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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1-24 13:06:035770 
춘추전국시대 때의 성곽과 그 규모
양승국

1. 서주시대의 주례에 의한 규정

주천자는 제후들의 작위에 따라 성곽 규모를 규정하여 제한했다.


천자국의 도성인 왕성은 한 변의 길이가 9리 즉 3.2키로

공작국의 도성은 7리 즉 2.5키로

후작국의 도성은 5리 즉 1.8키로

자작과 남작국의 도성은 한 변이 3리 즉 1.1키로


2. 춘추전국시대 각 나라 도성의 규모


1) 주나라의 도성 낙읍의 규모 : 1.5 x 1.4 키로


2) 제나라의 임치성

대성과 소성 두 성으로 분리

대성의 성곽 연장 길이 : 14키로

소성의 성곽 연장 길이 : 7키로


3) 노국수도 곡부성 동서 4키로 남북 3키로


4) 조국수도 한단

남쪽의 궁성과 북쪽의 대성으로 구성, 궁성은 품(品)자 형으로 세 개의 소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 성은 한 변이 1키로에, 성벽의 넓이는 16미터 좌우다. 그 동북쪽에 대성이 있었는데, 불규칙한 장방형으로 동서 3키로, 남북 4.8키로에 달했다. 성벽의 넓이는 20미터 좌우에 두 성 사이의 거리는 100미터였다.


4) 연나라 하도인 무양(武陽) 북역수(北易水)와 중역수(中易水) 사이에 건설되었는데 동서 8키로, 남북으로 4키로에 달했다.


5) 당진국의 도성 신전(新田)

분수(汾水)와 회수(澮水) 사이에 크고 작은 성 6개로 이루어졌다. 제일 먼저 건설된 백점성(白店城) 외에 우촌(牛村), 평망(平望), 대신(臺神)의 세 성이 있었고, 그 동쪽 1키로 되는 곳에 마장(馬莊), 정왕(呈王) 2성이 있었다. 6개의 성 중 우촌성이 가장 컸다. 사다리꼴의 상태인 성벽 넓이는 하단부가 8미터 상단부는 4미터였고 성곽 둘레에는 참호를 파서 물로 채운 해자가 있었다.


6) 위나라의 구도 안읍(安邑)

지금의 산서성 하현 서북에 위치한 성으로 3중의 성벽에 중앙에 궁궐이 있는 작은 성이 있었다. 외성은 동서 약 3.8키로, 남북으로는 4.6키로에 달했다. 위나라는 양혜왕 때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였던 대량성으로 천도했다. 개봉시 중심에는 지금도 전국 때 대량성의 유지가 남아있다.


7) 정(鄭)과 한(韓)의 도성 신정성(新鄭城)

지금의 하남성 신정시로, 전국 초기 한나라가 정나라를 멸한 다음 천도하여 그 도성으로 삼았다. 동서로 5키로, 남북으로 4.5키로에 달했으며 성벽의 밑부분의 넓이는 40미터에 달했다.


8) 초나라의 도성 영(郢)

지금의 호북성 강릉 북쪽의 기남성(紀南城)은 동서로 4.5키로, 남북으로 3.5키로,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4-7미터에 달한다. 성벽의 윗 부분 넓이는 14미터다.


9) 섬진의 도성 옹성(雍城)

지금의 섬서성 봉상현(鳳翔縣) 남쪽으로 동서 약 3.3키로, 남북으로는 3.2키로에 달했다. 진헌공(秦獻公) 때 천도 역양(櫟陽)으로 천도했다. 역양은 지금의 섬서성 임동현(臨潼縣) 위수의 강안에 있었다. 동서 1.8키로, 남북으로는 2.2키로였다.



3. 춘추전국시대 때 성읍의 수효와 대성의 인구


춘추(春秋), 좌전(左傳), 국어(國語) 등의 사서에 나오는 성읍의 이름은 모두 1,016개다. 그 중 지방지와 문헌을 통해 그 위치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성읍의 수는 600개에 달한다. 춘추 때 축성된 성읍의 수효는 1천 개 이상이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전국시대에 접어들어 각국은 경쟁적으로 성읍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춘추시대에 축조된 것을 포함한 전국시대 때의 성읍의 수효는 2천 개 이상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국 때의 <천장지성(千丈之城), 만가지읍(萬家之邑)>이라는 말은, 즉 성곽의 한 변의 길이가 천장(千丈)에 달하는 대성에 만호의 인구가 거주하는 성읍이라는 뜻이다. 천장지성은 성벽의 한 변 길이가 천장, 즉 2.3키로에 달하는 성을 말한다. 묵자(墨子) 잡수(雜守)에 “ 사방 3리의 성에는 만호의 백성이 거주할 수 있다.”에 3리는 성곽의 한 변이 약 1키로에 해당하는 말임으로 매 1평방키로 즉 30만 평 당 만호의 인구가 살 수 있다고 했음으로 천장지성에는 수만 호의 백성들이 거주했던 대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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