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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고려 국경선’은 학계의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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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고려 국경선’은 학계의 직무유기!

고조선연구소 학술회의에서 바른 고려 국경선 발표


민족NGO면 편집장
기사입력 2017-06-05

[민족NGO기사] 5월 26일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주최한 ‘일본에 의해 왜곡된 고려 국경선의 실체는?’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는 고려와 조선초기의 국경선이 현재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 표시된 압록강선이 아니라 요하선이고, 평양도 현재의 평양이 아니라 요양이며, 한반도 안으로 알려진 윤관의 9성과 서희의 강동6주도 각각 중국 흑룡강성의 선춘령과 요녕성의 요하변이었다는 주장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발표되었다.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는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과 공동주최로 열렸는데,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 복기대 교수의 사회로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의 윤한택, 강원대학교 사학과의 윤은숙ㆍ남의현, 경복대학교의 이인철 교수 등이 각각 다른 자료와 접근을 통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공통의 결론으로 가는 발표를 했다. 그 발표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함으로써 고려~조선 초기 우리나라의 서북, 동북 국경선에 대한 국민들과 주류사학계의 인식변화를 촉구하고자 한다.

“식민사학 극복을 적극 지원하겠다!” 축사
공동주회자인 김세연 의원은 “현재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사편수회 편찬 『조선사』의 상당부분을 그대로 따르는 교과서를 가르치고 있다. 19대 국회의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지도를 답습하는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을 중단시켰고, 독도 영유권을 입증 및 공개하였다. 앞으로 고려의 국경선을 찾는 것이 우리 역사를 되찾는 마중물이 될 것을 확신하면서 예산편성으로 지원하겠다”고 환영사를 했다.

국회 문화관광체육위원장인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은 축사를 통해 “동북아는 역사 전쟁 중이다. 국정교과서 문제와 관련 주로 현대사를 가지고 논란을 하면서 고대사 문제에 소홀해졌는데 앞으로 국회차원에서 적극 관심을 갖겠다”고 했으며,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은 “바른 역사 회복에 노력하는 사람을 학계에서는 이단아처럼 보고 있으므로 소수가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역사의 정립이 매우 중요하므로 국회에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한 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우리가 중국 측의 역사왜곡에 너무나 허술하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 동북아역사특위 활동을 하다 보니 우리 역사학계에 너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20대 국회에서도 동북아특위의 활동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축사를 했다.

고려의 서북 국경 압록(鴨淥)은 요하, 현 압록(鴨綠)은 후방 방어선
첫 발표에 나선 윤한택 교수는 ‘요ㆍ금 시기의 압록(鴨淥)과 압록(鴨綠)을 중심으로 본 고려의 서북 국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지를 발표했다.

“고려의 서북 국방 방어체계가 성립한 것은 요와 금의 교대시기 압록(鴨淥)강의 거점 도시인 보주가 고려에 재귀속된 12세기 초반이었다. 압록(鴨淥)강은 현 요하의 철령지역 지류로 비정되는데, 이것을 『고려사』 지리지 서문에서 ‘서북으로는 당 이래로 압록(鴨綠)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의 경우 선춘령을 경계로 삼았다’고 기술하였고, 이런 기록은 예종, 선종조의 기록에서도 보인다. 모두 ‘압록(鴨綠)’이라고 잘못 표현하여 현재의 압록강과 혼돈을 일으키게 한 시발점이다.

그런데 동문선에서는 선종 때(1088년) 거란에 보낸 표문에서 압록(鴨淥)이라고 기술하고 있고, 『고려사절요』에서는 압강(鴨江)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당서』에는 ‘마자수는 압록(鴨淥)수라고도 부르며, 평양은 그 동남쪽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고려사』 「지리지」 의주조에서 압록강이 마자수라 한 것과 비교하면 鴨綠과 鴨淥이 같은 강임을 알 수 있다. 『요사』 「지6」 병위지하에는 (고려와는)‘동경에서 압록(鴨淥) 서북봉까지를 경계로 삼았다’는 등 압록(鴨淥)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압록강에 연해 있는 여러 지명들이 모두 현재 요녕성 요하 연안이다. 그 후에 나온 『원사』에도 鴨淥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니 고려의 서북 경계인 압록은 요하이다.”


