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중국사
1. 선사
2. 삼대
3. 춘추전국
4. 진한
5. 위진남북
6. 수당오대
7. 송요금원
8. 명청
9. 국공
10. 인민공화국
11. 통사
· 오늘 :  2,431 
· 어제 :  1,965 
· 최대 :  6,990 
· 전체 :  2,069,739 
 
  2004-05-11 14:49:376405 
문종의 일곱가지 계책과(文種之七策)과 토사구팽
양승국

오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문종칠계(文種七計)


첫째, 재물을 보내어 상대국의 임금과 신하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며

둘째, 곡식의 가격을 올려 그들의 창고를 비우게 하고 셋째, 아름다운 미녀를 보내어 그들의 마음과 의지를 빼앗고

넷째, 솜씨 좋은 목공과 좋은 재목을 보내어 그들의 궁실을 크게 짓게 하여 그 나라의 재물들을 탕진하게 만들 것이며

다섯째, 아첨을 잘하는 신하를 보내어 그들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여섯째, 직간 하는 충신들을 구석으로 몰아 스스로 죽게 만들어 그 나라의 임금을 보좌할 수 있는 인재의 벽을 얇게 만들고

일곱째, 그들로 하여금 사사로이 재물을 축적하게 하며 한편으로는 군사를 동원하여 대외원정 하게 하여 그 나라의 재정을 피폐하게 만든다.

(1. 捐貨幣, 以悅其君臣 2.貴 粟槁, 以虛其積聚 3. 遣美女, 以惑其心志 4. 遣之巧工良材, 使作宮室, 以 其財 5. 遣之諛臣, 以亂其謀 6.强其諫臣使自殺, 以弱其輔 7.積財練兵, 以承其弊.)


월왕은 옛날부터 문종(文種)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으나 오나라가 없어진 후부터는 문종의 재능이 소용없게 되고 오히려 그 재능으로 란을 일으키게 되면 아무도 그를 당해 낼 수 없게 된다고 걱정하여 마음속으로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를 죽일 만한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노나라에서는 계손씨(季孫氏), 맹손씨(孟孫氏), 중손씨(仲孫氏) 등과 노애공(魯哀公) 사이에 틈이 벌어져 애공은 삼가를 토벌하기 위해 월나라의 군사를 빌리기 위해 조빙한다는 명분으로 친히 월나라를 방문했다. 구천은 마음속으로 문종이 걱정이 되어 군사를 내어 노애공을 돕지 못했다. 노애공은 결국은 노나라에 돌아가지 못하고 월나라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월왕 구천이 갑자기 병문안을 한다고 하면서 병상에 누워 있는 문종을 방문했다. 문종이 할 수 없이 병상에서 일어나 월왕을 맞이하였다. 구천이 허리에 찬 칼을 풀어 옆에 세워 두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과인이 듣기에 ‘뜻 있는 선비는 몸이 죽게 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단지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닌가 만을 걱정한다(志士不懮其身之死, 而懮其道之不行)’라고 했오! 경은 나에게 옛날 오나라를 멸하는 계책 일곱 가지를 말했는데 과인은 그 중에 세 가지만을 행하였소. 그 세 가지 계책만으로도 오나라를 멸하였으니 나머지 네 가지 계책은 어디다 쓸 작정이요?」

「신은 그 계책이 어디에 소용이 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그 네 가지 계책을 이미 죽어 지하에 묻힌 오나라의 왕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소?」

말을 마친 월왕 구천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의 가마를 타고 가 버렸다. 월왕은 그가 앉을 때 풀어 놓은 칼은 가져가지 않고 그대로 두고 갔다. 문종이 칼을 들고 살펴보니 칼집의 겉에 촉루(屬鏤)라는 글이 써 있었다. 촉루검은 바로 오왕 부차가 오자서에게 주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사용한 칼이었다. 문종이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하였다.


「옛말에 ‘너무 큰 공은 보상받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옛날에 범려(范蠡)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은 월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다시 스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세 후에 사람이 있어 나를 자서와 같은 반열에 놓을 것이니 그렇게 원망만 할 일은 아니로다!」

문종은 즉시 촉루검으로 배를 갈라 죽었다.


문종이 이미 죽었음을 알고 크게 기뻐한 월왕은 그의 시신을 와룡산(臥龍山) 밑에 묻게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그 산을 종산(種山)이라고 불렀다. 문종을 장사지내고 일년 후에 해수(海水)가 들이닥쳐 산허리에 구멍이 크게 뚫려 문종의 무덤이 갈려졌다. 어떤 사람이 자서와 문종이 같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 바닷물의 풍랑을 따라 헤엄쳐 갔다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오늘도 전당강(錢塘江)에는 해조(海潮)가 밀려들어 올 때면 앞에 오는 물결을 자서(子胥)라 하고 뒤에 오는 물결은 문종(文種)이라고 부르고 있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문종을 노래했다.


忠哉文種(충재문종)

충성스러운 신하, 문종이여!



治國之杰(치국지걸)

치국의 인재였다.



三術亡吳(삼술망오)

세 가지 계책으로 오나라를 망하게 했으나



一身殉越(일신순월)

그 한 몸은 월나라를 위해 죽었다.



不共蠡行(불공려행)

범려와 같이 물러나지 않아



寧同胥滅(영동서멸)

그 몸은 오자서의 뒤를 밟게 되었다.



