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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21 08:09:432342 
부패혐의로 체포된 호진타오의 비서실장 링지화(令計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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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으로 날아간 위안밍위안(圓明園)의 꿈 –링지화(令計劃)

베이징 교외의 하이텐구(海澱區)에 ‘위안밍위안’ 귀에 익은 우리 발음으로는 ‘원명원’이라는 청조(淸朝)시대의 고궁이 있다. 황제의 별궁으로 지어졌지만 나중에는 황제가 상주하면서 집무를 보았던 정궁이 되었다. 시내의 자금성은 의전적인 궁이고, 넓은 정원이 딸린 원명원에서 황제가 주로 거처하였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궁으로 유명한 원명원이 애석하게도2차 아편전쟁 기간 중인1860년 함풍제가 열하(熱河 지금의 承德)로 피난 간 사이 영불 연합군에 의해 약탈되고 파괴되었다. 지금도3.5 평방km(여의도 보다 약간 큼)의 넓은 지역이 온통 폐허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는 서양의 침략자에 의해 파괴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면서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로 복원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원명원은 역사 교육현장이다. ‘힘이 없어 당한 선조들의 아픔과 설움을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녀 온 사람들의 일반적인 소감이다.



1980년대 중반의 어느 날, 공청단(共靑團) 중앙의 젊은 직원들도 애국 교육을 겸한 야유회(郊遊)로 원명원을 찾았다. 공청단은 ‘중국공산주의 청년단’의 약칭으로 중국 공산당 주도아래14-28세의 젊은 단원의 지도를 맡는 청년 엘리트 조직이다. 그 날 원명원을 방문한 공청단의 직원 중에는 선전처장 링지화(令計劃)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원명원에는 구리핑(谷麗萍)이라는 여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베이징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구리핑은 학벌과 미모로 며느리 감으로서는 영순위였다고 한다. 바늘에 실을 꿰듯(穿針引線) 주변의 소개로 링지화는 구리핑을 만났고 그 날을 계기로 두 사람의 사랑이 싹 터 결혼으로 연결된다. 그리고1988년 외아들 링구(令谷)가 태어난다.



1956년10월생인 링지화는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의사로서 항일운동에 참가한 혁명가족 출신이다. 산시성(山西省) 윈청(運城)병원의 의무과장인 아버지는4남1녀의 자녀들에게 당시 공문서에 자주 오르는 말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큰아들은 루센(路線) 둘째는 쩡처(政策) 셋째(딸)는 팡쩐(方針) 넷째는 지화(計劃) 망내는 완청(完成)이다. 링지화는 네 번째 자식이지만 아들로서는 셋째이다.

링지화는 고향인 산시성 핑루현(平陸顯)의 인쇄공장의 검자공(檢字工)으로서 출발하였으나 근면과 성실로 산시성 공청단의 선전부에 발탁되었다. 링지화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항상 책을 옆에 두는 학구파였다고 한다. 그리고 문장력뿐만이 아니라 글씨도 여러 서체(書體)에 맞춰 잘 썼다고도 한다. 당시 공청단 중앙에 보내는 보고는 모두 직접 글을 써서 보고하므로 글씨가 중요했다. 링지화의 손을 거친 보고서는 내용도 알차지만 글씨가 흐트러짐 없고 여러 글자체가 입체적으로 섞여 눈에 확 띄는 보고서였다고 한다. 링지화가 상사의 신임과 인정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당 중앙에서는 세대교체(年輕化)를 위해 지방의 젊고 유능한 간부를 중앙으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청년 링지화는 이러한 정부 시책에 따라 베이징의 공청단 중앙으로 영전하게 되었다. 공청단 중앙에서도 그는 근면과 성실로 동료와 상사의 의도를 미리 파악 처리하여 인기를 끌었다. 그가38세 때 공청단 중앙의 선전부장이 될 정도로 승진이 빨랐다.

