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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5 11:43:53258 
열국영웅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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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기존의 풍몽룡 원작의 신열국지와 춘추전국시대에 관련된 춘추좌전, 전국책, 국어, 사기 등의 기사와 진나라 멸망 후에 곧바로 벌어진 항우와 유방의 투쟁과정을 그린 초한지의 일부를 포함한 내용으로 한 열국영웅전 10권을 출간했습니다.

서언

본 《열국영웅전》은 중국의 명청(明淸) 교체기에 활약한 풍몽룡(馮夢龍)이 쓴 《신열국지(新列國志)》를 저본으로 하고 사마천의《사기》의 내용 중 진한(秦漢) 교체기의 항우와 유방의 투쟁 이야기를 번역하여 기사본말체로 재구성한 책이다. 풍몽룡의《신열국지》는 기원전 841년 공화시대(共和時代)부터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천하를 군현제(郡縣制) 하의 중앙집권적인 제국으로 통일할 때까지의 역사를 소재로 쓴 역사서다. 픽션이나 각색이 위주인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 형식을 빌려 쓴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역사소설 《삼국지》는 저자의 의도에 따라 역사를 왜곡한 작품이다. 삼국지의 저자 나관중(羅貫中)은 자신의 신조인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유비집단을 지나치게 신격화하여 역사를 심히 왜곡했다. 사가들은 삼국지의 내용 중 반은 허구라고 했다. 그러나 《신열국지》는 소설의 형식을 빌린 역사서다.

그동안 한국에서는《열국지》나 《동주열국지》라는 제목으로 기 출간된 번역본이 10여 종 있다. 그 중에는 《한권으로 읽는 열국지》라는 책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이 5권에서 10여 권에 이르는 대작들로 그 무대가 되는 시기는 550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를 전후로 한 600여 년 동안의 장구한 세월이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광대한 중국대륙에서 천 개에 육박하는 제후국들과 수천 명의 인물들이 명멸한 대하역사소설이다. 그 결과 독서를 시작한 독자들은 난마와 같이 얽힌 스토리와 광할한 대륙의 공간적인 이해부족으로 끝까지 읽어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편역자는 원전의 편년체로 된 이야기를 사건 중심의 기사본말체로 재구성하고 좌도우사(左圖右史) 정신에 입각하여 170여 커트의 관련 지도를 삽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좌도우사란 모름지기 사서를 읽을 때는 왼쪽에 지도를 끼고 오른 쪽의 기사(記事)를 읽어야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10권에 중국 고대사회에 특정되어 사용되는 용어, 사건이 벌어진 지명,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수천 명에 달하는 인물 등에 관한 사전과 열국영웅전 전 기간을 망라하는 대사표 등을 실었다.

중국의 역사는 인문학의 보고다. 신화시대인 삼황오제(三皇五帝)부터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 이르기 까지 명멸한 셀 수 없이 많은 왕조와 그 왕조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행적이 인문학의 소재다. 중국 역사가 역동적이라는 사실은 진나라가 통일한 이후 2000여 년 동안 100년 이상 계속된 왕조는 지방정권을 포함 불과 열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한(漢), 북위(北魏), 동진(東晉), 당(唐), 송(宋), 요(遼), 금(金), 원(元), 명(明), 청(淸) 등의 왕조다. 10개 중 5개는 한족이고, 5개는 한족이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이민족 정권이다. 지방정권을 포함하여 불과 몇 년 만에 망한 단명 정권을 포함하여 천여 개의 왕조가 명멸한 중국의 역사는 국가나 인간 개개인의 생사존망의 이치를 인류에게 깨우쳐주는 경험론적 교훈의 보고(寶庫)이다. 이에 중국 고대의 역사가들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 글자 한자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당진국의 ‘동호(董狐)의 직필(直筆)’, 제(齊)나라 남사씨(南史氏)의 ‘거사직서(據事直書)’, 공자의 ‘춘추필법(春秋筆法)’, 사마천의 ‘태사공필법(太史公筆法)’ 등은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의 절실한 자세를 표현하는 말들이다.