서희의 강동6주는?
윤 교수는 또한 서희의 강동6주와 관련된 기록들을 조사하여 현재 교과서에 나오는 압록강 이남이 아니라 요하 동쪽 지역임을 밝혔다. 그는 『고려사절요』에서 ‘서희가 협상을 통하여 압록강(鴨綠江) 내외 여진 거주지를 반환받도록 약속 받았고, 그 후 박양유를 사신으로 보내 해당지역을 반환받았다’고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요사』와 『요사습유(遼史拾遺』에서는 ‘압록(鴨淥) 동쪽 수백 리 땅을 하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후에 나온 『요사휘편(遼史彙編)』에서는 똑 같은 내용인데 압록만 鴨綠이라고 기술하고 그 위치도 청나라 때의 『통감집람』을 인용하여 현재의 압록강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고려 당시의 기록인 『요사』에는 서희가 회복한 강동6주는 고려와 요와의 국경선이었던 ‘압록강(鴨淥江=요하) 동쪽 수백 리’라 표기하였는데, 『고려사』가 편찬된 조선 초기 이후에 편찬된 『송사』나 『금사』 등 한ㆍ중 대부분 책에서는 점차 압록강(鴨綠江)으로 바뀌었다. 가장 앞선 기록인 『요사』에 맞춰 고려시대의 서북 국경선은 압록강(鴨淥江=요하), 회복한 강동6주는 요하 동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천리장성도 현재 교과서에 나오는 압록강 어구~원산만 선이 아니라 요와의 외교문서 등을 근거로 요하 동쪽에 있었을 개연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압록강(鴨綠江)은 후방 방어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발음이 압록강(鴨淥江)과 같다보니 혼란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고려 동북 국경 윤관의 9성은 흑룡강성 수분하 일대
두 번째로 경복대학교 이인철 교수는 윤관의 9성을 중심으로 고려 중기 동북국경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는 앞에서 본 『고려사』「지리지의」 ‘동북은 선춘령을 경계로 한다’는 조항과 관련 교과서에는 윤관의 9성의 위치가 ‘함흥평야 일대설’ ‘길주 이남석’ ‘두만강 이북설’ 등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면서, ‘길주 이남설’은 조선시대 소중화 입장, ‘함흥평야설’은 일제의 왜곡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이를 학문적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두만강 이북설’은 고려사, 세종실록, 용비어천가 신증동국여지 승람 등에서 근거내용을 찾아서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문헌 자료에 나오는 거리와 지명 등을 근거로 현지를 여러 차례 답사하여 육관의 9성이 두만강 이북 700리, 흑룡강성 수분하 일대와 연변 등 길림성 지역에 있었으며, 연해주 일대까지 국가의 강력으로 경략하려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길주이남설’은 한백겸의 『동국지리지』(1615)에서 처음 제기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사대주의적인 정통론으로서 정약용의 『아방강역고』가 대표적 인식으로서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우리 역사강역을 한반 내부로 설정하려 한 데 따라 두만강 이남에 위치시킨 것이라 비판했다.

