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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14 11:00:541239 
철수의 나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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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철수생각

철수의 인생

1. 안철수의 인생 전환(민주주의의 미래? 안철수와 박원순)

2. X세대 슈퍼스타 안철수가 모르고 지나간 10년(서태지와 안철수)

철수생각

(첫 번째 철수생각) 루즈벨트와 오바마, 클린턴(안철수가 보는 미국정치)

(두 번째 철수생각) 전방위 일자리 창출(고용과 가계부채, 공공부문)

(세 번째 철수생각) 산업공동화 VS 신성장 산업의 딜레마 풀기(금융시장, 양극화와 재벌)

(네 번째 철수생각)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안철수의 상식경영)

(다섯 번째 철수생각) 많이 거둬서 제대로 쓰자(세금과 재정지출, 에너지)

(여섯 번째 철수생각). 산업화 따로 민주화 따로(구체제와 신체제)

(일곱 번째 철수생각) 정당과 의회, 견제와 균형(적대적 프레임을 넘어)

(여덟 번째 철수생각) 보육부터 창의교육까지(백년지대계 교육)

(아홉 번째 철수생각) 농업과 FTA

(열 번째 철수생각) 소통과 합의의 미래정치(대한민국 과거지도 밑에 미래지도가 있다)

철수의 꿈(복지, 정의, 평화)

1. 복지 실사구시

2. 정의로운 기업생태계

- 사법개혁

3. 평화는 당연

- 통일문제

철수가 놓친 생각

1. 정치를 해서는 안될 사람들(아프고 고통스럽고, 억울한 세상을 치료·구원하자는 사람들의 속임수)

2. 국가의 흥망이 달린 정치(부정부패, 폭정, 한중일 삼국 정치 비교)/정치개혁

- 정치는 방정식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보면서 부등식을 만든다. 부등호를 만들기는 어렵다.

3 세 국가의 흥망이 달린 외교(떠오르는 중국과 패권국가 미국 사이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

청춘에게 역사(천하주유...)를 권한다

출판의도

[철수생각]은 [안철수의 생각]에 대답하고 묻는 책이다. “안철수 현상”, 즉 우리 사회에서 안철수를 밀어 올리는 힘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 문제점을 찾아내고자 한다. 안철수가 제시한 생각, 꿈, 미래가치를 분석하고 그것이 정치·경제·역사적으로 어떤 타당성과 문제점이 있는지 밝혀보고자 한다.

안철수를 포함해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철수생각]에서 밝히는 문제점을 공유해서 고민했으면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정치현상에서 무엇이 왜곡됐는지,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지, 가장 크게는 민주주의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싶다.

민주주의는 권력분립과 정당정치를 근간으로 한다. 집권자의 왜곡으로 정당정치를 부정하고, 정당인을 비하하는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안철수에게 희망을 찾는 사람에게 역사에서 보여주는 사례를 통해 안철수가 놓친 또 다른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

출판대상

안철수에 관심을 가지는 20대~40대, 특히 90년대 초중반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 주(主) 타킷이다. 가정을 가지고 회사에 치여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안철수의 생각]은 상당히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철수생각의 매개로 해서, 우리 사회의 경제문제에 좀 더 직면하고, 집권자의 왜곡을 벗어나 민주주의를 직시하는 용기를 복돋아 주고자 한다.

머리말

안철수 원장 개인을 비판하는 글이 아니다. 안철수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우리 연구소를 위해서 쓴다. 21세기 경제학 연구소의 소통과 합의를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들의 소통과 합의를 위해서...

안철수의 인생 전환(민주주의의 미래? 안철수와 박원순)

“자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안철수 원장이 한순간에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가 된 순간을 표현한 말이다. [안철수의 생각]을 여는 첫 구절이다. 안원장에게 정치적 세계가 열렸고, 그 세계에 두 발을 걸쳤다. 그 세계는 자기 스스로 개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그 정치의 문을 열게 만든 다른 사람이 있다. 능동적인 흐름을 만든 사람이 있다.

안원장이 서울시장의 유력한 후보가 된 것보다 더 큰 정치적 변화가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그가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른 것이다. 깜짝 스타의 대표 사례인 19세기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이 하루 밤사이 유명 스타가 된 것보다 더 큰 인생전환을 안원장은 보름 사이 두 번이나 경험했다. 그래서 “주어졌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어졌다”에 반론이 제기되곤 한다. 물론 안원장 역시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끊임없는 도전의 인생이라고 강조하면서, 안철수 현상이 발생한 배경을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의 표현”과 (안원장) 자신에 대한 “적극적 지지와 소극적 지지”가 합쳐진 결과로 이해하고 있다. 빈틈없는 강력한 논리이지만 설명이 부족하고 보완이 필요하다. 이 장에서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 장에서 안원장에 대한 지지의 원천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안원장의 도전은 후자의 관한 사항이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사람 중에 안원장 자신도 포함된다. 국민뿐 아니라 안원장 스스로에게도 자가당착이며 위험하다. 안원장을 정치의 문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든 사람이 그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평가한 기성 정치권에 있는, 민주당 서울시 의원들이다. 바로 오세훈 서울시장을 견제하고 압박해 무상급식 주민투표라는 무리한 승부수를 띄우게 만들었다. 2010년 지차체 선거에서 민주당이 서울에서 압승하고 서울시 의회의 권능을 충실히 한 결과다. 그 열매를 다른 사람이 먹게 됐지만 말이다. 물론 풀뿌리 정치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중앙 정치 무대는 그렇지 않았다. 안원장이 이를 구분했다면 정치권에 대한 평가가 틀리지 않다.

백년 가는 정당이라고 자만한 열린우리당이 참여정부 임기 내에 자체적으로 분열·붕괴되었던 대형 사건이 있다. 수리도 안하고 난파된 상태로 대선을 치르게 되고 사상 최대 표차이로 대선에서 패배했다. 정치권의 붕괴로 인한 일방적인 승리와 패배는 정치의 왜곡, 실패 또는 정치의 부재(不在)를 부른다. 가끔 그런 왜곡이 정치적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정치의 왜곡과 비극으로 기성 정치권에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교훈이 될 만한 사건이 우리 역사에 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의 뿌리는 깊다. 시작은 4.19 혁명과 그 이후 민주당 정부, 5.16 쿠데타이다. 극적인 사태의 전개를 큰 줄기만 복기해 봐도 상상을 초월한다. 4.19 혁명은 불과 시위 몇 분 만에 혁명이 되었다. 중산층까지 시위에 참가하였고 몇 시간 안의 교감이 만들어낸 전원일치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긴 호흡으로 보면 부정 선거에 대한 거국적 항거에 야당인 민주당이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민주당은 1956년부터 1960년 6월 15일 내각책임제 헌법개정까지 강력한 야당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보였다. 특히 민주당이 3.15 선거와 규탄시위를 주도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마산 의거때 부정 선거에 항의하며 시민들이 최초로 집결한 곳이 민주당 사무소 앞이었다. 집결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발포해 8명이 살해됐다. 이승만이 하야하고, 내각제가 합의되면서 정치적으로 민주당을 묶고 있었던 공통점이 사라졌다. 민주당 분열이 시작됐다. 이를 틈타 쿠데타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제도약이 시작된 시기는 민주당이 자유당 독재를 견제하던 1950년대 말과 일치한다. 민주당 정권은 경제청사진을 만들었으며, 성장잠재력을 확충했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나자마자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민정이양까지 성공적인 경제운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쿠데타 세력은 이 모든 것을 왜곡시켰다. 집권야욕을 위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다. 게다가 쿠데타 세력은 원천적으로 정치 공간을 봉쇄했다. 특히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 동안 국민들은 대통령 선거권을 가질 수 없었다. 국회의원 선거권도 일부 제한되었다. 지방자치단체 선거권은 원천봉쇄당했다.

쿠데타 이후 학생들은 스스로 4.19의 의미를 공부하면서 민주주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기존 정치권의 활동제한과 맞물려 학생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학생들이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쿠데타 세력이 낮추어 봤던 부분도 있고, 다른 하나는 그 당시 세계적인 “교육혁명(대학의 대중화)”과 국제왕래·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국제적 관계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순결한 도덕적 규범과 성균관 시절부터 내려온 오랜 전통으로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자신만만하게 4.19 혁명은 학생이 주도했고 민중이 뒷받침한 것으로 정리했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가능하다. 4.19 혁명을 학생혁명으로 좁혀서 생각해선 안 된다고 고(故) 함석헌(1901-1989) 선생은 그 당시에 주장했다. 학생과 군인은 혁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중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운동과 재야세력이 등장하는 계기다. 어쨌든 구심점인 민주당은 빠졌다. 정치가 바로서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는 이치는 역사의 철칙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게 됐다.

물론 학생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부인할 수 없다. 학생운동을 무차별하게 탄압한 것은 쿠데타 세력의 본질이기도 하다. 광주항쟁 이후 1980년대 학생운동은 더욱 그렇다. 학생운동이 주도한 민주주의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특징으로 꼽으면서 최장집은 이를 운동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운동민주주의에 4.19에 의해 새롭게 의미를 획득한 민중이 합쳐진 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과거라고 정리했다.

학생운동이 쇠퇴하면서 학생운동의 연장선상으로 시민운동이 나타났다. 학생운동 시절보다 더 적극적인 사회연대와 더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추구했다. 시민운동은 학생운동 시절에 지녔던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불만을 더 세련되게 표현했다. 시민운동이 시민사회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되기 보다는 언론에 의존했고, 언론은 환경문제, 성 차별문제, 경제정의, 소비자 권익 등 범(凡)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한 시민운동의 아젠다를 지면에 소개했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사람이 박원순 변호사다. 박원순 변호사는 1990년 전후 학생운동이 위기일 때 시민운동을 개척했다. 외국의 시민운동을 열심히 벤치마킹하면서 자신의 전공(변호사, 책쓰기)을 살렸다. 참여연대는 민주주의의 미래는 외국처럼 시민의 참여와 연대라고 뜻이다. 시민운동 차원에는 여야와 상관없다고 말했다. 좋은 사람은 여야와 상관없이 지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명박 서울시장 재직시에는 같이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아이디어가 많고, 부지런하며 꼼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사한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된 계기가 있다. 표면상으로 2008년 촛불집회가 결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2008년 촛불집회는 5월 “미친소”에 대한 여학생들의 작은 집회로 시작됐다. 6월 초 대형집회로 급팽창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민단체가 주관하고 마지막에는 깃발이 남무하고 경찰과 격렬한 대치 끝에 3개월간의 촛불은 꺼졌다. 촛불집회는 2011년 시민단체들이 정치참여를 선언하는 계기다. 대형집회 당시 촛불집회의 자금출처를 찾으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고(故) 노무현 전대통령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내사를 받기 시작했다. 특히 노전대통령과 주변에 대한 조사가 집중되었다. 노전대통령의 친형이 구속되었고 결국 2009년 4월 대검찰청 중수부에 출두했다. 한 달 후 칩거중이던 노전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 노전대통령 추모 열풍 당시 박원순 변호사는 시민단체가 국정원 조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폐족이던 친노가 2010년 선거에서 두각을 보였고, 2011년에 친노와 시민단체가 합쳐 민주통합당을 만들었다. 촛불과 추모가 합친 결과다. 촛불과 추모에는 노전대통령이 없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의 오랜 결과기도 하다. 현재는 민주주의의 과거인 학생운동과 민주주의의 미래인 시민운동이 어정쩡하게 옆에 있는 상태다. 안원장의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안원장의 진정한 멘토는 박원순 변호사

서울시장 후보를 17분 만의 대화로 양보했다는 사실은 이미 두 사람이 오래전부터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기업인이자 학자인 안철수 원장과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가 다른 길을 걷어 왔으면서 동일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흥미로운 주제다. 물음에 답하기 전에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05년 3월부터 2009년 2월까지 4년 동안 포스코 사외이사로 같이 활동했다. 박원순 변호사는 1년 먼저 사외이사를 시작했으며 임기를 못 채우고 2009년 2월에 사외이사를 그만뒀다. 촛불의 영향인 것으로 추측된다. 안철수 원장은 2년 더 사외이사로 활동했고 2010년에는 포스코 이사회의장까지 역임했다. 두 사람이 사외이사로 있었던 2009년 1월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이사회에 도중사의를 표명했다. 그 다음 포스코 회장이 창업주인 박태준 명예회장 및 원로그룹의 의사와 반대되고 이명박 정권쪽에서 선택한 회장이 선출되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물론 이사회에서 주장하는 내부 임용은 이루어졌다. 그 이후 포스코는 다른 여러 가지 외압설에 휩싸였으며 성장이 지체됐고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이명박 정권 도중 대기업 집단 중에서 계열사가 가장 많이 증가했고 경쟁력이 악화됐다.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한 철강왕의 발언권이 점차 축소되었으며, 지난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다. 포스코는 주인 없는 기업이라 외압에 약하고, 그래서 다른 기업보다 더 사외이사의 역할이 크다. 두 사람이 역할이 제대로 수행했는지, 감시를 철저히 했는지 의문이다. 사외이사가 시민운동의 한 영역이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시민운동은 누가 감시하는 것일까?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일까? 활동분야도 전공분야도 다른 두 사람의 동선이 2005년부터 겹쳐진다. 박원순 변호사는 2005년에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 방문교수로 갔다. 안원장은 2005년에 안철수 연구소의 CEO를 그만두고 스탠퍼드 대학교 벤처 비즈니스 과정을 이수했다. 2005년은 ‘안철수의 인생’이 전환된 순간이다. 10년간의 기업인 생활을 마쳤다. 안철수연구소는 2004년까지 임직원은 300명도 되지 않고, 매출액이 300억이 갓 넘었다. 중소기업을 벗어나는 문턱에서 그만둔 것이다. 물러나면서 기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며, 기업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묻었다. 기업인의 차원을 벗어난 발언이다.

그는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 MBA를 졸업하고 국내로 와서 2008년 9월부터 박원순 변호사가 만든 아름다운 재단 이사직을 맡았다. 이사직을 현재까지 계속해 역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사회개혁’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시민운동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안원장이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두 사람이 공유하는 시민운동이 한국정치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안철수 열풍이 일어났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들은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특히 정치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변화욕구가 아마 안 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이것을 여러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것을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안철수 현상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표현한 사람이 없다. 기성 정치권에 올 것이 왔던 것일까? 한국정치의 미래, 민주주의의 미래가 온 것일까?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말해왔던 강준만 교수는 “안철수야말로 한국의 선진국화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이, 재단이 한국사회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까? (추후보강)

X세대 슈퍼스타 안철수가 모르고 지나간 10년(서태지와 안철수)

안철수 원장은 연령으로는 486에 속하지만 오히려 486 다음 세대인 X세대의 특징이 더 크다. 그의 가장 적극적 지지자는 X세대이고, 소극적 지지자는 동년배인 486이다. 안원장의 매력 포인트를 찾기 위해서는 90년대 이후 인물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에 앞서 개인이력부터 조금 살펴보자.

안원장이 1988년에 백신을 개발했지만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였다. 컴퓨터교육이 학교 교육과정에 편성되기 시작했던 때가 1990년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그는 컴퓨터 전문잡지를 통해 알려졌을 뿐이다. 안철수 원장이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때는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게 되는 1995년이었다. 그 즈음부터 PC통신 사용자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안철수 원장이 미국의 백신업체 맥아피에게 1,000만 달러에 인수 제의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사건이다. 김영삼 정권 당시 쥬라기 공원 영화 한 편이 현대자동차 차 백만 대를 수출하는 것과 똑같다는 엉터리 계산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영화의 가치가 과대 포장된 것처럼, 백신개발도 과대 포장되었다. 경기과열의 시대였다. 장밋빛 전망의 시대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안원장은 회사를 창립한지 몇 개월 만에 유학을 갔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한국에 남은 직원들이 2년 동안 회사를 열심히 키운 덕분에 인수 제의가 들어올 수 있었다.

안철수연구소가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였다. 체르노빌 바이러스(CIH 바이러스)가 결정적이었다. 처음으로 흑자로 전환됐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일반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0년 후에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알려지게 된 사건이 있다. 바로 인기 예능프로인 무릅팍도사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엄친아는 토크쇼를 기반으로 하는 예능에서 가장 큰 테마중 하나이다. 예능에서는 안철수 원장을 엄친아중 엄친아로 분류할 수 있다. 아버지가 병원원장에 자신은 의학박사, MBA출신에다가 공학석사로 세 개의 학위가 있으며, 이사회의장, 포스코 사외이사, 석좌교수이니 뭐 빠질만한 게 없다. 안원장의 부인과 딸, 형제들은 제외해도 이야기꺼리는 무궁무진하다. 예능의 수혜를 받기에 충분하다. 물론 예능이란 직장인과 주부가 스트레스로 지친 밤에 그냥 한번 웃을 수 있는 정도의 역할일 뿐이다. 안원장과 같은 명사에게도 평범한 고민이 있고 어려운 에피소드가 있는 것에 자기위안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인 것이다.

