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테마연의
테마연의
고사성어
열국영웅전
· 오늘 :  381 
· 어제 :  437 
· 최대 :  2,389 
· 전체 :  1,685,099 
 
  2004-05-11 21:58:014796 
백리해2 - 당진이 펼친 가도멸괵 작전에 의해 망하는 우(虞)나라
양승국
일반

2. 당진의 가도멸괵(假道滅虢) 작전에 떨어진 우공(虞公)

우(虞)나라와 괵(虢)나라는 주왕실과 같은 희(姬) 성의 제후국으로 입술과 이와의 관계처럼 상호의존하며 지내오고 있었다. 그 두 나라의 영토는 당진(唐晉)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다. 당시 괵국의 군주 이름은 추(醜)라고 했는데 병사의 일을 좋아하고 스스로 교만한 위인이라 수차에 걸쳐 당진의 변경을 침입하곤 했었다. 당진의 변경을 지키는 관리가 강성으로 달려와 괵나라가 다시 변경을 침략해 왔다고 위급함을 알려왔다. 헌공이 괵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여희가 말했다.


" 다시 한 번 신생을 시켜 괵국을 정벌하시지 그러십니까? 그 의 이름이 이미 널리 나 있으니 군사들을 주어 정벌하게 하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헌공은 이미 여희의 말에 빠져들어, 만일에 신생이 괵나라를 토벌하는데 성공이라도 한다면, 그의 이름이 더욱 높아져 제압하기 어려워 질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그래서 신생을 보내는 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며 대부 순식(荀息)을 불러 그의 의견을 물었다.


▶우(虞)/괵국의 하양성(下陽城)과 인접하고 있던 황하 북안의 희성 제후국이다. 주나라의 태왕(太王)인 고공단보(古公亶父)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장자가 오태백(吳太伯), 차자가 중옹(仲雍)이고 막내가 계력(季歷)이었다. 그 중 계력이 가장 덕이 높고 재주가 뛰어나 고공단보가 계력을 후계로 삼으러 했다. 태백과 중옹이 알고 형만(荊蠻)으로 달아나 만이(蠻夷)의 습속으로 바꾸고 그들의 추장이 되었다. 태백이 죽었으나 후사가 없어 그의 동생 중옹이 뒤를 이었다. 한편 주나라 본국에서는 계력(季歷)이 종사(宗社)를 잇고 문왕 창(昌)을 낳았다. 문왕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은 은나라를 멸하고 주왕조를 세운 후에 태백과 중옹의 자손을 찾았다. 그때 중옹의 자손인 주장(周章)은 이미 스스로 오나라의 군주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주장의 동생인 우중(虞仲)을 불러 옛 하나라의 고도(古都)인 지금의 하남성 평륙현(平陸縣)에 봉했다. 우중이 봉해진 나라의 이름이 우(虞)나라이다. 이어서 당진(唐晉)의 헌공 때 순식(荀息)이 펼친 가도멸괵 작전으로 멸망하고 당진의 영토에 복속 되었다. 이때가 헌공(獻公) 22년 기원전 655년의 일이었다. 이 나라가 가도멸괵(假道滅虢)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고사성어에서 당진에 길을 빌려주어 괵나라를 멸망케하는 우(虞)나라이다.


▶괵(虢)/ 주문왕(周文王)의 동생들인 중(仲)과 숙(叔)이 봉해진 나라이다. 춘추전국 시대 때 4개의 괵나라가 있었다. 각각의 연원과 소재지는 다음과 같다.


- 동괵 : 주문왕의 동생 숙(叔)이 봉해진 나라로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동북에 있다가 주평왕(周平王) 4년 기원전 767년 정무공(鄭武公)에 의해 멸망하고 정나라 영토에 편입되어 경성(京城)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괵/주문왕의 동생 중(仲)이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보계시(寶鷄市) 부근에 봉해진 나라로 서주가 망하자 나라를 지금의 하남성 섬현(陝縣) 이가요(李家窯)였던 상양성(上陽城)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북괵으로 고쳤다.

-북괵/서괵(西坆)이 상양성으로 옮긴 나라를 북괵이라 칭하고 영토는 지금의 하남성 삼문협시(三門陜市)에서 산서성 평륙(平陸)까지 넓혔다. 주혜왕(周惠王) 22년 (기원전 655년) 헌공(獻公) 치세 때인 당진(唐晉)의 순식(荀息)이 펼친 가도멸괵(假道滅坆)작전에 의해 멸망하고 당진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소괵/ 주나라가 동천할 때 따라가지 않고 남은 서괵(西坆)의 잔존 세력이 세운 나라를 소괵(小坆)이라 한다. 주장왕 10년인 기원전 687년 섬진(陝秦)의 무공에 의해 망하고 그 영토에 편입되었다.