‘함흥평야설’은 일제의 식민사관 중 ‘반도사관’에 의한 연구결과로서 1913년 쓰다 소우키치, 1921년의 이케우치 히로시, 1931년 이나바 이와키치 등의 논문에 나타나는데, 이들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근본 사료에 나오는 공험직과 선춘령비조차 부정하고, 윤관이 의주, 동태, 평융 세 성을 쌓아 남쪽 백성들을 이주시켰다는 기록에서 세 성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함경남도 덕원, 함주 지역으로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광복 이후에 이런 설에 대한 학문적 비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1990년 국사교과서에까지 반영되었으며, 그 후 일부 교과서에서는 세 가지 설이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면서, 이처럼 우리 사학계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두만강 이북설’은 이익, 이종휘 등 실학자들과 1970년대 이후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었다고 한다. 근거는 『고려사』의 ‘예종 2년(1107)에 윤관과 오연총이 여진을 쳐서 쫓아내고 9성을 설치했으며, 공험진의 선춘령에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았다’ ‘의주, 동태, 평융, 함주, 영주, 웅주, 길주, 복주, 공험진이 북계의 9성이다’는 기록과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효종실록 등과 성호사설에 나와 있는 ‘공험진 이북은 요동에 부속시키고 이남의 고을들을 모두 본국의 소속으로 하였다’ ‘윤관의 비가 선춘령에 있고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다’는 여러 내용과 공험진까지의 거리와 방향 등과 용비어천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공험진ㆍ선춘령의 현재 위치를 찾아내고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현지를 수차 답사한 결과 고대의 선춘령은 현재의 고려령, 공험진은 오배산성임을 확인했으며, 그 위치는 흑룡강성과 길림성 지역에 걸쳐 있는 소하강(대수분하)과 속평강(소수분하)가 만나 수빈강이 되는 지역 일대임을 밝혔다.


고려와 원나라에서는 요ㆍ심 지역의 고려 영향력 인정
강원대학 윤은숙 교수는 ‘요ㆍ심 지역은 풍부한 물산을 배경으로 유목민이나 정부민들이 끊임없이 유입되어 혼거하는 일종의 다민족ㆍ다문화 도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200여 년 간 고구려의 안정적 지배를 통해 요양을 요동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지로 부상시켰으며, 당이 고구려에 이긴 후 안동도호부를 설치한 후 고구려 유민들을 이주시켰고, 거란도 928년에 동단국을 요양으로 옮기면서 발해유민들을 요ㆍ심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요사』 『금사』와 『원사』 「지리지」에서는 한결같이 요양이 고조선, 고구려와 발해의 영역이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그랬기에 다수의 한반도 선주민들이 대대로 거주하던 곳이었고, 그래서 몽골도 자발적으로 귀순해 오는 고려인들을 요.심 지역에 거주하게 했다’고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귀순한 홍복원이 요양에 거주하기를 희망하자 이를 받아들이고 요양고성을 치소로 고려인들을 통할하게 한 것도 대대로 한반도 역사주체들이 거주해온 것이기 때문이었으며, ‘충선왕이 1307년 심양왕에 책봉된 후에는 심양지역에 대한 지배권이 더욱 확고해졌음’도 밝혔다.

