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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22:07:564332 
임기응변의 대가 안영 이야기1
양승국
일반

복숭아 두 개로 제나라의 세 장사를 죽이고 명장 사마양저(司馬襄苴)를 발탁, 제나라의 경공(景公)을 패자로 올린 안영(晏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안영의 활약을 소재로 쓰여진 책이 안자춘추입니다. 자는 평중(平仲)입니다. 열국연의 본문 69회 후반부에 나오는 안영의 임기응변이 인상적입니다.


중원의 제후들은 초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작은 나라는 군주가 직접 와서 내조(來朝)하고 큰 나라는 친선사절을 보내 인사를 드렸다. 초나라에 공물을 바치려는 사자들이 길거리에 줄을 이어 끊어지지 않았다. 그 래빙(來聘) 사절 중에 자(字)가 평중(平仲)이라고 부르는 제나라의 상대부 안영(晏嬰)이 있었다. 그는 제경공(齊景公)의 명을 받들어 초나라에 수호(修好) 사절로 오게 되었다. 초영왕(楚靈王)이 여러 군신들을 모이게 하고는 물었다.


" 안평중은 그 키가 불과 다섯 자에 불과하나 그 어진 이름은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 천하는 오로지 초나라만이 가장 세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과인이 안영을 욕보여 초나라의 위엄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경들은 무슨 좋은 계책이 없는가?"


태재(太宰) 원계강(薳啓疆)이 아무도 듣지 못하게 조용한 목소리로 영왕에게 상주하였다.


" 안평중(晏平仲)은 상대방의 말에 응대를 잘하는 사람이니 한번만의 일로써 그를 욕보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를 욕보이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방법을 써야 할 것입니다."


영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원계강(薳啓疆)이 한 밤중에 병졸들을 선발해 가지고 영도(郢都)의 동문 옆 성벽에 별도로 조그만 구멍을 뚫게 하였는데 그 높이는 겨우 다섯 자를 넘지 않게 하였다. 그런 다음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분부하였다.


" 제나라의 사신이 도착하거든 성문을 굳게 닫고 사자로 하여금 저 조그만 구멍을 통하여 들어오게 하라!"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안영이 몸에는 다 찢어진 갖옷을 걸쳐 입고 야위어 말라비틀어진 망아지가 끄는 조그만 수레를 타고 영성(郢城)의 동문에 당도하였다. 성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본 안영이 수레를 세우라고 한 다음 마부를 시켜 큰 소리로 문지기를 불러 성문을 열게 하였다.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성문 곁의 성벽에 나 있는 조그만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 대부께서는 저 구멍만으로도 들어오시고 남을 것입니다. 구태여 성문을 열 필요가 있겠습니까?"


안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


" 저것은 개가 다니는 개구멍이지 사람이 출입하는 문이 아니다. 개들이 사는 나라라 개문만 있는 것 같구나! 나는 사람이 사는 나라에서 온 사자라 사람이 다니는 문으로 들어가야만 되겠다."


문을 지키던 군사가 달려가 안영이 한 말을 영왕에게 전했다. 영왕이 듣고 말했다.


" 우리가 그를 희롱하려다가 오히려 우리가 그에게 희롱을 당했다."


영왕이 명하여 즉시 성문을 열어 안영을 맞이하라 했다. 안자(晏子)가 영도 안으로 들어와 성안을 구경하는데 성곽이 견고하고 시정은 조밀하여 진실로 인걸(人傑)은 땅에서 난다는 말처럼 영성은 진실로 강남의 빼어난 곳이었다. 송나라 학사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영형문(咏荊門)>이라는 시를 보면 영도의 번성함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游人出三峽(유인출삼협)

장강의 삼협을 나서기만 하면


楚地盡平川(초지진평천)

초나라 땅은 끝 간 데 없이 넓고,

그 하천은 평야를 한없이 흐른다.


北客隨南廣(북객수남광)

북쪽의 손님들은 남쪽의 넓은 땅으로 모여들고


吳檣開蜀船(오장개촉선)

오나라의 돛배는 서쪽의 촉나라로 향한다


江侵平野斷(강침평야단)

강물은 흘러 평야을 가르고


風掩白沙旋(풍엄백사선)

바람은 백사장을 맴도는데


欲問興亡意(욕문흥망의)

묻노니 나라의 흥망은 무슨 뜻인가


重城自古怪(중성자고괴)

중성은 옛날부터 괴이타 했다.


