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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15 17:10:552443 
서(序)•나(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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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송(商頌) 서(序)

詩經集註-朱熹




契爲舜司徒 而封於商(설위순사도 이봉어상)

설이 순의 사도가 되어 상에 봉해졌다.




傳十四世而湯有天下(전14세이탕유천하)

그후 14세인 탕이 천하를 얻었다.




其後三宗1)迭興(기후삼종질흥)

그후 삼종이 차례로 나타나 상조를 부흥시켰으나




及紂無道 爲武王所滅(급주무도 위무왕소멸)

주왕이 무도하여 주무왕에 의해 멸망되었다.




封其庶兄微子啓於宋(봉기서형미자계어송)

무왕은 주왕의 서형 미자계를 송에 봉해




修其禮樂 以奉商後(수기예악 이봉상후)

그 예악을 닦아서 상나라의 제사를 받들게 하니




其地在禹貢徐州泗濱(기지재우공서주사빈)

그 땅은 우공편에 서주(徐州)의 사수(泗水) 강변에서


西及豫州盟猪之野(서급예주맹저지야)

서쪽으로는 예주(豫州) 맹저의 들판까지 이르렀다.




其後政衰(기후정쇠)

그 후 송나라의 정치가 쇠하여




商之禮樂 日以放失(상지예약 일이방실)

상나라의 예악은 날이 지날수록 없어졌다.




七世至戴公時(7세지대공시)

미자계로부터 7세인 대공(戴公)3) 때에 이르러




大夫正考甫(대부정고보)

대부 정고보(正考父)가4)




得商頌十二篇於周大師(득상송12편어주대사)

주나라 태사로부터 상송(商頌) 12편을 얻어




歸以祀其先王(귀이사기선왕)

송나라로 돌아와 상나라 선왕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연주했는데




至孔子編詩(지공자편시)

공자가 시경을 편찬할 때에 이르러




而又亡其七篇(이우망기7편)

또 그 중 일곱 편이 일실되었다.


然其存者(연기존자)

그러나 그 보존된 것도




亦多闕文疑義(역다궐문의의)

또한 빠진 문장과 의심스러운 뜻이 많으나




今不敢强通也(금불감강통야)

이제 감히 억지로는 통하게 할 수 없도다.




商都亳宋都商丘(상도박송도상구)

상(商)과 송(宋)은 박(亳)과 상구(商丘)에 도읍하였으니




皆在今應天府亳州界(개재금응천부박주계)

모두가 지금의 응천부(應天府)

박주(亳州)의 경계 안에 있다.







商頌1

那(나)

- 아름답도다--






猗與那與 置我鞉鼓(의여나여 치아도고)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하구나!

내 작은북과 큰북을 걸고




奏鼓簡簡 衎我烈祖(태고간간 간아열조)

북소리 둥둥 울리니

우리 열조가 즐거워하도다.




○賦(부)다. 猗(의)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하는 소리다. 那(나)는 많음이고 置(치)는 진열하는 것이다. 簡簡(간간)은 조화롭고 크다는 말이고 衎(간)은 즐거워함이다. 烈祖(열조)는 탕임금이라고 했으나 모씨(毛氏)는 ‘有功烈之祖(유공열지조) 즉 공이 있는 선조’라 했다.

○예기(禮記)에 상나라 사람들은 음악을 숭상하여 제사에 사용하는 희생(犧牲)의 냄새와 맛 즉 취미(臭味)를 이루기 위해 음악을 세 번 연주한 다음 희생을 맞이했다고 했다.

○안성(安成)의 유씨(劉氏)가 ‘ 무릇 소리는 양(陽)에 속함으로 음악은 양에서 나온다. 상나라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때 음악을 숭상하는 것은 먼저 양을 추구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安成劉氏曰凡聲屬陽 故曰樂由陽 商人祭祀 尙聲 所以先求諸陽者也). 구설에는 이 노래는 성탕(成湯)을 제사지낼 때 연주하는 음악이라고 했다.





湯孫奏假 綏我思成(탕손주가 수아사성)

탕임금의 후손들이 선조의 강림을 공손히 청하니

우리들에게 복록을 내리시도다




鞉鼓淵淵 嘒嘒管聲(도고연연 혜혜관성)

작은북 큰북 소리 우렁차고

부드러운 피리 소리 길게 울려




旣和且平 依我磬聲(기화차평 의아경성)

그 소리 이미 화합하고 평온하니

당상의 옥경(玉磬) 소리와 잘 어울리네!




於赫湯孫 穆穆厥聲(어혁탕손 목목궐성)

아아, 찬란히 빛나는 탕왕의 자손들이여!

맑은 그 소리 아름답구나!