링지화는 그럼에도 남 앞에서 사진에 찍히는 것을 꺼리고 그의 이름이 외부에 노출 선전되지 않도록 부탁할 정도로 겸손하였다. 링지화는 성공의 충분조건인 근면 성실과 필요조건인 재능을 모두 갖추고 자신의 인생을 나름대로 계획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링지화의 능력은 당 중앙에서도 알려져1995년 공청단 중앙에서 당 중앙 판공청(대통령 비서실 해당)으로 파격적으로 발탁된다. 그의 근무처가 중앙 영도들이 집무를 보는 중남해(中南海)로 바뀐 것이다. 1979년 산시성에서 공청단 중앙으로 영전한지16년만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당 중앙 판공청 부주임을 거쳐 판공청 주임(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으로 고속 승진을 하면서 그의 관운은 수직으로 열렸다. 공직자로서 최고 꿈인 당 중앙 정치국위원이 되는 것은18대(2012년) 당 대회에서 확실해 보이고, 나아가서 정치국 상무위원도 이변이 없는 한19대(2017년) 때에는 가능해 보였다.



이권을 쫓는 사람들은 링지화와 그의 형제들에게 몰려들었다. 링지화는 가족들에게 명예를 더럽히지 않도록 당부를 하고 아들 링구의 대학 입학 시에는 자신의 아들인지 모르게 다른 이름(化名)을 사용토록 하는 용의주도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철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승진을 거듭함에 따라 이상과 신념이 느슨했는지 그의 주변 관리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아들 링구에게 페라리라는 고급 외제 스포츠카가 주어진 것이다. 그것이 문제였다. 링지화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자신의 계획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 같다.



2012년3월18일 링구는 밤을 새워 어울리다가 새벽녘에 검은 페라리에 젊은 여인 두 사람을 태워 베이징4환로를 질주했다. 새벽4시경 링구의 페라리가 북4환로 지하도의 교각을 들이 받았다. 바오푸쓰교(保福寺橋)였다. 중국의IT 단지 중관촌(中關村)이 있는 곳이다.

3월18일은 베이징의 봄이 오기에는 이른 시기였다. 봄추위(春寒)가 장독을 깬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베이징의 꽃샘추위가 대단하다. 그날 밤도 꽃샘추위로 진눈깨비가 흩날렸다고 한다. 지표를 살짝 덮은 눈은 차량 사고를 부르기 좋게 되어 있다. 아무래도 운전에 미숙한 링구의 검은 페라리는 순간 미끄러져 교각과 시멘트벽에 부딪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는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고 운전자는 튀어 나갔다. 목격자의 신고에 의해 베이징 공안이 달려 왔으나 운전자는 즉사하였고 두 여인은 병원에 실려 갔다. 베이징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24세의 꽃다운 나이의 링구는 아버지 링지화와 어머니 구리핑이 만나 가정을 이룬 원명원에서 멀지 않은 바오푸쓰교에서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출세욕으로 죽음 자체가 은폐되어 장례도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을 것 같다.



18차 당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대 사고가 발생한 것을 감지한 링지화는 한 순간 보고와 은폐를 놓고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는 결국 은폐라는 악수를 택했다. 링지화는 중앙 경위국(대통령 경호실 해당)을 동원 현장을 봉쇄하고 언론을 막았다고 한다. 그러나 진실은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알려지게 된다. 링지화는 정치국위원은 커녕 통일전선공작부장(통전부장)으로 좌천되었다. 사람들은 링지화의 주변을 떠나가고 그에 대한 비리 조사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링지화의 집에서 트럭6대분의 뇌물이 적발되었고 일본 교토에 호화 저택을2채나 소유하는 등 일본에 불법 투자한 사실이 밝혀 진 구리핑이 일본으로 출국하려다가 검거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4년12월 말경 ‘기율위반’ 혐의로 조사 중인 링지화 통전부장이 면직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시골 산시성에서 상경하여 자신의 이름처럼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링지화는 아들의 ‘페라리 사고’가 계기가 되어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잃었다. 원명원에서 시작된 링지화 가족의 청운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가쟁명:유주열] 중앙일보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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