물론 안원장은 반짝 스타가 아니다. 1990년부터 거의 매년 책을 펴내왔고 일관된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전문가적인 이미지로 인해서 안원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과 비견되는 기업가상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1990년대 이후 가장 성공적인 기업가 이미지로 이건희 회장과 안원장을 꼽는다. 물론 두 사람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매출액이 2,500배 차이가 나며, 회사 연혁도 한 갑자(60년) 정도의 차이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감히 범접할 수 없고, 특검도 피해가는 이건희 회장과 친숙한 안원장 이미지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둘이 나란히 설 수 있는 부분은 두 사람이 대척점에 있다는 애기다. 그렇게 포지셔닝(positioning) 되어 있다는 뜻이다. 안원장 스스로 삼성동물원, LG동물원을 이야기했으며 미국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불세출의 천재이미지를 차용해왔기 때문에 그런 자리매김이 가능할 수 있었다.

공통적인 이미지도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기술에 대한 몰입이 그것이다. 1986~88년 동안 유례가 없었던 원화강세로 재벌들은 기술도약을 추진해 ‘넛 크래커’와 같은 진퇴양난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 당시 삼성 광고를 보면 얼마나 기술에 대해 강조했는지 알 수 있다. 안원장이 1988년 백신을 개발했던 것도 다른 차원이지만 기술에 대한 강조는 같다. 물론 국제경쟁력 부분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요컨대, 이건희 회장은 모든 세대에게 부동의 기업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면, 안원장은 X세대 이하에게 이건희 회장 못지않은 기업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차이를 쉽게 설명하면 연예계에서 SM의 이수만 사장과 서태지의 차이를 생각해봐도 좋다. 연예계에서 1990년대 이후 가장 성공적인 사람은 이수만사장과 서태지이다. 이수만 사장은 1990년 현진영과 와와를 시작으로 해서 기획사의 차원을 넘어 최근에는 ‘가상국가’를 선포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서태지는 기획사가 없이 서태지컴퍼니란 1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제국을 건설했다면 이수만 사장은 가상국가를 말하고 있다. 참고로 일부에서 삼성공화국을 말하는데, 심각한 언어적 결함과 혼동이 있다. 3공화국, 4공화국, 5공화국 등 우리나라에서는 공화국을 너무 남용하고 있다. 공화국이 아닌데 공화국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연구소와 서태지컴퍼니는 이름부터 유사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쉽게 공통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름부터 일관적이며 개성강한 두 사람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관심있는 사람은 안원장이기 때문에 서태지와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겠다.

서태지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하면서 문화대통령이란 칭호를 받았다. 서태지는 실력으로는 20세기의 가왕인 조용필과 19세기의 가왕인 송흥록과 비교할 수 없지만 당시 X세대에게는 열광적인 분위기를 일으켰다. 1992년 조용필, 전영록 같은 빅스타들이 TV에서 사라졌고, 언더쪽에서는 대마초 파동이 있어서 그 빈틈을 서태지와 아이들은 꿰찰 수 있었다. X세대에게 문화적인 부분을 건드린 것이 서태지와 안원장의 공통점이다. 차이점은 서태지의 경우는 학교 현실의 고발이었다면, 안원장은 X세대가 사회진출하면서 느낀 회사 현실의 고발이었다. 이는 서태지는 향수로 그칠 수밖에 없고 안원장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배경이다. 이와 연관된 차이점은 학력이다. 서태지가 고등학교 중퇴라면, 안원장은 기업인이면서 도중에 계속해서 학력을 불러나갔다. 여기서 가장 큰 차이점이 발생한다. 안원장은 정권교체마다 우리나라에 없었다. 공부하러 떠났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1997년도 그랬고, 2007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서태지도 자주 외국으로 나가 음악을 만들지만 이는 인기로 인해 국내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서태지는 틈틈이 국내로 잠입해서 ‘미스터리 서클’(mystery circle)을 만들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빈집을 다닌다고 한다. 신비주의가 데뷔에서부터 컨셉이며 신비는 서태지의 트레이드 마크이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1998년에도 안원장은 우리나라에 있지 않았다. 안철수 원장이 기업인으로 경력을 쌓는 기간은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10년이었다. 마지막 정권교체기인 2007년에도 안원장은 우리나라에 없었다.

안원장은 10년 동안의 민주당 집권기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민주당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어요. 10년간 집권했으면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했어야 하는데 어땠습니까? 저는 말이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선택과 행동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의 경우 처음 의도는 좋았지만 선택과 행동이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어요.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건전한 생각을 가진 것만으로는 곤란합니다. 결과를 잘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죠.”

<안철수의 생각>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10년 민주당 집권이라고 하는데 안원장은 민주당 분당 사태를 간과하고 있다. 민주당 정권은 정확히 말하면 5년 동안, 즉 김대중 전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를 말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바로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2003년 2월 25일 정권 출범 전날에 대북송금특검을 통과시켰다. 참여정부는 ABD(Anything but DJ)로 시작했다. 민주당 정권과 차별화를 꾀했다. 정권의 연속성이 있을 턱이 없다. 국민의 정부의 사람들이 조사를 받고 감옥에 보내졌다. 반성 없이 집권 4년이 지났다. 2006년 9월 북한 핵실험에 대한 예측보도가 계속 나오고 10월 9일 북한 핵실험이 있었다. 그때까지 차기 대선 후보 1위를 달리고 있던 여당 후보는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에게 밀려나게 되었다. 특히 이명박 후보가 약진했다. 대선 참패의 전환점이었다. DJ는 핵실험에 강경반응을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강경 분위기가 수그러들었다. 그로부터 한달 후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이후 처음으로 DJ를 찾았다. 그 이전까지 얼마나 민주당 정권이 부정하고 단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도 민주당 분당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 오히려 노무현 정권은 열린우리당 해체에 가슴을 아파했다. 그래서 참여정부평가포럼을 만들고 노무현 재단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참여정부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정권으로서 정권 재창출 의무를 무시했다. 민주당 정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원장이 노무현 정권 5년의 살림살이를 평가했다면 어느 정도 타당한 부분이 있다. 물론 노무현 정권에서도 살림살이는 나아졌다. 다만 가계부채 억제와 공공부문의 비대화로 서민이 체감하는 부분은 적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5년을 애기한다면 그의 진단은 완벽한 엉터리다. 그가 의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스럽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컴퓨터 의사라는 그의 초기 이력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미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환란’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환란은 말기 암이나 마찬가지의 아주 심각한 경제적 질병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감히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했어야 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면 안 되는 일이다. 말기 암을 완치시킨 탁월한 의사를 “말기 암을 완치시켰다지만 환자의 체력은 얼마나 좋아졌습니까?”라고 비난한 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 마지막 해에는 '단군 이래 한국의 가장 행복한 날들'(DJ)이 있었다.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을 주최했고 세계 4강까지 올랐으며 한달 동안 행복한 날을 보냈다. '단군 이래 최악'에서 '단군 이래 가장 행복한 날들'로 자존심(pride), 정체성(identity), 자신감(confidence)을 만끽(滿喫)했다.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자극적인 신문기사는 당시 한강의 기적이 끝난 적막강산을 표현한다. 1997년 외환위기는 1957년 한국경제가 도약한 이래 최대의 위기였다. 김대중 정권이 출범할 때 언론과 전문가들은 뭐라고 했던가? “5년 안에 외환위기만 극복해도 역사는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고 기록할 것”이라고 당부했지 않았던가. 그런데 김대중 정권은 외환보유고의 고갈위기를 불과 1년 만에 완벽하게 벗어났다. 이것은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업적이다. 또한 외환위기가 터지면 수년 동안 극심한 경기부진을 겪었던 것이 세계사적인 경험이지만, 우리나라는 불과 1년 만에 성장률이 무려 10.9%를 기록했다.

이런 탁월한 업적을 비난한다? 진단이 이처럼 엉터리인데, 어찌 국가경제를 경영할 능력과 자질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말기 암과 같은 중병을 앓은 뒤에는 설령 완치가 됐다고 하더라도 후유증과 부작용이 남기 마련이다. 말기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수술도 해야 하고, 항암제도 사용해야 하며, 방사선 치료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도 마찬가지로서 대량 해고와 대규모 도산, 가정파괴와 노숙자, 빈부격차 악화, 국부 유출,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재정부담 등등의 후유증과 부작용이 남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은 이런 후유증과 부작용도 세계사에서 가장 적게 남겼다. DJ의 업적은 이순신과 세종대왕의 업적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했고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이룩한 획기적인 경제도약

이래도 ‘서민의 살림살이가 좋아지지 않았다’고 비난해야 할까? 오히려 외환위기를 일으켰던 원흉들을 지금이라도 처단하자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외환위기의 진짜 원인을 지금이라도 찾아내 다시는 경제난이 닥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그 원흉들이 다시 등장하여 외환위기를 일으켰던 정책을 반복해서 시행함으로써 지금의 심각한 경제난을 불렀지 않은가!

그런데 예능 프로 한 번 출현에 지지율이 10%식 뛰는 것은 무엇보다 예능과다이고, 모든 것을 예능화시키는 일이다. 신비주의가 벗겨진 서태지가 안철수의 미래는 아닐까? 정치인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철수는 국민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걸론 부족합니다.

(여섯 번째 철수생각) 산업화 따로 민주화 따로

안철수 원장은 5.16 쿠데타 이후 우리나라 현대사를 산업화 25년과 87년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25년으로 나누었다. 처음 25년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시기로 후반 25년을 자유에 대한 갈구를 토대로 민주화를 이룬 시기로 현대사를 정리했다. 우리나라의 문제의 근원은 과거 인권이나 민주화를 무시했던 산업화 논리, 산업화의 성과를 부정했던 민주화 논리라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들보다 훨씬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의 눈부신 성과를 이뤘지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다고 본다. 단순명쾌한 요약이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구멍이 보인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융합하자는 안원장의 넓은 마음을 가정하더라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우리역사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25년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87년 이후 노태우 대통령이나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 산업화 성과를 부정하는 사람인가? 철저히 긍정한 사람이다. 과연 산업화 성과를 부정한 사람이 일부 소수를 빼고 있을까? 산업화의 과정, 원인, 주체, 여건, 문제, 분배에 대해 좀 더 깊고 넓게 생각하자는 의견을 산업화의 성과를 부정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제조업에 관해서 안원장 자신이 산업화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존 제조업만으로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고, 제조업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그가 산업화 세력이라고 지칭하며 높이 평가한 것은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배반하고 쿠데타·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자들을 지칭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문제이다. 그들이 우리 경제를 여러 차례 파국적 위기로 몰아가곤 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군사정권 특히 박정희 정권이 우리나라를 도약시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보는 게 옳다. 독재정권이 30여 년 지속되는 동안 은밀하게 이뤄진 군중세뇌가 실패를 성공으로 도치시켰을 뿐이다.

독재정권 시절에 군중세뇌가 얼마나 치밀하고 가열차게 이뤄졌는가는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완벽하게 은폐되었다는 사실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군사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1963년에는 외환보유고가 거의 고갈되어 우리 경제가 파국적인 위기에 처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외환보유고를 채워야 날로 심각해지는 경제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국 역사에 천추의 한을 남긴 굴욕적인 한일협상을 해야 했고, 3억 달러의 경협자금을 받아와 외환보유고를 채웠다.

실패가 은폐되고 실패가 성공으로 도치되면 그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도 마찬가지다. 불과 5년 후인 1968년에 또 외환위기가 터졌는데 이것 역시 완벽하게 은폐되었다. 그래서 4년 후에 1971년에 외환위기가 또 터졌다. 당시의 경제난이 제1차 석유파동 때문이라고 선전되었지만, 그 전에 이미 외환보유고는 고갈직전에 이르렀었다. 이런 진실호도는 석유파동이 잠잠해질 때인 1974년에 또 외환위기를 일으켰다.

우리 경제는 1980년에 또 외환위기가 터져서 심각한 경제난을 겪는데, 제2차 석유파동 때문이라고 호도됐다. 진실호도는 불과 2년 후인 1982년에 더욱 심각한 외환위기를 몰고 왔다. 외환위기가 이처럼 간헐적으로 반복되자 미국과 IMF가 진주하여 과거보다 훨씬 더 강압적인 경제신탁통치를 하였다.

국민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어찌 반복적인 외환위기 뿐일까? 박정희 정권이 우리 경제를 도약시켰다는 일반적인 인식 역시 진실이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도약을 시작한 것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이미 1957년부터 확대재생산에 들어섰고, 이때부터 도약을 시작했다. 이런 사실은 경제통계만 들여다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경제개발계획 역시 이때부터 세워지기 시작했고, 민주당 정권이 작성했던 본격적인 경제개발계획을 군사쿠데타 세력이 자기 것인 양 호도했다.

‘경제 제일주의’나 ‘수출입국’은 물론이고 ‘잘 살아보자’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자’ 등도 박정희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 아니다. 이런 정치구호들은 민주당 정권의 장면 총리가 이미 여러 차례 내세운 것들이다. 오히려 4·19혁명 직후의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했던 우리 경제는 군사쿠데타가 발생한 직후에 파국적인 위기에 처했다.

물론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우리 경제가 비약적인 성장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결실은 소위 ‘산업화 세력’이 잘해서가 아니었다. 반복적인 정책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지속했을 뿐이다. 그래서 ‘박정희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했다’가 옳다. 또한 박정희 정권이 ‘천리마를 뒤로 타고 채찍질을 했다’고 평가할 수 한다. 만약 경제정책만 반복적으로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경제는 진즉 선진국 선두대열에 올라섰을 것이기 때문에 하는 애기다.

그렇다면 한국경제가 도약한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난 부분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한국전쟁 이전까지 신분은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망국과 일제 시대에 신분질서가 흔들렸고, 대공황과 한국전쟁의 깊은 경제적 심연속에 신분이 유지할 수 없었다. 한국전쟁 가운데 이루어진 농지개혁도 신분붕괴에 한 몫을 했다. 모두가 가난해졌다. 평등이 이루어졌다. 다른 하나는 상업의 폭발이다. 한국전쟁 이전에 장사는 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에는 전국방방 곡곡 상업 행위가 골짜기를 넘으며 성행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골장터에서는 한국 전쟁 이후 50년 이상 장사하신 할머니들을 볼 수 있었다. 경제 제일주의나 수출 지상주의의 단초를 한국 전쟁과 그 이후의 밑바닥의 생존을 위한 사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어쨌든 주목해야 할 점은, 김영삼 정권에서 외환위기가 터진 것도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연평균 성장률이 3.1%에 불과할 정도로 지금 우리 국민이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것도 모두 박정희 정권에서 실패했던 정책을 성공한 정책으로 잘못 알고 반복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는 사실이다. 김영삼 정권은 화폐 증발과 재정 팽창을 통해 성장률을 높이려다가 경기가 과열되는 바람에 수입이 급증했고, 이것이 국제수지 적자를 대규모로 키움으로써 외환보유고가 고갈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 역시 화폐 증발과 재정 팽창으로 경기를 상승시키려 했고, 국제수지 악화는 환율 상승을 통해 막으려 했는데, 이것은 더욱 전형적인 박정희 식 경제정책이다. 화폐 증발과 재정 팽창 그리고 환율 인상 등과 같은 쉽고 달콤한 정책으로 경제를 살려낼 수 있다면, 세계에서 경제난을 겪을 나라는 하나도 없다. 세계적으로 그런 정책을 펼친 나라들은 하나 같이 더욱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했다.

산업화는 안원장이 어렸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화는 그렇지 않다. 그는 연령으로는 486에 속하는 세대이지만 그 시대 흔적을 찾기 어렵다. 성공을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도 불구하고 1980년대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역사야말로 ‘삶의 흔적(歷)’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그루터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에 공백은 없다.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고, 개인의 메모리에 입력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던 1980년에는 광주항쟁이 있었다. 80년대 한국을 뒤흔든 온갖 경천동지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의 메모리에 얼마나 그 사건들이 어떻게 입력되었는지 궁금하다.

민주화 논리의 출발점이 되는 1987년 체제를 말한다. 1987년 체제가 과연 옳은 이야기일까? 오히려 광주항쟁에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닐까? 그도 1987년 이후 민주화를 이야기했는데 옳은 역사적 판단일까? 역사를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가 민주화 운동에 몸담지 않았으면서도 민주화를 높게 평가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다만, 민주화를 높게 평가한 이유를 밝히지 않아 그의 이런 평가가 자칫 흔들릴 수도 있음은 아쉽다.

