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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04 18:05:254723 
한사군2. 요동반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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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가 고조선을 멸하고 설치했다는 한사군의 요동반도설....


한사군(漢四郡)은 위만조선이 기원전 108년 전한(前漢)에 의해 멸망당한 후에 한무제가 그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군현이다. 과거에는 사서의 기록을 따랐으나, 현재의 사학계에서는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교과서에서 그 명칭을 삭제하였다.


1. 생성 및 소멸, 의의

(1) 기록상의 한사군

위만조선 멸망(기원전 108년) 후 낙랑군(樂浪郡), 임둔군(臨屯郡), 진번군(眞番郡), 현도군(玄菟郡)의 4군이 설치되었는데, 토착민들의 반발이 거세어 [[기원전 82년]]에 이르러 진번군은 낙랑군, 임둔군은 현도군에 편입하여 평주도독부와 동부도독부의 2부로 개편하였다.


(2) 최근의 인식

*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사》에서는, '한사군은 동북아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20여 년 동안 대부분 중국 본토로 철수하고 낙랑군만이 평안도 일대에 남아 한나라와의 교역을 관리하는 무역기지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언급 외에는 한사군에 대한 설명이 모두 삭제되었다.


* 위만조선의 강역이 한반도에 미치지 않았다'는 의견과 함께 한사군의 위치도 한반도 바깥에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대동강 일대에서 한나라의 유물들이 발굴되나, 부장품에는 토착문화에 해당되는 유물이 섞여져 있어, 그 해석에 신중함이 요구된다.


(3) 과거의 인식

한사군은 일제강점기 때에 조선의 식민지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부각시킨 것이다.

기록상으로는 서기 중국의 삼국시대인 206년에는 낙랑을 독자적으로 지배하던 공손강이 진번군 자리에 대방군(帶方郡)을 설치하였고, 313년에는 서진 멸망시 낙랑이 고구려에게 점령당하고 4세기 경에는 현토가 연나라의 공격을 받아 점령된 것으로 되어 있어 마치 수백 년 간 한사군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초기의 고구려는 한사군과 밀접한 지역에 위치하여 한사군과의 투쟁 속에 성장하였으며, 예나 맥, 그리고 삼한도 한사군에 대항하였고, 한사군은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국가의 성립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을 각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이 덧붙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동강 일대의 유물은 대체로 전한이 아닌 후한의 것들이고, 삼국사기에도 후한의 시기에 한나라가 낙랑을 공격하여 점령한 기록이 남아 있어, 유물들은 이 시기에 남겨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2. 문헌

(1) 사기(史記)

〈조선열전〉은 위만조선의 멸망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사군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축정조선 위사군(蓫征朝鮮 爲四郡)"이라고만 기록하였다. "조선을 정벌하고 사군을 설치했다."라고 쓴 것이다. 낙랑·현도·진번·임둔의 한사군 지명과 위치조차 거론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ref.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김삼웅, 인물과 사상사, 2004년, 82쪽</ref>


(2) 한서(漢書)

《사기((史記)》보다 180년 뒤에 쓴 반고의 《한서》역시 사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 적다시피하고 있다. 다른 것이라면 한사군의 명칭을 명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진번·임둔·낙랑·현도의 사군(四郡)을 두고 삼(參)을 봉하여 획청후를 삼고, 한도(韓陶)로 추저후(秋苴侯)를 삼고, 협(峽)으로 평주후(平州侯)를 삼고, 장(長)으로 기후(幾侯)를 삼았다"고 쓴 것이다.<ref.《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김삼웅, 인물과 사상사, 2004년, 82-83쪽</ref>


(3) 무릉서(武陵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적은 책이라는데 그는 한사군전쟁 이전 10년에 죽은 자이다. 그가 한사군의 위치를 장안(長安)으로부터 5,000-6,000리 떨어져 있다고 적었다고 중국의 주해자들이 말하는데, 이를 믿고 요사이에도 '무릉서에 따르면' '무릉서의 이수에 따르면'을 앞세우며 한사군을 반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학자들이 많다.<ref>《한단고기》, 임승국 번역·주해, 정신세계사, 1986년, 354-355쪽</ref>


(4) 이홍직 편, 《국사대사전》

"사군 설치 당초의 위치 및 강역은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여러 학자들 사이에 오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학설이 구구한 것은 진번군의 경우이다. 먼저 낙랑군은 위씨조선의 고지(古地)를 중심으로 하여 대체로 평안남도의 대부분과 황해도의 일부에 걸쳐 자리잡고 있었는데 설치 당시의 속현 수는 11현이었다. … 낙랑군치의 소재지에 대해서는 문헌상으로 지금 평양이 조선의 왕검성 또는 고구려의 서울이었던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 낙랑군치가 있었던 곳이라고 추론되고 있으나, 이에 반대해서, 평양 대안(對岸)의 토성리를 꼽는 고고학자들의 견해도 유력하다"<ref>《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김삼웅, 인물과 사상사, 2004년, 83쪽</ref>


<출전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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