千載生氣(천재생기)

천년 세월이 지났건만 그 기운은 생생하니



海潮疊疊(해조첩첩)

바다의 파도만 첩첩이 밀려오는구나!


목록
7814
[] 구합제후(九合諸侯)

구합제후(九合諸侯) 제환공이 아홉 번에 걸쳐 제후들을 소집하여 회맹한 일을 말한다. 회맹을 연도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양승국 04-05-11
[] 문종의 일곱가지 계책과(文種之七策)과 토사구팽

오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문종칠계(文種七計) 첫째, 재물을 보내어 상대국의 임금과 신하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며 둘째, 곡식의 가
양승국 04-05-11
[] 하곡(河曲)의 싸움

하곡(河曲)의 싸움 당진(唐晉)의 양공(襄公)이 죽자 당시 당진(唐晉)의 실권을 쥐고 있었던 조돈(趙盾)이 양공의 세자였던 이고(夷皐)를 제치고
양승국 04-05-11
[] 춘추전국시대를 모르고 중국사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춘추전국의 패자와 책사들」은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활약했던 패자와 책사들 24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드넓은 중원의 패권을 손에 쥐기 위해
양승국 04-06-25
[] 춘추시대 주요제후국들의 위치도

기원전 8세기-5세기 경 춘추시대 때 주요 제후국들의 위치도 전통적인 강대국 : 북쪽의 당진(唐晉), 남쪽의 초(楚), 동쪽의 제(齊), 서쪽의
양승국 04-09-11
[] 채나라의 이주 경로

1. 채나라의 기원 주무왕의 5남 채숙 탁(度)이 봉해진 제후국이다. 이어 무왕이 죽고 성왕이 나이가 어렸음으로 주공단(周公旦)이 섭정에 올라 관숙,
양승국 04-09-13
[] 초나라의 도성 이동로

. 초나라의 도성 이동사 1. 초나라는 기원전 10세기 경 호북성 자귀시(秭歸市)에 도읍을 정하고 개국했다 2. 기원전 670년 경 초
양승국 04-09-13
[] 삼진(三晉)의 도성 이동사

기원전 453년 진양성 싸움에서 지백을 물리치고 그 영지와 당진의 공실 영토를 삼분한 이후의 한위조 삼가의 도성 변천사
양승국 04-09-14
[] 허나라의 이동사

1. 요임금 때 지방장관을 감찰하던 관직인 사악(四岳) 혹은 태악(太岳)을 지냈던 허유(許由)가 지금의 하남성 등봉시(登封市) 남쪽에 영수(潁水) 남안
양승국 04-10-04
[] 진나라의 장의에게 속아 제나라와 국교를 단절하는 초나라

초나라가 제나라와 국교를 단절하는 조건으로 상오 땅 600리를 할양하겠다고 약속한 장의는 정작 초나라가 제나라와 단교를 하고 약속한 땅의 할양을
양승국 04-10-04
[] 상앙의 변법 내용

상앙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기원전 390년 경에 태어나서 338년에 죽은 중국역사를 통틀어 변법을 통해 개혁을 단행한 가장 인상적인 정치가다. 전
양승국 04-10-04
[] 진문공의 19년 간에 걸친 중원유랑도

진문공은 기원전 655년 여희의 난을 피해 적국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진혜공이 보낸 자객들을 피해 중원의 여러 나라를 통과하여 제나라로 들어갔다.
양승국 04-10-07
[] 진혜문왕 치세시 점령한 새로운 땅

기원전 337-311년 동안 새로 점령한 파와 촉, 한중군, 상군 등의 위치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1-03-16 17:40:35 진한(으)로 부터 이동됨]
양승국 04-10-18
[] 중산국 강역도 및 주변 정세도

춘추시대 중국 북방의 이민족인 白狄族이 지금의 하북성 정정(正定)에 세운 국가다. 원래는 선우(鮮虞)로 불리웠으나 전국 때 중산(中山)으로 바뀌었
양승국 04-10-18
[] 춘추전국시대 때의 성곽과 그 규모

1. 서주시대의 주례에 의한 규정 주천자는 제후들의 작위에 따라 성곽 규모를 규정하여 제한했다. 천자국의 도성인 왕성은 한 변의 길이
양승국 04-11-24
[] 춘추전국 때 진군이 벤 군사들의 수급 수

차례 기원전 전투명 장소 전쟁 당사국 수급수 1 364 석문(石門) 산서성 운성시 위 6만 2
양승국 04-11-25
[] 위(衛)나라의 도성 이동로

위(衛) 서주 초기 때 주무왕의 동생 강숙이 봉해진 제후국이다. 송으로 소개시키고 남은 은나라 유민들을 다스리게 했다. 도읍은 지금의 하남성
양승국 04-12-01
[] 공자의 주유열국

-서울신문 옮김 기원전 496년 노나라의 정공14년. 56세의 나이 때 공자는 마침내 노나라를 떠나 위(衛)나라로 들어간
양승국 04-12-09
[] 전국시대 수리공정 전문가 이빙

이빙의 생년월일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사기]와 [한서(漢書)]에는 간단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빙은 중국 고대 저명한 수리공정 전문가로
양승국 04-12-23
[] 춘추 때 초나라의 최대판도와 건국신화

초(楚)나라의 선조는 오제 중의 한 사람인 전욱(顓頊) 고양씨(高陽氏)의 후손이다. 고양씨는 황제(黃帝)의 손자이며 창의(昌意)1)의 아들이다.
양승국 05-01-24
1 [2][3][4][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