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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2 14:51:387218 
춘추전국시대의 전투방식-상
양승국
일반


전차전에서 보병전으로


중국에서 보병은 고대 여러 병과 가운데 가장 먼저 생겼다. 그러나 전쟁 수단이 진보함에 따라 보병은 차전(車戰) 시대의 전차병(戰車兵)보다 하찮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청동기를 대신하여 철기가 병기의 소재로 사용되어 쇠뇌가 발명되고 아울러 군대의 장거리 원정(遠征)이 가능해짐에 따라 전차의 지위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차병은 이전과 달리 보병을 보조하는 병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보병은 중요한 독립 병과로 다시 한 번 전투부대의 중심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보병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719년 송(宋)과 위(衛)두 나라의 연합군이 " 정나라 도병(徒兵)을 패퇴시키고 곡식을 빼앗아 돌아왔다(敗鄭徒兵, 取其禾而還-좌전)"라는 구절일 것이다. 예문에 나오는 '도병(徒兵)은 도보(徒步)하는 병사' 즉 보병을 말한다. 상(商)왕조와 서주(西周)왕조 시대에 전차를 타고 전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귀족이었고, 중인(衆人), 다신(多臣), 서민(庶民) 등으로 이루어진 보병은 단지 전차부대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춘추시대 정나라와 당진(唐晉) 등 중원 국가들은 항시 융(戎)과 적(狄)의 이민족들의 침입에 대비해야 했다. 융. 적 등 소수 이민족은 주로 산림이나 계곡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기병(騎兵)보다는 보병 위주로 공격을 감행했다. 그래서 중원 국가들은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원래 보유하고 있는 예속보병(隸屬步兵 : 군대 조직 편제에 들어 있지 않고 전차 병과 등에 예속된 보병) 이외에도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건제보병(建制步兵 : 군대의 조직 편제에 들어가 있는 보병)을 만들어야 했다.


기원전 633년 당진의 문공이 삼군(三軍)을 만들고, 이듬해 다시 '삼행(三行)을 만들어 북쪽의 이민족인 적(狄)의 공격에 방어했다(作三行而禦狄)'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행(行)'은 원래 예속보병(隸屬步兵)에 속하는 '도졸(徒卒)'의 대형을 일컫는 명칭이다. 고고학자 왕학리(王學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행(行)이 보병을 의미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삼행(三行)'은 당진(唐晉)에서 최초로 출현한 건제보병(建制步兵)이라고 했다.


건제보병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상당히 긴 세월 동안 예속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들은 주로 서쪽이나 북쪽의 변방에서 이민족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으며, 중원의 주력부대는 여전히 전차부대였다.


기원전 541년 " 당진의 중행목자(中行穆子 : 순오(荀吳)를 말함.)가 무종(無終 : 지금의 천진시 계현(薊縣)에 이민족인 산융(山戎) 족이 세웠던 춘추 말기의 나라)을 포함한 여러 이민족의 군사들을 태원에서 물리칠 때 보병을 위주로 싸움에 임한 것이다. 그때 같이 참여했던 장군 위서(魏舒)가 말한 기록이 있다. " 저들은 보병, 우리는 전차가 주력부대인데, 전투를 하는 장소는 좁은 곳이다. 많은 병졸을 갑사(甲士 : 전차를 타고 싸우는 전사)와 공동으로 전투에 임하게 한다면 반드시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갑사들에게 전차에서 내려 싸울 것을 명령해 주시기 바라며 나부터 전차에서 내려 싸움에 임하겠습니다." 이에 당진군이 전차를 버리고 전차병들은 모두 보졸이 되니 5승을 이루는 부대는 1승에 3명씩 전체 15명의 갑사를 3개의 대오로 이루어진 보졸로 만들었다.


당진군이 '전차를 버리고 병사들을 모두 보병으로 삼았다(毁車以爲行)'라고 한 것은 보병과 갑병을 배합하여 작전을 행했다는 뜻으로 중원에 이미 건제보병을 이용하여 작전을 수행한 부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보병부대는 전차부대를 임시로 개편하여 만든 것으로 유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심지어 '오랑캐가 그것을 보고 웃으며, 당진군이 진(陣)을 갖추기도 전에 그것을 깔보았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건제보병은 마침내 춘추 말기에 국내 전쟁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보병의 전범이 되었으며, 후세의 여러 전쟁에서 다원화되고 많은 병과가 동시에 투입되는 대규모의 속전속결 방식의 토대를 마련했다.