결론적으로 애기하면, 1987년 체제가 아니다. 1980년 체제가 올바른 역사적 판단이다. 광주항쟁 체제라고 해야 옳다. 6월 항쟁의 상징적 인물인 이한열 열사가 문제 의식을 가지게 된 계기가 광주이며 묻힌 곳도 광주였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 교문 앞에서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뇌사 상태에 빠졌다. 다음날 넥타이 부대가 합류했다. 넥타이 부대는 우리나라의 30% 이내에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 사회의 주류였다. 중산층이다. 정권의 부패와 저임금으로 민간 부문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정권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6.29 선언 닷새 뒤인 7월 5일 일요일, 약 한달째 뇌사상태에 있던 이한열은 숨을 거뒀다. 최루탄에 맞은지 한 달 뒤인 7월 9일 목요일에 엄수된 장례식은 연세대학교 본관 → 신촌로터리 → 서울시청 앞 → 광주 5·18묘역의 순으로 이동되며 진행되었다. 당시 추모 인파는 서울 100만, 광주 50만 등 전국적으로 총 160만 명이었다. 참고로 80년대 운동권은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니다. 운동권은 상황파악을 잘못해 잘못된 상황을 만들기가 일쑤였다. 대표적인 것이 야권단일화이다. 막무가내로 단일화 협상을 거부한 YS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DJ에게만 책임을 물었다. 정서상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득권을 양보했어야 한다고 애기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하는 KAL기 폭파 사건이 있다.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선거 대신 모든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년 뒤에 신정아가 그랬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더 했다.

1980년의 열매가 1987년이다. 씨뿌리는 일을 높게 평가해야 된다. 열매만 거두는 것을 더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적 평가가 아니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1987년을 기반으로 해서 역사를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1987년을 반성해야 한다. 야권단일화며 김현희며 공정하지 않은 선거를 반성해야 한다. 기억해야 할 사건은 기억하지 않고 반성해야 할 일은 반성하지 않으면 민주화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민주화를 진척시키지 않고도 경제발전 혹은 경제번영을 지속한 나라는 없다. 독재국가 중에서 일시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들은 제법 많았지만, 민주화를 진척시키지 못하면 머지않아 장기간의 정체 혹은 퇴보를 겪었던 것이 세계사적인 경험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경제개발계획을 처음 세울 때 그 모델 국가는 파키스탄과 미얀마였다. 당시에는 이 나라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섰지만, 지금은 두 나라 모두 우리 국민소득의 1/2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필리핀은 한 때 우리 국민소득보다 10배가 넘기도 했었지만, 독재정권이 장기간 유지되면서 지금은 우리의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역시 독재정권이 30여 년을 지속했지만, 다른 독재국가들과는 크게 차이가 날 정도로 치열한 민주화 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무수한 민주인사들이 목숨을 잃거나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가는 등 여러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심지어 광주항쟁과 같은 대규모 살상행위가 독재정권에 의해 자행됐지만 민주화를 염원하는 우리 국민의 열망을 끝내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화는 간헐적이지만 그리고 일시적인 후퇴도 없지 않았지만 점진적이나마 진척될 수 있었다.

민주화가 경제발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는 위와 같은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안철수의 생각]이 민주화 세력을 높이 평가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아니 훨씬 심각한 문제를 하나 안고 있다. 즉, 우리 역사를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로 나누고, 주요 정치 혹은 사회 세력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으로 나눈 점은 장차 우리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이다.

안원장은 현실을 도외시한 채 각각 산업화와 민주화 논리에 빠진 것을 구체적적 사고라고 했다. 낡은 생각에 벗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당이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고, 사회구조는 계층 이동이 차단되었으며, 경제시스템은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일자리가 창출하지 못했으며, 기득권 과보호 구조로 인해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다고 안원장은 생각한다.

반면 자신은 과거의 산업화/민주화 이분법을 극복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시스템을 확립하고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고 계층이동이 활발해진 사회구조 등 새로운 미래가치를 ‘소통과 합의’를 거쳐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화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 산업화를 더 큰 맥락에 놓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구체제는 어떤 때는 산업화에만 치중하고 어떤 때는 민주화에만 치중해서 균형과 조화를 상실했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한 민주정부 또한 “서민의 살림살이” 즉,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민주화에만 치우친 구체제의 연장선으로 평가되었다.

마지막으로 5천만 대한민국 시민에게 허탈감과 실망감을 안겨주고 분노하게 만든 이명박 정권에 대해선 굳이 더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구체제에 대한 안철수의 주장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구체성이 결여되어있으며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 일방적인 선언에 그치고 있다. 이제 정치와 경제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둘러보고 따져볼 것이다. 구체성을 결여한 선언에 대해 단지 똑같은 차원의 선언으로 대응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생산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747, 노무현

저성장의 고통뿐이 아니다. 무엇보다 5천만 대한민국 시민을 괴롭힌 것은 물가불안이었다. 민주 정부 시절엔 가족 혹은 친구와 어울려 삼겹살에 소주를 즐기는 게 보통 사람들의 즐거움이었는데 요즘은 삼겹살 먹으려면 큰맘을 먹어야한다.

물가불안에 더해 실업이 만연했으며 특히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1백만 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공무원과 공기업, 교사 등이 되기 위해 사실상의 실업 상태에서 기약도 없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일곱 번째 철수생각) 정당과 의회, 견제와 균형(적대적 프레임을 넘어)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로 안철수 원장은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을 꼽았다. 그는 양당 체제가 개혁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당 체제가 국민의 생각을 막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양당 체제가 굳건할 때 정치가 잘 되었다. 국민의 생각이 모아졌다. 양당 체제일 때 오히려 경제도 잘 되었다. 대표적으로 우리 경제가 도약했던 1950년대 말이 그렇고, 독재 세력에 항거했던 1960년대 말과 1980년대 중후반이 그렇다. 1990년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정권교체를 하며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을 때가 가장 최근의 양당 체제였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50년 이상 양당제를 지지했다고 강조하지 않았을까! DJ가 이야기하는 양당 구도는 국민이 보다 선호하는 경쟁구도를 뜻한다. 그런 경쟁구도가 있었기 때문에 야권의 DJ, YS, JP 등이 서로 경쟁적으로 유능한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이것이 여권의 인재 영입과 육성을 자극하는 등 정치 활성화가 되었다.

인재 경쟁뿐만 아니라 정책 경쟁도 있었다. DJ는 모든 정책은 "국민보다 반걸음만 앞서가라. 국민의 손을 잡으라"고 당부했다. 끊임없이 국민을 설득하고, 그래도 따라오지 못하면 멈춰 섰다가 국민의 손을 잡고 함께 가야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현상을 정치인이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해 생긴 현상, 진영논리에 빠진 정당정치와 무능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말없는 국민의 분노의 결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정치인도, 원로도 그렇게 말한다. 이는 완전히 틀린 애기다. 독재 세력이 만들어낸 대중 세뇌에 정치인 스스로 깊게 물들었다. 독재 세력은 끊임없이 정치인을 탄압했고, 무능하다고 애기했으며, 정당을 와해시키는 노력을 지속했다. 일제 시대 또는 그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생략하고 이승만 대통령부터 생각해봐도 그렇다. 국가정책에 이견을 제시하면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했으며 선거 때 남자에게는 막걸리, 여자에게는 고무신을 주면서 정당 발전을 방해했다. 독재 세력은 더욱 악랄하게 이를 발전시켰다. 중앙정보부가 빨갱이 사냥을 하고, 정치공작 자금을 무제한적으로 모았으며, 국민이 모이는 계기를 원천 봉쇄했다.

한국 정치가 잘 굴러가지 않는 이유는 오히려 사(私) 때문이다. 대의명분이 없다.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절실함이 없다. 인물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물을 규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당은 대의명분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조직중의 조직이다. 국민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며 모여 있는 이유(대의大義), 그리고 정권을 잡아서 무엇을 할지(명분名分)를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하기 위해 정당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치인은 역사적인 방향감각과 종합적인 비전이 요구된다. 경제는 정치의 가장 큰 수단이다. 비전이다. 정치가 잘 돼야지 잘 먹고 잘 산다. 독재세력이 세뇌시켰던 것처럼 정치가 경제를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 아니며 거꾸로 되었다. 오히려 정치가 잘 안되는데 경제가 잘되면 크게 망한다. 경제라는 좋은 칼을 나쁜 놈 손에 쥐어주면 끝이 좋지 않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치가 오해되었다. 정치 불신이 심각하다. 정치는 사람이 모여 사는 것이다. 모이는 데는 장삼張三도 있고, 이사李四도 있다. 사람들이 조직을 만드는 모든 일에 정치가 있다. 모이는데 딱 하나의 조건이 있다. 모여서 행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피아구분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사귈 수 없다. 피아구분이 없으면 뒤통수를 맞기 쉽다. 뒤통수를 맞으면 행복하지 않다. 정치에서 피아구분이 중요한 이유다. 정당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서양에서 정당과 의회의 역할은 국민의 의사를 대의(代議, represent)하는 것이다. 흩어져 있는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서양 민주주의에 대한 고전을 쓴 토크빌은 민주주의는 정치가 아니라 사회의 상태(常態), 즉 사회의 틀이라고 말했다. 사회에서 여러 조건들이 성립되어야 민주주의가 잘 기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그릇이고, 정당과 의회는 내용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는 제도이고 정당은 내용이다. 정당과 민주주의의 이해가 분리되어 있다. 이 분리를 어떻게 꿰매느냐가 서양 정치학자들의 과제중 하나다. 그래서 정치학이 어려졌다. 정치를 전문적인 분야로 축소시켰다.

양당 체제가 개혁을 막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안원장만이 아니다. 정치개혁을 원하는 486들의 상당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양당이 기득권이기 때문에 개혁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우선 독재 세력이 펴냈다. 독재 세력은 아예 선거를 없애거나 축소시켰다. 정치인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정당과 의회로 둘러서 의사를 반영하는 것은 낭비라고 말했다. 기득권이라는 핑계다. 486들은 학생운동의 전통을 받아들여 독재세력을 견제한 야당도 기득권이라고 봤다. 독재세력이 선거를 축소시켰으니 그들은 다양하고 직접적으로 선거를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86들은 여야 기득권을 없애고 국민의 생각을 즉시 반영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를 원한다. 그래서 다당제를 선호한다. 여러 정당이 있으면 국민의 생각을 다양하게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당제와 중임제 또는 의원 내각제가 일맥상통한다고 보고 있다. 제도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당과 의회의 역할에 대해서 경시하고 있다. 독재 세력이 선거뿐 아니라 정당과 의회 구조를 왜곡한 것, 즉 민주주의 시스템을 파괴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선거보다 후자가 훨씬 더 큰 문제이다.

비슷한 애기로, 독재 시절 만들어진 지역주의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지역주의 해소가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말한다. 지역에 기반한 양당 체제가 개혁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노통은 기득권인 민주당을 해체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했다.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지역주의를 거부해야 한다고 동의했다. 과연 그럴까? 깨어 있는 시민은 기득권을 거부한 사람일까? 지역주의를 거부한 사람일까? 기득권이 없으면, 지역주의라는 조건이 없어져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말이 정확해야 한다. 말을 알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말을 아는 것이 정치다. 정치는 이미지가 아니다. 한국은 온통 이미지만으로 덮였다. 정치판에 가짜가 덮여 있다. 가짜를 깨야 진짜가 나온다. 정치에 대한 이미지를 깨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재검토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이해가 서양의 모델처럼 반쪽이 되기 쉽다. 그나마 서양은 각각 반쪽이 서로 공존하면서 경쟁하고 있어서 민주주의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독재세력의 농간도 덧붙여 있어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황태연 교수는 민주주의를 '지역민중(demos)의 지배(kratos)'라고 말했다. 한 지역(영남)만 계속 대통령이 나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적 민주주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사회적 민주주의나 경제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본령이 아니다.

토크빌도 지역주의 거부가 민주주의의 조건이라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토크빌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옹호한 사람이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어떤 한 지역이 선호하는 정당이 달라지면 중요한 연구테마가 될 정도로 지역을 중요시하게 여긴다. 그리고 민주주의에는 ‘아르케’가 붙어 있지 않다. 대신 ‘힘’을 뜻하는 ‘크라토스kratos'가 붙어있다. 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려면 왜 민주주의를 할까? 기득권에 대한 애기도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기본이 안 된 애기다.

과연 현재 양당 체제가 있는 것일까? 현재 민주당이 민주당일까? 민주당으로 불러 달라고 하는데 과연 민주당으로 부를 수 있을까?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인해 민주당 분당으로 양당 체제가 붕괴되었다. 90년대에는 삼당합당으로 인해서 양당 체제가 붕괴되었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가까스로 합당에 합류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서 기껏 양당구도를 만들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2003년 집권층이 스스로 양당 체제를 무너뜨렸다. 기득권 해소, 지역주의 해소란 명분을 가지고 민주당을 분당시켰다. 스스로 자폭해야 상대방도 자폭한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이 영향이 1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분당을 두고 기득권 해소를 애기했지만 기득권이 더 강해졌다. 지역주의 해소를 말했지만 지역주의는 강화되었다. 삼당합당으로도 기득권, 지역주의가 강해졌는데 민주당 분당도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합당과 분당 등으로 정당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 소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한다는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독재 세력이 야당 탄압하기 위해 써먹었던 수법들이 그대로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한다는 사람들이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독제 세력의 선거 공작이 선거 공학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안철수 현상은 양당 체제가 붕괴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분당으로 생긴 결과이다. 90년대 박찬종, 이회창 현상이 일어난 것과 같다. 그 두 사람도 안원장처럼 깨끗한 사람이라고 여겨졌다. 삼당합당으로 생긴 현상이었다. 안철수 현상은 결코 양당 체제로 인해 생긴 현상이 아니다. 만약 양당 체제로 인해 그 현상이 이루어졌다고 보면 안원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독재 세력에 맞서 민주당은 싸웠다. 모든 것을 가진 독재 세력과 싸우기 위해 깊게 뿌리내려야 했다. 지역에 깊이 뿌리 내릴 수밖에 없었다. 수없이 많은 뿌리들이 독재 세력에 의해 제거됐지만 결코 제거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의 정치인은 스스로 뿌리를 뽑는 일을 조장하고 있다. 뿌리를 뽑아주면 빨리 자란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뿌리를 내릴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안원장 역시 뿌리를 내릴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국민의 생각을 반영할 정당’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것이 정치권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대안도 없이 떠든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애기해야 한다.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야 비로소 그의 뛰어난 진단이 대안의 실현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거둘 것이 아니겠는가. 실천적인 대안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정당정치의 개혁방안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은 야권의 누구도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거나 육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국회의원 보좌관의 기용마저 유능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죽했으면, 야당의 의정활동이 여당의 의정활동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세평이 나왔겠는가. 아니다. 무조건적인 추종자를 내세워 자신의 정당권력을 확대하려 할 뿐이다. 현재의 야권 지도자들은 이를 위해 유능한 사람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배척한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그 사이에 정당 민주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의사가 정당에 반영될 통로가 획기적으로 확장된 것은 전혀 아니다. 공천제도의 개혁이 정당 민주화의 첩경처럼 떠들어졌지만, 최종적인 공천권은 여전히 정당 지도부에 주어져 있고, 공천은 지도부 사이에서 나눠먹기로 이뤄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혹자는 당원이나 국민 여론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반론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공천 나눠먹기 혹은 공천 장사의 눈가림에 불과할 따름이다.

국민이나 당원이 공직후보 경선이나 투표에 참여할 길이 열려 있다지만, 경선에 참여할 후보는 정당이 결정하고, 국민이나 당원은 후보자들의 스펙만으로 선택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것은 마치 상품의 포장만 보고 선택하라는 것과 똑같다. 따라서 어떤 경선 방법이든 지도부의 지명자와 현역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다. 현역은 정치경력이라는 스펙을 이미 갖추었고, 정당 지도부가 지명한 사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정치신인들의 정당 입문 혹은 경선 참여는 거의 봉쇄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야당 성향의 정치신인들이 수권정당에 근접한 야당인 민주당을 외면하고 개혁당과 국참당 등을 기웃거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공천제도의 개혁은 당원이나 국민이 후보자의 스펙이 아니라 알짜 실력을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이뤄지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치권 특히 야당으로서는 실력을 갖춘 인재들의 확충이 시급하므로, 그들을 유인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을 찾는 일도 중요한데,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는 연설은 이미 오래 전에 흘러간 옛 얘기가 되었고, 방송과 신문 등 미디어를 통한 국민 지지의 확산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야당에 우호적인 방송과 신문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터넷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활용하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유능한 인재의 영입과 육성 그리고 당세 확장에 크게 기여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간단히 말해, 정당을 온라인화하고 전략적 이벤트를 창출하여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낸다면, 획기적인 당세 확장은 물론이고 공정한 공천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슈퍼스타 K’,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K팝 스타’ 등의 프로는 좋은 모델이다.

사람들의 흥미를 가장 크게 끄는 것은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므로, 싸움구경과 불구경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정당의 홈페이지를 다음과 같이 개편한다면 여러 면에서 열악한 환경의 야당으로서도 유능한 인재들을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고, 당세 역시 크게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뿌리 내릴 방법을 생각해 봤다. 양당 체제가 확고히 뿌리 내릴 때 가능한 방법이다.