《열국영웅전》의 역사적인 무대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그 뒤를 잇는 초한쟁패시대다. 춘추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구분한다. 춘추시대는 학계의 통설로 기원전 771년부터 기원전 453년까지의 기간이다. 기원전 771년 지금의 섬서성 일대의 관중지방을 근거지로 했던 주나라가 북방의 유목민족인 견융(犬戎)의 침략으로 망했다. 그러자 주나라의 잔존세력이 지금이 하남성 낙양시 일대의 중원지방으로 나라를 옮겼다. 관중지방의 주나라를 서주(西周), 중원지방의 주나라를 동주(東周)라 했다. 기원전 771년 창건한 동주왕조가 기원전 256년 진나라에 의해 망할 때까지의 기간이 공자가 편찬한 《춘추》의 기년과 전국시대가 끝난 기원전 221년과 대체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에 동주시대라고도 부른다. 주나라의 권위가 약해지자 강력한 국세에 의지한 패자가 천자를 등에 업고 호령을 발하는 패자(霸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패 즉 다섯 명의 패자가 차례로 등장하여 천자를 대신했다. 오패는 제환공(齊桓公), 진목공(秦穆公), 진문공(晉文公), 송양공(宋襄公), 초장왕(楚莊王) 혹은 진목공과 송양공의 자리에 오왕(吳王) 부차(夫差)와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넣기도 한다. 오패시대의 뒤를 이어 북방의 강국 당진국과 남방의 강국 초나라가 패권을 놓고 다투었다. 근 100년 동안 거의 매년 수행한 패권전쟁으로 황폐해진 진초 두 나라는 남방의 후진국 오월(吳越) 두 나라에 대리전쟁을 시켰다. 당진국이 오나라를 후원하여 초나라의 후방을 위협하게 하자 초나라는 오나라의 남쪽에 있던 월나라를 후원하여 오나라의 배후를 치게 했다. 이윽고 패권전쟁은 장강 하류의 오와 월 두 나라로 이동하게 되었다. 중국천하의 패권은 오나라의 차지가 되었고 다시 오나라를 멸망시킨 월나라에 이어졌다.

한편 북방의 패권국인 당진국(唐晉國)의 정권은 육경(六卿)에게 넘어갔다가 다시 사경(四卿)으로 좁혀져 기원전 453년에 벌어진 진양성(晉陽城) 전투의 결과 한위조(韓魏趙) 삼가의 차지가 되었다. 한위조 삼가는 당진국을 멸하고 각기 나라를 세웠다.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이 사건을 삼가분진(三家分晉)이라고 한다. 이로써 기존의 연(燕), 섬진(陝秦), 제(齊), 초(楚)의 4국에 한위조 세 나라가 합세하여 전국칠웅(戰國七雄)를 형성했다. 마침내 중국 천하는 약육강식의 무한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전국시대 초기는 위(魏)나라가 주도했다. 영명한 군주 위문후(魏文侯)는 현사(賢士)들을 대거 기용하여 위나라를 중흥(中興)시켜 패권국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위문후가 죽자 무능한 후계자가 인재를 경시하고 무리하게 벌인 정복전쟁에서 패배함으써 곧바로 중세제후국으로 전락했다. 그 사이 서방의 후진국 진(秦)나라에 진효공(秦孝公)이라는 야심만만한 군주가 등장하여 당시 위나라에서 재상의 보좌역을 하고 있던 상앙(商鞅)을 등용하여 세계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위로부터의 개혁을 일으커 중국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상앙은 자기가 쳐 놓은 법망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마쳤지만 그가 남긴 혁신적인 제도는 진나라의 군주들이 계속 계승하여 마침내 140년 만에 중국천하를 최초로 통일하는 주역이 되었다. 상앙이 시행한 핵심적인 개혁의 내용은 기득권 타파다. 사람의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는 봉건제를 타파하고 누가 되었건 능력과 공적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작위와 봉록을 받을 수 있다는 군현제 사회를 설계했다. 이후로 진나라는 관리의 선발이나 작위의 수여는 출신지역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에 따라 시행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진나라는 최고 관직인 승상이나 국위(國尉)의 자리에 계속해서 능력있는 외국 출신의 인재를 기용했다. 위(衛)나라 출신이나 위(魏)나라에서 재상 보좌역을 수행했던 상앙, 위(魏)나라 출신 장의(張儀)와 공손연(公孫淵), 초나라 출신 감무(甘茂), 위나라 출신 범저(范雎), 연(燕)나라 출신 채택(蔡澤), 한나라 출신 여불위(呂不韋), 초나라 출신 이사(李斯)와 위나라 출신 울료(尉僚)가 그들이었다.

