자치구 출신이라고 주장했다.

흑치상지는 660년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봉기해 200여개의 성을 회복했던 장수. 이후 당 고종의 회유로 투항해 토번(티베트)과 돌궐 공략 때 무용을 떨쳤다.

1986년 중국에서 발견된 흑치상지의 묘비명(銘)에는 그가 ‘부여(夫餘)씨로 선조가 흑치(黑齒)에 봉(封)해졌다’는 표현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이후 원래 백제 왕족이었던 흑치상지가 선대에 백제 왕실로부터 흑치국을 봉토로 받으면서 성(姓)도 하사받은 것으로 해석해 왔다.

그렇다면 흑치국의 위치는 어디일까. 흑치상지가 백제 서부인(西部人)이었다는 ‘신당서’와 ‘구당서’의 기록에 따라 그간 국내 학계에서는 사비성(부여) 서쪽으로만 추정해 왔다.

소 교수가 흑치국으로 주장하는 곳은 베트남과 인접한 중국 광시(廣西)좡(壯)족자치구 융닝(邕寧)현 바이지(百濟)향. 2002년 이곳을 현지 답사한 소 교수는 중국 좡족 거주지인 이곳 주민들이 백제라는 지명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현대 한국어 발음으로 ‘대백제’라 부르고 있다고 증언했다. 또 불과 몇십 년 전까지도 빈랑(檳(낭,랑))이라는 나무열매를 씹는 풍속으로 인해 치아가 검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도 흑치(黑齒)국과 관련 있다는 설명이다.

소 교수는 “중국측 사서인 ‘양서(梁書)’와 ‘송서(宋書)’에 백제가 진(晉) 말 진평(晉平)군에 진출해 그곳에 백제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진평군은 광저우(廣州) 위린(郁林)군에 속하는데 이는 오늘날 광시좡족자치구에 해당한다”며 흑치국이 광시좡족자치구일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黑齒常之——武則天第一驍勇番將

629년에 태어난 흑치상지(黑齒常之)는 망한 백제에서 부흥운동을 벌이다 중국으로 항복해 무장으로서의 명성을 떨쳤으나 모반이라는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물이다. 그의 조상은 백제 왕실인 부여 氏에서 흑치 氏로 분파되어 조상 대대로 달솔이란 관직을 역임 한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 소학등 학문을 연마하였고 31살때인 660년 백제의 의자왕이 항복하자 백제의 부흥운동에 나섰다고 삼국사기에는 적혀 있다.

나당연합군의 발아래 부여를 함락 당한 백제유민들은 마냥 도탄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때 의자왕은 사로잡힌 바 되어 왕자 융과 2만여 백성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되어 가버렸고 또 다른 왕자 풍은 원병을 청하러 일본에 가 있었다. 백제 땅에 남은 이들은 부여 남쪽의 한 고개에 모여서 다섯 군데에 책(柵)을 세우고 무리를 모아 백제부흥을 꾀했다. 주변의 성들을 침공하기도 하고 스스로 호응해 오는 성들도 있어 한때 20여 성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되자, 의자왕의 조카인 복신과 도침은 일본에서 돌아온 왕자 풍을 맞아 왕으로 삼아 주류성에 기반을 잡고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으며 흑치상지도 이에 동참하였다.

이 백제부흥군의 투지와 병력은 만만치 않아 열흘만에 모여드는 이가 3만명이 넘었고 사비도성을 지키고 있던 당군을 포위하여 대치하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의 증원군이 밀어닥쳐 소탕전을 벌이자 임존성으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어 예산군 대흥면에 있는 임존성(둘레 2,400m)에 웅거하여 지키니, 이 임존성은 방어하는데는 쉬우나 공격하는데는 매우 어려운 천혜의 요새로서, 흑치상지는 이때 결사대를 이끌고 한때 소정방의 군사를 물리치고 200여 성을 되찾기도 했다.