첫째, 정당 홈페이지를 개편하여, 초기 화면에 각 지역구와 분야별 전국구를 구분한다(광역 및 기초 단체장과 지역의원은 별도 공간을 마련한다). 현재의 중앙당 활동공간은 축소한다. 둘째, 각 지역구와 분야별 전국구에 후보 신청을 제한 없이 받아서, 각 후보들의 비전과 공약을 게재하고 경쟁후보들 사이에 토론이 이뤄지도록 유도한다. 다만,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해 일정한 등록비를 징구할 필요는 있다. 그 등록비는 정당경비에 충당한다. 또한 후보서열 3위까지만 상호 토론을 허용한다. 3위권 밖의 후보는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게재할 수 있게 하고, 그중 국민을 감동시킬 내용이 있다면 초기 화면의 특정 공간에 등재해준다.

셋째, 초기 화면에 ‘오늘의 토론’, ‘이 주의 토론’, ‘이 달의 토론’ 등을 띄워, 각 지역구와 분야별 전국구 후보들의 토론 중 가치가 크고 국민을 감동시킬 것을 선별하여 부각되도록 한다. 넷째, 각 후보들의 비전과 공약 그리고 토론을 참고하여 당원이 온라인에서 수시로 투표토록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공천 후보를 선정한다. 중앙당은 후보의 적격여부만 심사한 뒤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다섯째, 일반 당원의 참여는 댓글 창을 별도로 마련하여 허용한다. 주요 창인 토론창은 후보들 사이에서만 이뤄지지만, 별도로 이슈별 토론방을 마련하면 일반인의 참여공간도 충분히 마련될 것이다.

여섯째, 일반 국민도 온라인에서 입당원서를 작성하면 당원 고유번호를 부여받고, 그 고유번호로 투표하도록 한다. 아울러 모바일 입당과 투표도 허용한다. 위와 같은 방안은 싸움구경과 불구경의 효과를 동시에 나타낼 것이므로 당세 확장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각 후보들 사이의 토론은 싸움구경의 효과를 나타낼 것이고, 국가를 경영할 각종 비전과 공약들은 불구경의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이상과 같은 방법으로 정당을 온라인화하고, 온라인에서 정견발표와 토론을 활발하게 전개토록 함으로써 어느 공직후보가 진짜로 실력을 갖췄는지 국민이 좀 더 쉽게 판별할 수 있게 하며, 이런 일들을 통해 국민의 관심과 적극적인 정당참여를 이끌어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경우에 비로소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는 정당’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안철수의 생각]에는 위와 같은 실천적인 방안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고작 “민주당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어요. 10년간 집권했으면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했어야 하는데 어땠습니까? 저는 말이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선택과 행동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의 경우 처음 의도는 좋았지만 선택과 행동이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어요.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건전한 생각을 가진 것만으로는 곤란합니다. 결과를 잘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죠.”라고 얼버무린다.

민주주의는 정치훈련이 필수적이다. 정치훈련이 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안원장은 책으로 자기'생각'을 학습, 검토하라고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가 학습하는 것은 중대한 사건이 발생할 때, 즉 역사가 바뀔 때뿐이다. 오히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훈련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마치 2007년도의 신정아와 비슷한 경우가 다시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2007년 대선이 아니라 신문과 뉴스의 헤드라인은 신정아가 1면을 장식했었다.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의 폐해였다. 국민의 가장 큰 축제가 망쳐졌다.

민주주의의의 네 가지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가 필요하다. 세 개는 정치와 관련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번영이다.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국민들의 합의가 많아야 되고, 투표가 공정해야 하며, 기대는 적어야 한다. 온라인 참여의 전제 조건도 공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투표를 쉽게 하면 선거의 의무를 쉽게 저버린다는 것도 기억하면 좋겠다. 결국 온라인만으로 정치가 올바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온라인이 훌륭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국민들의 합의가 많고, 기대는 적음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합의는 적고, 기대가 크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합의가 많다는 것은 대의(大義)가 있다는 애기다. 정당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한다. 정치의 근간은 정당이다. 정당정치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하다.

기대는 적어야 한다는 말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행정부에 기대가 적어야 한다는 애기다. 유권자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 의회를 내버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유권자에게 많은 일을 하면 안 되고, 최소한의 일만 해야 하며, 그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의회는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의회의 역할은 강력한 행정부를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는 일만 해도 충분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당정치와 의회의 권력분점은 민주주의의 양대 원리다. 정치인이 정당정치와 권력분립을 부정하면 정치인이 아니다.

유권자가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번영이고 다른 하나는 투표를 공정하게 하는 일이다. 기대가 적은 곳에 투표해야 번영할 수 있다. 번영을 가져올 만한 곳에 투표하면 번영을 가져오기 어렵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알아야 기대가 적은 곳에 투표할 수 있다. 공정하게 투표할 수 있다. 공정하게 투표하는 일은 어렵다.

(여덟 번째 철수생각) 보육부터 창의교육까지(백년지대계 교육)

안원장의 첫 직장은 의대교수였다. 1989년 당시 최연소 학장이었다. 20년이 지나 2008년 다시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부임했다. 지난해에는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길지 않은 교육 경력이지만 처음부터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고, 현재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 개혁안의 선봉장에 서 있다. 청춘콘서트에서는 젊은이들의 멘토로 꼽히기도 한다. 그가 보고 느꼈던 교육현장의 목소리는 절망이었다. “계층 이동이 차단된 사회구조”는 그가 꼽은 구체제의 세 가지 악습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교육 개혁을 넘어 사회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전체가 함께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 개혁보다 먼저 선행해야할 일이 있다. 사회를 알아야 사회 개혁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회의 깊은 곳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사회 변화를 알기는 더욱 힘들다. 오늘의 사건과 내일의 예상에 바쁜 사람들이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러나 과거를 알아야만 오늘을 설명할 수 있고 내일을 예상할 수 있다. 변화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과거에 사회 유동성이 엄청났다. 동탕(動蕩)의 시대였다. 질풍노도(Sturm und Drung)의 시대였다. 조금만 해도 엄청나게 큰 결실을 이룰 수 있었던 시대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어였다. 이명박 정권 초기의 이른바 ‘오륀쥐’도 그 시대의 흔적이다. 뒷북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오늘날 영어의 지위가 과거와 같을까? 오히려 중국어가 과거의 영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안원장이 이런 시대의 변화를 말하지 않아 안타깝다. 그 역시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첨단 기술정보를 빨리 따라잡지 못하고, 그래서 세계적인 IT 전문가가 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영어보다 더 큰 문제는 컴퓨터 사이언스의 기초가 되는 수학과 공학적 방법론(특히 통계학과 알고리즘)이 더 과제이지 않을까?

예전에 사회 유동성이 활발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실력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그 당시는 우리 실력이 얼마나 뛰어날 줄을 몰랐었다. 거침없이 세계와 맞섰다. 주눅이 들지 않았다.

반면 사회 이동이 차단된 가장 큰 이유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졌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으로 기득권이 생겼다는 애기다. 기득권이라고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재 살만하다는 뜻이다. 현재 힘들다고 하는데 좋았던 옛날 같지 않다는 애기다. 살만하기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바꾸고 싶다고 말을 해도, 막상 바꾸려고 하면 멈칫한다. 안원장은 사회 시스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대기업뿐만이 아니라 중견기업도 좋은 일자리가 되어야 하고 지방에도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대기업만 문제일까? 그게 변화의 핵심일까? 말뿐이지 않을까?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닐까? 기득권을 좁혀서 보는 것이 아닐까?

우리 실력을 지나치게 낮춰보는 것도 기득권 못지않은 문제다. 관료 엘리트층에서부터 이런 생각이 만연해 있다. 우리는 작은 나라라는 생각이 퍼져 있다. 자국의 국민소득을 낮추도록 보이는 정책이 경제정책의 기저에 깔려있다. 다음과 같은 생각이 아니라면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3~4만 달러 국민소득은 망한다.”, “3~4만 달러 할 수 있는 국민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환율은 성장률과 더불어 국가경제의 성적과 의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고성장 목표를 포기하고 성장률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달성됐다. 국민소득이 취임 당시 1만 달러에서 2배가 늘어난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은 ‘연평균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을 뜻하는 747 공약을 내놓았다. 노무현 정권과 같이 국민소득의 2배 늘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평균 성장률은 4년 동안 3%에 그쳤다. 달러환산 1인당 국민소득은 2011년에 2만 달러 초반에 불과했다. 제자리에 멈춘 것이다. 달러환산 명목GDP 순위도 꾸준히 떨어져 2011년에 겨우 15위를 기록했으며 한때 한국보다 뒤졌던 멕시코, 호주가 우리 위에 있다. 7대 경제대국의 꿈이 진정으로 있었는지 의심이 가는 지경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좀 더 분발하고, 이명박 정권에서 고환율 정책을 포기했다면 현재 4만 달러 국민소득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하는 애기다.

최근 10년 동안의 경제 정책의 공통점중 하나가 고환율 정책이다. 차이점은 노무현 정권에선 정권 중반 고환율을 포기했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 경제의 체력과 역량이 되지 않을 때에는 고환율 정책이 필요하다. 역량이 안됐는데도 불구하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쇼는 김영삼 정권으로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우리의 잠재성장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국민이 피와 땀을 흘린 결과이고 김대중 대통령의 오랜 준비 덕분이었다. 가장 나쁜 것은 시대착오이다. 노무현-이명박 정권은 이와 같은 사실을 몰랐거나, 혹은 무시했다. 은폐됐다. 안원장이 말하는 사회의 변화는 이미 십수년 전에 시작되었다. DJ 때 이루어졌다. 안원장이 이를 아는지 궁금하다. DJ는 공공부문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그 결과 잠재성장력을 놀라보게 확충됐다. 공공부문의 20%를 구조조정해서 3~4%도 안 돼는 잠재성장률이 8~9%까지 높아졌다. 공공부문 축소는 DJ를 비난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잠재성장력은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력이 10년 동안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에 말라가고 있다. 그리고 최근 5년 잠재성장력을 훼손하는 정책이 실시되었기 때문에 점차 고갈되고 있다. 잠재성장력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우리 실력이 형편없다고 스스로 여기고, 웅크러진다. 세상에 맞서지 못한다. 세상이 내 것 같지 않다. 세상을 넓게 관찰하지 못하고 깊게 비교하지 못하며 하나로 일반화하지 못하고 있다.

안원장이 말하는 사회 인센티브 시스템 개혁은 진취적인 사회, 거침없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 성과가 인정받는 사회는 일 것이다. 그렇지만 진취적이며 실력있는 인재 양성이 곧바로 교육의 최우선 목적이 될 수 없다. 인재는 많지만 쓰이지 못하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스스로 틀을 깨지 못할 뿐이다. 사회의 문제이지 교육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실력주의(meritocracy)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업적에 걸맞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실력주의가 후퇴한 가장 큰 이유는 민간 부문에 비해 공공부문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은 능력 있을 사람이 필요치 않다. 공공부문은 망하지 않고 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간 부문은 외국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하고, 경쟁을 통해 여러 기업이 망해가고, 능력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민간 부문에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에 70년대 후반 민간부문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각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이 대거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을 선호한 적이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플레 때문이다. 심각한 인플레 때문에 공공부문에 있으면 생활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 민간부문에 있어야 그나마 생활이 됐다. 당시 민간부문의 임금이 공공부문보다 거의 두 배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공공부문의 심각한 부패 때문이다. 당시 젊은이들은 월급도 낮고 부패도 심한 공공부문에 취직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88년 올림픽 전후 공공부문에 빅뱅이 시작됐다. 공공부문의 월급이 오르기 시작하고, 시만단체들이 우후죽순 족생하면서 공공부문의 부패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힘과 교육

무엇보다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공공부문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여성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사회혁명이 벌어졌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인권이 확장되었다. 70년대 여공의 노동운동부터 시작하여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하여 의식화된 여성의 사회진출이 이루어졌다. 80년대 초중반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기도 했다. 대학 입학이 일반화되고 가정의 사회적 부담도 커졌다. 재테크라는 일본 신조어가 수입되었고 자기 개발서를 비롯한 실용서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가장 진출하기 쉬운 분야는 공공부문이었다. 교직과 더불어 공무원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집중되었다. 1993년 문민정부 때에는 서울에 18년 만에 여성 동장이 부활하기도 했다. 현재 주민센터 인원의 절반 이상이 여성들이다.

참고로 서구에서 여성고용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본격적으로 여성이 공직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영구적으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가난하고 그래서 생활비가 부족한 기혼여성들이 전후 일하러 나간 이유는 아이들이 더 이상 일하러 나가지 않아 어머니들이 아이들 대신 일했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서구와 비교해보아야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공공부문에 집중되고, 공공부문이 비대화의 한 요인이 되고, 이를 옹호하는 인식이 확대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여성혁명은 돌이킬 수없는 문제다. 본질적인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변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본질적인 문제를 물어야 한다. 그게 교육이다. 교육의 핵심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란 뜻은 백년동안의 해결책을 찾는다는 애기가 아니다. 해결책 제시는 불가능하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난 백년 동안의 과정을 보고 문제가 무엇인지 밝히고 그 해결책을 찾고자 복돋아 주는 것이 교육이다.

진정한 실용주의와 교육혁명, 그리고 민주시민

여성혁명같은 사회변화만 있던 것은 아니다. 교육혁명도 있다. 교육의 구조가 바뀌었다. 그래서 사회혁명을 반영하는 교육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백년지대계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대학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거시적으로 대학의 역사를 말하면 엘리트 중심의 대학교육에서 미국의 대중 중심의 대학교육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큰 흐름이다. 미국이 인류에 공헌한 점이다. 특히 프래그마티스트가 인류에 공헌한 가장 큰 업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용주의를 제대로 해야 하고,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야가 교육이다. 우리나라에 오염된 말이 너무 많다. 실용주의도 그 중 하나다. ‘오륀쥐’같은 영어 공용화는 실용주의가 아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결정체가 실용주의다. 민주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실용주의다. 민주 시민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안원장 역시 커뮤니티칼리지처럼 주말이나 야간에 성인들이 필요한 부분을 공부하는 모습과 시골에 있는 대학에까지 장관급 등 유명인사들이 와서 특강을 하는 걸 보고 느낀 바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기회가 적은 학생과 성인들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진 것이다.

여성들 스스로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교육의 문제까지

[안철수의 생각]은 ‘계층 이동이 차단된 사회구조’를 혁파해야 할 구체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로 제기했다.(29쪽) 이 진단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계층 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게 할 처방은 어디에서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따라서 공리공론을 펼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계층 이동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을까? 계층 이동을 가장 활발하게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방법은 교육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고 내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그는 교육문제에 대해서 좀 더 친절하게 언급하는 것이 독자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그의 책 중에서 교육문제에 관한 진단은 “10대들은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에 시들어가고 20대는 너무 비싼 등록금과 취업, 진로 등으로 고민하죠.”(84쪽)가 거의 유일하다. 이런 정도로는 날로 황폐해가는 교육현장을 올바르게 진단했다고 볼 수 없다.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은 과거에는 최소한 명문 중고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했었고, 40년 전의 등록금은 중산층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쌌었지 않은가 말이다. 교육문제의 처방으로 거의 유일하게 제시한 것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대학등록금을(중략) 당장 반값은 어렵더라도 적정한 수준으로 낮춰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105쪽)가 거의 전부이다.

교육문제는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기껏 그 정도에 불과하다면 어찌 국가를 경영할 자질과 능력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다른 정치인들도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나라를 진짜로 살려보겠다고 나서려 한다면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 중 하나인 교육문제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내가 고뇌해왔던 바와 그 고뇌의 산물인 대표적인 교육정책을 여기에 밝혀두고자 하는 바, 이게 그에게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여러 사람의 희생과 노력으로 교사의 권리와 권한은 다른 어느 분야에 못지않게 향상되었다. 이제는 좋은 교육을 받을 학생의 권리를 강화해야 할 때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교육은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사회활동의 기회를 확보하는 데에도, 그리고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는 데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국가적인 관점에서도 교육은 체제의 발전과 안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해왔던 것이 세계사적인 경험이다. 따라서 학생의 학습권은 어떤 경우에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교육현장은 붕괴 직전이다. 특히 공교육 현장은 매우 심각하다. 임용고시를 거쳐 최고의 교사들이 부임하는 곳이 공교육 기관인데,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공립학교 입학을 기피하려 든다. 공립학교의 교육수준이 사립학교나 심지어 학원에 비해서조차 크게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우수한 학생들이 학원의 야간학습을 위해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뒤처진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장난을 쳐도, 못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싸움을 벌여도 방치하는 게 오늘날 공교육의 현장이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면, 학생 개개인의 미래는 물론이고 국가의 미래가 밝다고 기약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공교육 현장의 개혁이 필수적인 셈이다.

