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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0 15:10:1812 
육유의 애절한 사랑이 깃든 심원(沈園)과《채두봉(釵頭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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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두봉(釵頭鳳)


1. 프롤로그
소흥(紹興)과 심원(沈園)

절강성의 성도는 항주(杭州)이고 남송이 수도로 삼은 곳이다. 항주에서 북쪽으로 약 100여 키로 가면 태호(太湖) 동안에 소주(蘇州)가 있고 다시 소주에서 동쪽으로 50키로 되는 황해 연안에 중국 최대의 도시 상해가 있다.
소흥(紹興)은 항주에서 남쪽 50키로 되는 유서가 깊은 역사의 고도다. 옛날에는 회계(會稽)라고 불렀다. 춘추 말 오월동주(吳越同舟)에 나오는 월(越)나라의 수도다. 그리고 오나라의 수도는 소주다. 오월동주의 1라운드는 오자서(伍子胥)의 보좌를 받아 강대국으로 등장한 오나라가 중원의 패권을 차지한 여세를 몰아 월나라를 공격하려는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구천이 새로이 월왕의 자리에 오르자 오왕 합려(闔閭)가 그 틈을 이용하여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절대적으로 우세한 전력의 오군은 월군을 경시했다. 열세를 의식한 월왕 구천은 자살특공대를 보내 오나라 진영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 틈을 타서 맹공을 가하여 오군의 본영을 돌파했다. 오군은 전투에 패하고 오왕 자신은 싸움 중에 당한 부상으로 생명을 잃었다. 2라운드는 오왕 합려의 뒤를 이은 오왕 부차는 3년 동안 절치부심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러자 막강한 오나라의 전력에 위기감을 느낀 월왕 구천은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이라고 생각하고 오나라를 선제공격했다. 그러나 오군의 강령한 반격을 받은 월왕 구천은 태호 강심의 부초산(夫椒山) 전투에서 참패하고 패잔병을 이끌고 월나라로 패주하여 회계산으로 들어가 농성했다. 오왕 부차는 오군을 이끌고 월왕의 뒤를 추격하여 회계산을 겹겹이 포위했다. 이에 월왕은 항복하고 오왕의 포로가 되어 소주로 끌려가서 3년 동안의 노역생활을 했다.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의 병을 진단해준다고 하면서 부차의 변을 핥아 충성심을 인정받았다. 월왕 구천은 부차의 변을 핥은 대가로 석방되어 본국으로 돌아가 왕위에 복위할 수 있었다. 제3라운드는 오나라에게 원수를 갚으려는 월왕 구천이 행한 각고(刻苦)를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고 한다. 무려 20년 동안의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월나라의 국력은 획기적으로 신장되었다. 월왕 구천이 행한 행적을 생취훈련(生聚訓鍊)이라고 한다. 즉, 인구를 증산하고 재물을 모으며, 교육과 훈련을 시킨다는 뜻으로 경제력을 기반한 군사력을 길렀다는 뜻이다. 마침내 오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를 죽음으로 몰았다. 월왕은 그 여세로 패권을 차지한 패왕의 자리에 올랐다. 오월동주의 무대는 오나라의 소주와 월나라의 소흥이다. 소흥은 아큐정전의 활동무대이고 왕희지와 노신의 생가가 있다. 회계산이 있고, 우왕릉(禹王陵), 왕희지가 서예를 하며 노닐었던 난정(蘭亭), 그리고 심원(沈園)이 있다.

심원(沈園)은 심씨 소유의 정원이라서 심원이라고 불렀다. 심원은 남송의 애국시인 육유(陸游)의 사랑이야기 때문에 유명해져 지금도 소흥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육유는 생전에 1만 수 이상을 쓴 중국 문학사상 가장 많은 시를 쓴 대시인이다. 다음은 소흥시 심원에서 펼쳐진 육유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다.