안영이 바로 영도의 풍물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병이 탄 병거 두 대가 성안의 큰 대로를 따라 달려 왔는데 병거 위에는 덩치가 크고 수염을 길게 기른 정예한 아주 풍채가 좋은 대한들이 타고 있었다. 대한들은 모두 투구도 선명하게 손에는 대궁(大弓)과 장극(長戟)을 잡고 서 있어 마치 하늘에서 천신(天神)이 내려 온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안영을 맞이하였다. 그것은 체구가 왜소한 안자를 비교해서 초라하게 보이려는 수작이었다. 안자가 대한들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 오늘 내가 온 것은 좋은 마음을 갖고 수호를 맺기 위해 온 것이지 서로가 싸움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닌데 너희 같은 무사들을 어디다 쓴단 말인가?"


안영이 큰 소리를 쳐서 옆으로 비켜서게 하고 마차를 몰아 곧바로 초왕이 사는 궁궐로 향했다. 이윽고 안영이 초나라 조정에 당도하자, 조문 밖에는 사람마다 모두 높은 관을 쓰고 큰 띠를 두른 초나라의 쟁쟁한 인재들이 두 줄로 열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안자(晏子)는 그 사람들이 모두 초나라의 호걸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황망히 수레에서 내렸다. 여러 군신들이 안자를 향해 서로 상견의 예를 취한 다음 다시 좌우로 늘어서서 순서에 따라 두 줄로 반열을 지어 초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반열 중에 한 젊은 사람이 나오더니 안평중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 대부께서는 이유(夷維) 땅의 안평중이 아닙니까?"


▶ 이유(夷維)/현 산동성 고밀현(高密縣)으로 안자(晏子)의 출신지


안평중이 보니 초나라의 교윤(郊尹) 벼슬을 하고 있는 투위구(鬪韋龜)의 아들 투성연(鬪成然)이었다. 안자가 대답했다.


"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대부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어 저를 깨우쳐 주시겠습니까?"


투성연 " 제가 들으니 제나라는 태공(太公)께서 봉해진 나라라


싸움은 당진(唐晉)과 섬진(陝秦) 두 나라와 겨룰 만하고 재화는 노(魯)와 위(衛) 두 나라에서 통할 정도로 넉넉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환공(桓公)께서 한번 패업을 이룬 뒤에는 그 후손들은 서로 군위를 찬탈하며 당진(唐晉)과 송(宋)나라로부터 번갈아 가며 정벌을 당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아침에는 당진에 저녁에는 초나라에 조빙(朝聘)을 다니느라 제나라의 군신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며 분주해 하고 있어 하루라도 편안할 날이 없는 것입니까? 지금 재위에 있는 제나라 군주의 포부는 환공에 못지않고 평중(平仲)의 현명함은 관중(管仲)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제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힘을 합하여 그들의 경륜을 크게 펼칠 생각을 하기는커녕 선인들의 위업을 빛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옛날 환공의 패업(覇業)을 진흥시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대국에 복종하여 받들며 스스로를 신복(臣僕)이라고 칭하고 있으니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진실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안자가 소리를 높여 큰 소리로 대답했다.