학교에서 교육이 사라진 다른 결정적인 증거는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노인, 임산부, 장애인, 환자 등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대부분 40대나 50대이다. 10대나 20대는 좀처럼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지난 20년 동안 학교의 인성 교육은 그만큼 후퇴했다. 왕따나 학교폭력 등 역시 인성교육의 부재가 빚어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교사의 권리만 있었고, 학생의 학습권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던 셈이다.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나는 여러 정책들을 준비했다. 그중에서 국민이 쉽게 이해하고 동의해줄 것으로 여겨지는 두 가지만 먼저 여기에 밝혀두고자 한다. 그 하나는, 중고교 특성화반 활성화를 통한 적성교육 체제의 강화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대 납부금을 연간 50만원으로 낮추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공교육을 살려내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적성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적성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려면 특히 중고등학교에서는 특성화반을 좀 더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음악만 잘해도, 미술만 잘해도, 운동만 잘해도, 글짓기나 연극만 잘해도, 공작 등 다른 적성이 뛰어나도 우수한 학생으로 평가받을 교육체제를 구축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그들에게 알맞은 교육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한편, 교육은 못사는 사람들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계층 이동이 자유로울수록 그 체제는 건강한 게 일반적이므로, 교육은 국가의 건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못사는 사람이 큰 부담 없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개인을 위해서나 국가 전체를 위해서나 모두 바람직한 일이다.

못사는 사람이 대학 등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등록금 부담이 지금보다 훨씬 적어야 한다. 물론 장학금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나,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은 그림의 떡이다. 하루 대여섯 시간씩 일하는 학생들로서는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대폭 낮춰야 바람직하지만, 재정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지방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대폭 낮추는 것이 현실적인 정책이다. 무엇보다, 대학교육의 기회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보다는 그것을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주어졌을 때에 비로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만약 지방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50만원 수준으로 낮추면, 첫째, 서울로 집중된 교육수요를 지방으로 분산시킴으로써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실제로 국립대학의 등록금이 사립대학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과거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지방대학을 지원했고, 유능한 인재를 다수 배출했었다.

둘째, 인재를 지방 국립대학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사립대학들이 장학금 제도를 대폭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립대학들이 장학금 제도를 대폭 확대하면 못사는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아홉 번째 철수생각) 농업과 FTA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농업 국가였다. 농업 사회였다. 농업 문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현재 국가의 우선순위와 관심사에 농업이 없다. 농업이 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이 소수로 전락하게 되었다. 사회가 변했다. 경제와 쇼핑의 중심지, 한국 문명의 중심지인 강남도 70년대까지만 해도 농사를 짓고 있었다. 농업혁명이라 할만하다. 농업사회가 비농업사회가 되었으니 그만큼 큰 혁명이 어디겠는가! 농업혁명을 시기를 잡는다면 박정희 정권 당시가 가장 결정적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농업혁명이 있었다. 농업혁명의 내용은 농촌파괴다. 물론 농촌파괴가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으로 가장 파괴가 심했던 곳은 도시보다 농촌이다. 전후 척박한 토지에 충분한 적응 시험없이 면화와 박하 등 대규모로 미국종자를 심어서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본격적으로 농촌이 파괴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산업화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농업의 몰락을 자연스럽게 내포하는 애기다. 농업을 죽이면서 농촌이 최고라고 한 것이 새마을 운동이다.

FTA로 농업이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하는데 이미 농업은 난도질된 상태다. 식량자급률은 20% 중후반에 머무른다. 나머지 70% 이상은 수입하고 있다. 식량자급률 100%에 이를 정도로 높은 쌀은 괜찮을까? 쌀 생산량은 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재고는 넘친다. 보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햅쌀이 나오면 몇 년 묵은쌀은 처지곤란이 된다. 쌀농사를 짓는데 별 소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묵묵히 또는 체념하면서 농사를 짓는다. 관습이다. 문명의 힘이다. 골수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생각의 힘이다. 그래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농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식량안보와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를 위해서 농업기반을 지키고 식량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정부는 물론 사회 전반에 식량안보의식이 너무 없다고 한탄하기까지 한다. 수천 년 동안 문명과 사회, 국가를 농업이 보호하고 뒷받침하며 기반한 잔상이 뇌리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명이 바뀌었다. 문명 독존의 시대는 지났다. 문명이 독자성과 배타성을 주장하는 시대는 지났다. 문명이 조우하는 시대다. 자급이나 자립에 무슨 높은 가치가 담겨 있을까? 수입이나 의존에 어떤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까?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어떤 나라도 자급·자립할 수 없다. 모든 나라가 서로 수입하고 서로 의존한다. 농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수입하면 식량안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올바른 물음일까? 다른 나라에 의존하게 되면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하는 염려는 기우이지 않을까. 이런 걱정과 염려는 비상시에 식량 확보 가능성에 관한 의문이다. 위급한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자연재해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 및 외교 분쟁을 들 수 있다. 자연재해는 꼭 우리에게만 닥칠까? 전 세계가 자연재해를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재해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자연재해와 마찬가지로 전쟁 및 외교분쟁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돈없이 해결되지 않는다.

식량 자급률이 높아지면 국산 농산물을 소비할 능력은 될까? 신토불이 유기농을 계약재배해서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를 할 수 있는 계층은 일부 강남 사람 등 부유한 사람밖에 없다. 돈 있다고 자신들만 안전한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일까? 굶어죽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다. 먹는 걸 가지고 장난하면 안된다. 식량은 세계적 규모로 보아야 한다. 넓은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인류의 관점에서 농업의 가장 큰 문제점을 짊어야 한다. 농업의 최대의 목표는 증산이다. 그러나 농업혁명으로 갈수록 농민의 수는 줄어들고, 그 줄어드는 농민에게 보조금을 주는 대신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이전에 농업혁명을 성공한 영국의 사례를 요약하면

가장 처음 농민에게 보조금을 지불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대공황으로 농산물가격이 수직 하락되어 농산물가격을 안정시키거나, 잉여농산물을 사들이거나, 농부들에게 생산하지 않도록 돈을 주었다.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는 1980년대 이미 증산 정책 포기에 대한 논의가 끝났다. 우리나라는 2004년에 증산 정책을 포기했다. 우리는 1994년도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결론을 못 내다 10년 동안 유예 이후 2004년도에 결론을 냈다. 증산을 하지 않는 대신에 쌀값이 떨어지면 농사짓는 분에게 보상해주는 쌀 직불금 제도가 생겨났다.

안원장은 “안정적인 (식량)공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요증진 정책 필요”하고 “우리 농산물을 소비하는 수요가 많아지도록 인센티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수요증진 정책이 과연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을까? 아니, 수요증진 정책이 과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농업에서 공급면에서 자급자족이 안되고, 설령 된다고 한다면 가격이 너무 높아져 많은 수의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과연 수요측면에서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냐 하는 문제다.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나친 도시개발과 용도 변경으로 농지가 줄어들지 않도록 보호정책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FTA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구제하면서 유기농 보급 등을 통해 우리 농산물을 안전한 먹을거리로 고급화하도록 유도한다면 소농 중심의 우리 농업에도 승산이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것들은 역대 정부가 오랜 세월 추진해오던 정책들이었다. 그럼 왜 정부정책이 효과를 충분히 거두지 못했는가를 먼저 성찰해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안철수의 생각]이 제안한 위와 같은 정책들은 이미 반복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바 있어서 신선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언론에 이미 보도된 내용이 아니라 새롭게 언론에 보도될 신선한 정책들이 국민의 이목을 끌고 감동을 줄 수 있을 터인데, 왜 그는 그런 정책들을 개발하지 못했을까? 이러고도 ‘내가 우리나라를 경영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나설 수 있을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다음과 같은 그의 잘못된 진단이다. 즉, “한때 쌀 수출국이었다가 시장개방 후 농업이 무너지고 쌀 수입국이 된 필리핀의 교휸을 새겨야 합니다. 농업을 보호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언급했는데,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시장개방을 하기 전에 이미 필리핀은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필리핀 쌀농사가 몰락한 진짜 원인은 과거 독재정권이 국민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저곡가 정책이 필리핀 쌀농사의 수익성과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이게 논의 황폐화를 초래함으로써 쌀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인 것이다. 이런 잘못된 그의 진단이 역으로 우리 농업을 필리핀처럼 황폐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서 내 진단과 정책대안을 제시해보가자 한다.

농어촌은 식량안보의 전진기지이자, 거대한 양노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농어촌의 보호와 농어업의 발전은 국가의 안정과 발전 그리고 복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 논농사의 보전은 식량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다. 식량안보를 위해 논농사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보전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농업도 국제경쟁력을 갖추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국토가 협소하고 척박한 이스라엘은 농산물 순수출국이고,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세 배 이상 많은 네덜란드 역시 농산물 순수출국이다. 우리나라도 농어업에 기업경영을 접목시켜 농어업이 기업농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기업경영의 기법이 농어업에 도입되면 우리 농어업도 얼마든지 경쟁력과 성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 나는 대표적인 정책으로 다음 두 가지를 준비했다. 그 하나는 논농사에 대한 수방대책 비용과 환경보호 비용을 직불하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농어촌지역에 대한 노인복지비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만약 세계적으로 흉작이나 정책적 생산감축 등이 일어나면, 국제 식량 가격이 폭등하곤 했다. 가격의 수요에 대한 탄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농사는 최소한 식량안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WTO나 FTA가 허용하는 직불제도를 활용하면, 설령 쌀의 수입이 완전히 개방되더라도 논농사는 얼마든지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논농사에 대해 수방대책비와 환경정화비를 지불하는 방법이다.

우선, 논은 거대한 수해방지 시설이다. 홍수가 났을 때 물을 가둘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해방지는 국가적 사업이므로 수해방지 대책비를 논농사에 직접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정부의 책무이다. 다음으로, 논은 거대한 환경정화 시설이기도 하다. 홍수가 나서 개천에는 흙탕물이 흘러도, 논을 거쳐 나온 물은 항상 맑은 것이 논의 환경정화 기능을 증명한다. 환경정화는 국가가 수행할 기본적 책무이므로, 논농사에 환경정화 비용을 직접 지불하는 것도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수방대책비와 환경정화비를 점진적으로 확대해가면, 쌀값이 설령 국제가격 수준으로 낮아지더라도 우리 논농사는 얼마든지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경우 쌀값이 떨어지고 전반적인 물가도 안정되어 소비자 역시 큰 혜택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농어촌은 거대한 양로원 시설이라는 면에 있어서도 농어촌의 보존과 발전을 국가적 사업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농어촌의 노인들이 국가적인 양노시설이나 도시의 자식들에게 맡겨진다면, 국가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농어촌 노인들에게 복지비를 대폭 상향하여 지불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일이다. 이 문제는 다음에 다시 자세하게 언급할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은 우리나라의 정치 기류를 반영하여 복지 문제에 큰 비중을 할애했다(81~103쪽). 복지정책의 전반적인 문제는 장차 더 자세하게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문제만을 다루기로 한다. 그런데 복지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노령화 문제,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복지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나이가 아직 젊어서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테지만, 국가를 경영하고픈 사람이라면 이런 중대한 문제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져, 내가 생각해둔 베이비붐 세대의 문제와 그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밝히고자 한다.

베이비붐 세대(50~65세)는 오직 자식 및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했고, 어떤 비용이라도 지불했다. 결과적으로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후를 위한 저축을 거의 하지 못했고, 기껏해야 가진 집이 전부일 정도이다. 비록 제 자식 및 가족을 위해서 일했지만, 오늘날의 경제적 풍요를 이룩하는 데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므로, 그들을 위해 국가적으로 복지정책을 마련하는 일도 필수이다. 또한 그들의 생존한 노부모를 위해서도 이것은 필수적이다.

그들의 건강이 유지되는 한, 일자리를 충분히 마련해주는 것이 최상의 정책이고, 일자리는 성장이 충분하게 이뤄질 때 창출되므로, 경제를 살려내는 일은 베이비붐 세대를 위해서도 최상의 정책이다, 6% 이상의 성장률이 5~6년 이상 이뤄진다면,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주어질 것으로 기대되며, 이 문제는 뒤에 내가 20년 이상 연구해온 경제 살리기 정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이다. 물론 장기간의 경제성장을 통해 이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것은 장기적인 과제이므로 단기적인 정책의 마련도 필수적이다. 내가 준비한 정책은 정부가 추진해온 ‘귀농 귀촌 센터’의 기능을 크게 활성화하기 위하여 베이비붐 세대에게 농촌 이주비와 정착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70% 이상은 시골이 고향이다. 이들이 고향에 내려가 농사로 소일거리를 찾는다면, 생활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을 되찾아 의료비까지 대폭 줄일 수 있다. 또한 이들이 귀농하여 노부모를 부양하면 노인복지 문제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한마디로, 국가적으로는 의료비와 노인 복지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복지비와 의료비가 줄어드는 비용으로 귀농예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귀농할 때는 이주비로 1천만 원을 지급하고, 정착비로 매년 5백만 원을 3년 동안 지급하는 정책을 펼친다. 예산을 감안하여 첫해에는 2만 명을 선정하여 이주비와 정착금을 지급하고 그 성과를 봐가며 점차 확대한다. 추후 의료보험료가 절감되는 효과가 나타나면 그 예산을 귀농정착 예산에 전용하여 귀농대상자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면, 베이비붐 세대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열 번째 철수생각) 소통과 합의의 미래정치

안철수 원장은 우리가 가진 제한된 자원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인 복지, 정의,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국민들의 동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성 정치권이 진영 논리에 빠져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본다. 소통과 합의가 미래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미래정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제한된 자원이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것보다 더 거대하다. 우리나라를 파악하는 일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며 코끼리를 파악하는 일보다 더 힘들다. 우리나라는 7,500만의 사람과 오천년의 역사의 축적이 담긴 거대한 대한민국호이고 천리마이다. “우리가 가진 제한된 자원” 운운하는 이야기는 천리마의 하나의 깃털에 기반을 두고 살 길을 모색하는 것과 같다. 지엽적인 문제에 빠지기 쉽다.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며 도피하기 쉽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성급하게 정할 필요가 없다. 천리마의 전모를 보고 정해도 늦지 않는다.

소통과 합의를 위해서도 대한민국호와 천리마에 대해 알아야 한다. 소통과 합의가 잘되지 않는 이유는 전체(대한민국호와 천리마)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과 전체에 대한 연결도 불분명하고, 그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정체성도 다르다. 우리나라만큼 동질적이고, 동조가 빨리 일어나는 곳이 없는데 의외로 커다란 공통분모는 적다. 개인의 생존과 성공에 바쁘기 때문에 전체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오늘의 생존과 내일의 성공에 바쁜 사람들은 전체를 돌아보지 못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오늘의 생존과 내일의 성공을 위해서도 조금 돌아가 보는 것이 필요하다. 소통과 합의는 멀리 돌아가는 길이다.

동서고금 지혜로운 사람들은 전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역사에 밝은 사람들은 전체를 물과 배로 비유했다. 공자는 “군주는 배다. 인민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 있고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君者舟也, 人者水也. 水可載舟, 亦可覆舟)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국가를 유조선에 비유하기도 했다. 유조선은 너무 거대해 방향을 틀려고 해도 시간이 걸리고, 전속력으로 달리려고 해도 추진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파도가 심하고 안개가 자옥해 앞이 보이지 않지만 엔진은 너무 작아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힘들 때도 있다.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만이 전체를 살펴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지엽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안철수 원장의 멘토인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비정규직 2,6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해답이 그 뿐일까? 문제를 올바로 파악했을까?

사회 전체가 문제다. 그 문제는 잘 잡히지 않고,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다. 파악하기 어렵다. 사회 전체가 병들었다. 천리마가 병이 들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책들은 이미 실행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정책 대부분이 효과가 없다. 전반적으로 잘못되었다. 해답이 없다.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대한민국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분야가 너무 많다. 일본 문제, 검찰 문제, 은행 도둑 문제, 삼성 문제 등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한국 사회가 썩었다. 위원회를 만들어서 해결될 수 없고 전봇대를 뽑는 식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소통과 합의의 차원도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한다. 무엇이 정상인지 아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세계역사와 함께 넓게 관찰하고 깊이 비교하며 하나로 일반화할 수 있어야 한다. 남과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 나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내가 남을 알지 못할까 염려해야 한다. 남이 나를 알지 못한다고 화를 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화에서 염려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문제점이 목까지 차올랐다. 지난 한 세기전 선배 세대도 이와 같은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노력했지만 21세기를 넘어온 아직까지 절반의 성공에 머물러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온전한 성공이 아니었다. 거꾸로 세워진 성공에 도취되었다. 소통과 합의보다 더 중요한 사항을 소홀했다.