2. 육유(陸游)의 사랑

송휘종(宋徽宗) 말년인 서기 1125년에 태어나서 남송의 영종(寧宗) 가정(嘉定) 3년인 1210년에 85세의 나이로 죽은 육유는 애국시인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시인이기도 했다. 금나라에 빼앗긴 송나라의 옛 땅을 수복하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모친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사랑했던 여인 당완(唐琬)에 대한 사랑도 애절했다. 당완은 육유의 외숙의 딸로 외종사촌 누이다. 당완의 조부는 송신종(宋神宗) 때 재상을 지낸 당개(唐介)다. 당완 집안도 육씨 집안과 함께 1126년 일어난 정강(靖康)의 변(變)으로 북송이 망하고 남쪽으로 도망칠 때 중원에서 지금의 절강성 소흥시(紹興市)인 산음(山陰)으로 이주했다. 두 집안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을 키워온 육유와 당완은 백년가약을 맺고 행복한 혼인생활을 시작했다. 육유가 당완과 혼인한 해는 그의 나이 20세 때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혼담이 오갈 때만 해도 온화했던 육유의 모친은 아들이 혼인을 하자 태도가 돌변했다.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시어머니지의 박탈감 때문이었다고 추측된다. 당완에 대한 시어머니의 구박이 점점 심해지면서 결국 한집에서 살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육유는 당완을 위해 따로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육유는 그렇게 해서라도 당완과의 혼인생활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방해로 그마저도 뜻대로 할 수 없었다. 결국 육유는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3년 동안의 신혼을 끝내고 당완과 헤어지게 되었다. 당완은 조사정성(趙士程)이라는 사람에게 개가를 하고 육유도 왕씨를 새 아내로 맞이하면서 둘은 남남이 되었다. 그리고 8년 후인 31세 때 산음 성구의 우적사(禹蹟寺) 남쪽에 있는 심원(沈園)에 놀라갔다가 우연히 당완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당완 부부는 준비해온 술과 음식으로 육유를 접대하자 그는 당완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차두봉(釵頭鳳)》이라는 제목의 사(詞)를 지어 심원의 담벼락에다 써 놓았다. 차두봉은 봉황머리를 한 비녀라는 뜻이다. 육유의 시를 읽어 본 당완도 시를 지어 육유에게 화답했다.
송나라 주밀(周密)의《제동야어(齊東野語)》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육무관(陸務觀)은 처음에 당완(唐琬)에게 장가갔는데 모친의 질녀로 육유와는 외사촌 누이였다. 부부는 서로 사이가 좋았으나 모부인의 시기를 받아 집에서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육유는 차마 헤어지지 못하고 그녀를 위해 별관을 지어주고 때때로 가서 보았다. 모부인이 알았음으로 결국은 헤어지게 되었다. 당완은 후에 같은 군에 사는 조사정(趙士程)에게 재가했다. 당완과 헤어진 지 8년 째 되는 해 어느 화창한 봄날, 우적사(禹蹟寺) 남쪽의 심씨 소유의 원림(園林)으로 남편 조사정과 함께 놀러나온 당완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당완이 조사정에게 저간의 사정을 말하고 술과 안주를 육유에게 보냈다. 육유가 슬픈 마음이 되어 오래동안 앉아 있다가 심원에 한 건물 벽에 《차두봉(釵頭鳳)》이라는 제목의 사 한편을 지어 써 놓았다. 육유는 그 후에도 성시에 들어갈 때마다 반드시 절에 올라가서 조망하면서 당완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짓곤 했는데 지은 시가 모두 5수였다.」


3. 차두봉(釵頭鳳)
-그녀의 봉황머리 비녀 -

紅酥手(홍수수)
그대의 고운 손으로

黃藤酒(황등주)
내게 황등주를 따라 줄 때

滿城春色宮牆柳(만성춘색궁장류)
성 안엔 봄빛 가득하고 버들잎 늘어졌지.

東風惡(동풍악)
동쪽바람 사나워

歡情薄(환정박)
우리의 인연 끝났으나.

一懷愁緖(일회수서)
그리움에 사무친 마음

幾年離索(기년이색)
몇 년을 보냈던가?

錯錯錯(착착착)
모두가 다 내 잘못이었지!

春如舊(춘여구)
봄은 예나 같건만.

人空瘦(인공수)
사람은 덧없이 여위었구나.

淚痕紅浥鮫綃透(누흔홍읍교소투)
연지 묻은 붉은 손수건 눈물에 젖어 들고

桃花落(도화락)
복숭아꽃 스러진

閑池閣(한지각)
한적한 연못 누각에서

山盟雖在(산맹수재)
산을 두고 굳게 다짐한 맹세 남았지만

錦書難託(금서난탁)
비단에 쓴 편지 보낼 사람 없으니

莫 莫 莫(막막막)
어찌할까나, 어찌할까나!

