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와 ‘일본해’ 이름분쟁

1. 바다 이름으로써 일본해가 갖는 문제점

우리가 러일전쟁 중에 독도를 침탈당했지만, 러일전쟁 중에 또 하나 침탈당한 것이 동해라는 이름이다. 현재 우리는 동해를 통용하고 있지만 지난 1세기 동안 세계 각국의 지도에서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되어 왔다.

2002년 일본 외무성이 제작한 영문 홍보 팜프렛에는 세계에서 사용되는 지도 100개 중 97개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 외국 인터넷싸이트를 상대로 동해 표기 캠페인을 벌이는 한국의 민간 외교 사절단 반크(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에 의하면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사례는 2000년에 이르러서야 처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인들이 2000여 년 동안 의심 없이 사용해 온 동해라는 이름이 국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동해가 일본해라는 일국의 국명으로 지칭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여러 나라로 둘러싸인 바다이기 때문이다. 해양학적으로 북서 태평양의 부속해이며 국제연합 해양법 협약에 의거한 폐쇄해로써 전체 바다가 연안 4국의 관할권으로 분할된 공해(公海)가 없는 바다이다. 이처럼 연안국으로 둘러싸인 바다는 일국의 국명으로 이름을 정하지 않는 것이 국제관례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여러 국가로 둘러싸인 바다가 일국의 국명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없는데도, 동해만이 유일하게 일본해로 표기되고 있다. 북해는 프랑스, 독일, 영국, 덴마크로 둘러싸인 바다이다. 각기 독일해, 영국해, 덴마크해 등으로 불리다가 문제의 바다가 유럽대륙의 북쪽에 있다는 점에 착안해 북해라는 이름으로 단일화 했다.

동해의 연안국은 여러 나라이지만 표기 문제에서 관련 당사국은 사실상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이다. 러시아는 한일 간의 합의를 따르겠다는 입장이고, 북한은 종전에는‘조선동해’를 주장하다가 2004년 한국과 함께 동해로 단일화하기로 합의했다.

한국은 ‘한국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해’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해는 일본해보도 17-18세기에 훨씬 넌리 쓰인 이름이지만 이를 근거로 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동해는 지리적, 역사적으로 타당한 명칭이다. 지리적 측면에서 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바다라는 의미에서 중립적이고 적절한 뿐 아니라 역사적 측면에서도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어 연안 4개국이 합의하기 용이한 이름이다.

2. 러일전쟁과 ‘일본해 해전’

세계 지리학계는 역사성과 대표성을 지명 결정의 근거로 삼고 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불러온 이름에 우선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역사성에서나 대표성에서 동해는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시대에 따라 동해에 대한 표기가 바뀌었다. 당 이전(10세기 이전)에는 특정한 이름 없이 해(海), 대해(大海)라고 표기했다. 요.송 시대(12세기)에는 동해(東海)라고 했고, 원.명 시대(13-7세기)에는 경해(鯨海) 또는 동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래 동해로 표기했고, 일본에서는 조선해 또는 북해로 표기했다. 러시아에서는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동해로 표기했다.

서양에서 세계지도 제작이 활발해진 시기는 17-8세기이다. 이 지도들에게서 동해는 다양하게 쓰여 중국해, 동방해, 한국해, 일본해, 북해 등으로 나타났다. 1602년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에서 일본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지만, 17-8세기에 제작된 세계지도들에는 한국해가 가장 압도적으로 쓰였다.

일본에서는 대체로 동해를 북해로 표기하는 추세였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북해가 통용되고 있었다. 19세기 초 이전에 제작된 일본 지도들은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심지어 1883년 조선과일본이 체결한 통상조약에서도 동해는 조선해로 명기되었다.

