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한국사
1. 선사
2. 고조선
3. 삼국
4. 남북국
5. 고려
6. 조선전기
7. 조선후기
8. 일제
9. 공화국
10. 통사
· 오늘 :  823 
· 어제 :  966 
· 최대 :  6,990 
· 전체 :  2,165,325 
 
  2009-05-19 00:02:513660 
명청의 심하전역(深河戰役)에 파병되어 산화한 조선군 병사들을 끝내 외면한 조국 조선
운영자
일반

심하전역(深河戰役)에 파병되어 산화한 조선군 병사들…조국은 끝내 외면




“백수의 늙은 서생은 모래밭에 뒹구는 백골이 되는 신세를 면치 못할 운명인가 합니다.”




1619년 3월1일. 요동파병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이민환이 군량미 보급을 맡은 윤겸진에게 쓴 편지다. 춥기는 하지, 식량 보급은 전혀 이뤄지지 않지, 명나라 장수는 되지도 않는 지시를 내리지…. 이민환의 울부짖음은 조선군의 절망적인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지난 1월 말 심하전역(深河戰役)의 현장답사에 나서 조선군이 몰살당한 비극의 벌판을 둘러본 이승수 한양대 강사의 말.




“4일 오후 한나절 동안 김응하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 8000명이 죽었습니다. 바로 그곳이 요녕성 본계시 환인 만족자치현 홍당석 벌판입니다. 길 왼쪽 언덕에 피신한 강홍립군은 동료들이 도륙당하는 모습을 보고 전의를 상실했을 겁니다. 다음날 항복하고 후금군과 함께 허투알라로 갔어요.”




그뿐이 아니었다. 이승수씨에 따르면 강홍립을 따라 투항한 조선군 가운데 탈출한 뒤 돌아온 조선군사는 2700명이었다. 탈출하지 못한 이들은 농노(農奴)가 되었다. 탈출하다가 굶어 죽은 조선군 시신도 길에 즐비했다. 파병군 1만3000명 가운데 1000~1500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홍세태(1653~1725)가 지은 ‘김영철전’은 심하전역에서 포로가 된 김영철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다. 19살 때 참전한 김영철은 후금 장수의 가노(家奴)가 되었다. 혼인해서 아이까지 낳았으나 향수를 이기지 못했다. 탈출을 감행해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국은 만어와 한어가 능통하다는 이유로 평생 부려먹었다. 1637년 가도정벌, 1640년 개주전투, 1641년 금주전역 등에 차례로 차출된다. 그는 무려 86살까지 군역에 시달렸지만 죽을 때까지 수성졸(성을 지키는 졸병)을 면치 못했다. 홍세태는 김영철을 동정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사정이 이럴진대 무엇으로 천하의 충의지사를 권면할 것인가(何以勸天下忠志之士)!”




김응하 장군은 그래도 전쟁영웅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산화한 파병군 병사들의 넋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다. 광해군은 1619년 9월 명나라 총병 유정과 유격 교일기의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나라를 위해 싸운 조선군 병사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승수씨는 “지배층의 관심은 오로지 의리와 명분을 밝히는 것이었으며 비참하게 죽었거나 포로가 된 파병군 병사들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기환 선임기자〉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1-03-26 06:17:37 조선(으)로 부터 이동됨]

목록
2212
[일반] 호민론 -허균

호민론(豪民論) 허균 天下之所可畏者(천하지소가외자)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唯民而已(유민이이) 오직 백성뿐이다.
운영자 13-11-06
[일반] 한국사 최고의 이단아 허균(許筠,

한국사 최고의 이단아 허균(許筠, 1569년음력 11월 3일 ~ 1618년음력 8월 24일)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학자이자 작가, 정치가, 시인이었다. 서
운영자 13-08-26
[일반] 허균과 율도국-이덕일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사형당한 허균, 그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 이덕일 역사평론가 교산 허균의 생애처럼 수수께끼에 쌓이고, 생전은 물론 사후
운영자 13-08-26
[일반] 성소부부고 [惺所覆瓿藁]- 허균의 문집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의 문집. 8권 1책. 필사본. 작성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만
운영자 13-08-26
[일반] 良·高位次 改換事件(양고위차개환사건)

良·高位次 改換事件(양고위차개환사건) 耽羅開國(탐라개국) 三神人(삼신인)의 位牌(위패)는 三姓祀(삼성사) 창건초부터 第一位(제1위)에 良
운영자 11-12-25
[일반]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의 편지

고종 16년(1879년) 중국 북양 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유원(李裕元)에게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과 통상하여 일
운영자 09-04-07
[일반] 명청의 심하전역(深河戰役)에 파병되어 산화한 조선군 병사들을 끝내 외면한 조국 조…

심하전역(深河戰役)에 파병되어 산화한 조선군 병사들…조국은 끝내 외면 “백수의 늙은 서생은 모래밭에 뒹구는 백골이 되는 신세를 면치 못할
운영자 09-05-19
[일반] 살리하전역의 동선전투 심하전역 경과도

薩爾滸戰役[사르후전역]     사르후전역 1년 전인 1618년 4월 13일에 누루하치는 보병과 기병 2만을 이끌고 만주지역에 소재한 명군의 주둔지
운영자 09-06-15
[일반] 심하전역과 전적지 고찰

심하전역(深河戰役)과 전적지 고찰 사르후전역[薩爾滸戰役] 이 발생한 해는 서기 1619년으로 명나라 萬曆47년, 조선 광해군 10년이다. 명나라의
운영자 09-06-19
[일반] 고산자 김정호 옥사설의 진실

▲ 교육사이트 '에듀넷' 에 나와있는 김정호에 관한 설명 (http://down.edunet4u.net/KEDLAA/05/A4/2/A42050017P.jpg)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운영자 08-07-02
[일반] 굴욕으로 점철된 인조연대기

굴욕으로 점철된 인조연대기 친명배금의 잘못된 외교정책으로 임란이후에 피폐해진 조선 땅에 또 다시 두 번의 전쟁을 겪게 만들어 백성들의 삶을
운영자 08-07-14
[일반] 병자호란 다시읽기(7)-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

[1]인조반정의 발생과 성공은 대외적으로도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다. 조선에서 정변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는 소식에
운영자 09-03-05
[일반] 병자호란 다시읽기(6)-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1]광해군은 노회한 명과 사나운 후금 사이의 대결 속으로 말려들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가 정보를 수집하고, 기미책을 강구하며, 자강 능력을
운영자 09-03-03
[일반] 병자호란 다시읽기(5) - 광해군과 누루하치 그리고 명나라

[1]누르하치를 치는 데 동참하라는 격문을 받았을 때 광해군(光海君)이 보인 반응은 신중했다. 아니 냉정했다. 그는 누르하치가 ‘천하의 강적’이
운영자 09-03-03
[일반] 병자호란 다시읽기(4) - 누루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1] 앞에서 언급한 대로 명의 지배 아래 있던 여진족은 크게 건주, 해서, 야인의 세 종족으로 구분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강했던 종족은 해서여진이
운영자 09-03-03
1 [2][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