" 옛 말에 시무(時務)를 알고 있는 사람을 준걸(俊傑)이라 하고 변화무쌍한 하늘의 뜻에 통하는 자는 영웅호걸이라 했습니다. 주나라가 강령을 잃고 제후들을 다스리지 못하자 오패(五覇)가 잇달아 일어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습니다. 제(齊)와 당진(唐晉)은 중원에서 패업을 이루었고 섬진(陝秦)은 서융의 패주(覇主)가 되었고, 초나라는 남만의 여러 제후국들을 거느리게 되는 것은 그대도 잘 알고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처럼 호걸들이 차례로 나타나 그 위업을 이어 갔다고는 하나 그것은 역시 하늘의 운명이 시켜 그리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문공(晉文公)은 웅대한 지략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가 죽자 당진은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졌으며, 섬진의 목공은 견융(犬戎)의 패주가 되어 섬진을 강성한 나라로 만들었지만 그 자손들은 미약해 졌으며, 초장왕(楚庄王)의 후손들 역시 당진과 오나라로부터 수모를 받고 있습니다. 어찌 우리 제나라만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 군주께서는 하늘의 내린 운수의 성함과 쇠함을 알고 계시며 시무와 그 변화에 달통한 나머지 군사를 기르고 장수들을 훈련시키고 있으시면서 때가 되면 포부를 펴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제나라가 귀국과 수호를 맺기 위해 친선사절을 서로 교환하고 있는 것은 곧 천자의 법도에 정하고 있는, 이웃하고 있는 나라로써 왕래하는 예의를 갖춘 것뿐인데 어찌 신복(臣服)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대의 조부 자문(子文)은 곧 초나라의 이름난 신하라, 시무의 변화를 꿰뚫고 있는 분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혹시 그의 적손이 아닌지 의심스럽소! 어찌 그런 패역(悖逆)한 말을 이웃나라의 사신에게 함부로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투성연이 얼굴 가득히 부끄러운 기색을 띄우며 목을 움츠리고 물러갔다. 잠시 후에 다시 오른 쪽 반열에서 한 사람이 나와 안자를 향해 물었다.


" 평중은 스스로 시무에 능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제나라의 최저(崔杼)와 경봉(慶封)이 란을 일으켰을 때 가거(賈擧)를 포함하여 수많은 제나라 신하들이 죽음으로써 절의(節義)을 지키고 진문자(陳文子)는 십 승의 말도 버리고 나라 밖으로 도망쳐 최저와 경봉에게 항거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제나라의 대대로 내려온 대신의 집안사람이면서 능히 역적들을 토벌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벼슬을 버리고 몸을 피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목숨을 끊어 절개를 지키지도 않았으니 그것은 그대가 벼슬에 연연하여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 진문자(陳文子)/ 전제(田齊)를 새운 전상(田常)의 선조로써 진수무(陳須无)를 말함. 최저가 제장공(齊庄公)을 시해하자 가재를 다 버리고 송나라로 망명했다. 다시 경봉(慶封)이 최저를 죽이고 제나라의 정사를 독단하자 최저에 의해 추대된 경공의 명으로 송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진수무를 돌아오게 하였다. 진수무는 나이를 이유로 벼슬을 사양하고 그의 아들 진무우(陳无宇)를 대신 내 보냈다.



안자가 보니 그 사람은 곧 초나라의 상대부 양개(陽匃)였다. 자(字)는 자하(子瑕)라 하고 곧 목왕(穆王)의 증손(曾孫)이었다. 안자가 즉시 대답하였다.


" 옛 말에 큰 절개를 품고 있는 자는 사소한 진실에 구애되지 않으며 먼 앞의 일을 걱정하는 자는 눈앞의 일에만 매달려 있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 抱大節者, 不拘小諒, 有遠慮者, 勿固近謀


내가 들으니 임금은 사직을 위해 죽으면 신하는 마땅히 그 뒤를 따라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제나라의 선군이신 장공(庄公)께서는 사직을 위하다가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장공을 따라 죽은 사람은 모두 장공으로부터 사사로운 은혜를 입어 그 보답을 한 것입니다. 이 안영은 비록 가지고 있는 재주는 없으나 어찌 감히 몸을 측간의 곁에 두어 총신의 대열에 서서 목숨을 바쳐 그 이름을 팔 수 있었겠습니까? 이 사람은 신하된 자로써 나라가 위난에 처해 있을 때 능히 능력이 있으면 남아서 위난을 극복하고 능력이 없으면 물러나야 하는 것인데 내가 물러나지 않은 것은 새로이 재위에 오른 군주를 도와 종묘사직을 보전하자고 함이었지 그 벼슬을 탐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위난에 처해 있는데 사람마다 모두 가 버린다면 나라의 일은 누가 처리할 것이며 하물며 변란에 의해 군주가 바뀌는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조당에 열을 지어 서 있는 초나라의 여러 대신들인 그대들은 모두가 죽음을 무릅쓰고 역적을 토벌한 사람들입니까?"


