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자유게시판
열국지평설
중국이야기
질문답변
· 오늘 :  12 
· 어제 :  81 
· 최대 :  2,389 
· 전체 :  1,509,214 
 
  2004-06-25 14:26:327292 
우리 인문학과 번역 (1)
양승국
일반
우리 인문학과 번역 (1)
실망스러운 기억들 - 번역의 역사적 의의

박상익 기자 clio53@hanmail.net

실망스러운 기억들

학생 시절 고전독서 모임에서 단테의 <신곡>을 함께 읽은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어를 몰라서 영역본 몇 종류와 우리말 번역본을 함께 읽었다. 필자가 읽던 우리말 <신곡>은 이탈리아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의 어느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분이 번역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역본과 우리말 번역을 대조하며 읽으면서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무수히 눈에 띄는 오역들 때문에 도저히 내용 파악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같은 무렵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택한 방법 중 하나는 영문 원서를 우리말 번역서와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었다. 종로 2가의 한 서점에서 영국 작가 H. G. 웰즈가 쓴 역사책을 한 권 구입했는데, 마침 이 책이 당시 어느 명문 대학에서 강의하시던 저명 언론인에 의해 번역된 것을 알고 번역서도 구입했다. 그러나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해 읽으면서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일개 대학생이 더듬더듬 사전을 찾아가며 읽는 중에도 숱한 오역과 비문(非文)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최근의 경험도 하나 털어놓아야 하겠다. 몇 해 전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을 번역본으로 한 권 구입했다. 평소 읽고 싶던 책이었고, 무엇보다도 번역자가 학술원 회장까지 지낸 명망 높은 원로 경제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 부분을 몇 장 들춰보다가 그냥 덮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말 문장이 어찌나 난해한지(!) 필자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읽어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명 학자들의 실망스러운 번역서들에 대해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교수 본인이 불성실하게 번역한 경우인데, 명색 교수라면서 일개 대학생에게 책잡힐 정도로 부실한 번역을 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둘째로, 대학원생들에게 적당히 나눠 번역을 맡긴 다음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낸 경우인데, 이것은 도덕 불감증 차원을 넘어 범죄 행위에 해당하는 일이다. 조악한 상품에 그럴 듯한 가짜 상표를 붙여 종종 말썽을 일으키는 이태원의 가짜 외제상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 학계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양서(良書)들을 반듯하게 번역하여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여준 원로들이 적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젊은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또한 학술진흥재단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서양 명저번역 지원사업'이 차츰 열매를 거두기 시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매주 중앙 일간지의 북 섹션에 실리는 수많은 번역서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이만하면 되지 않았는가 하는 뿌듯함을 느낄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견 화려해 보이는 이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가 갈 길은 아득하게 멀기만 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글은 이러한 불만과 문제의식 위에서, 번역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의를 갖는 것인지, 번역 작업은 현실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아가 그것이 '우리' 인문학과 역사학의 대중화와 활성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주간동아> 제279호 기획 특집에 실렸던 <번역 경시는 지식인의 반역>을 대폭 수정, 확대하여 작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주간동아> 편집자는 필자에게 각별히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내어 써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그러한 논조는 이 글에서도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다.)


번역의 역사적 의의

이스라엘과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어느 목회자로부터 일본의 번역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목회자는 1992년에 이스라엘의 한 대학에서 성서고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학기말에 엄청난 과제물로 허덕이는데, 같이 공부하던 일본 친구가 도서관에서 뒤적이던 책을 보니 모두 일본어로 된 책이더라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된 성서고고학 분야의 주된 텍스트들이 그 당시 일본어로 이미 번역되어 있었고, 이스라엘의 대학 도서관에까지 비치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친구는 이스라엘에 오기 이전에 벌써 성서고고학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 알다시피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런 전문적인 성서고고학 분야의 책들뿐만 아니라, 고대어에 대한 주된 텍스트들이 이미 모두 일본어로 번역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얼마 전 번역 출간된 <번역과 일본의 근대>를 보면,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는 데 번역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은 이미 19세기말에 메이지 유신(明治維新)과 더불어 정부 내에 번역국(飜譯局)을 두고 조직적으로 서양 서적들의 번역을 추진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메이지 초기에 이미 서양 고전들이 대거 번역되었다. 1881년에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이, 1883년에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몽테스키외의 <로마인 성쇠 원인론>이 번역되었다.