그러나 백제부흥운동을 진압하려는 당나라 군사들의 공격이 새로이 시작된 한편, 부흥운동을 주도하던 복신과 도침이 불화를 일으켜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또복신은 풍왕에게 살해되었다. 풍왕은 고구려와 왜에 원병을 청하였으나 왜의 구원병은 도중에 당군에 격파되었으며 663년 8월 백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게 대패하여 백제부흥운동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풍왕은 고구려로 피신하였으며 혹치상지는 당나라장수 유인궤에게 항복하게 된다.

이때 우리가 교과서에서 익히 사진으로 본 부여의 그 유명한 정림사지 5층석탑에 소정방은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하고 왕과 귀족들을 당나라로 끌고 간다는 우리에게 치욕스런 문장을 새겨 넣게 되는 것이다. 흑치상지는 백제의 부흥운동이 실패하자 많은 고뇌를 하였을 터인데 현실적인 것을 찾아 부여 풍보다 부여 융 왕자와 함께 당나라 장수를 따라 장안으로 가 668년부터 당나라 장수로 맹활약하게 된다.

新 唐書에 의하면 티벳(당시 토번)과 접경인 중국서부의 중심인 청해성 서녕시에 7년동안 머물게 되는데 이곳의 토번이 당을 위협하자 당은 서녕시에 하원군이라는 군사령부를 설치하였는데 이때 흑치상지는 숭풍령 첫 전투에서 승전과 이름을 떨치게 된다. 678년 숭풍령 하원군 사령관인 이경현이 계곡에서 포위되자 흑치상지가 결사대 500명을 이끌고 야밤에 토번군을 습격하여 포위된 당군을 구해내자 당 고종은 금 오백근과 비단 오백필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양비천 전투는 그의 용맹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으로서 680년 토번의 창파둥에서 이경현이 두 번이나 전투에 실패하자 흑치는 3천명으로 4만명의 토번군을 습격하여 승리하게 되는데 지금도 중국 군사통사에는 이 전투를 지금도 매우 중요한 전사로 기록하고 있다.

이 전투로 당의 조정은 더욱 그를 신임하게 되는 데 흑치상지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한족의 장수들은 겁이 많은데다 당의 이민족장수를 기용하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으로 신당서 열전에 의하면 당은 그를 연국공에 봉하고 식읍 3천호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에 의해 평정되었던 돌궐(몽고족)의 동돌궐족이 679년 반란을 일으키자 687년 측천무후는 흑치를 산서성으로 파견하자 황화퇴 전투에서 돌궐족을 궤멸시키고 북쪽 사막지대로 쫒아버렸다. 30년동안 패배의 기록을 남기지 않은 유일한 장군, 당나라에 건너간지 30년동안 백제인인 그의 위용은 이렇듯 당당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던가 당나라 군부내 12위까지 서열이 올랐던 그는 689년 그의 나이 61세일 때 반란모의라는 누명으로 죽임을 당한다. 이국의 장수에게 견제와 질시가 그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의 묘지는 후에 낙양의 북망산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중국의 황제와 고관대작들이 묻히는 곳으로서 신당서와 구당서 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의 묘지들은 문화혁명당시 거의 없앴으나 흑치의 무덤은 중국에서 1920년 도굴되어 현재는 죽은 사람의 일대기 1604자가 새겨진 묘지석만이 남아 있다.

죄를 입어 죽은 그를 특별한 사람의 유택인 북망산에 묻었던 것은 어떤 이유일까 . 10년뒤인 699년 맏아들 흑치 준에 의해 누명을 벗게되고 누명이 벗겨지자 아버지의 묘를 북망산에 옮겨줄 것을 건의 측천무후가 이를 허락한 때문이다. 결국 흑치상지의 군사적 기반에 대한 두려움 내지는 토사구팽과 같은 것이, 뛰어난 장수들을 죽게 만든 것을 아닐까 생각된다.

젊은 시절 백제의 멸망으로 인한 오욕과 백제의 부흥을 꿈꾸던 일이 내부 자멸로 인해 실패로 끝나는 것에 대해 실망하고 현실을 따라 당에 들어가 무장으로서의 위용을 떨치지만 결국 번장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죽임을 당하는 파란만장한 그의 생애가 우리를 비감스럽게 한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09-04-02 23:03:53 한국사(으)로 부터 이동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