깨어있는 시민이 살아가는 방법

19세기 중후반, 구정권을 개혁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서세동점의 시대, 가치가 전도되는 시대였다. 대원군의 사회경제적 개혁, 1884년의 정치개혁이 처참히 실패한 후 노력했던 일은 신체제를 만드는 일이었다. 신체제의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었다. 19세기말 한국인들은 나라를 근대화하고 정체성을 재창조해야 하는 이중 임무에 직면했다. 중국중심의 천하질서에서 서구중심의 근대성을로 전환하는 과정은 민족정체성을 다시 구축하는 작업이었다. 정치실패 이후 다음 세대가 갈 수 있는 길은 교육과 정신이었다. 정치에 초점과 관심을 두지 못하고 교육, 정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민중의 각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요즘 신로 하면 ‘깨어있는 시민’이다. 신교육을 실시했고, 기독교 정신 또는 우리의 큰 정신을 요구했다. 개혁가들은 ‘깨어있는 시민’과의 소통과 합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9세기말부터 생겨난 교육열과 종교광풍은 우리나라를 특징짓는 요소다. 교육과 정신의 강조로 우리나라는 동조가 쉽게 일어날 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수많은 정책들을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정치 부재의 뿌리는 아주 깊다. 소통과 합의가 정치로 연결되지 못했다. 정치로 승화되지 못하면 소통과 합의는 무의미해진다. 오히려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정치 부재는 19세기말 개혁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위대한 정치가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였는데 불행하게도 없었다. 정치는 19세기말 현안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외면당했다. 위와 밖으로부터의 정치개혁이 처참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노력이 좌절된 후 그 후 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교육, 정신밖에 없기도 했다. 교육과 정신에 대한 강조는 깨어있는 시민에게 한(恨)을 심어주었다. 악순환이 벌어졌다. 그 당시 교육은 더 깨어있는 서구를 배우는 것이다. 더 깨어있는 남을 모방하면서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 원한이 쌓이기 시작한다. 또한 정신은 대단하게 무장됐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화난다. 나는 대단한 식견과 정신을 가지고 있는데 세상이 몰라주면 더욱 화난다.

정치 부재는 정치 불신으로 이어졌다. 정치 불신이 화(火)라는 정서와 결합되어 더욱 폭발력이 생겼다. 문제의 원인을 정치로 돌리기 쉽다. 정치인이 잘못됐다고 욕한다. 문제를 교육과 정신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지식인이나 종교인같은 비정치인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깨어있는 시민이 나서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정치인이 소통과 합의가 없어서 엉망이라고 말한다.

20세기 후반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질서가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서세동점의 가치전도 시대가 흔들리고 있다. 한반도는 아직도 분단된 채 남아 있다. 서구를 모델로 해서 무분별하게 수입한 정책과 한 세기 동안 우리가 만든 민족정체성이 한계에 도달했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한 세기전 선배 세대가 고민했던 근대와 민족정체성의 문제에 다시 부딪치고 있다. 안원장이 말하는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는 이런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오히려 한 세기전 선배 세대가 보았던 현실이기도 하다. 다행히 한 세기 동안의 경험은 희망과 동시에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희망은 무엇일까? 한 번 자기 동력이 생기면 배는 대항해를 향해 과감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천리마는 도약할 수 있다. 그 계기는 자립의지다. 자존심이다. 자긍심이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자립의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에 천년 동안이나 암흑기가 지속되었던 유럽 대륙을 경제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일깨웠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이슬람 제국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번영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이슬람 왕조는 경제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크게 앞선 나라였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제국이기도 했으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감히’ 이 제국과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경제패권을 이어받은 스페인은 이슬람 왕조의 7백년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투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경제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스페인의 경제패권을 이어받은 네덜란드 역시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80년 동안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영국은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경제의 패권을 장악할 기회를 잡았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독립투쟁을 통해 경제번영의 기틀을 잡았고 나중에는 세계경제의 패권을 쥐게 되었다. 식민지가 되었거나 자신의 출신이 평민이나 노예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했다. 국가경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민(nation)으로서 사회를 일신시킬 수 있었다.

1956년 5월 대선의 민주당 캐치프레이즈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그해 4월 봄부터 이 구호가 사용되었다. 대통령 후보였던 신익희 선생은 이 구호를 ‘스스로 울어나온 동요’라고 설명했다. 자립의지의 표현이다.

자립을 막는 20세기 원조의 신화가 있다. 세계적으로는 마셜플랜이 그 신화를 대표한다. 우리나라의 원조 신화는 마셜플랜의 아류에 속한다. 1950년 전후 이루어진 마셜플랜은 유럽에 미국 최전성기의 풍요로움까지 전파됐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람들에게 경제적 부분보다 오히려 경제 외적인 심리적, 문화적인 부분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더구나 마셜플랜이 끝나기도 전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유럽은 경제원조를 이어 군사원조가 뒤를 이을 수 있었다. 마셜플랜의 핵심은 미국이 돈을 주면서 어디에 쓰는지 결정하는 천편일률적인 회복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원조를 받을 것인지 받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받으면 어디에 쓸 것인지 결정하는 일을 유럽인들 각각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프랑스는 가장 계획을 잘 짜서 성공했고 마셜플랜에 가장 비판적이게 되었다. 영국과 같이 마셜플랜이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않은 나라도 있고, 벨기에 같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나라도 있었다.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1950년대 초 한국전쟁으로 물가가 일시적으로 올라갔지만 종전 이후 물가가 안정되면서 비교적 장기간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성장이 파괴되어 있거나 정체되어 있던 때는 물가상승률이 가격경쟁력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에 더욱로 물했다. 국제수지를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제경쟁력이다. 국제경쟁력은 물가안정의 기반에서 즉 밑바닥부터 튼튼히 해야 한다. 원조같이 달러 19포하는 방식으로, 즉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원조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아니다. 오히려 독재 및 관치의 자양분이었다. 1955년 자유당 독재체제가 성립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 이유는 원조에 있다. 미국의 마셜플랜은 일시적인 국제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계획일 뿐이다. 유럽에서는 마셜플랜과 스스로 원조를 결정했다는 사실과 결합해 경제발전이 관료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원조가 더 경직된, 다시 말하면 원조(또는 전쟁물자 조달)가 위에서 결정되고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일본과 우리나라 그리고 대만에서는 아예 경제 관료가 경제 개발의 주역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원조에서 경제 관료들이 맡은 일은 회계와 통계를 원조기관에게 보고하는 일이었다. 이것이 정상적인 일인 것처럼 굳어졌다. 관료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은 국정의 정확한 내용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통계를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고 안정적인 경기판단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기본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직되고 거꾸로 된 경제운영의 시대는 지나가야 한다. 이제는 정상적으로 경제가 운영되고 사회가 돌아가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무엇인지 무시하고 또 잊어버렸다는 점이다. 원조가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깊이 사람들의 심리를 좌우하는지를 보여준다. 놀랍게도 20세기 후반 미국의 직간접적인 원조 없이 경제를 성장하게 만든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부상하는 중국을 주시하는 이유 중 하나다. 너무도 많은 부분에서 반성할 점이 많다. 20세기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호의 방향이 바뀌어야 하고, 천리마를 치료해야 한다.

정상운영에는 무엇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소통과 합의가 필요하다. 소통과 합의는 원조처럼 위에서 뿌려지는 것이 아니다. 관료가 취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사는 것 자체가 의사소통이다. 각자 생각이 다 다르다. 각자의 포지션이 다르다. 환경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배려가 필요하다. 대화가 필요하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 생각만 하면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려하지 않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단순히 말이고 선언일 뿐이다. 수시로 대화해야 한다. 그게 소통이다. 어렵지 않는 사람이 없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소통이 더 필요하다.

배려뿐 아니라 공통점이 필요하다. 공통점을 찾는 방법이 무엇일까? 공통점을 찾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힘을 모을 방법은 무엇일까? 공동 목표를 정해야 한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목표가 없으면 소통이 필요하지 않다. 뜬 구름 잡는 목표로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동 목표를 찾고, 그 다음은 실행할 수 있는 자금을 모아야 한다. 여기서 합의가 등장하다. 자금을 부담하거나 나눠 가질 때 합의가 필요하다. 부담과 이익을 균등하게 정의(definition)하는 것이 합의다. 부담과 이익을 배분에 동의하기 위해서 상대방도 양보해야 하고, 나도 양보해야 한다. 모두 만족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로 진평분육이 있다.

진평이 사는 마을에 토지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 있었다. 진평이 그 제사를 주관하는 하면서 제사를 지낸 고기를 나누어주었는데 그 분배가 매우 공정했다. 사람이 좋아하는 고기가 각자 다른데 진평에게 맡기면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만족했다(Everybody satisfy)는 애기다. 진평은 “내가 천하를 요리하면 잘 할 수 있을텐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복지하면 분배가 잘될 수 있을까? 참고로 진평은 이후 초한전쟁에서는 한고조 유방의 보안사령관 역할을 했다. 온갖 지저분한 일을 했고 피를 묻혔다. 유방측의 모든 음모가 진평에게 나왔다. 후에 진평은 재상이 되어서는 천지를 조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과 평화 시기의 합의가 이토록 다른 것이다.

합의는 약속이다. 계약이다. 국민들 사이에 수없이 많은 대립이 있다. 국민들 사이에 무궁무진한 계층이 있다. 합의하기 위해 배려가 있어야 한다. 배려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전체에 대한 배려가 있다. 부분과 천체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중간조직이 강해야 한다. 중간조직은 조직중의 조직인 정당 아래에 위치되어야 한다.

중간조직이 강하다는 말은, 예컨대 노조가 강하다는 뜻은 무엇일까? 노조가 산별노조를 넘어 전국노조를 이루고 전체 산업의 임금의 수준뿐만 아니라 연금, 각종 사회보험까지도 디자인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느냐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고용정책이 너무나 종류가 많고 복잡하다. 정부가 강하다. 노조가 더 많은 연륜과 내공이 쌓여야 한다. 1980-90년대 세계적으로 강한 노조의 대명사로 브라질과 우리나라를 꼽았다. 브라질에서는 룰라 같은 사람이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룰라같은 사람이 나오지 못했다. 정당의 수준으로 문제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좋은 기회가 있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했다. 국난극복을 위해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를 도입하고 노조에게는 정치활동을 허용하고 교원노조를 합법화했으며 노동기본권을 대폭 확대했다. 사회는 받은 만큼 돌려줘야 유지된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아직도 자신이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만 보고 아래는 보지 못한다. 재벌 일가만 보고 있다. 지금은 대기업 공장에 들어가기 위해 수백대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정직원이 되기 위해 시험을 봐야 한다. 공무원 시험만큼이나 심하다. 1987년 이전 공돌이, 공순이라고 천시 받았던 때가 아니다. 현재는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과 같은 단일한 노동계급으며젠재하지 않 대폭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했다. 아직까지 정래해고는 살인이고 신자유주의는 악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악을 가져왔다고 욕하고 있다.

우리의 노동운동은 원래 산별노조였다. 기업별 노조로 된 것은 박정희 정권 당시였다. 수시로 일어난 외환위기에 대응해서 외국자본의 투자환경과 국내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로 시작되었다. 산별노조는 힘이 세니까 깬 것이다. 특히 중화학공업정책을 하면서 각개격파당했다. 공장안에서만 파업이 허용되었다. 공장에서 옥쇄하는 극한 대립이 창출되었다. 기업별 노조운동은 박정희 정권이 만든 것이다. 한계가 정해졌다. 박정희 정권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

여러 번의 성공이 거듭되어서 성공한 역사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권교체다.

어떤 체제마다 문제도 있고 기회도 있다.

철수의 꿈(복지, 정의, 평화)

복지 실사구시

비교적 짤막한 개인적인 얘기와 미래 세대를 위한 얘기를 제외하면, [안철수의 생각]은 모두 국가를 경영할 비전과 정책들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국가를 경영할 비전과 정책들은 통일문제와 교육개혁 등의 짧은 얘기를 제외하면 모두 경제문제와 관련을 맺고 있으며, 경제문제의 절반 이상을 복지정책이 차지하고 있다. 그가 복지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국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이런 점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물론 우리 정치의 기류를 보면 복지가 대세인 것도 사실이고, 그 역시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지만, [안철수의 생각]이 내세운 “평화 위에 세우는 공정한 복지국가”라는 비전은 그의 정치적 소양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비전과 여러 정책들은 민주당의 대선주자들과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처럼 혹시 국민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정치인들의 특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진정한 복지가 무엇인지를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난이 극심할 때에는 그리고 국민들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한 성찰과 복지국가에 대한 역사적 통찰을 찾아 볼 수 없다.

서구의 복지국가의 가장 포괄적인 계획은 참혹한 상황에서 나왔다. 제2차 대전중,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상황에서, 국가가 성인남자는 전장으로 성인여자는 공장으로 보내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던 목표였다. 제1차 대전에서 ‘(경제)계획’에 대한 아이디어가 싹텄다면, 제2차 대전에서는 ‘복지국가’에 대한 씨앗이 뿌려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양차대전 도중에 있었던 대공황은 계획과 복지국가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었다. 대공황 당시 대량실업으로 심각한 사회질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질병 퇴치가 전후 최대 관심사중 하나였다. 실업문제를 국가가 해결할 수 있도록 시장경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졌다. 혼합경제라는 말이 나왔던 시대다.

30년에 걸친 계획과 복지국가의 결합은 그 이후 30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그 나마 3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천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시장과 계획, 국가와 사기업을 실용주의적으로 결합한 것이었다. 실업이란 사회질병을 해소하기 위한 실천적 목표로 복지가 기능한 것이다. 가장 복지국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심지어 국가가 민간부문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복지의 수단은 더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30년 동안의 복지의 시대는 지났다. 실업이란 사회질병의 진단을 잘못한 것이다. 완전고용이란 무균질의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어려운 상황에 만들어졌던 목표는 그 당시 이미 사라졌다. 지속적인 노력이 가능하지 않았다.

현재 복지가 목표라고 여야를 떠나 모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복지가 가장 바람직한 목표일까? 복지가 목표의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사람이 없다. 가장 바람직한 목표는 무엇일까? 번영이 아닐까? 번영이 있어야 복지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다. 하지만 제아무리 번영한 사회라 하더라도 그늘이 없을 수 없다. 그러니 복지도 없을 수 없다. 번영과 복지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애기다. 복지는 가장 큰 목표가 아니다. 선행조건과 원칙이 있다. 복지는 후행목표다. 복지를 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먼저 사회적 약자를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약자가 누구인지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실사구시가 필요하다. 복지에 대한 담대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시대정신으로 복지를 꼽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애기다.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을 세우는데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복지를 지향해야 할 이유를 안원장은 다음과 같이 펼친다. 즉 “남유럽국가들의 복지 수준은 유럽에서 하위권에 속합니다. 복지 지출이 많아 재정위기를 맞았다면 훨씬 수준이 높은 북유럽이 먼저 망했어야 했겠죠. 그런데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복지의 안전망이 오히려 위기에서 경제를 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라는 것이다.

“복지 안전망이 위기에서 경제를 구한다”는 [안철수의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경제를 구하여 성장시키는 일이 수단이고, 복지 안전망의 확충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수단을 외면하고 목적을 수단으로 삼으면 그 결과는 파국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비유하자면, 돈 버는 일은 수단이고, 돈 쓰는 일은 목적이다. 만약 돈 쓰는 일을 수단으로 삼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당연히 파산이 기다릴 뿐이다. 국가경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복지제도가 경제성장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복지제도가 경제성장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 나라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파멸적인 경제위기로 치달았거나 장기간의 경제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의 미국과 영국,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스웨덴과 핀란드,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일본 등은 그런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경제성장의 뒷받침을 받은 복지제도는 성장을 지속시킴으로써 경제번영을 불렀던 것이 역사적 사실에 의해 쉽게 증명된다. 1960년대까지의 미국과 영국, 1980년대 중반까지의 스웨덴과 핀란드, 1980년대까지의 일본 등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성장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 복지제도는 파국적인 경제난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경제난은 복지제도를 크게 후퇴시키는 결과를 빚었던 것이 세계사적인 경험이므로, 복지제도는 성장의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하고, 성장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런 대 원칙은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서 어떤 경우에도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것이다. 물론 최소한의 인간적인 국민들의 삶을 국가가 보장하는 원칙 역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위와 같은 사실은 분배는 반드시 성장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분배는 성장의 목적이고, 성장은 분배의 수단인 셈이다. 즉, 분배를 위해서는 성장이라는 수단을 먼저 강구해야 하고, 그래야 성장의 목적인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며, 분배가 제대로 이뤄져야 성장도 지속가능해지고 경제번영도 지속된다. 만일 목적과 수단을 바꾸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즉, 분배를 성장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삼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 비유하자면, 돈을 버는 것은 수단이고 돈을 쓰는 것은 목적인데, 돈쓰는 것을 수단으로 삼으면 파산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국가경제도 성장을 하기 전에 분배에 치중하면 경제파국을 면하기 어렵다.