○탕손(湯孫)은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이다. 奏(주)는 致(치), 進(진)과 통하고 假(가)는 格(격), 至(지)과 통하니 奏假(주가)는 음악을 연주하여 조상신의 강림을 청한다는 뜻이다. 綏(수)는 편안함이다. 思成(사성)의 思(사)는 어조사고 成(성)은 備(비)고 備(비)는 즉 福(복)이다. 수아사성(綏我思成)은 곧 報福之詞(보복지사)이다. 淵淵(연연)은 심원(深遠)하다는 뜻이니 깊고 아득히 먼 것이고 嚖嚖(혜혜)는 청량(淸亮)과 통하니 맑고 밝은 것이다. 磬(경)은 石磬(석경)이 아니라 玉磬(옥경)이니 당에 올라가 노래하는 음악이다. 穆穆(목목)은 아름다운 것이다.

○ 예기(禮記) 제의(祭義) 편에 ‘ 재계(齋戒)하는 날에는 생전에 거처하던 곳을 생각하고, 즐거워서 하신 말씀들을 생각하고, 평소에 품으셨던 뜻을 생각하고, 좋아하셨던 것이나 즐기셨던 것들을 생각하면서 , 재계 3일만에 제계하려고 하는 대상을 본다. 제사 날이 되면 방에 들어가 애연한 태도로 생존해 있는 조상을 뵙듯이 해야 하고, 돌아서서 나올 때는 숙연한 자세로 조상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처럼 해야 한다. 또한 제실 문밖에 나와서 들을 적에는 안타까운 자세로 조상들이 탄식하는 소리를 반드시 들어야만 한다.’고 했으니 이를 思成(사성)이라 한 것이다.

○소씨(蘇氏)도 말하기를 ‘ 보고 들은 것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나왔을 뿐이다.’ 예기와 소씨의 두 가지 설은 모두 옳다고 할 수 있다. 재계하고 생각하여 제사함에 보이고 들림이 있는 것 같다면 곧 이 사람을 이름이라. 정주(鄭註)에 잘못 빠지고 잘못된 것이 있기에 이제 바로 잡는다








庸鼓有斁 萬舞有奕(용고유역 만무유혁)

종과 북이 성대히 울리며

아름다운 온갖 춤이 찬란하니




我有嘉客 亦不夷懌(아유가객 역불이역)

우리의 가객께서 또한 기뻐하지 아니하랴.




自古在昔 先民有作(고재석 선민유작)

예로부터 옛날 선민들의 지음이 있으니




溫恭朝夕 執事有恪(온공조석 집사유각)

아침저녁으로 온화하고 공경하여

일을 함에 정성스러웠다.




顧予烝嘗 湯孫之將(고여증상 탕손지장)

내 증제와 상제를 돌아볼진저,

탕왕의 후손이 올림이니라.




○부(賦)다. 庸(용)은 ‘쇠북 鏞(용)’과 통한다. 역(斁)은 섞이어 무성한 모양이다. 奕(혁)은 차서(次序)를 지켜 아름다운 것이다. 작은북과 큰북과 피리 소리가 당 아래에서 일어나면 당 위에서는 옥경(玉磬)으로 도와 서로 차례를 빼앗음이 없게 되고, 이런 상태로 술잔을 아홉 번을 올린 후에 종과 북소리를 올려 온갖 무용을 뜰에서 추게 함으로 해서 비로소 제사의식이 끝나는 것이 이 장이 대체적으로 뜻하는 바다.

○가객(嘉客)은 선대의 후손으로 신분이나 제사를 돕는 자들이다. 이(夷)는 기뻐할 열(悅)과 통하니 ‘ 또한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의 뜻은 ‘모두가 기뻐하다.’라는 말과 같다.

○ 恪(각)은 공경함이다. 공경의 도라 함은 옛날 성현들이 행한 것으로 결코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국어(國語)•노어(魯語) 주(註)에 “ 민마보(閔馬父)가 말하기를 ‘ 옛 성왕이 전한 공경의 도는 감히 오로지 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 일컫기를 自古(자고)라 했고, 자고는 在昔(재석)이고 재석은 先民(선민)이다.’라고 했다,

○將(장)은 받드는 것이다. 탕(湯)임금이 蒸祭(증제)와 嘗祭(상제)를 돌아보심에 우리 탕왕의 후손들이 받들어 모시니 그 정녕한 뜻이 지극함으로 돌아보심이라! 증제는 겨울에 상제는 가을에 각각 올리는 제사다. 민마보(閔馬父)가 말하기를 ‘정고보(正考父)가 상나라의 유명한 송(頌)을 교정할 때에 그 편집 끝에 란사(亂辭) 운운했다는 것이 곧 이 시다’라고 했다(閔馬父曰正考甫, 校商之名頌 以那爲首, 其輯之亂曰云云, 卽此詩也). 란사(亂辭)란 시를 다 정리하고 난 후에 맨 끝에 시의 내용에 대해 적은 대의(大意)를 지칭하는 말이다.




