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방의 출생지 풍읍 서쪽 100리 쯤 되는 선보(單父 : 지금의 산동성 선현(單縣) 경내)에 여공(呂公)이라는 협객의 우두머리가 살고 있었다. 여공이 선보의 원수를 피해 평소에 사이가 좋았던 패현의 현령을 찾아와 손님으로 머물다가 결국 가족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패현의 호걸과 관리들은 현령이 손님으로 극진히 대하고 있는 여공을 찾아와 축하를 드릴 때 하례금을 바쳤다. 그때 패현의 주리(主吏)①로 있던 소하(蕭何)는 여공을 위해 들어오는 돈과 재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소하가 현의 여러 유력자들에게 말했다.
「가져온 예물이 천 전 이하인 사람은 당하(堂下)에 앉으시오.」
정장이었던 유방은 관아의 뭇 아전들을 업신여겼음으로 거짓으로 이름첩에 ‘하례금 만전’ 이라고 써넣었으나 사실은 한 푼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름첩을 받아 살펴본 여공은 만전의 하례금을 냈다고 적힌 유방의 이름을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이윽고 유방이 들어오자 여공이 자리에 황망히 일어나 문 앞에까지 나가 맞이했다. 여공이란 사람은 평소에 남의 관상을 보기를 좋아했다. 유방의 관상과 골상을 살펴본 여공은 더욱 극진히 대하며 그를 안내하여 좌석에 앉게 했다. 소하가 보고 말했다.
「유계는 원래 큰소리를 자주 치나 이루어지는 일은 드뭅니다.」
유방이 여러 손님들을 무시하고 좌당으로 들어가더니 거리낌 없이 상좌에 앉아 결코 양보하는 기색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술자리가 끝나갈 즈음 여공은 유방에게 눈짓을 해서 뒤에 남아 있도록 했다. 여공이 유방을 향해 말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의 관상을 보기를 좋아했소.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관상을 봐 왔지만 공과 같은 상을 본 적이 없소. 원컨대 자중자애 하시오. 마침 저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데려가 공의 집안 청소나 하는 첩으로 삼아주었으면 하오.」
이윽고 술좌석이 파해 내실로 들어간 여공을 본 그의 부인이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은 매일 우리 딸이 뛰어난 애라고 하면서 귀인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더욱이 당신과 친한 패현의 현령이 청한 혼사도 허락하지 않았으면서, 오늘은 어찌하여 유계(劉季) 같은 불한당에게 주기로 허락했습니까?」
여공(呂公)이 대답했다.
「이 일은 아녀자가 상관할 일이 아니오.」
여공은 결국은 그의 딸을 유방에게 시집보냈다. 여공의 딸 여치(呂雉)가 후의 여태후(呂太后)다. 여치는 후에 유방과의 사이에 한혜제(漢惠帝) 유영(劉盈)과 노원공주(魯元公主)를 낳았다.
주석
①주리(主吏) : 진나라 때 생긴 지방의 관리로 군수나 현령에 속하여 인사를 제외한 나머지 업무를 관장했다. 우리 조선시대 이방에 해당한다.
2020-02-02 09: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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