따라서 당시 고려는 요양과 심양 일대를 고려의 통치력이 미치는 범위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원나라가 이 지역을 점령했지만, 지속되는 추쇄요청에 응했다는 것은 이 지역민들을 고려에 예속된 민으로 인식했고, 요양과 심양 일대가 대대로 한반도 선주민이 거주했던 고려 영역이라는 인식이 작용했기에 가능했다는 결론을 맺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1370년에 전격적으로 단행된 고려의 요동정벌에서 확연히 드러난다면서, 바로 이 지역에 대한 고려의 주도권을 확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명대 한ㆍ중 국경선은 요하
마지막으로 발표에 나선 남의현 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현재 중국과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조선과 명의 국경선을 압록강으로 긋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고려와 원의 국경선이 조선과 명의 국경선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만주 지역은 현재의 강단사학에서 보더라도 고조선, 고구려, 발해 때까지 우리 영토였고, 지금도 영토다툼이 있는 곳이기에 매우 중요한 데도 우리가 만주를 소홀히 하고 있는 사이에 중국사로 만들면서 역사지명도 사료적 근거없이 자의적으로 우치를 정하고 있다. 시급히 전문가 양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언제부터 평양이라는 이름이 생겼는지도 모르는 북한의 평양이 고대사의 중심이 되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고, 언제부터 압록강이라 불렀는지 알 수 없는 현재의 압록강이 고대 사료에 나오는 압록수, 압록강으로 둔갑하여 한반도의 역사를 만주에서 단절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비록 19세기 이전에는 현재와 같은 국경의 개념이 없었을 것이므로 자연장애물이 그 역할을 대신했을 것이지만, 한ㆍ중 간의 국경사 연구는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제대로 정립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중국과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명과 조선의 국경선을 압록강으로 확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사료들은 압록강 북쪽 180리 지점, 그리고 1480년 이후에는 봉황성에 구경 책문을 설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분명히 우리 교과서도 새로 쓰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녕부의 위치
현재 명나라 동녕위 설치 위치를 현재의 평양으로 말하고 있는데, 1270년 당시 북한 평양이 서경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없다. 북한의 평양이 서경이나 평양으로 불린 것은 한참 후대의 일이다. 중국 기록에 의하면 원나라에 의해 동녕부가 설치된 자리가 요양이며, 요양의 다른 이름이 서경이라고 되어 있으며, 동녕부가 동녕로로 승격되었고, 명이 요동을 차지한 후에 동녕위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사』 지리지에서도 “동녕로는 원래 고구려 평양성으로 장안성이라고도 한다. 당나라가 고려를 정벌할 때 평양성을 공격하자 동쪽으로 1000여리를 옮겨갔는데 이곳은 옛 평양이 아니다”고 하였으며, 명나라 때 요양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고려인들을 묶어 동녕위가 설치되었는데, 이에 대한 기록은 최부의 표해록에서 ‘요양은 원리 고구려의 도읍인데 당나라에 뺐긴 후 동녕에 성을 쌓았다’고 기록하여 요양이 동녕이며 고구려의 옛 수도 평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이곳이 고려의 서경이니 북한이 평양이 서경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재 학계의 고려 국경선은 토론이 대상이 아니라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다!
사회자 복기대 교수는 마지막으로 총 정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연구에서 국경사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여기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와 중국, 일본과의 국경사를 들여다보면 ‘원래 사서가 전하는 내용과 현재 인식하고 있는 국경 관련 내용에 너무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하여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잡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꼬인 근본적인 원인이 고구려의 평양성 위치에 있다.

그런데 고대로 갈수록 그 차이가 점점 더 커지므로 그 연결지점인 고려 시대의 국경사를 알면 앞과 뒤의 국경사를 바로잡는 데 큰 기여가 될 것 같아서 『고려사』『고려사절요』 요ㆍ금ㆍ송ㆍ원대의 자료를 비교해보니 어느 지역 일부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어느 선을 기준으로 그 외 지역은 모두 빠져 버림으로써 원 사서의 기록에 비해 많게는 2배 정도가 줄어든 것을 발견하여 이번 학술회의를 하게 되었다.

현재의 교과서에 나와 있는 ‘괴이한’ 고려시대 국경선은 ‘반도사관’의 뿌리인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조선역사지리』(1913년 발행)의 내용과 같다. 아직도 조선총독부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김상기, 김구진, 윤무병, 방동인, 최규성, 이인철 등의 노력이 있었으나 서북 경계인 압록강의 위치 비정문제로 번번히 막혀버렸었는데, 이제 학계에서 꼼짝도 못할 정도로 밝혀졌다. 이것으로 1897년 대한제국 선포문에 ‘조선의 영토가 남북 4천리’라고 되어 있는데, 1909년 소위 간도조약에서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이 확정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우리 역사학계가 하루 빨리 북방사를 비롯한 국경사를 바르게 정리해야 한다. 최근에 학계에서 ‘영토가 크다고 좋은 것만이 아니다’는 주장도 있으나 크고 작고가 아니라 ‘역사에 있었던 것을 그대로 확인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기본자세다. 바르게 정리되는 날을 앞당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역사의병대 관계자는 이날 학술회의를 지켜본 역사의병대 및 민족사학자들이 한결같이 ‘아니, 이 정도로 명확한 근거사료가 있는데도 무시하고,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으로 교과서를 만든 우리 사학계는 도대체 뭐냐? 고대사뿐 아니라 중ㆍ근세사에 대해서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며 강단사학을 불신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 “20대 국회가 새정부 출범과 함께 바른 역사 복원에 기여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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