기원전 506년 백거(柏擧 : 지금의 호북성 마성시(麻城市))에서 오나라의 정벌군과 초나라의 방어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 기록에 의하면 ' 오와 합려(闔閭)는 힘이 센 장사 500명, 발이 빠른 군사 3000명을 선발해 진(陣)의 선두에 세우고 초나라와 전투를 벌렸다. 그 결과 다섯 번 싸움에 다섯 번 이기고 마침내 초나라의 도성 영성(<呈+邑>城)을 점령할 수 있었다. 초나라 군사들은 계속해서 진격하여 비려( 廬)에 이르고 다시 진격하여 서쪽으로는 파촉(巴蜀), 북쪽으로는 제(齊)와 당진(唐晉)에 이르러 중원 제후국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로써 합려는 중원의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리에 올랐다.'


기원전 482년 합려의 뒤를 이은 오왕 부차(夫差)는 군사를 이끌고 북상하여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다. 오군의 군대 편제는 100명을 한 단위의 철행(徹行)으로, 다시 100개의 철행을 방진(方陣)으로 삼았다.


이어서 시대는 바뀌어 전국시대에 접어들자 각국이 보유한 보병의 숫자는 적게는 2-3십만, 많게는 백만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보병은 중요한 무장부대로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점차 성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섬진이 전국시대 때 기본 전투대형으로 삼았던 것은 전차와 보병의 유기적인 협조체제였던 어려진(魚麗陣)의 변형된 형태였다. 어려진의 경우 전차와 보병이 합동작전을 폭넓게 펼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선이나 3선의 병력배치를 돌파하여 이로부터 강력한 종심(縱深)을 만들고 본갑부단(本甲不斷 : 고대인들은 항상 칼의 모양으로 군진(軍陣)을 비유했다. 봉(鋒)은 검의 끝 부분이고 본은 검의 뒷 부분이다. 그래서 선봉부대를 일러 말갑(末甲), 그 뒤를 쫓아가는 부대를 본갑(本甲)이라 한 것이다.)의 웅장한 기세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날이 갈수록 보병과 기병이 전쟁터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중국의 중원천지를 밀집대형으로 종횡무진 누볐던 수백 수천의 대규모 전차부대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중국 고대의 전쟁에서 전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은(殷)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일 천여 년 동안 전차는 변화하고 발전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전차는 그 종류나 편제, 장비, 전술 따위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났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사회의 경제 형태가 변혁되고 또한 전쟁의 규모도 점차 확대됨과 동시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참극이 연출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전차 역시 점차 시대의 충격을 받아들여 마침내 철저하게 자신의 운명과 지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대변혁은 조로 두 차례에 걸친 큰 전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첫 번째는 기원전 707년 주나라와 정나라가 싸운 수갈(繻葛)에서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정나라의 공자원(公子元)은 처음으로 전투대형에 어려진(魚麗陣)을 사용했다. 그 방법은 " 전차를 전방에 두고 보병 대오를 뒤에 배치하여, 보병 대오가 그 빈틈을 채운다(先偏後伍, 五乘彌縫)"라는 것인데 보병을 전차의 양측과 후방에 배치하여 전차와 보병이 협동 작전을 구사함으로써 각기 최대의 전투력을 발휘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과거의 전차와 보병을 일선에 일괄 배치하는 전통적인 대형을 변화시킨 것으로, 중국의 전차전 역사에서 첫 번째 변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전쟁을 통해 장군들은 '병졸과 전차의 화목한 관계가 전투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몇백 년이 지난 후 당진의 위서(魏舒)는 북방의 적인(狄人)들과 싸울 때 전차를 버리고 병사들을 모두 보병으로 삼은 훼차이위행(毁車以爲行)의 방법을 사용하여, 아예 전차병의 대형을 보병의 전투대형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다. 이는 중국 전쟁사에서 보병의 전차병에 대한 가장 큰 혁명이었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용맹한 보병부대를 전투의 주력으로 삼고, 낡은 방식 그대로 중무한한 갑사를 전쟁 무대에서 몰아낼 때, 보병과 합동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차병이 새롭게 탄생했다. 이는 보병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능히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차부대로서 전국시대 후기에 출현한 경차병(輕車兵)이다. 경차병은 기존의 '전차와 전차끼리 대결'하는 전법을 바꾸어 다른 병과와 협동으로 작전하면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특징은 무엇보다 공격 전술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전쟁에 임하는 쌍방이 전쟁터에서 진을 친 후 먼저 용맹한 병사를 진 앞에 세워 도전, 즉 싸움을 건 다음 이어서 쌍방의 군대가 결전을 벌이게 된다. 이때 민첩하고 날랜 경전차가 적진을 돌파하는 임무를 맡는다. 병법서 <오자(吳子). 응변(應變)>의 곡전지법(谷戰之法)도 경전차를 활용한 작전이다. 이는 양쪽으로 높은 산이 솟아있고 중간에 협곡이 있는 지형에서 갑자기 적군을 만났을 때 은폐시켜 놓은 전차를 산 바깥에서 맹렬하게 적군을 공격하여 혼란에 빠뜨리고 붕괴시키는 전법이다.


