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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0 21:36:174224 
기장벌의 여인(機長足姬)과 연오랑세오녀(延烏郞 細烏女)
양승국

기장벌의 여인(機長足姬) 경상북도 기장군에 대해서 삼국유사에 재미있는 설화가 실려 있다.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설화가 그것이다. 신라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었던 연오랑과 세오녀가 신라 아달라왕 4년 (AD157년)에 신라의 해와 달의 정기를 가지고 일본으로 망명하자 신라의 해와 달은 빛을 잃게 되었으며, 이에 놀란 신라왕은 세오녀가 짠 비단천을 구해다가 <영일제천(迎日祭天)> 함으로써 해와 달의 빛을 되찾았다고 했다. 지금의 포항 앞바다인 영일만은 영일제천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으로 망명한 세오녀는 중애(仲哀)천황의 후비가 되었다가 중애천황이 죽자 자기가 직접 천황의 자리에 즉위하여 신공(神功)황후가 되었다. 신공황후의 추호가 기장족희인 것이다. 한편 일본으로 건너간 연오랑은 일본측 사서인 고사기에 천일창(天日槍)으로 나온다. 천일창과 난생녀(세오녀)가 부부가 되어 일본열도를 원정하여 정복하고 일본왕이 되었다고 했다. 일본서기에 적힌 신공황후에 대한 기록은 신공황후가 동해바다를 헤엄쳐 건너가 신라를 정벌하고 인질과 함께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일본에 복속시켰다 했다. 일본서기를 지은 사람의 이름은 태안만려(太安萬侶)로 백제 유민 출신이다. 그는 자기 조국인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에 대한 원한으로 일본서기를 저술하면서 신공기(神功紀)를 이용해 신라에 대해 복수를 한 것이라고 했다. 고대사 왜곡의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 일본서기의 신공기인데 상식적으로 읽어 봐도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을 억지로 꿰 맞추어 그 기사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이끌어 내고 자기들의 한국을 점령한 것은 침략한 것이 아니라 옛날 자기들의 땅을 되찾는 행위라고 명분을 세운 것이다. 일본서기에 적힌 신공왕후의 기록을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와 맞추기 위해 신공왕후의 연대기를 120년 뒤로 미루어 백제의 근초고왕 시대로 조작하고 그 결과 임나일본부설을 도출해 내고, 임나일본부설에 따라 일본이 한반도에 진출하는 것은 남의 땅을 침략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천황가의 땅이었던 임나일본부를 찾은 정당한 행위이다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주장이다.

연오랑과 세오녀(延烏郞 細烏女)


第八阿達羅王卽位四年丁酉 東海濱有延烏郞 細烏女 夫婦而居 一日延烏歸海採藻 忽有一巖(一云一魚) 負歸日本 國人見之曰 此非常人也 乃立爲王 (按日本帝記 前後無新羅人爲王者 此乃邊邑小王而非眞王也) 細烏怪夫不來 歸尋之 見夫脫鞋 亦上其巖 巖亦負歸如前 其國人驚訝 奏獻於王 夫婦相會 立爲貴妃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 정유년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부부로 살았는데 어느날 연오가 바다로 나가 해조류를 채취하다가 갑자기 바위가 그를 업고 일본으로 갔다.


일본사람들이 그를 보고 말하길


"이 사람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며 왕으로 세웠다(일본제기를 살펴 보면 그 전후로 신라 사람이 왕이 된 자가 없으므로 이것은 변방 읍의 소왕이지 진짜 왕은 아니다).



세오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괴이하게 여겨 찾으러 갔다가 남편이 벗어 놓은 신발을 보았는데 역시 그 바위에 오르자 그 바위가 또한 그녀를 싣고서 전처럼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라 의아하게 생각하여 아뢰며 왕에게 바쳐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그녀를) 귀비로 삼았다.


是時新羅日月無光 日者奏云 日月之精 降在我國 今去日本 故致斯怪 王遣使來二人 延烏曰 我到此國 天使然也 今何歸乎 雖然朕之妃有所織細綃 以此祭天可矣 仍賜其綃 使人來奏 依其言而祭之 然後日月如舊 藏其綃於御庫爲國寶 名其庫爲貴妃庫 祭天所名迎日懸 又都祈野


이때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으니 일관이 아뢰길


"해와 달의 정기가 내려와 우리나라에 있었으나 지금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괴이한 일이 초래된 것입니다"하니


왕이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오도록 하였다.


연오가 말하길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다.지금 어찌 돌아가겠는가? 그러나 짐의 왕비가 짠 고은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것이다"


하면서 곧 그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돌아와 아뢰고 그 말에 따라 제사를 지냈다. 그 후에 해와 달이 그 전처럼 되니 그 비단을 어고에 보관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 이름을 귀비고라고 하였다. 하늘에 제사 지낸 장소 이름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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