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를 택스트로 한 열국지의 등장인물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 중의 한 명이 백리해(百里奚)다. 그는 나이 30에 지금의 하남성 평륙현(平陸縣)에 있었던 제후국 우(虞)나라에 살다가 제희공(齊僖公) 치세의 제나라로 벼슬을 구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 제나라에 간 백리해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기 때문에 뜻을 얻지 못하고 노자가 떨어져 결국은 거지로 전락하여 10여 년을 구걸하며 목숨을 부지했다. 그는 지금의 안휘성 숙주시(宿州市) 부근인 질(銍)까지 흘러 들어가 그곳에 살고 있던 건숙(蹇叔)이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건숙과 의기가 투합한 백리해는 그와 의형제를 맺고 그곳에서 소를 치며 10여 년 동안 살던 중 제나라에서 란을 일으킨 무지(無知)의 초현(招賢)에 응하여 제나라에 출사하려고 했으나 건숙의 조언으로 중지했다. 후에 다시 소를 잘 치는 사람을 찾고 있던 주나라의 왕자 퇴(頹)의 초빙에 응하여 주나라에 들어갔으나 다시 건숙의 권고로 중지하고 고향으로 들어가 건숙의 친구 궁지기의 천거로 우나라의 대부가 되었다. 그러나 아둔한 우나라 군주가 당진국이 구사한 가도멸괵(假道滅虢) 작전에 떨어져 우나라는 멸망하고 우나라 군주와 백리해는 당진국의 포로가 되고말았다. 당진국에 출사라하라는 요청을 거절한 백리해를 당진국은 진헌공(晉獻公)의 딸이 진목공(秦穆公)에게 시집갈 때 데리고 가던 잉신(媵臣)이라는 일종의 노예 신분으로 섬진에 보내지게 되었다. 백리해는 중도에 노예의 대열에서 탈출하여 건숙이 살던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 부근에 있던 명록촌(鳴鹿村)으로 가기 위해 초나라의 영토를 지나가다가 그곳의 관리에게 붙잡혔다. 백리해는 초나라 관리 밑에서 목부가 되어 그를 위해 소를 길렀다. 얼마 후에 백리해가 소를 잘 기른다는 소문을 듣게 된 초왕은 그를 말을 기르는 하급 관리로 임명하여 지금의 광동성 광주부근에 있었던 남해(南海)라는 곳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10년 가까이 말을 기르고 있던 백리해를 섬진의 목공에게 천거하는 사람이 있자 진목공이 그를 초나라에서 숫양가죽 5장을 주고 데려와 재상을 삼았다. 그때 백리해의 나이는 70이었다. 백리해는 진목공 밑에서 30년 가까이 벼슬을 살다가 진목공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정나라 정벌군을 일으키자 재상의 자리에 물러나 몇 년 쯤 더 살다가 100살이 넘어서 죽은 사람이다. 그가 40년 동안 중원과 당시에는 형만(荊蠻)이라고 불렸던 광동성 등을 배회하다가 마침내 섬진국의 재상이 되어 헤어졌던 가족과 상봉하는 이야기는 인간승리의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백리해의 연대기를 상관 자료를 참조해서 대략적으로 유추해보면 그의 나이 30세인 기원전 710년 경 우나라를 떠나 제나라에 들렀다가 10여 년 동안 거지생활을 하다가 700년 경 질(銍)에 들어가 건숙을 만나 의형제를 맺고 그곳에서 10여 년간을 소를 치며 지냈다. 제나라의 무지가 란을 일으킨 해는 기원전 697년의 일이다. 기원전 690년 경 주나라를 거쳐 우나라에 들어가 대부가 되었다가 당진의 포로가 된 가도멸괵 사건이 일어난 해는 기원전 658년이고 진목공이 초나라에서 목부의 일을 하던 당시 70세였던 백리해를 섬진으로 불러 재상에 임명한 해는 기원전 655년이다. 다시 효산(崤山)에서 500승에 달하는 섬진의 대군이 당진군의 매복에 걸려 전멸한 해는 기원전 627년이고 그 다음해 쯤 벼슬에 물러났을 때는 근 100살에 가까운 나이였다. 즉 백리해는 30세에 시작한 유랑생활을 70세에 마치고 진목공에 의해 발탁되어 30년 동안 재상의 자리에 있다가 근 100세 이르러 물러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