군사적 역량을 지닌 쌍방이 전쟁터에서 진을 칠 때가 되면 먼저 경전차를 군대의 양익으로 보내 경계 임무를 맡도록 한 다음 이어서 진법에 따라 대오를 배열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손자(孫子)>의 <행군(行軍)>에서 말하는 "경전차를 우선 측면에 출동시키는 진법인 것이다." 전차는 충격력이 크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적군의 진지를 공격하는 데 중요한 군사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악 지형이나 계곡 등 좁은 지형일 경우에는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이에 비해 광활한 평야에서 적절한 시기에 출격한다면 전차는 지극히 유효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전차전이 도태된 이후에도 전차는 다른 병과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전투 수단으로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산동성 임기시(臨沂市)의 은작산(銀雀山)에서 발견된 한나라 때 무덤에서 출토된 죽간(竹簡)의 손빈병법(孫 兵法)의 팔진(八陣)을 보면 " 전차와 기병이 전쟁을 할 때 평이한 곳은 전차를 많이 사용하고, 험준한 곳은 기병을 많이 쓰며 액(厄 : 양쪽은 높고 가운데는 좁은 곳)에서는 쇠뇌를 많이 쓴다."라는 구절이 있다. 당시의 전황으로 볼 때 평탄한 지형에서 작전을 하면 전차 한 대가 80명의 보병이나 10명의 기병을 막아낼 수 있다고 했으나, 만약 험한 지형일 경우 그 위력은 평소의 절반 밖에 되지 않고 심지어 그보다 못할 경우도 많았다.


역사적으로 계릉(桂陵)의 전투는 '적의 빈틈을 공략하여' '위나라를 포위하고 조나라를 구한' 전쟁으로 유명한데, 이 전투에서 제나라의 대장 전기(田忌)와 그 군사 손빈(孫臏)은 경전차를 대량(大梁)으로 급파해 전차로 기습하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전투는 전기와 손빈의 탁월한 군사적 지휘 능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일 뿐만 아니라 " 경전차는 천리라도 달려가 아군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이들에게 알려 준 일화가 되기도 했다. 원래 경전차는 적군이 방심하고 있을 때 돌연 습격하거나 전혀 예상 밖의 상황에서 적군을 교란시키고, 기회를 틈타 상대방의 목표를 바꾸도록 만들거나 군심을 동요시키는 역할을 한다. 양군이 격전을 벌일 때, 적군의 진공에 직면하여 쇠뇌로 더 이상 방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열세에 놓인 쪽은, 서둘러 전차를 연결시켜 이른 바 '거궁(車宮)'을 만들어 진영의 보호벽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단, 보호벽이 형성되면 지휘관은 즉각 전차 뒤에 숨어 있는 궁노수에게 몰려오는 적을 향해 쇠뇌를 발사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무기의 살상력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보호막을 형성할 수 있는 전차는 주로 무거운 '수거(守車)'들이다. 그러나 쌍방의 군세가 변화무쌍한 상황에서 응급을 요하는 경우는 경전차가 민첩한 기동력을 발휘해 방어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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