이 무렵 일본은 그야말로 번역의 홍수에 빠져 있었다. 오죽하면 <역서독법(譯書讀法)>이라 하여, 엄청나게 쏟아지는 번역서들을 안내하는 책자가 따로 나올 정도였다. <역서독법>의 저자 야노 후미노는 이 책 서두에서, "최근 번역서 출간이 성황을 이루어 그 권수가 '몇 만 권'을 헤아린다"고 밝히고 있다. (<역서독법>의 표현은 얼마간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번역과 일본의 근대> 본문에서 마루야마가 밝혔듯이 '몇 만권'이 아니라 '몇 천권'이라 해도 그 숫자는 대단한 것이다.) <역서독법>이 출간된 해가 1883년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일이다.

특히 1927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이와나미 문고(岩波文庫)는 일본의 번역 문화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필자는 지난 1999년에 <언론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소나무)를 출간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시인 존 밀턴이 쓴, 언론사상사의 고전 <아레오파기티카>에 대한,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번역, 주석, 연구서이다. 그런데 알아보니 이 문헌은 벌써 1953년에 이와나미 문고에서 번역본이 나와 있었다. 우리와 일본의 격차가 반세기 가량 벌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격차가 반세기뿐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앞서 <역서독법>에서 언급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과 몽테스키외의 <로마인 성쇠 원인론>은 아직도 번역되지 않았고,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서울의 어느 명문대 정치학과 교수가 번역한 수준 미달의 번역서가 한 권 나와 있을 뿐이다. 격차가 1백 년 이상인 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본이 이미 19세기에 어마어마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을, 우리는 지금도, 그 필요성마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한글로 된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 전집도 없고,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간신히 일본어 중역본(重譯本)이 한 권 있을 뿐이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랑케는 흔한 선집 하나 없다. 하긴 5백년 유교 국가였으면서도 반듯한 우리말 사서삼경도 갖지 못한 궁색한 처지인 바에야 서양 고전에 대해서는 달리 더할 말도 없을 것이다.

번역이 전제되지 않는 지적 활동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동양철학자 김용옥의 말처럼 제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써도 그 논문에 관련된 고전의 번역이 없이는 그 논문이 전개한 아이디어는 '우리 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 제아무리 영어 도사들이 많이 출현해도 그들이 '우리말'로 그들의 학식을 표현할 수 없는 한 그들은 '우리 문화'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외래 문명의 새로운 개념들은 우리말로 번역이 될 경우 우리의 어휘와 개념을 풍부하게 만들면서 우리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에도 중기 이래의 란가쿠(蘭學)와 메이지 시대 이후의 번역 열풍은 한문 문명권과 그리스, 로마 문명권을 융화시키며 동서 문화교섭사의 가장 빛나는 장면을 연출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상당수와 학문적으로 쓰는 대부분의 전문 용어, 즉 자유(自由), 평등(平等), 권리(權利), 인권(人權), 정의(正義), 민주주의(民主主義), 시간(時間), 공간(空間), 의무(義務), 책임(責任), 도덕(道德), 원리(原理), 철학(哲學), 사회학(社會學), 미학(美學) 등은 모두 일본 지식인들이 서양 문화를 수용하면서 번역해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말들이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번역 작업을 통해 서양 문화를 수용하고자 했던 일본 지식인들에게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근대 일본만이 아니다. 역사상 어느 문명이든 다른 문명과 처음 접촉할 때 가장 먼저 수행되는 작업은 바로 번역이다. 예컨대 서양 세계는 중국과 접촉을 시작했을 때, 중국 고전을 서양어로 번역하는 일부터 착수했다. 영국인 제임스 레그(James Legge)는 이미 19세기에 중국 고전 상당수를 영역하여 정본화 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중국 연구는 레그의 번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중세 유럽을 둘러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중세전성기 유럽의 사상적 학문적 발달은 번역 작업 없이는 생각하기 힘든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고전 저작들은 12세기에 라틴어로 처음 번역되어 서유럽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번역 작업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 저작이 서양 사상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13세기 스콜라 철학의 내용과 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독교 교리 체계에 융합시키려는 시도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로마 제국이 몰락한 후 서방에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은 보에티우스가 번역한 초보적인 논리학 논문 몇 편뿐이었다. 물론 비잔티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어 사본들이 남아 있었으나 그것들은 비잔티움에서 어떠한 독창적인 철학적 사고의 전통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는 사정이 달랐다. 아랍인들이 정복한 헬레니즘 문명 지역에는 그리스 철학의 여러 학파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아랍인들은 그 학파들의 사상을 습득하여 자기들 것으로 만들었다. 750년에서 900년 사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저작이 일부는 그리스어에서 직접, 일부는 시리아어판(版)을 통해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아랍인들은 이것을 이슬람교 교리와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슬람 철학자들을 그리스어의 필로소포스(philosophos)를 음역하여 아랍어로 파일라수프(faylasuf)라고 부른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그리스어로 된 철학 저술의 아랍어 번역은 이슬람 사상의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철학의 모든 유산은 이슬람 세계와 접촉한 서유럽 기독교 사상가들에 의해 부활되었다. 기독교 사상가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비잔티움이 아니라 아랍으로부터였으며, 이는 아마도 아랍인들에게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생생한 전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12세기에 이루어진 아리스토텔레스 번역 작업은 거의 모두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이웃하여 함께 살고 있던 지역에서 수행되었다. 시칠리아에서도 얼마간 번역이 이루어졌지만, 가장 큰 번역 중심지는 에스파냐의 톨레도였다. 그러나 이렇듯 그리스어 원본이 그리스어에서 시리아어로, 시리아어에서 아랍어로, 다시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중역(重譯)되는 바람에 수많은 오역의 문제가 발생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은 13세기 중반 뫼어베크의 윌리엄(William of Moerbeke)이 그리스어 원본을 토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저작들을 직접 번역함으로써 극복되었다.