성장이라는 수단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면 복지는 성장을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경제난을 불렀던 것이 세계사적 경험이지만, 성장은 수단에 불과하다. 목적 없는 수단은 무한질주를 부르고, 무한질주는 경제공황 같은 파멸을 부르곤 한다. 한마디로, 수단은 목적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도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 따라서 복지라는 목적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현실적으로 성장이라는 수단이 복지를 뒷받침하고, 성장의 결과가 복지 향상에 봉사한다면 성장과 분배는 선순환을 하게 된다. 복지는 이런 의미에서 성장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복지란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복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배려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기회의 확대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기회 확대를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성장은 복지의 가장 확실한 수단인 셈이다. 다시 말해, 성장의 지속은 복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또한 성장의 지속은 복지의 최고 목표인 좋은 일자리의 창출을 일으키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기회의 확대, 좋은 일자리의 창출, 지속가능한 성장은 국가경영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인 셈이다.

지금처럼 경제난이 심각할 때 복지제도를 확충하자는 주장은 국가경제를 파국적인 위기로 끌고 들어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장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 복지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항상 파국적인 경제위기를 불렀던 것이 세계사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1960~70년대에 미국과 영국은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복지를 뒷받침하지 못하자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었다. 1980년대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 역시 마찬가지여서 1990년대 초에 파국적인 경제난을 겪어야 했다. 그 바람에 복지는 크게 후퇴하고 말았다. 특히 복지천국이었던 스웨덴과 핀란드는 1990년대 이후에 복지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한 뒤에야 비로소 경제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과 영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미국과 영국이 복지제도를 개혁하고 경제난을 벗어난 데에는 칠레의 성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잠시 그 내용을 살펴보자.

칠레는 1970년대 초반에 물가상승률이 연간 900%에 달하는 등 심각한 경제난에 장기간 시달렸었는데, 복지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함으로써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97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보면, 그 이전 15년 동안의 평균성장률은 0.17%였는데, 그 후 15년 동안의 성장률은 3.28%를 기록하여 20배나 더 커졌다. 빈곤비율 개선은 더욱 획기적이어서 중남미 다른 국가들이 40%인데 비해 칠레는 15%로서 눈에 띄게 줄었다. 칠레의 국민연금은 처음에는 퇴직 후의 생활비를 지급할 목적으로 출발한 기금 제도였으나 한낱 세금 제도로 전락했다. 노동자로부터 거둔 연금은 기금으로 정립하는 대신 당장의 사회보장비로 쓰였다. 1979년에 노동부 장관으로 취임한 피네라는 가장 먼저 국민연금을 급진적으로 개혁했다. 간단히 말해 모든 노동자에게 국가연금제도에서 빠져나올 선택권을 준 것이다. 납부한 연금이 노동자 재산이라는 인식을 노동자에게 심어주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개인 퇴직계좌에 급여의 10%를 예치하면 민간 경쟁업체들이 그것을 관리했다. 납부한 연금과 그 수익금이 계속 불어나는 새 보험증서를 받아든 대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1990년까지 70퍼센트가 넘는 노동자가 민간제도로 이동했다. 이런 성공에 자극받아 건강보험제도 역시 개혁했다. 민간 건강보험을 선택할 수 있게 되자 270만 명의 노동자가 선택했다. 1982년 멕시코에서 발생한 외환위기가 중남미 전체로 전염되자 칠레도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피네라 개혁은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었지만, 1990년에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정부지출 중 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4%에서 22%로 절반가량 줄었는데, 1990년 선거에서 피노체트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회복되자 그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연금개혁 덕분에 새로운 자산 소유자들이 탄생했고, 저축률이 껑충 뛰면서 칠레경제에 활력소 역할을 했다. 실제로 1989년 저축률은 30%로서 중남미에서 가장 높았고, 이게 경제기적을 일으켰다.

그 뒤부터 볼리비아, 엘살바도르, 멕시코 등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도 칠레 개혁을 뒤따랐다. 심지어 칠레를 정치적 후진국이라 무시하던 영국은 국회의원들이 칠레로 직접 달려가 피네라 개혁을 배워왔다. 그 뒤부터 영국 경제는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경제는 서서히 살역시 피네라 개혁에서 배워제는 서서히 살역슈 피네라위기에서 에서났다. 영국 세계적으로는 는 서서 살역이 경제난을 극복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권은 복지만능주의만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복지제도 개혁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안원장 역시 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다. 하나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회사 상황이 어려워져도 지속할 자신이 있을 때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국가 차원에서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는 지속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이며, 다른 하나는 “내가 내는 세금, 혹은 부담금이 복지 혜택으로 돌아오는 것이니 알뜰하게 또 귀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 전체에 공유되어야” 함을 밝힌 부분이다. 복지제도의 운용 기준을 밝힌 것이므로 아주 중요하다. 다만, 그의 이런 기준마저 미흡하다. 위의 구절이 밝힌 바처럼, 복지제도는 예산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이를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데, 그의 원칙과 기준은 국가를 경영하는데 있어서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복지제도의 원칙과 기준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국민부터 먼저 보호하는 원칙과 누구나 기회라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을 확실하게 확립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원칙은 자식을 잘못 둔 노인, 부모를 잘못 만난 아이, 중증 장애인, 난치병 환자,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실업자, 비조직 노동자 등의 순서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국민들의 순서이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비정규직은 비조직 노동자보다 더 우월하고, 실업자보다는 더욱 우월하다는 점을 강조해두고 싶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외면한 채 비정규직의 해소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기회 확대의 원칙과 기준은, 원하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반드시 기회가 주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기회란 절실하게 원하는 자에게 주어져야 비로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원하지도 않는데 기회가 주어지면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이 기회를 살릴 확률이 훨씬 더 높지 않겠는가. 특히, 아무리 가난해도 원하는 사람이라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만은 기필코 수립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사회의 계층이동을 활성화시킬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사실은,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현실에 대한 진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단이 없다면 그 처방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이것은 다른 어느 무엇보다 심각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현재의 복지제도가 유지된다면 머지않아 재정파탄을 불러올 것이고, 로 현재의의 성장잠재력마저 소진시키고 무너뜨릴 위험이 크다. 당장 급한 일은 복지제도를 개혁하는 일이다. 특히, 연금제도와 의료보험제도는 다음과 같이 개혁하는 일이 필수적이고 시급하다.

연금제도는 참여한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주어져야 하므로, 현재의 차별적인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교원연금 등은 통합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1970년대 중반에 칠레가 성공했던 개혁을 통해 그 운용을 국민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연금 운용실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의료보험 개혁의 경우는, 보험료는 재산과 소득을 병합하여 부과하되 재산의 비중을 키워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병의원에게는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를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선택권을 주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경제난이 심각할 때는 복지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당장 오늘 먹고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에게 복지는 한가한 얘기일 따름이다. 아무리 복지예산을 늘리더라도, 설령 100조 원을 더 늘리더라도 우리나라 복지예산의 구조상 먹고살 일이 걱정인 이들에게 돌아갈 생활비 혜택은 고작해야 월 20만원을 넘기 어렵다. 의료비, 교육비, 실업자 구제를 위한 비용 등에도 예산을 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복하거니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따름이다. 20만원으로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참고로, 복지비 지출을 위해서는 그 예산을 집행하는 조직이 필요하고, 조직을 위한 운영비가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조직 운영비가 조직의 목적사업비보다 훨씬 큰 것이 현실이다. 복지는 물론이고, 문화, 과학, 기술개발 등 거의 모든 사업이 그렇다. 결국 신의 직장을 더 많이 만들어 국가경제의 경쟁력과 성장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

지금 당장 경제난이 심각할 때는 ‘경제를 살려내는 일’이 최고의 복지이다. 경제난이 심각하면 해고를 당해도 못사는 사람부터 당하고, 사업이 망해도 영세업체부터 망하기 때문이다. 복지로는 못사는 사람들의 해고를 막을 수 없고, 영세업체의 부도 역시 막을 수 없다.

2. 정의로운 기업생태계

안철수 원장은 정의로운 국가에 대해 가장 공들여 쓴 것처럼 보인다. 매혹적이지만 일반적인 생각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는 정의로운 국가를 위해 세 가지가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출발선에서부터 공평한 기회를 가져야 하고, 공정하게 겨루게 하는 규칙이 있으며 그게 잘 지켜지는지 심판이 잘 감시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재도전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내용들이고, 서민들에게는 호소력도 대단히 큰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의 생각]이 초판부터 매진됐다고 하니, 그 호소력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얘기일까? 더욱이 그것들이 정의로운 국가의 전부일까? 결코 아니다. 안원장은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기업생태계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삼성동물원, LG동물원이 올바로 서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몇 가지 정리한 정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위의 구절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하나만 보자. 출발선에서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에 태어나지도 않는데 어떻게 출발선을 정의할 수 있을까? 억조분의 1초도 같은 시간에 태어나는 사람이 없다. 출발선이 불경기일 수도 있고, 호경기일 수도 있고, 전쟁일 수도 있다. 출발선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 시간 자체가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경쟁자들의 태어난 환경이 다르고, 그들의 능력도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모든 사람이 출발선상에서 동시에 출발하려면, 모든 부모가 엇비슷한 능력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의 경제적 능력을 공평하게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지연, 학연, 혈연 등과 개인의 노력과 역량에 따라 구축되기 마련인 인맥 등도 엇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체격이나 체력이나 외모는 물론이고, 지적 능력과 감성적 능력 그리고 학습 능력과 교육 수준까지 엇비슷해야 출발선상에서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모든 것들을 엇비슷하게 만드는 일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처럼 떠드는 것은 아닐까? 물론 경제 민주화라는 사회적 화두를 호소력 있게 제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서 그런 얘기들을 거론했을 것이다. 사실 출발선에서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정의로운 사회와도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사람의 재능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 꼭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재능으로 유무형의 성취를 만든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 공평한 기회를 받기만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사회는 엉망이 된다. 개판이 된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주고 받아야 한다. 받았으면 갚아라! 그게 정의다. 하지만 정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의는 사회 전체의 밸런스(형평성)를 맞추는 고도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고 필요하다.

물론 달리는 과정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패자가 재도전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공정한 규칙의 집행에 있어서, ‘정의로운 국가’의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삼은 것이 재벌규제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진짜로 재벌을 규제하면 정의로운 국가가 이뤄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재벌의 불공정한 행태를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규제하는 것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민주화가 무엇이던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현실적인 의미로는 법률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국민이라면 누구든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음을 뜻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이것은 당연한 천부적인 권리이다. 국가에 있어서 기업은 하나의 법인체로서 국민과 비슷한 권리를 갖는다. 그것이 크든 작든 마찬가지이다. 간단히 말해, 재벌이라는 대기업도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는 자유를 갖도록 하는 게 진짜 민주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를 내세워 재벌을 규제하자? 이것은 국어사전을 모욕한 짓이자, 아름다운 우리 언어를 오염시키는 개념이다.

물론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그리고 중소기업 특히 영세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재벌의 일부 행태는 규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재벌규제가 국민적 호소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재벌을 전면적으로 규제하자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일 따름이다. 대기업 혹은 돈 많은 사람을 규제하여 바람직한 결과를 빚은 사례는 세계사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로스테스의 얘기나 다름없다. 재벌을 규제하자는 것은 침대의 크기에 맞춰 사람을 자르는 짓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대기업을 규제하면 투자와 고용이 증가하지 못해 경제난은 더욱 심화되고, 이 경우에는 도산을 당해도 영세업체부터 당하고 해고를 당해도 못사는 사람부터 당한다. 영세업체를 도산시키고 못사는 사람을 해고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재벌 규제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경제 민주화의 목표와 수단은 진짜 민주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 수단들은 우리 경제를 더욱 쇠락시킬 것 빤해서 창업을 활성화하고 경제를 살려내는 등의 그가 추구하는 목표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 분명하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재벌 규제라는 목적을 달성하려 하지만, 재벌규제와 경제민주화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재벌 규제는 경제민주화를 후퇴시키는 짓에 불과하다. 재벌을 규제하면 지금의 경제난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니, 제발 재벌규제를 경제민주화라 부르지 말자. 설령 재벌규제가 필수적이더라도 경제를 살려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럼 어떤 정책을 펼치는 게 바람직할까? 당연히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도록 촉진하는 정책을 펼치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따라서 이것은 상책이 아니라 중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상책은 무엇일까? 재벌이 중소기업을 생산하여 성장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정책이 바로 최상의 정책이다.

재벌규제가 경제민주화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면, 진짜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경제민주화란 국민(법인체 포함)이라면 누구나 어떤 경제활동이든지 자유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국민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제한들을 줄여주는 게 바로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제도나 법률적 제한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금융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이다.

현실적으로 ‘자통법’으로 흔히 불리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막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이 법률은 제정 목적을 “자본시장의 금융혁신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금융투자업을 건전하게 육성함으로써 자본시장의 공정성·신뢰성·효율성을 높여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이것은 허울뿐이고 실제로는 규제를 위한 법률로서 이미 비대해진 금융 대기업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업종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일정한 자본금 이상을 적립해야 하고, 자격증 소지자를 고용해야 하는 등 각종 규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어떤 금융업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 이 법률이다. 작은 규모의 자본금으로는 어떤 금융업도 할 수 없도록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데, 이게 경제민주화를 막고 있는 대표적인 법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게 대표적인 악법이 아니고 무엇일까?

더 심각한 문제는 모든 금융상품은 정책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명백히 헌법 제1조의 위반이다. 국민은 법률이 제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게 민주헌법의 기본 정신인데, 주인인 국민이 하인인 정책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는 아무런 금융업 활동도 할 수 없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처럼 어이없고 민주화에 어긋나는 법이 또 어디에 있을까?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것은 자가당착일 따름이다. 투자자 보호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국민 생명이다. 따라서 국민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를 유전자조작 농산물에도 이런 규제를 가해야 하지만, 나는 그런 법률을 본 적이 없다. 더 극단적으로, 새로운 볍씨 품종을 개발했을 때도 이것이 국민 생명을 위협할지 모르므로 그 경작 역시 정책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해야 하는 것과 같다.

결론적으로, 금융업의 설립조건을 과도하게 규제하고 또한 모든 새로운 금융상품은 정책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한 규정은 금융업에 새롭게 진출하는 것을 막는 제도적 장치에 불과하다. 현재 영업 중인 대기업 금융업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장치인 셈이다. 진짜로 경제민주화를 위한다면 어느 금융상품이든 누구나 개발하여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투자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면, 그리고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기필코 확보해야 한다면, 자본금이나 금융상품 판매액이 일정한 규모 이상에 이를 때에 비로소 정책당국에 등록하거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범죄가 무섭다고 모든 인간의 모든 행동을 정책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의적인 금융사기가 우려된다면 그 처벌을 강화하여 억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금융사기에 대한 처벌이 세계적으로 가장 관대한 편에 속한다. [안철수의 생각] 역시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교해서 대부분의 범죄율은 낮은 편인데 유독 많은 범죄가 사기 범죄입니다” 라고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사기에 대한 처벌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처벌을 강화할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금융업의 민주화에 따른 투자자의 손실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발상이 어찌 용납될 수 있을까?

작은 돈으로도 금융업을 시작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모험적인 금융인과 금융기업이 탄생할 수 있고, 모험적인 금융인과 금융기업이 왕성하게 성장할 때 우리나라의 경제력 집중은 완화될 수 있다. 또한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국가경제도 왕성하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미국의 정보통신산업은 바로 이런 벤처캐피털 때문에 오늘날의 번영을 이뤄냈다. 만약 애플, 인텔, 구글, 야후,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우리나라에서 탄생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오늘날처럼 성장하기는커녕 아예 싹도 틔우지 못하고 고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기득권이 보호되면 모험적인 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기득권에 안주하더라도 충분한 이익이 보장되는데 왜 굳이 위험한 투자를 하겠는가. 기득권이 위협받을 때, 그리고 모험자본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무섭게 성장할 때 모험투자는 비로소 활발해질 수 있다. 그래야 첨단산업이 발전할 수 있고, 우리나라도 다시 고도성장의 가도에 들어설 수 있다. [안철수의 생각]에 이런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를 비롯한 금융제도 개선, 중소기업 창업 성공을 어렵게 하는 세 가지 요인(경영자의 실력, 중소기업 지원 인프라 부실, 중소기업끼리의 과당경쟁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 특히 기업 지원 인프라가 분산돼 성공확률이 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지적한 문제점들은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아니,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창업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활발했었다. [안철수의 생각]이 창업 부진의 원인으로 분석한 내용들은 모두 틀렸던 것이다. 창업이 부진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부진하니, 수요가 부진하고, 기존 기업까지도 이익이 거의 없어지거나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어찌 새롭게 창업한 기업이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겠는가. 간단히 말해, 창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경제를 살려내는 일이 급선무이고, 높은 성장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경제 전체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가능한 성장’이 필수이다.