기원전 221년 마지막 남은 제나라를 멸하고 중국을 통일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왕조를 창건한 진시황은 그 동안 진나라가 시행하고 있던 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해서 시행하기 시작했다. 상앙이 시작했던 군현제, 문자와 도량형(度量衡) 통일, 차륜(車輪)의 규격 통일과 지금의 고속도로나 국도에 해당하는 치도(馳道) 및 직도(直道)의 건설, 만리장성의 완성, 중국 전역을 연결하는 수상교통망의 건설이 그의 주요업적이다. 특히 지금의 광서성 흥안현(興安縣) 서쪽의 천여 미터가 넘는 산악지역에 갑문식 운하인 영거(靈渠)를 건설하여 상강(湘江)과 이강(離江)을 연결하여 중국전역을 수상교통망으로 연결했다. 진시황은 50만의 병력과 군수물자를 수상선박에 실어 보내 지금의 광서성과 광동성 및 월남 북부지역을 포함한 영남(嶺南) 지역을 일거에 점령하고 그곳에 3개 군을 설치했다. 이로써 장강 이남의 영남지역은 중국문화권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진시황이 창건한 진제국도 그가 죽자 3년 만에 곧바로 망하고 말았다. 진나라가 망한 원인은 서한(西漢) 초의 학자 가의(賈誼)가 《과진론(過秦論)》이라는 명문으로 설파했으나 간단히 요약하면 분서갱유로 표현되는 우민화정책, 불로장생의 허황된 꿈에 빠져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재촉한 미신, 백성들을 혹사시킨 만리장성, 아방궁(阿房宮), 여산릉(驪山陵), 운하(運河), 치도(馳道)와 직도(直道) 등의 대규모적인 토목공사, 엄혹한 법의 집행으로 인한 폭정 그리고 무능한 후계자와 간신의 발호가 그 원인이다.
비록 천부의 기득권에 근거한 봉건제를 타파하고 능력제 위주의 사회로 개혁했다고 했지만 지배권력의 핵심세력인 자신만은 어쩌지 못하는 법이다. 결국 상앙이 시작한 신분제 타파의 시작은 농노 출신의 반란군 대장 진승(陳勝)에 의해 신분제 사회의 마지막 경계를 허물었다. 그는 ‘원래 왕후장상(王侯將相)은 씨가 따로 없는 법이다.’라고 외치고 반진의 깃발을 들자 농노출신의 진승 밑으로 과거에 왕후장상의 후예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그의 부하가 되었고 진승은 그들의 추대에 의해 왕이 되었다. 인류 역사상 농노 출신의 인간이 누구나 능력과 덕이 있으면 왕이 될 수 있다는 실례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는 왕으로 살았던 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지만 그가 이룩한 신분해방 운동은 후에 중국 역사가 역동적으로 요동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진승이 치켜든 신분타파의 깃발로 생긴 수혜는 평민 출신 유방의 차지가 되었다. 진승의 의거와 이세황제의 무능으로 주인이 사라진 중국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영웅들이 각축했으나 결국은 구체제의 기득권 계층을 대표한 불세출의 무장 항우(項羽)와 한미한 중농출신이며 하층계급을 대표한 유방(劉邦)의 대결로 압축되어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다. 유방과 항우가 무주공산이 된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 기간은 8년이다. 기원전 208년 9월에 진승의 기의에 호응하여 몸을 일으킨 유방과 항우는 8년 동안의 치열하게 싸웠다.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의 싸움에서 항우를 물리친 유방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한왕조를 창건했다. 유방의 승리는 상앙이 시작하고 진승이 저변을 확대시킨 신분타파 운동의 완성이었다. 중국의 황제는 능력만 있으면 신분과 상관없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로 발전했다. 유방 이후로 노예, 거지, 이민족 출신의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상인, 도박꾼 등의 출신도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서양우월주의에 매몰된 역사가들은 중국과 서양의 역사를 대비하면서 중국은 분열이 반복되었으나 그때마다 통일국가를 이룩한 것에 비해 서양은 로마제국 이후 통일국가가 등장하지 않은 이유가 지중해의 존재나 복잡한 지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통일보다는 분열이 역사발전에 긍정적이라는 아전인수 격인 주장을 하고 있다. 역사의 발전은 인문학과 정치를 매개로 사회가 평등과 평화공존으로 진보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서양 사회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기독교와 봉건체제의 신분제에 기반한 불평등과 약탈경제 사회였다.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인간으로써의 대접은 유보되었고 힘과 권력은 약탈을 할 수 있는 면허였다. 고대나 중세의 서양 여러 나라들이 수행했던 전쟁에는 보급이라는 개념이 없다. 보급은 전쟁에서 이긴 상대국 주민들을 약탈해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즉 당시에는 힘이 미치지 못해 점령되어 약탈을 당하지만 시간이 지나 점령국에 약점이 보이기 시작하면 곧바로 깃발을 들고 독립운동을 벌인다. 800년 동안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아일랜드가 기어코 독립을 쟁취한 원인은 종교와 점령기간 동안 영국이 자행한 약탈과 본국인과의 차별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서양과는 대조된다. 분열된 중국이 통일 될 때 공통적인 정책은 새로 점령한 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약탈 행위의 금지와 세금의 감면이고, 그 지역 출신의 인재들은 차별 없이 지배계층에 대한 포용정책이다. 중국인들의 시조를 황제족(黃帝族)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상고시대의 신화적인 인물인 황제가 이끄는 소수의 종족이 새로 점령한 주변의 이족들을 포용하기 시작해서 민족 간의 융화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한족으로 표기 되는 15억 명의 중국인이 사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되었다.