" 괵국을 정벌할 수 있는 계책이 있는가?"


순식 " 우(虞)와 괵은 서로 화목하여 우리가 괵을 공격하면 우나라가 괵국을 도울 것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가 두 나라를 상대하는 것이니 신의 생각으로는 싸운다고 해도 반드시 이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


헌공 " 그렇다면 과인이 괵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단 말인가?"


순식 " 신이 듣기에 괵공은 여색을 지나치게 좋아한다 합니다. 주군께서 성의를 다하여 나라 안에서 많은 미녀들을 구하신 후에 노래와 춤을 가르친 다음 화려한 마차를 준비하여 태워서 괵공에게 바치며 우리를 낮추면서 화의를 신청하면 괵공은 틀림없이 기뻐하며 미녀들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괵공이 미녀들에게 빠지게 된다면 정사에 소흘 하게 되어 충성스러운 신하들과는 사이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견융에게 많은 재물을 주어 괵나라의 국경지방을 어지럽히게 한 후에 그 틈을 타서 우리가 공격을 한다면 괵국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헌공이 순식(荀息)의 계책을 받아들여 진나라 전국에서 많은 미녀들을 뽑아 가무를 가르친 후에 괵나라에 보내자 괵공이 기뻐하며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괵국의 대부인 주지교(舟之橋)가 간하면서 말했다.


" 이것은 진나라가 괵나라를 낚기 위한 낚시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그 미끼를 삼키시려고 하십니까?"


괵공은 주지교가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즉시 진나라와 화의를 맺었다. 이후로 괵공은 매일마다 낮에는 미녀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 탐닉하고 밤에는 여색을 접하게 되어 자연히 조정의 정사 일에는 소흘하게 되었다. 주지교(舟之橋)가 다시 간하자 괵공이 노하여 그를 하양성(下陽城)을 지키는 하양관(下陽關)이라는 곳으로 보내어 국경을 수비하도록 하였다. 이어서 당진(唐晉)은 견융(犬戎)에게 뇌물을 바쳐 괵나라를 공격하도록 시켰다. 당진의 뇌물을 받은 견융(犬戎)은 과연 괵나라의 국경을 침입하여 소란을 피우면서 위예(渭汭)의 땅까지 쳐들어 왔으나 군사들을 이끌고 출전한 괵공에게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견융주가 자기나라 돌아가 남은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다시 괵나라를 쳐들어 왔다.


▶위예(渭汭)/하수와 위수(渭水)가 합쳐지는 하수의 만곡(彎曲) 부의 시발점으로 지금의 섬서성 동관(潼關) 부근이다.


괵공은 위예(渭汭)의 싸움에서 승전한 것에 자신감을 갖고 견융의 군사를 막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나와서 상전(桑田)의 땅에서 견융군과 대치하였다.


▶상전(桑田)/ 지금의 하남성 영보시(靈寶市) 북쪽 황하 남안에 있었던 고을 이름.


당진의 헌공이 다시 순식에게 물었다.


" 이번에 괵이 상전(桑田)에서 견융과 대치하고 있는 틈을 타서 괵을 정벌하려고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순식 " 우와 괵의 사이가 아직 멀어지지 않아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에게 계책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먼저 괵을 취하고 다시 우를 멸할 수 있습니다."


헌공 " 어떤 계책인가?"


순식 " 주군께서 우(虞)나라에 재물을 후하게 주어 우리를 먼저 믿게 한 다음에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려 괵을 멸하는 것입니다. "


헌공 " 우리는 새로이 괵과 화친을 하여 정벌할 명분도 없는데 어찌 우(虞)나라가 우리나라를 믿고 길을 빌려주겠는가?"


순식 " 주군께서 몰래 남쪽의 변방을 지키는 관리에게 괵나라에 시비를 걸게 만든다면 괵의 변방을 지키는 관리는 반드시 우리나라를 비방하고 나설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핑계삼아 우나라에게 수호를 청하면 될 것입니다. "

헌공이 순식의 계책을 받아 들여 변방을 지키는 장수에게 괵나라의 변경을 침입하여 소란하게 만들었다. 과연 괵나라의 변방을 지키는 관리가 비난하면서 당진의 변경을 침입해 왔다. 두 나라 군사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괵공이 견융과 서로 대치 중에 있던 관계로 사태를 자세히 파악할 수 없었다. 헌공이 다시 순식에게 물었다.