육유가 심원의 벽에 쓴 시를 보고 당완도 동명의 제목으로 화답시를 썼다.


4. 답육유(答陸游)
- 육유에게 부쳐 -

唐琬(당완)

世情惡(세정악)
세상살이 고달프고

人情薄(인정박)
인정도 삭막 합니다.

雨送黃昏花易落(우송황혼화이락)
비 내린 황혼녘에 꽃잎 쉬이 떨어지더니.

曉風乾(효풍건)
새벽바람 불어와

淚痕殘(루흔잔)
눈물 자욱 남기네요.

欲箋心事(욕잔심사)
내 마음 젖고 싶어

獨語斜欄(독어사란)
난간에 기대어 독백만 합니다.

難難難(난난난)
어렵고 어려워 막막합니다.

人成個(인성고)
서로가 헤어져

今非昨(금비작)
오늘이 어제가 아닌데도

病魂常似秋千索(병혼상사추천삭)
내 상처받은 영혼만 그네줄처럼 흔들립니다.

角聲寒(각성한)
뿔나팔 소리에 마음 서늘하고

夜闌珊(야란산)
이 밤은 쓸쓸히 져가는데

怕人詢問咽淚裝歡(파인순문인루장환)
행여 누가 물어 볼까 두려워 억지 미소 짓습니다.

瞞瞞瞞(만만만)
자꾸 흐르는 눈물 감추고 감추고 또 감춥니다!

이 시를 지어 육유에게 보낸 당완이 울적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자신이 쓴 시의 황혼녘 내리는 비에 져버린 꽃처럼 짧은 생애를 마쳤다. 서른도 안 된 꽃다운 나이였다. 당시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설명한 기록이 있다.
「심원에서 당완이 육유와 마주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에 겨워 병을 앓다가 그만 죽었는데 사람들이 듣고 슬퍼했다. 후에 심원은 허씨(許氏)에게 팔려 주인이 바뀌었다. 남송 효종(孝宗) 순희(淳熙 : 1174-1189) 연간에 육유의 시가 쓰인 벽이 남아 있어 한 호사가가 그 주위를 대나무를 심어 보호했다.」

5. 禹蹟寺沈氏庭園(우적사심씨정원)
우적사 남쪽의 심씨정원을 다시 찾아(육유 68세 때)

楓葉初丹槲葉黃(풍엽초단곡엽황)
단풍잎 붉은 물 들고 떡갈잎 누레지는데.

河陽愁鬢怯新霜(하양수빈겁신상)
물에 잠긴 해를 보며 시름 속에 흰머리 한스럽다.

林亭感舊空回首(임정감구공회수)
숲속의 정자에 옛 사랑은 없어져 머리 돌리며

泉路憑誰說斷腸(천로빙수세단장)
저승에선 누굴 의지할까 애끓는 마음 달래 보나니.

壤璧醉題塵漠漠(양벽취제진막막)
무너진 벽에 취해 적었던 빛바랜 글 먼지 쌓여 희미하고.

斷云幽夢事茫茫(단운유몽사망망)
구름같은 사라진 그윽한 꿈 모두가 아득합니다.

年來妄念消除盡(연래망념소제진)
한해 한해 지내며 허망한 생각 모두 다 지워 버리고

回向薄龕一烓香(회향박감일계향)
다시 향로에 한가지의 향를 피우며 그대 명복을 빕니다.

6. 심원(沈園)
(당완이 죽고 40여 년 후인 75세 때 심원을 다시 찾은 육유)

其一
城上斜陽畫角哀(성상사양화각애)
석양의 성위에서 들려오는 애달픈 화각소리

沈園非復舊池臺(심원비복구지대)
심원 연못가의 누대도 더 이상 옛날 모습이 아니고

傷心橋下春波綠(상심교하춘파록)
다리 아래 흐르는 푸른 봄 물결에 내 가슴 저미는데

曾是驚鴻照影來(증시경홍조영래)
놀란 기러기 푸드덕거리며 그림자 비쳐 왔었지.