일본해가 통용된 것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의 해전을 일본해 해전이라고 부른 이래 반복 사용되면서부터였다. 일본은 자국 함대와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대한해협에서 벌린 해전을 일본해 해전이라고 불렀고, 이후 일본해라는 말이 일본사람들 사이에 통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도 일본해는 일본사람들이 자국 내에서 쓰고 있던 이름일 뿐이었다. 일본해가 국제 사회에서 통용된 계기는 1919년 6월 런던 국제수로회의였다. 이 회의는 20세기에 들어서 처음으로 바다 이름을 정리한 국제회의였다.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중국, 일본, 덴마크, 그리스, 네덜란드, 느로웨이, 페루, 포르투갈, 핀란드, 스페인 등의 18개국과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 인도, 이집트가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일본은 동해를 일본해로 주장했고, 당사국인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터라 참석하지 못했다. 10년 후인 1929년 국제수로기구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 초판을 발간했다. 국가마다 제각기 달리 부르는 해역의 이름을 통일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여기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후 일본해가 세계적으로 통용되었다. <해양과 바다의 경계> 2판 역시 일제 치하인 1937년에 나왔고, 3판은 6.25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1953년에 발간되었다. 한국은 1957년에야 비로소 국제수로기구에 가입했다.

3. 동해이름 찾기

한국은 국제수로기구에 가입한 후에도 오랫동안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고 있는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일본과 독도를 둘러싼 논쟁을 계속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독도가 위치한 바다 이름이 국제사회에서 일본해로 통용되는 현황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이 일본해 표기에 문제 제기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였고, 각종 국제회의에서 일본해를 동해로 표기할 것을 주장했다. 1991년 한국은 유엔에 가입했고, 이듬해 열린 제6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 일본해를 동해로 표기할 것을 주장했다. 1995년 제6차 동부아시아수로위원회 정기총회에서도 동해 표기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97년 한국정부는 제15차 국제수로기구에 대표를 파견하여 1928년 이래 국제수로기구 간행물인 <해양과 바다

의 경계>에서 동해가 일본해로만 표기된 것에 유감을 표시했다. 동해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고유명칭이었음을 상기시면서 양국이 합의할 때까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의 주장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되는 현상이 일부 나타나기는 했지만 세계 각국의 지도에는 여전히 일본해 단독 표기가 많은 추세이다.

동해를 국제사회에서 통용시키기 위해서는 바다 이름의 국제적 규준이 되고 있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의 개정판이 나와야 했다. 2002년 국제 수로기구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 4판을 내기로 했다. 국제수로기구 사무국은 관련 당사국들이 단일 명칭에 합의하지 못한 동해 지역의 해도를 아예 삭제하기로 하고 이 방안을 회원국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일본해 단독 표기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한창 진행 중인 표결이 돌연 중지되었다. 언론, 외교관, 정치인들을 총동원한 일본의 파상적인 로비가 먹혀든 것이다.

동해 표기를 둘러싸고 한일 간의 공방이 계속되자 유엔과 국제수로기구는 관련 당사국의 원만한 합의를 권고했다. 2004년 제22차 유엔 지명 전문가 회의 보고서에 삽입했다. 국제수로기구의 입장은 동해가 한 이름으로 통용될 때까지는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자는 입장이고, 일본은 일본해 단독 표기를 고수하는 입장이어서 팽팽하게 대립되어있다.

일본 정부는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 세미나, 이미 병기를 시작한 지도 제작사, 관련 교육계에 외교관을 급파하여 일본해 단독 표기를 요청하고 있다. 또한 이미 병기된 지도에 수정 압력을 행사하거나, 전문가들을 일본으로 초청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일본해 단독 표기를 강행하고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해 단독 표기를 추진하기 위한 예산도 대규모로 확보해 놓고 있기도 하다.

국제관례에 배치되는데도 일본이 일본해 단독 표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은 동해 분제를 영토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 표기 문제는 독도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 동해에 떠 있는 독도‘ 아닌 ’ 일본해에 떠있는 다께시마‘라면 일본은 독도 영유권 시비에 유리한 입장을 점할 수 있다. 또한 동해가 일본해에 유리하게 흘러갈 수 있다. 동해 이름 분쟁, 독도 영유권 분쟁 등 제반 현상은 동해의 풍부한 해양 자원에 대한 치열한 쟁탈전인 것이다.

(소나무사 간 안주섭 외의 '영토한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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