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대군의 추격을 피해 동쪽으로 이동하던 대조영의 부대는 훗날 발해건국의 기틀을 닦게 되는 대전투를 벌이게 된다. 대조영의 부대는 고구려유민들을 이끌고 당나라 대군의 예봉을 피하여 그들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동북쪽을 향하여 이동했다. 하지만 훗날 이들의 세력이 다시 요동지배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 판단한 당나라는 추격대를 보내 끝까지 추격하여 완전히 섬멸하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결정한다. 당나라 토벌군 대장 이해고는 당나라 조정의 토벌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대조영의 부대를 더욱 압박하기 위해 추격에 박차를 가했다.

일방적으로 쫓겨 가던 대조영은 동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인 천문령에 도달하게 된다. 천문령은 지금의 길림성 합달령에 위치해 있는 험준한 고개이다. 혼하(渾河)와 휘발하(輝發河)의 분수령인 장령자 부근에 위치해 있고 외부에서 동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전략상의 험준한 요충지였다. 더욱이 산세가 험하고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도로의 폭이 좁아 간신히 말 한 마리가 통과할 수 있을 뿐이어서 높은 곳에서 적을 맞아 싸운다면 가히 일당백도 가능한 요처였다.

당나라 대군에 한발 앞서 천문령에 당도한 대조영은 이대로 일방적으로 쫓겨 가다가는 필연코 당나라 군대에게 괴멸되리라 생각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이곳 천문령에서 이 전쟁을 반전시킬 실마리를 찾으려 시도했다. 그는 우선 지형지물을 파악한 뒤 군사들을 천문령 너머 정상 부근에 주둔시키고 이해고 대군의 동태를 살폈다.

이해고의 대군은 거란의 패전군과 대조영의 부대를 맞아 싸운 수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이겨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고 군사적으로도 압도적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빨리 대조영의 부대를 궤멸시키고 개선하려는 열망에 차있었다.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곧 전쟁을 끝내고 개선할 수 있는 기쁨에 젖어 있던 이해고의 대군은 대조영 부대를 쫓아 혼하를 건너 천문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당도했다. 때는 해가 서편으로 기울어가던 저녁 무렵이었다.

천문령의 험준한 산세를 지켜본 휘하의 부장들은 이해고에게 우선 그곳에 진을 치고 휴식을 취하며 형세를 살핀 후에 대조영의 부대를 추격할 것을 건의했다. 이때 멀리 보이던 산중턱에서 붉은 색의 대조영 부대 깃발이 무리지어 천문령을 향하고 있다는 척후 보고가 도착했다.  대조영 부대를 거의 따라잡았다고 판단한 이해고는 전군에 진격명령을 내렸다. 당나라의 20만에 달하는 대군이 일제히 천문령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문령 전방의 산중턱에서 움직이던 인마는 대조영의 유인책이었다. 천문령 너머 정상 부근에 주둔했던 대조영은 이해고 부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부대를 셋으로 나누어 대조영의 친위부대는 정상에서 수비를 하도록 하고 말갈인들로 구성된 부대에게는 산중턱에 매복했다가 적군이 쫓겨 내려오면 그들을 혼하로 이어지는 깊은 협곡으로 내몰도록 명령했다. 또한 나머지 고구려·말갈의 잔여부대로 구성된 연합군에게는 미리 당나라 대군이 내몰릴 협곡의 반대편에 매복하도록 했다. 당나라군의 척후병에게 발견된 인마는 대조영이 선발한 날쌘 민간인 포함된 소수의 병력으로 대조영 부대의 깃발을 나눠 들고 그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서 움직여 이해고의 군대를 유인한 것이다.

당나라 대군의 선봉이 천문령에 도달한 것은 자정이 가까운 무렵이었다. 때는 달빛조차 깃들지 않는 칠흑 같은 그믐밤이어서 험준한 돌길을 위태롭게 행군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도로의 폭이 좁아져 대열이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서게 되었다. 이때 천문령의 정상 쪽에서 불화살 한 발이 긴 꼬리를 달고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이것을 신호를 대조영의 수비대가 정상으로부터 물밀 듯이 쳐내려왔고 때맞춰 길게 늘어선 행렬의 좌우로부터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당나라군의 참혹한 비명소리는 삽시간에 천문령 일대를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만들었고 뒤따르던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 아래를 향해 달아났다.

이미 산중턱에 매복해 있던 말갈부대는 패주하던 당나라군을 협곡 쪽으로 밀어붙이자 당나라군은 어쩌는 수 없이 모두 협곡 안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그들이 달아났던 협곡은 이미 대조영의 부대가 매복해 있는 곳이어서 협곡의 안과 밖 양쪽에서 협공을 당한 당나라 대군은 모두 변변한 저항도 못한 채 모두 궤멸되고 말았다.

천문령 전투의 패배로 이해고는 대부분을 군사를 잃게 되었고 남아있던 수천 기의 기병만을 이끌고 후퇴하고 말았다.

참고지도는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

글은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