기원전 5, 6세기에 활짝 피어난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이 그리스의 쇠퇴와 함께 로마에 수용될 때, 로마 지식층은 그리스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번역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따라서 로마의 멸망과 더불어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은 서유럽 라틴 문명에 곧바로 계승되지 못했다.

한편 아랍 세계는 8, 9세기에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일을 출발점으로 하여 자신들의 과학 및 철학을 발달시켰다. 그리고 아랍을 통한 서유럽 라틴 문명으로의 그리스 사상의 재수입은 아랍어로 번역되었던 그리스 고전을 중역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유럽 중세사의 이른바 '12세기의 르네상스'(12th Century Renaissance)는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가 '번역의 시대'(Age of Translation)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은 이 시대의 지적 번영이 번역에 의해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목록 답변 글쓰기
16319
번호 분류 제목 성명 날짜 읽음
121    콜럼버스의 항해도 운영자 08-06-27 8004
        콜럼버스의 항해도 운영자 08-06-27 7574
5 일반 재오픈을 축하드립니다. 김용오 04-06-03 8115
6 일반 드디어 네이버에도 오세진 04-06-11 7970
7 일반 열국연의 사이트 등장 우와 04-06-12 7676
8 일반 열국지는 장기불황 취업지침서 우와 04-06-12 8291
9 일반 홈피가 새단장 했나봐요...^^ 김화영 04-06-13 8159
10 일반 재오픈을 축하드리며 서기원 04-06-16 8312
11 일반 드디어 엠팔에도 오세진 04-06-17 8684
12 일반 [이진곤 칼럼] 열국지 양승국 04-06-19 7842
13 일반 밝혀지는 쓰레기 만두의 진실 양승국 04-06-23 8254
14 일반 채제공의 관악산 등정기 양승국 04-06-24 7613
15 일반 신 사자성어 양승국 04-06-24 7703
16 일반 마늘사태를 보고 생각나는 바나나 이야기 양승국 04-06-25 7894
17 일반 옛날 중국의 양치기들 양승국 04-06-25 7424
18 일반 나폴레옹과 풀턴 양승국 04-06-25 7381
일반 우리 인문학과 번역 (1) 양승국 04-06-25 7293
20 일반 역사의연구라는 재미없는 책에 대하여 양승국 04-06-25 9842
21 일반 요새 군대갈 때 사가지고 가는 것들 양승국 04-06-25 7223
22 일반 후추가루와 미국 양승국 04-06-25 8135
1 [2][3][4][5][6][7][8][9][다음][맨끝]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