중국역사를 읽다보면 면면히 흐르고 있는 몇 가지 사상을 느낄 수 있다. 통치이념도 될 수 있고 개인적인 인생철학도 될 수 있다. 소위 말해서 덕(德). 의(義), 충(忠)이라는 개념이다. 불평등하게 태어난 인간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사람은 열악한 사람에게 자기의 것을 베풀어야한 개념이 덕이고, 의란 덕의 수혜를 받은 사람은 다른 형태로 보답해야 하며, 덕을 베풀거나 보답하는 행위는 보여주기가 아닌 절실한 자세로 임해야한다는 사상이 충이다. 덕의충사상(德義忠思想)의 국가에 해당하는 사례는 강한 나라를 억제하거나 외족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대신 약소국은 패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패권정치이고, 개인에게 해당하는 사례는 사마천의《사기·자객열전》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적이다. 또한 지고한 존재인 천자나 황제에 대한 사대부들의 자세도 우리가 아는 절대적인 충신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황제나 왕이 적대국의 포로가 되면 대신 다른 사람을 세워 협상의 여지를 없앤다. 즉 지고한 황제나 왕이지만 그 개인보다는 사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혹정을 행하다 한족 정권이 망하고 새로운 이민족 정권이 들어서면 그들은 사직보다는 인민들의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사상으로 이민족 정권에 출사하여 선정을 베풀도록 인도한다. 그래서 망한 한족 왕조의 부활을 위해 목숨을 버린 충신도 이민족 왕조에 출사하여 공적을 세운 인사도 모두 존경의 대상이다. 통치권의 절대화를 위해 군주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강조한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유교의 교리는 공자의 가르침을 왜곡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공자는 살아 생전에 자기를 알아주는 군주를 10 번 이상 바꾸며 세상을 유랑하다가 절망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자로 일생을 마쳤다. 즉 군주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미련 없이 떠나 자신이 품고 있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도와 줄 군주를 찾아 나섰다. 인민 대중에게 덕을 베풀어야하는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 지식인의 자세였다.

해방되고 이제 76년 동안 분단 상태로 있으면서 아직도 불구대천의 철천지원수 관계를 견지하고 있는 한국민족이 분단의 사슬을 끊고 평화공존과 차별이 없는 평등의 통일국가로 가는데 열국영웅전에 녹아있는 중국인들의 해법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의 출간을 위해 격려와 성원을 해준 21세기경제학연구소 동지들, 용산고등학교 21회 친구들, 1년 넘게 성심성의껏 출간준비를 도와 준 지식과감성사 장길수 대표님과 박예은님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21년 6월 25일 71회 생일 날

탁연(卓淵) 양승국(梁承國)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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