국가경제가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유지가 필수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면 다른 경제변수가 개선되지 않더라도 생산성이 자동으로 향상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교적 낮은 성장률 속에서도 일자리 창출이 더 많이 이뤄진다. 지속가능한 성장의 유지가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창출’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이미 세계사적으로 충분히 증명됐다. 우선, 미국의 생산성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 향상됐는데, 이에 대해 그린스펀은 ‘신 경제의 효과’ 즉 정보통신 혁명의 효과라고 분석했지만, 이것은 틀렸다. 2001년을 전후하여 나스닥 거품이 붕괴되면서 정보통신산업의 투자가 거의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생산성은 그 후에도 꾸준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경제학계 일부에서는 사회적 기술의 향상이 생산성 향상을 불렀다고 주장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사회적 기술이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떨어진 사실이 그 주장을 부정한다.

한마디로, 생산성의 자동 향상은 ‘지속가능한 성장’이 유지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기업의 사례를 비교하면 이 점은 쉽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은 100개 → 120개 → 110개 → 140개 → 130개 → 160개 등을 연차적으로 생산하고, 다른 기업은 100개 → 110개 → 120개 → 130개 → 140개 → 150개를 생산한다면, 이 두 기업 중 어느 곳의 생산성이 더 높을까? 최종적으로 생산한 수량은 전자가 더 많지만, 후자의 생산성이 훨씬 더 크게 향상되고, 이익도 더 많아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생산량이 증가하면 생산시설과 고용을 증가시켜야 하는데, 증가했던 생산량이 감소로 돌아섰을 경우에는 이미 증가시킨 생산시설과 고용이 생산단가를 상승시킴으로써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일을 반복하면 생산성이 자동으로 향상되듯이, 생산량이 일정하게 증가하는 경우도 생산성이 자동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생산량이 증가했다가 감소하는 일이 반복되면 생산성은 당연히 떨어진다. 간단히 말해, 생산량이 안정적으로 증가하는 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이 훨씬 더 높은 것이다. 국가경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의 생산성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상대적으로 정체했는데, 경기부진이 지속되거나 상승하더라도 곧바로 하강함으로써 경기변동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생산성이 줄기차게 향상됐는데, 그 이유는 연평균 성장률은 비교적 낮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찾기 어려우므로 안정적인 성장이 생산성을 향상시켰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처럼 생산성이 향상되면 일자리는 자동으로 늘어나고 일자리의 질도 더욱 좋아진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를 불의가 기승을 부리는 국가로 만드는 것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불의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곳은 어디일까? 국민이 가장 억울하게 여기는 일, 국민이 분통을 터뜨리는 일은 어디에서 발생하고 있을까? 그곳은 바로 법조계가 아닐까? 한마디로, 정의로운 국가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법체계의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사법체계의 개혁에 관한 내 생각을 밝혀보고자 한다. [안철수의 생각]에는 이런 내용을 언급한 게 없으므로, 내 논의가 일방적이더라도 널리 혜량하시기 바란다.

법률적으로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의 건설 그리고 국민의 눈에 불공정하게 보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세상의 건설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기소와 공정한 재판이 이뤄져야 하며, 공정한 기소와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사법개혁이 필수이다. 공정한 기소와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면, 공정한 사회의 건설을 위한 기초가 마련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내가 마련한 실천적인 정책대안은 전관예우를 혁파할 인사제도의 개혁, 검찰의 기소독점권 완화, 변호사법 109조의 개정 등이다.

우선, 전관예우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혁파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할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 전관예우라는 것은 무죄가 유죄로, 유죄가 무죄로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리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가해자가 피해자로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고도 어찌 정의로운 사회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전관예우가 혁파되어야 비로소 사법부와 검찰 그리고 재판결과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식시킬 것이고, 정의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기초가 닦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검찰이나 법원의 고위직을 지낸 뒤 변호사 개업을 하거나 법률회사에 취업하면 불과 1년 만에 수십억 원을 버는 게 현실이다. 무죄가 유죄로, 유죄가 무죄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가해자가 피해자로 뒤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고액의 소득을 얻을 수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재판에서 억울함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국민이 너무나 많다.

전관예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과 검찰도 그것을 혁파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법원과 검찰이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검사와 판사의 과도한 선민의식이 부추긴 반민주성 그리고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와 변호사법 109조의 반민주성 등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들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첫째, 판사와 검사는 대부분 일류대학 출신, 사법시험 성적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사법연수원 성적까지 우수한 자가 주로 임용된다. 다른 관료와는 다르게 임용 직후의 첫 직급부터 부이사관이며, 과거 독재정권의 잔재가 남아 법원과 검찰에는 장관급 직책이 다수이다. 그러니 검사와 판사가 우월감과 선민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우월감과 선민의식을 가진 판사와 검사는 국민을 눈 아래로 내려다 볼 것이 빤하고, 바로 이게 “내가 기소하면, 혹은 내가 판결하면 국민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낳으며, 이게 전관예우 제도를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판사와 검사의 임용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즉, 국민을 내려다보는 선민의식이 아니라, 민초를 위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도록 임용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즉, 판사와 검사는 변호사 경력 5년 이상인 자, 그중에서도 국선변호인 경력과 그 변론 성적이 우수한 자에서 선임하도록 인사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국선변호인 제도는 못사는 국민이 주로 활용하므로,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하면 못사는 사람의 애환을 직접 경험을 통해 알 수 있고, 이런 경험이 풍부하고 훌륭하면 판사와 검사의 선민의식은 애민의식으로 바뀔 것이다.

법원과 검찰 내부에서는 뛰어난 인재를 임용하는 것이 사법제도의 효율성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지만, 사법제도의 생명은 효율성이 아니라 공정성과 공평성이다. 따라서 다년간의 변호사 경험은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에 있어서 공정성과 공평성을 확보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둘째,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빚는 폐해는 이미 여러 차례 그리고 여러 방면에서 제기되었다. 특히 정치권력과의 유착 그리고 권력자 및 재벌 봐주기에 있어서 그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며, 이에 대한 국민 여론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따라서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를 전면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치권력이나 재벌권력과 관련된 사건은 특별검사 제도를 좀 더 광범위하게 허용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특정 문제를 제기한 국민 혹은 집단에게 변호사 자격증이 없더라도 국회가 일시적으로 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밖에 사법적 권한을 일부라도 가진 정부기관에는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기소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민생현장의 범법자를 적발하는 경찰청, 불공정거래 행위를 적발하는 공정개래위원회, 불법적 금융거래를 적발하는 금융감독위원회, 조세 및 관세의 탈세범을 적발하는 관세청과 국세청 등에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기소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셋째, 변호사법 109조는 다른 민주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반민주적 법률의 대표적인 조항이다.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이 주인이고 권력기관은 그 종복이므로, 국민은 법률이 제한하지 않은 모든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권력기관은 법률이 규정하지 않은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것이 민주국가의 대원칙이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헌법 제1조가 의미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호사법 109조는 법률적 쟁송의 여지가 있는 경우 국민은 법률이 정하지 않는 어떤 행위도 할 수 없고, 변호사 등은 법률이 규정한 바를 제외하고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의 명백한 위반이다. 현실적으로 이 조항은 이미 여러 차례 위헌판결을 받은 바 있다. 변호사법 제109조를 전면 개정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민주국가라고 부를 수 없다. 법률쟁송의 여지가 있는 모든 행위는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어떤 국민도 할 수 없고, 오직 변호사만 모든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악법이 이 세상 어느 국가에 있는가?

변호사법 109조의 변호사의 직무에 관한 규정은 헌법 제1조의 정신에 맞게 제한적 규정 즉, Negative 규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변호사의 직무는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허용되어야 하고, 국민은 그 제한 범위 이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검찰과 법원의 지배가 아니라, 국민이 지배하는 나라로 비로소 바뀔 수가 있다.

물론 [안철수의 생각]에 사법개혁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열풍과 관련하여 “사실 여부가 아니라 왜 사람들이 공감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따라 민심의 흐름,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사법개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요구가 아주 높죠.” 여기까지의 진단은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바로 이어 “법원이 정치적 고려에 따른 요구에 휘둘리지 않도록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후의 법관 인사제도 등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검찰뿐 아니라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됐다면 고위공직자 수사처 신설 등 권력을 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옳겠지요.”라고 처방한 것은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그의 생각대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의 인사제도 등을 개혁하고 고위공직자 수사처를 신설하는 게 과연 전관예우 등의 사법계 악습을 개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던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고 감동시킬 수 있지는 더욱 의문이다.

3. 평화는 당연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 당시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어떻게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대통령이 말할 수 있을까? 전쟁나면 일반 국민들은 파리 목숨이 아니던가. 전쟁은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올바른 의식을 가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안철수 원장은 국사뿐 아니라 세계사도 필수과목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평화를 위해서 세계사적인 안목을 지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치열하게 세계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평화를 지킬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한국전쟁을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한국전쟁 이전의 백년 동안의 서세동점 시대와 한국전쟁 이후의 냉전의 시대를 규명해야 한다. 아직도 한반도에는 냉전이 끝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냉전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어야 서세동점의 아픈 역사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는 세계사적인 전환점인 것이다. 통일은 우리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원장은 통일을 사건으로 보는 시각과 과정으로 보는 시각으로 나누었다. 사실 이 두 가지 시각은 같은 맥락이며, 보완적인 관계다. 한국전쟁이란 엄청난 사건을 가운데 두고 그 이전의 한 세기와 그 이후의 역사를 고찰하는 방법이 그 사례다. 참고로 완전히 상반된 시각을 예로 들면, 선악처럼 자신은 선이고 상대방은 악으로 보는 시각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융합을 강조하는 안원장이 아예 그런 시각을 말하지 않았음을 이해할 만도 하다.

그는 세계사는 물론이고 국사에 대한 이해도 보이지 않고 남북교류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남북 간의 경제교류가 진전되면 서로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죠. 개성공단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런 협력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민주당 정부의) 햇볕정책은 교류협력으로 남북 긴장완화의 성과를 거둔 반면, ‘퍼주기 논란’ 등 남남갈등, 즉 남한 내의 이념갈등을 유발했죠. 투명성이 부족했다는 문제도 있었고요.”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의 현실 진단은 실망스럽게 짝이 없다. 만약 그가 남남갈등을 해소할 대안과 남북관계 개선을 투명하게 진행시킬 대안이라도 제시했다면, 그의 진단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설령 다른 대안이 있더라도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게 옳다. 통일과 북한 정권에 극단적인 거부반응을 보이는 정치세력과 사회집단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이북의 인권문제, 통일비용 문제, 핵무기 해체 문제 등을 내세워 어떻게든지 통일을 막아보겠다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통일을 거부하는 집단이 엄연히 존재한다면 그들의 노선이 틀렸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국제무대에서 봉쇄와 압박이 성공을 거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아직까지는 하나도 없다. 초강대국인 미국조차 비교적 작은 나라인 쿠바를 60년 동안 봉쇄하고 압박했으나 끝내 굴복시키지 못했다. 봉쇄와 압박은 오히려 체제의 결속을 초래함으로써 더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곤 했던 것이 세계사적인 경험이다. 북한은 그런 대표적인 사례에 속하고, 카다피 체제의 리비아도 마찬가지였으며 이런 사례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명박정권은 국제적으로 이미 실패했던 봉쇄정책을 동원하여 북한을 압박했지만, 남북관계는 더 악화되었고, 통일을 10년 이상 뒷걸음치게 했다. 또한 압박의 수단 중 하나로 북한 인권문제를 내세웠으나, 북한 체제를 더 공고하게 만들어줌으로써 북한 인권문제를 오히려 더 악화시키고 말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통일비용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섬으로써 민족적 염원을 배신했다.

새누리당 정권이 통일비용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새누리당 정권은 북한체제의 붕괴를 유도하는 정책을 줄기차게 펼쳤는데, 만약 북한의 정치체제가 무너진다면 경제체제도 무너질 것이 분명하고, 결국은 북한 인민 2천5백만을 남한 국민이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이 진척되고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 남북의 경제력 격차는 남북 모두에게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 확실하다. 자연계에서도 수력발전소처럼 위치에너지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동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1997년 중국과 홍콩의 통일 사례를 보면 통일 비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지 알 수 있다. 격차가 얼마나 큰 동력으로 작용했는지 알 수 있다. 홍콩이 중국 통일 비용을 지불했을까?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면 하면 대만이 중국 통일 비용을 지불할까? 있을 수 없는 말이다. 그것은 통일하지 말자고 공갈치는 말이다. 지 비용은 흡수통일에다.밠생한다. 갑작스럽게 동독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 정권이 무너지면다.동서독이 완전 섞였다. 완전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돌발사태가 일어나니까 통일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중국과 홍콩처럼 시스템상 서로 관여하지 않게 하면 된다. 섞이지 않게 하면 된다.

또한 ‘평화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일자리까지 크게 늘릴 수 있다. 섬유산업이나 신발산업처럼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국제경쟁력이 약화되어 생산시설을 대부분 해외로 이전시킴으로써 오랜 세월 단련한 기술 인력들의 일자리를 잃게 만들었는데, 만약 남북교류가 활성화된다면 그들의 일자리가 바로 한반도 내에서 얼마든지 많이 새롭게 생겨날 수가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남북을 둘러싼 외교무대에서 당사자인 우리나라가 소외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고, 결국 외교주권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인권문제와 통일비용 문제의 지속적인 제기가 북한을 자극하여 대화마저 단절시켰고, 우리 민족 내부문제인 통일을 미국 등 외국에 의존해야 하는 참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이런 압박정책은 북한의 핵개발을 가속화시켰고, 대륙간 탄도탄 개발까지 이뤄지게 함으로써 북한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오직 햇볕정책만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북한 인권문제의 개선은 물론이고 남북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이루게 한다. 실제로 민주당 정권에서는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바 있다. 물론 햇볕정책만이 능사는 아니다. 햇볕정책이 자칫 이북의 헛된 망상을 초래한다면 이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바 있지 않은가.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에 노무현 대통령은 강경하게 대응하려고 했다. DJ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인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포용 정책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포용 정책은 남북의 긴장을 완화시켰지 악화시킨 적이 없는데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죄 없는 햇볕 정책에 북한 핵 실험을 갖다 붙이는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햇볕 정책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DJ는 북미 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북한 핵 실험은 지난 6년 동안 계속된 부시의 대북 강경책이 실패했음의 방증이다. 이제라도 대북 강경책에서 벗어나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변함없이 햇볕정책을 펼쳤지만, 북한이 도발했을 때마다 즉각적으로 응징하여 도발할 의지를 원천적으로 꺾어놨었다. 우리 해군즉각섁해교전에서 두 차례나 압승을 거둔 뒤 북한은 다시는 도전. 우리았던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햇볕정책을 강도 높게 추진함과 동시에 안보태세도 확고하게 구축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반면에, 새누리당 정권은 봉쇄와 압박 정책을 펼쳤지만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가 쑥대밭이 되었고, 어떤 실질적인 반격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천안함이 침몰되는 불상사가 일어나 장병이 숭고한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졌다. 공갈탄만으로는 국토방위를 할 수 없다는 사실과 즉각적인 응징만이 도발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된 것이다.

새누리당의 이명박 정권은 남북의 신뢰를 결정적으로 훼손함으로써 통일을 최소한 10년 이상은 뒷걸음치게 했다. 따라서 멀어지기만 했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런데 [안철수의 생각]에서는 그런 정책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반면에 실천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그 하나는 북한지역 경기도에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자유지역을 건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성공한 다음에 휴전선 남쪽 경기북부 지역 혹은 강원도 철원에 북한 공단을 건설하는 것이다.

북한의 최대 관심사는 정권의 유지일 것이다. 따라서 정권을 확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면 김정은 정권도 동의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미국에 대해서는 봉쇄정책이 쿠바를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들어 설득한다면,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동의할 것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방안은 미국의 구미를 당기게 할 것이다.

만약 북한지역 경기도 땅 약 10억 평방미터 정도에 경제자유구역을 설정하고, 미국기업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그 경제자유구역을 50년 혹은 100년 동안 장기간 경영토록 보장하여 제2의 개성공단을 건설하면, 북한의 정권안보는 확고하게 보장될 것으로 김정은 정권은 기대할 것이다. 미국은 자국 국민과 재산이 있는 곳은 어떤 경우에도 보호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기업 역시 10억 평방미터를 노동력이 우수하고 값싼 산업기지로 확보할 수 있어서 여러 면에서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정착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자본축적 수준이나 기술수준에 비춰볼 때, 북한 공단에 입주할 미국 기업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고, 결국은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남한 기업들이 주로 입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상승으로 인해 중국과 동남아 등에서 되돌아오려는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는 최상의 산업기지와 사업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장차 북한 쪽 공단이 성공을 거둔다면, 휴전선 인근(철원)에 북한 노동자를 고용할 공단을 건설하는 사업도 가능해질 것이다. 만약 10만 명 이상을 고용한다면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난을 어렵지 않게 해소할 것이며, 경제난과 식량난이 해소되면 북한 인권문제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위와 같은 실천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면 우리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 국민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애국심이 투철하고, 통일에 대한 염원 역시 어떤 반대논리에도 흔들림 없이 강력하므로, 틀림없이 범국민적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에 대한 안철수 교수의 생각은 과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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