이 마지막 한마디는 은연중에 지금 초영왕(楚靈王) 웅건(熊虔)이 어린 임금을 죽였으나 오히려 여러 신하들이 그를 초왕으로 추대한 것을 가리키며 단지 남의 잘못만을 알며 자기들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책한 것이다. 양개(陽匃)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물러갔다. 그러자 오른쪽 반열에서 다시 한 사람이 나오더니 큰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 평중(平仲)! 그대가 말하기를 '새로운 군주를 안정시키고 종사를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운운하는데 그 말은 지나치게 그대의 공을 부풀린 것이 아닌가? 최저(崔杼)와 경봉(慶封)이 작당하여 란을 일으키고 다시 란(欒), 고(高), 진(陳), 포(鮑)씨들이 패를 갈라 서로 싸워 나라를 혼란으로 빠뜨릴 때 그대는 팔짱을 끼고 관망만 했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힘이 아니었으면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온 마음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했다는 사람이 어찌 그와 같은 행동을 했었던 말이요?"


안영이 보니 그는 곧 자(字)를 자혁(子革)이라 하는 우윤(右尹) 정단(鄭旦)이었다. 안자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 그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구려! 최저(崔杼)와 경봉(慶封)이 같이 란을 일으켰을 때는 이 안영만이 홀로 그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고 다시 네 가문의 사람들이 서로 물고 뜯으며 서로 싸울 때는 이 안영은 우리 군주 곁에 있으면서 지켰오. 강할 때는 강하고 부드러울 때는 부드럽게 대처하고 임기응변의 묘를 발휘하여 군주와 사직을 보전하는데 주력을 했으니 이것이 어찌 팔짱만을 끼고 곁에서 방관했던 사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겠소?"


그러자 반열의 왼쪽에서 한 사람이 다시 나오더니 말했다.


" 대장부가 그 임금을 만남에 있어 시대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 또한 커다란 재주와 지략을 갖추고 있다면 반드시 그 행동거지도 폭이 넓어야 하거늘 이 어리석은 사람의 견해로는 그대는 한낱 인색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오!"


그 사람은 초나라의 太宰 벼슬을 하고 있던 원계강(薳啓疆)이었다. 안자가 물었다.


" 내가 어찌하여 인색한 사람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원계강 " 대장부는 밝은 임금을 찾아서 힘껏 모시어 상국의 벼슬을 차지하여 귀한 몸이 되어 당연히 아름다운 옷으로 몸을 치장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거마를 장식하여 군주에게 받은 은혜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되는 법이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다 헤어진 갖옷을 입고 비쩍 마른 말들이 모든 수레를 타고 나라를 대표하는 사신으로 외국에 나다니고 있으니 그것은 그대의 군주가 그대에게 봉록을 충분히 주지 않아서입니까? 내가 들으니 안평중(晏平仲)이라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입기 시작한 갖옷을 30년이 되어도 갈아입지 않고 제사를 지낼 때는 돼지다리 하나도 제사상에 올리지 못하게 한다고 하니 이것은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닌가?"


안자가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말했다.


" 그대의 식견은 어찌하여 그다지 천박한가? 이 영(郢)은 제나라의 재상의 자리에 앉은 이래로 우리 안씨(晏氏) 족속들에게 모두가 갖옷을 입게 만들었고 외가 쪽에는 모두 고기를 먹게 하고 또한 처가에도 은혜를 베풀어 찬 음식을 안 먹어도 살 수 있게 하였오. 지금도 나의 고향에는 이 안영이 횃불을 들고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벼슬을 하지 않고 있는 인사들이 칠십여 호나 있습니다. 우리 집은 비록 검소하게 지내고 있다 하나 나와 관계가 있던 삼족들은 모두가 풍족하게 살고 있으니 내 몸은 비록 말랐다 하나 여러 선비들을 흡족하게 만들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군주에게서 받은 은혜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있으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안영이 말을 마치자 다시 오른쪽 반열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더니 안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 내가 듣기에 성탕(成湯)은 신장이 아홉 자에 달하는 거인에 어진 임금 노릇을 했으며 옛날 섬진(陝秦)의 자상(子桑)은 그 힘이 만 명의 장정을 당할 수 있는 거한이라 명장(名將)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오. 옛날의 명군이나 영달(榮達)한 선비들은 모두가 그 신체가 우람하고 그 포부와 용기는 세상을 덮을 수 있어 자기의 시대에 능히 공을 세우고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길 수 있었습니다. 오늘 그대의 신체를 보니 그 키가 불과 다섯 자가 넘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힘은 닭 모가지도 비틀지 못할 정도로 연약한데 헛된 말만 늘어놓아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으니 정녕 스스로 부끄러움을 모른단 말입니까?"