[상송(商頌)]

서설(序說)에 “송나라 대부인 정고보(正考甫)가 상송(商頌) 12편을 주나라 태사에게 얻어 돌아와 그 선왕을 제사하였는데, 공자가 시를 편수할 때에 이르러 또 7편이 망실되었다.” 하였다. 혹자는 “7편은 정말로 망실된 것이 아니라 공자가 산삭하였다.” 하니, 이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무릇 상송은 애초 12편만이 아니었을 텐데 정고보가 가려 뽑은 것이다. 민마보(閔馬父)는 “정고보가 상나라 의 유명한 송(頌)을 교정하였다.” 하였고, 《노시(魯詩)》 주에 “유명한 송이란 상나라 의 아름다운 음악이니, 고보가 어긋나고 그릇되었을까 염려하여 태사에게 나아가서 교정한 것이다.” 하였다. 이로써 살펴보건대 고보가 가려 뽑은 것이 이미 정선된 것이었다. 12편은 모두 유명한 송이었으니 공자는 고보의 후손으로서, 의당 산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7편은 공자가 시를 편수하기 이전에 벌써 망실되었음이 분명하다. 6수의 생시(笙詩)는 소리만 남고 가사는 없으며 7편의 송은 편명조차도 아울러 망실되었으니, 이것이 공자가 송나라 의 문헌이 부족함을 한탄한 까닭인가?




[정약용이 대답하였다.]

《좌전(左傳)》과 《국어(國語)》로써 상고하건대, 여러나라 대부들이 상송을 인용하여 말한 것이 통틀어 7회가 보이지만 모두 지금 전하는 5편을 벗어나지 않으니, 7편의 망실은 이미 산시(刪詩) 이전에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문헌이 부족하다는 한탄이 어찌 까닭이 없겠습니까.

주송 청묘편(淸廟篇)은 문왕의 덕을 성대하게 일컬어서 “드러나지 아니할까 떠받들지 아니할까, 사람에게 미움을 받음이 없으시도다.” 하여, 비단 엄숙하고 공경하며 매우 분주하다는 말로써 제사를 돕고 일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일컫기만 할 뿐이 아니었는데, 상송의 이 시는 장내(章內)에 성탕(成湯)의 덕을 일컬은 말이 없고 일컬어 찬미한 바는 오직 탕의 후손으로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뿐이니, 이는 어째서인가? 이것이 상송과 주송 두 송의 체제가 같지 않은 점인가? ‘우리 열조(烈祖)를 즐겁게 하도다’의 한 개 ‘열(烈)’ 자가 어찌 탕임금 덕의 거룩함을 다 드러낼 수 있겠는가.




[송지렴이 대답하였다.]

명(明)나라 학자 주모위(朱謀●)가 이를 논하기를, “탕의 공덕이 위대하니 마땅히 서술할 만하지만 이 시가 다만 피리, 옥경(玉磬), 쇠북, 북의 소리만 든 것은 상나라 사람은 음악을 숭상하여 음악의 성대함이 바로 덕의 성대함이기 때문이다.” 하니, 이 설이 그럴듯합니다.

‘목목궐성(穆穆厥聲)’의 주에, “목목(穆穆)은 아름다움이다.” 하였으니, 이는 음악 소리가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탕임금 후손의 덕스러운 말소리의 아름다움이다.” 하니, 이 설은 어떠한가?




[김달순이 대답하였다.]

위아래 여러 구가 모두 음악 소리를 말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만 덕스러운 말소리라 할 수는 없을 듯하니, 혹자의 설은 잘못일 듯합니다.




[이상은 시경강의 상송(商頌) 나편(那篇)에 대한 문답이다.]




1)삼종(三宗)/ 2) 4대 태종(太宗) 태갑(太甲), 9대 중종(中宗) 태무(太戊), 22대 고종(高宗) 무정(武丁)을 말하며 모두 은나라를 부흥시킨 중흥조에 해당한다.




3)송대공(宋戴公)/ 기원전 800년에 즉위하여 766년에 죽은 송나라 군주로 미자계로부터는 정확히 11대에 해당한다.




4)정고보(正考父)/ 공자의 7대조로 정고보(正考甫)라고도 한다. 송상공 때 사마직을 지낸 공보가의 부친이며 송나라의 대공(戴公), 무공(武公), 선공(宣公) 3세 70년을 거쳐 보좌했다. 참고로 대공의 재위연도는 기원전 800- 766년, 무공 765년-748년, 선공 747-729년이다. 사기 공자세가에 다음의 기사가 있다. “정고보(正考父)는 대공(戴公), 무공(武公), 선공(宣公)으로부터 세 번 명을 받았는데 받을 때마다 더욱 공손했으며 그래서 정(鼎)에 세겨 넣기를 ‘ 첫 번째 명에 몸을 숙이고, 두 번째 명에 허리를 굽혀 절하고, 세 번째 명에는 큰절을 한 뒤에 받았다. 길을 걸을 때는 가운데를 걷지 않고 담장 곁에 붙어 다녔으나 아무도 감히 나를 경멸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솥에 ’풀과 죽을 쑤어 먹고살아 청렴하게 살았다’라고 기록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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