" 드디어 우리가 괵을 정벌하는데 명분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과연 어떤 재화로 뇌물을 받쳐야 우나라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순식 " 우공은 그 성격이 본래 탐욕스러운 사람이라 천하의 보물이 아니면 우공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나라의 두 가지 보물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단지 주군께서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될 뿐입니다."


헌공 " 무슨 보물인지 경은 말해 보라."


순식 " 우공은 원래 벽(璧)과 양마(良馬)를 가장 좋아합니다. 주군께서는 수극지벽(垂棘之璧)과 네 필의 굴산지마(屈産之馬)가 끄는 수레가 있지 않습니까? 청컨대 이 두 가지 물건으로 우나라의 길을 빌려야 할 것입니다. 우공은 탐욕스러운 사람이라 옥과 명마에 욕심을 내어 우리의 계략에 떨어져 청을 들어 줄 것입니다."


헌공 " 그 두 물건은 다시없는 나의 보물인데 어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순식 " 신은 주군께서 두 가지 보물을 내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려 괵을 정벌한다면 우나라의 구원을 받지 못한 괵은 반드시 망하고 말 것입니다. 괵이 망하면 우나라는 혼자 존립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나라도 우리가 점령할 것인즉 그때 벽과 명마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단지 벽(璧)과 명마(名馬)를 밖에 있는 부고와 외양간에 잠시 맡겨 두는 것과 같은 일일 것입니다. "


대부 리극(里克)이 곁에 있다가 말했다.


" 우나라에는 궁지기(宮之寄)와 백리해(百里奚)라고 하는 두 사람의 현신이 있는데 모두 세상 이치에 밝아, 두 사람이 간하여 우리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순식 " 우공은 탐욕스럽고 어리석어 비록 두 사람이 간하더라도 절대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헌공이 즉시 벽과 명마를 순식에게 내주어 우공에게 바치도록 하였다.


우공(虞公)이 당진(唐晉)의 사신이 와서 괵을 정벌하기 위하여 길을 빌려달라는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매우 노하였으나 당진의 사신이 가져온 수극지벽(垂棘之璧)과 굴산지마(屈産之馬)를 보자 화를 가라앉히며 얼굴에는 금방 기쁜 기색을 띠었다. 우공이 손으로 벽을 만지면서 명마를 쳐다보며 순식에게 물었다.


" 이것들은 귀국의 갖고 있던 천하의 보물인데 어찌하여 나에게 주는 것인가?"


순식 " 우리 군주께서는 주군의 어진 마음을 평소에 흠모했을 뿐 아니라 우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감히 사사로이 이렇게 귀한 보물을 갖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대국에 바쳐 환심을 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공 "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것 아닌가?"


순식 " 괵나라가 여러 번에 걸쳐 우리의 남쪽 변경을 침략해와 사직이 위태롭게 생각되어 이렇듯 뜻을 굽혀 수호를 청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금일 우리와 괵국이 맺은 조약서의 글씨가 아직 마르기도 전임에도, 괵나라는 우리의 변경을 어지럽히면서 오히려 우리를 비난하고 있어 우리 군주께서 귀국의 길을 빌려 괵국을 토벌하여 그 죄를 묻고자 합니다. 다행히 괵국을 쳐서 승리를 한다면 노획하게 되는 모든 전리품은 군주께 바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군께서는 군주님과 우호관계를 맺고 영원토록 사이좋게 지내시려고 하십니다."


우공이 크게 기뻐하였다. 궁지기(宮之奇)가 듣고 나와서 간했다.


" 주군께서는 허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옛말에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리게 된다고 했습니다(순망치한="脣亡齒寒)." 당진(唐晉)이 자기들과 동성의 제후국을 멸하여 삼킨 것이 어디 한 두 나라뿐입니까? 유독 우와 괵 두 나라를 아직까지 삼키지 못한 것은 두 나라가 이웃에 연하여 있으면서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서로 도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괵국이 망하면 내일은 틀림없이 그 화가 우나라에 닥칠 것입니다.


우공 " 진나라 군주가 이렇게 귀중한 보물을 아까워하지 않고 과인에게 주어 이렇듯 나를 기쁘게 하는데 내가 어찌 몇 리의 길을 빌려주는 것을 아까워하면 되겠는가? 하물며 당진(唐晉)은 괵국보다 열 배나 강한 나라인데 괵나라를 버리고 대신 당진(唐晉)을 새로 얻는다면 어찌 그것이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그만 물러가서 나의 일을 더 이상 망치지 말라!"


궁지기가 다시 간하려고 하자 곁에 있던 백리해가 궁지기의 옷자락을 잡아끌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궁지기가 우공의 면전에서 물러 나와 같이 나온 백리해에게 말했다.