▶ 자상(子桑)/ 당진 제후의 먼 친척으로 섬진 공자집(公子縶)의 추천을 받아 섬진의 목공에게 출사했던 공손지(公孫枝)의 자(字). 백리해를 목공에게 천거하였고 후에 백리해의 뒤를 이어 섬진의 재상을 지낸 사람이다. 본서 25회 내용 참조


안자가 보니 그 사람은 바로 공자진(公子眞)의 손자로써 자를 자상(子常)이라고 하는 낭와(囊瓦)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현재 초왕 밑에서 차우장군(車右將軍)의 직에 있었다. 안영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 내가 들으니 저울추는 비록 작으나 천근을 잴 수 있으며 배의 삿대는 비록 가늘고 길기만 하지만 커다란 배를 앞으로 나가게 합니다. 교여(僑如)의 신장은 비록 10자가 넘었으나 노나라의 장수에게 잡혀 주륙(誅戮)을 당했고 남궁장만(南宮長万)은 그 힘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었지만 송나라로 잡혀가 죽임을 당했소. 그대의 체구(體軀)도 역시 우람하여 비슷하니 어찌 그들의 운명과 다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소? 이 안영(晏嬰)은 스스로 무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단지 그대가 묻기에 대답한 것뿐이며, 어찌 내가 감히 변설로써 자존망대(自尊妄大)할 수가 있겠소?"


▶ 교여(僑如)/본서 47회에 나오는 적주(翟主) 백돈(白暾) 휘하의 장수로써 신장(身長)이 한장 오척에 달하는 거인(巨人)이었다. 적주 백돈이 교여(僑如)를 시켜 노나라를 침략하게 하자 노나라의 문공(文公)은 숙손득신(叔孫得臣)과 부보종생(富父終甥)을 시켜 막게 하였다. 교여(僑如)는 부보부종생(富父終甥)의 유인(誘引) 작전(作戰)에 걸려 그들이 파 놓은 함정(陷穽)에 빠져 죽었다.


안영이 대답을 마치자 시자가 들어와 고했다.


" 영윤(令尹) 원파(薳罷)께서 들어오십니다."


조당에 있던 초나라의 여러 군신들이 두 손을 올려 읍하고 원파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오거(伍擧)가 원파와 같이 조문(朝門)으로 들어오더니 안자(晏子)를 향해 읍을 하였다. 오거가 조당에 모여 있던 초나라의 여러 대부들을 향하여 말했다.


" 안평중(晏平仲)은 제나라의 어진 선비인데 여러분들은 어찌하여 쓸데없는 말로써 그에게 수고로움을 끼지는 것입니까?"


그리고 시간이 잠시 흐르자 영왕이 들어와 전당(殿堂)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오거가 안자를 인도하여 초왕을 접견하게 했다. 영왕이 안자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짜고짜로 물었다.


" 제나라에는 원래부터 사람이 없는가?"


안자 " 제나라에는 사람들이 숨을 쉬면 김이 서려 구름이 되고 땀을 흘리면 비가 됩니다. 길을 걸으면 어깨가 부딪치고 서 있으면 서로 발꿈치를 밟게 될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어찌 사람이 없다 하십니까?"


영왕 "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 같은 소인을 사자로 우리나라에 보냈는가?"


안자 " 우리나라에는 사자를 타국에 보낼 적용하는 법이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어진 나라에 못된 사람은 못된 나라에 사자로 보내고 또한, 소인은 소인들이 사는 나라에 대인은 대인들이 사는 나라에 사자로 보내고 있습니다. 신은 소인이며 또한 제나라에서 제일 못된 사람이라 초나라에 사자로 온 것입니다."


영왕이 듣고 매우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으나 마음속으로는 한편 놀라기도 하였다. 접견의 의식이 끝나자 마침 성밖 교외의 백성이 합환귤(合歡橘)을 바쳐왔다. 영왕이 먼저 귤을 한 개 먼저 꺼내어 안영에게 주었다. 안영이 귤을 받아 들자 껍질도 까지 않고 그대로 먹어 버렸다. 영왕이 보더니 박수를 치며 웃었다.