其二
夢斷香銷四十年(몽단향소사십년)
못다 한 꿈 향기 되어 사라진지 사십년

沈園柳老不飛棉(심원류로불비면)
심원의 버들도 늙어 솜털도 날지 않는다.

此身行作稽山土(차신행작계산토)
이 몸은 죽어가서 회계산의 흙이 되려 하는데

猶弔遺蹤一泫然(유조유종일현연)
아직도 그대 발자취 찾아 한바탕 눈물만 흘린다.


7. 십이월이일야몽유심씨원정(十二月二日夜夢遊沈氏園亭)
- 12월 2일 꿈에 심씨의 정원에서 노닐다.-
(그의 나이 81세 때에 지은 시다.)


路近城南已怕行(노근성남이파행)
성 남쪽에 가까이 갈수록 두려움이 일어

沈家園裏更傷情(심가원리갱상정)
심원으로 들어서면 가슴은 더욱 저미는데

香穿客袖梅花在(향천객수매화재)
매화꽃 향기는 방문객 소매에 스며들고

綠蘸寺橋春水生(녹잠사교춘수생)
녹잠사 다리 밑의 개울에는 봄물이 불었다.

城南小陌又逢春(성남소백우봉춘)
성 남쪽 오솔길에도 봄은 다시 찾아왔는데

只見梅花不見人(지견매화불견인)
매화만 피어 있고 그대 모습 보이지 않는다.

玉骨久成泉下土(옥골부성천하토)
그대의 몸은 벌써 황천 깊은 곳에 묻힌 지 오래

墨痕猶鏁壁間塵(묵흔유쇄벽간진)
심원 벽에 써 놓았던 시는 먼지 속에 흔적만 남았구나!


『차두봉 끝』

육유(陸游)의 자는 무관(務觀), 호는 방옹(放翁)이며 부친은 육재(陸宰)이며 병참보급을 담당하는 관리를 지냈다. 부친이 군사(軍事)일을 맡았지만 문(文)에도 밝아 집에는 많은 서적을 보유했다. 그가 태어났을 때 북송(北宋)이 금(金, 여진족이 세운 나라)에게 멸망하여 정강(靖康)의 변을 겪고 있었고 그의 가족은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라 지금의 절강성 소흥시(紹興市)인 산음(山陰)에 정착했다.

그는 침략자 금(金)나라에 대하여 철저한 항전주의자로 일관하는 격렬한 기질의 소유자였으며, 주화파(主和派)를 경멸했다. 당시 남송 고종은 재상 진회(秦檜)와 함께 금과 화친을 목적으로 하였고 명장 악비(岳飛)까지 독살했다. 육유는 악비의 죽음을 한탄하며 애국충정에 찬 시(詩)를 남겼다. 육유는 여러차례 과거시험에 실패하였다가 쇄청시(鎖廳試)에 급제하였지만 진회의 방해로 결국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 이후 고향 산음(山陰 : 현재의 紹興)으로 돌아가 시작(詩作)에 몰두하였고 병서(兵書)를 가까이 하며 검술연마에 힘썼다. 34세에 복주(福州)에서 첫 지방관리가 되었으며 여러지방의 지방관을 지냈다. 1162년 중앙으로 복직하여 추밀원편수관(樞密院編修官)으로 봉직했다. 남송 효종이 즉위하고 육유는 진강(鎭江)의 통판으로 임명되어 금(金)을 치고 옛영토를 회복하자는 주전론(主戰論)을 내세웠다. 하지만 북벌론이 실패하고 주화파(主和派)가 득세하자 그도 벼슬을 잃고 낙향했다. 이후 정계 복귀를 했지만 번번이 주전파와 주화파의 갈등에서 패배하였다.

65세 때에 향리에 은퇴하여 농촌에 묻혀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32세부터 85세까지의 약 50년간에 1만 수(首)에 달하는 시를 남겨 중국 시문학 사상(史上) 최다작의 시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당시풍(唐詩風)의 강렬한 서정을 부흥시킨 점이 최대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국토회복의 절규를 담은 비통한 우국의 시를 짓는가 하면, 가난하면서도 평화스러운 전원생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한적한 시를 짓는 등, 매우 폭넓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에 《검남시고(劍南詩稿)》(85권)가 있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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