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참사기의(斬蛇起義)
- 백사를 베고 기의하다. -

유방이 정장으로 있을 때 늘상 휴가를 청하여 집에 와 있곤 했다. 유방이 집에 와 있던 어느 날, 두 애들을 데리고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있던 여치에게 길을 가던 노인 한 사람이 물 한 그릇을 청했다. 여치가 노인에게 마실 물을 주고 음식을 주어 요기를 시켰다. 노인이 여치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상을 말해주었다.
「부인은 참으로 천하에 귀한 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에 여치가 두 애들을 불러 관상을 보게 했다. 노인이 유영(劉盈)의 상을 보더니 말했다.
「부인이 귀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사내 아이 때문입니다.」
그 노인이 여치의 딸도 역시 귀할 상이라고 했다. 노인이 간 후에 마침 행랑채에서 나온 유방에게 여치가 지나가는 손님이 자기와 애들의 관상을 보고 모두 귀하게 될 상이라고 했던 일을 상세하게 고했다. 그 노인이 어디 있냐고 유방이 묻자 여후는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유방은 바로 노인의 뒤를 쫓아가 불러 세우고 자기의 관상은 어떠냐고 물었다. 노인이 대답했다.
「지금 막 당신의 얼굴을 보니 귀부인과 자녀들의 상과 비슷합니다. 당신의 관상은 간단히 말해 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유방이 감사하다고 하며 말했다.
「진실로 제가 노인장의 말대로 그리 된다면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후에 유방이 과연 귀하게 되어 그 노인을 찾았으나 그때는 행방이 묘연해 찾을 수가 없었다.
유방이 정장의 신분으로 패현의 형도(刑徒)들을 여산(驪山)의 진시황릉 노역장에 압송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도중에 많은 형도들이 도망치자 유방은 마음속으로 자기가 여산에 도착할 때쯤이면 모두 도망쳐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유방이 행렬을 인솔하여 풍읍(豊邑)의 서쪽에 있는 큰 연못가에 이르러 행진을 멈추고 술을 마시다가, 밤이 되자 형도들을 풀어주며 말했다.
「그대들은 모두 가고 싶은 대로 가도 좋다. 나 역시 도망쳐야 되겠다.」
형도들 중 십여 명의 장사들이 스스로 원해 유방의 뒤를 따랐다. 고조가 술에 취해 한 밤중에 호수가의 오솔길을 걷다가 한 사람을 앞으로 내 보내 길을 찾게 했다. 그 사람이 돌아와 유방에게 고했다.
「앞에 큰 뱀이 들어 누워 길을 막고 있습니다. 돌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
술에 취한 유방이 말했다.
「장사가 길을 가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유방이 앞서더니 칼을 뽑아 그 뱀을 내리쳤다. 그 뱀은 두 동강이가 나고 길이 뚫리게 되었다. 그리고 일행이 몇 리를 더 가다가 취기가 돈 고조는 땅 위에 들어 누어 잠이 들었다. 유방의 뒤를 따라오고 있던 사람들이 뱀을 죽인 장소에 이르자, 노파 한 사람이 소리 높여 슬피 울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우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노파가 대답했다.
「어떤 사람에게 살해된 내 아들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물었다.
「당신의 아들이 무엇 때문에 살해되었단 말이오?」
노파가 대답했다.
「내 아들은 바로 백제(白帝)의 아들이오. 뱀으로 변하여 길을 가고 있는데 적제(赤帝)의 아들에게 화를 당하고 말았소.」
노파가 자기들을 놀리는 줄로 생각한 사람들이 혼내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유방이 누워 있는 곳에 사람들이 당도했을 때는 그는 술에서 깨어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본 일을 모두 유방에게 이야기했다. 유방이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즐거워하며 스스로 그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유방을 따랐던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그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진시황이 일찍이 ‘동남쪽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라고 하면서 동쪽으로 순수하여 그 기운을 누르려고 했다. 유방은 즉시 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도망쳐, 망(芒)과 탕(碭)망(芒)과 탕(碭) : 지금의 안휘성 탕산현 동남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망산은 북쪽에 탕산은 남쪽에 있다.
두 산 사이의 연못가에 있는 석굴 사이에 몸을 숨겼다. 여후가 사람들을 데리고 유방을 찾아 나설 때마다 항상 쉽게 찾아냈다. 유방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어떻게 그렇게 쉽게 찾아낼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여후가 대답했다.
「당신이 머무는 곳 위에는 항상 운기(雲氣)가 서려 있어 이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유방이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패현의 많은 자제들이 집을 나와 유방의 대열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