" 제나라 사람들은 귤도 먹을 줄 모르는가? 어찌하여 껍질도 벗기지 않고 그대로 먹는가?"


안영 " 신은 듣기에 ' 군주로부터 하사 받은 참외나 복숭아는 깍지 않고 그대로 먹어야 하며 귤과 밀감은 껍질을 까지 않은 채로 먹어야 한다'라 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내리신 귤은 저의 군주가 하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대왕께서 저에게 껍질을 까서 먹으라고 하지도 않으셨는데 어찌 제가 하사하신 과일을 모두 먹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영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안영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안영에게 자리를 권하고 술을 내오게 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술자리가 시작되고 얼마가 지나자 무사 서너 명이 포승줄에 묶인 죄수 한 사람을 끌고 전당 밑을 지나갔다. 영왕이 갑자기 무사들을 향하여 물었다.


" 그 죄수는 어디 놈이냐?"


무사 " 제나라 출신입니다."


영왕 " 무슨 죄를 지었느냐?"


무사 " 남의 물건을 훔치다 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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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異說) 조씨고아(趙氏孤兒) 이야기 조씨고아 즉 조무(趙武)에 관한 이야기는 <좌전(左傳)>과 <사기(史記) 12제후연표>
양승국 04-05-11
[일반] 모택동전법과 기원전 565년 당진의 순앵이 착안한 이일대로 전법 비교

다음은 모택동이 그의 유명한 게릴라전 사대전법을 착안했다는 순앵(荀罃)의 이일대로(以逸待勞) 전법 원문 이다. >>>>>&
양승국 04-05-11
[일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의 귀감- 동호필(董狐筆)과 태사간(太史簡)

- 동호(董狐)와 태사씨(太史氏)들- 중국인들의 사서를 기록하는 자세는 참으로 치열하다. 글자 하나에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양승국 04-05-11
[일반] 무령왕과 호복기사-2

전국칠웅 중, 조나라는 전국말기 유일하게 진나라의 세력에 대항할 수 있었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였다. 그것은 무령왕이라는
양승국 04-05-11
[일반] 무령왕과 호복기사-1

무령왕 19년 기원전 306년 봄 정월에 신궁(信宮)에서 백관들로부터 조하를 받았다. 비의(肥義)를 불러 천하의 일을 논하다가 5일 만에 끝마쳤다.
양승국 04-05-11
[일반] 연리지(連理枝)

송나라의 강왕(康王)이 하루는 봉부(封父) 빈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뽕 밭에서 뽕을 따던 여인의 자태가 매우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 주변의 청릉 (2)
양승국 04-05-11
[일반] 옛날 중국의 양치기들 이야기

  옛날 중국의 양치기들 이야기 (1)삼인성호(三人成虎) - 세 사람이 말하면 호랑이가 있다. 방총(龐葱)이라는 위(魏)나라의
양승국 04-06-25
[일반] 삼고초려(三顧草廬)와 양보음(梁父吟)

옛날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가 여러 지방을 유랑하면서 유력한 세력가들에게 빌붙어 다니다가 당시 양양성 부근의 융중에 은거하던 제갈공명을
양승국 04-12-01
[일반] 소순(蘇洵)의 관중론(管仲論)

관중론(管仲論) 관중이 환공(桓公)의 재상이 되어 환공이 제후의 패자(覇者)가 되게하고, 오랑캐도 물리쳐서 그가 죽을 때까지는 제나라를 부강 (1)
양승국 04-12-30
[일반] 음악의 효용성

350.《樂》樂所以立, 《악경(樂經)》은 사람이 서야 할 곳을 노래로 표현함으로 351.故長于和(고장우화); 화목하게 하는데 뛰어난 점이
양승국 05-02-26
[일반] 고금취상(鼓琴取相) - 거문고에 빗대 치국의 도를 설파한 추기

고금취상(鼓琴取相) - 거문고에 빗대 치국의 도를 설파한 추기 - 제위왕(齊威王)1)이 왕의 자리에 새로 올랐으나 매일 주색과 풍악소리에만
양승국 0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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