" 그대는 내가 주군에게 간하는 것을 거들지는 못할망정 어찌하여 막았는가?"


백리해 " 나는 듣기에 어리석은 자에게 좋은 말을 올리는 것은 마치 아름다운 구슬을 길거리에 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라의 걸왕(桀王)이 충신 관룡봉(關龍逢)을,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현신(賢臣) 비간(比干)을 죽인 것은 모두가 그 간함의 도를 높게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공의 안색을 살펴보니 대부가 위태롭게 느껴져서 말린 것입니다."


▶관룡봉(關龍逢)/하나라 마지막 왕인 걸왕 때의 충신으로 걸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살해 되었다.

▶비간(比干)/은나라 마지막 왕 주왕(紂王)의 숙부로서 주왕의 폭정을 여러 차례 간하다가 주왕이 노하여 성인(聖人)의 심장은 어떻게 생겼는지 본다고 비간을 죽여 그 시체를 갈라 간을 꺼내도록 했다.


궁지기 " 그렇다면 우나라는 반드시 망할 터인데 그대와 나는 다른 나라로 떠나야 될 것이 아닌가?"


백리해 " 대부께서 먼저 떠나시기 바랍니다. 만일 나라도 남아 있게 된다면 도망친 대부의 죄를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남아 있다가 기회를 봐서 천천히 떠나겠습니다."

계속

목록
7044
[일반] 백리해9. 90의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돌아간 건숙과 백리해

백리해 9. 90의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은퇴하는 건숙과 백리해 섬진의 목공이 정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세 장수의 비밀스런 보고를
양승국 04-05-11
[일반] 백리해8. 40년 만에 가족들과 재회하는 백리해

백리해8. 40년 만에 가족과 재회하는 백리해 한편, 백리해의 처 두(杜)씨는 그의 지아비가 길을 떠난 후 매일마다 천을 짜서 먹고살다가 후에
운영자 06-12-27
[일반] 백리해6. 의형(義兄) 건숙(蹇叔)을 진목공에게 천거하는 백리해

백리해6. 의형(義兄) 건숙(蹇叔)을 진목공에게 천거하는 백리해 진목공은 백리해가 재주가 매우 출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상경(上卿)
양승국 04-05-11
[일반] 백리해7. 백리해의 천거로 진나라에 출사하는 건숙

백리해7. 백리해의 천거로 섬진에 출사하는 건숙 건숙이 얼마동안 숨을 죽이고 나더니 탄식하면서 말했다. " 정백이 가슴에 품고 있던
운영자 06-10-03
[일반] 백리해3. 우공과 함께 당진에 포로로 잡혀가는 백리해

3. 우공과 함께 당진의 포로로 잡혀가는 백리해 우공이 순식의 계책(計策)에 떨어져 당진군(唐晉軍)을 이끌고 괵나라의 하양성을 향하여 진
운영자 06-12-26
[일반] 백리해4. 노예의 대열에서 탈출하여 초나라의 말을 기르는 말단관리가 되었다.

백리해4. 노예의 대열에서 탈출하여 초나라의 말을 기르는 말단관리가 되다. 이윽고 주지교의 진언을 받아들인 진헌공(晉獻公)은 백리해를 섬
운영자 06-12-26
[일반] 백리해5. 숫양가죽 5장의 몸값을 지불하고 백리해를 등용하는 진목공

백리해5. 숫양가죽 5장의 몸값을 지불하고 백리해를 등용하는 진목공 한편 섬진의 목공(穆公)이 당진(唐晉)에서 백희에게 딸려 보낸 몸종 중에
운영자 07-05-03
[일반] 백리해2 - 당진이 펼친 가도멸괵 작전에 의해 망하는 우(虞)나라

2. 당진의 가도멸괵(假道滅虢) 작전에 떨어진 우공(虞公) 우(虞)나라와 괵(虢)나라는 주왕실과 같은 희(姬) 성의
양승국 04-05-11
[일반] 백리해1 - 벼슬을 구하러 길을 나섰다가 거지가 된 백리해가 건숙을 만나다.

1. 벼슬을 구하러 길을 나섰다가 거지가 된 백리해가 건숙을 만나다. 백리해(百里奚)는 원래 우(虞)나라 사람으로서 자는 정백(井伯)이다. 나
운영자 06-12-26
[일반] 대기만성 백리해-들어가는 이야기

대기만성이라는 고사성어의 원 주인공은 강태공(姜太公)입니다. 그는 제가 보는 관점에서 봤을 때 참으로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양승국 04-05-11
[처음][이전][1][2][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