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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23 16:04:415227 
베일에 싸인 신비의 왕국, 고조선
운영자



학계 건국시기-도읍위치 등 주장엇갈려…

'요동 중심설' 지지 얻어




고조선은 민족사의 원류로 인식되었던 까닭에 역사학자나 일반인 모두의 높은 관심 속에 지속적으로 조명되어 왔다. 고조선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얼마나 큰 나라였는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았을 문제다. 그러나 학자들마다 백가쟁명하여 일반인의 궁금증만 부풀려놓았을 뿐, 명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고조선에 관한 사료가 적고 고조선의 무대가 오늘의 우리나라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학문적 이유 외에, '민족의 영광'이라는 학문 외적인 문제가 가로놓여 있는 고조선 연구가 갖는 특수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단군 조선의 건국 시기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개국시기는 중국의 요 임금과 같다'고 한 이래 고조선의 건국시기는 민족의 자존심과 관련되는 문제로 인식돼 왔다. 오늘의 학계에서도 기원 전 4∼5세기 경에 건국되었으리라는 신중론에서부터 기원 전 3000년 경에 이미 건국되었다고 보는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단군 왕검이 다스리던 아사달 사회는 신석기문화의 전통을 강하게 지닌 초기 청동기사회이며, 부족연맹 형태를 띤 일종의 신정국가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초기 국가의 성립연대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는 고조선의 초기 중심을 대동강 유역에 둔 결과,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상한선인 기원 전 10세기를 넘지 못하였던 까닭에 단군신화에 반영된 고조선의 건국 기년을 입증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를 만주의 요하 유역으로 보면서부터 어느 정도 그 시기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는데, 대체로 고조선의 건국시기는 요동지역의 청동기 문화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커지고 있다.

북한 학계는 요동반도의 강상, 누상 유적을 통해 노예제 국가로서의 고조선 건국시기를 기원 전 1000년대 전반기로 보았으며, 우리 학계는 요녕 지역의 비파형 동검문화에 주목하여




▲은·주 왕국 유민의 동래 시기인 기원 전 1100년쯤이나

▲요동지역에서 청동기 문화가 개화한 기원 전 1500년

▲요서의 하가점하층 문화가 개시된 기원 전 2000년 등으로 보는 견해를 제기했다.

한편, 최근의 북한 학계는 단군릉 조성을 계기로 고조선 개국시기를 기원 전 3000년쯤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오차범위가 커서 역사 이전 지질시대를 측정하는 데 쓰이는 '전자 스핀 공명법'을 이용한 단군릉 측정방법의 정확성 문제 등 의문점이 허다해 받아들이기 힘든 실정이다.

▶고조선의 중심위치는 어디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에 대한 문제는 항상 논쟁의 초점이었다. 때로는 고조선의 중심을 대동강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요동으로 볼 것인가 하는 역사지리적 논쟁이 학문 차원을 떠나 애국심 논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요동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북한 학계의 견해가 무비판쥑으로 수용되어 논쟁의 폭이 보다 확대되었다. 현재로는 크게 대동강 중심설, 요동 중심설, 이동설로 대별된다.




대동강 중심설은 종래 학계의 통설인데 이러한 설에 동조하는 경우 마치 식민주의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오해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주된 이유는 일본 학자들이 고조선의 중심을 대동강 유역으로 고정함으로써, 그들에 의해 한국사의 무대가 반도 내부로 축소·왜곡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의 중심을 대동강 유역으로 보는 견해는 일본의 창작성 연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고조선의 중심을 대동강 유역으로 본 견해는 고려시대부터이며, 조선 시대에 들어와 보다 체계화되어 오늘날 학계에 이어진 것이다.

최근 북한 학계도 단군릉 조성을 계기로 그간 끈질기게 주장해오던 요동 중심설을 포기하고 대동강 중심설로 급선회하고, 나아가 대동강 유역이 민족문화의 발상지라는 대동강 문화론으로 확대하고 있다. 우리 학계에서도 요동 중심설을 주장하던 일부 학자들이 종래의 견해를 수정, 북한의 주장에 동조함으로써 고조선 연구는 새로운 국면에 돌입하게 됐다.




요동 중심설은 1920년대 민족주의 사학자들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어 오늘날 고조선의 중심을 만주 지역으로 주장하는 것이 마치 이를 계승한 것처럼 오해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조선의 요동 중심설은 이미 조선 시대부터 논의되어 오던 것으로,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이를 계승하였으며 60년대 이후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북한 학계의 주류를 이루었다.

요동지역의 고고학적 성과와 북한 학계의 요동 중심설에 자극을 받아 우리 학계도 비파형 동검, 미송리형 토기 등 고고학적 유물의 분포와 문헌사료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를 요동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기원 전 3∼4세기 쯤에 대동강 지역으로 이동하였다는 이른바 이동설이 제시되어 80년대 이후 우리학계의 대표적인 견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얼마나 큰 나라였을까.

고조선의 중심위치 못지않게 고조선의 강역 또한 관심의 대상이다. 고조선은 아테네와 같은 도시국가였는지, 아니면 로마와 같은 대제국이었는지 밝히고 싶은 것이다. 일부에서는 고조선은 출발부터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 걸친 대제국이었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활동무대이지 고조선의 국가영역은 아니다. 이런 견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성격에 대한 설명이 전제되어야 한다. 영역의 크기는 그 사회가 가지는 문화수준과 사회구성 능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조선이 환상의 국가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라고 한다면, 고조선은 형성부터 멸망까지 동일한 성격을 지닌 국가일수는 없다. 세계 유수의 고대문명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아사달로 불리운 성읍국가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통일제국과 정면으로 맞섰던 대 고조선 왕국 시대로 발전한 생동하는 구체적인 실체다.




우리 최초의 국가인 '아사달'은 단군 왕검이 다스렸던 도시국가로, 여러 차례 도읍을 옮겼던 까닭에 그 영역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현재 대략적인 강역추정은 이렇다.




'단군조선은 하가점하층 문화(중국 동북지역 최초의 청동기문화)를 배경으로 하여 요하 유역의 어느 지역, 즉 후대에 조선으로 불리게 된 아사달을 중심으로 기원 전 2000년대 전반부터 신정국가적 성격을 지닌 도시국가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기원 전 1100년을 전후하여 기자를 비롯한 은과 주 세력이 대릉하 유역에 등장함에 따라 이들과 대립하고 항쟁하면서 도읍을 옮기기도 하였으나, 은과 주의 동진을 요하 부근에서 저지하고 기자국이 소멸한 뒤로는 다시 고토인 아사달을 회복하고 중원세력과 대립하였다.'




기원 전 1000년을 전후하여 고조선은 신성국가에서 벗어나 칸(한) 칭호를 사용하는 대군장이 지배하는 연맹국가로 발전하고, 빠르면 기원 전 8세기쯤, 늦어도 기원 전 4∼5세기쯤에는 조선이란 국가명칭을 사용하는 중앙집권적 왕국으로 성장해 중원의 왕조와 각축하게 된다.




이 시대 고조선의 문화중에서도 요녕지역과 한반도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비파형 동검 문화가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비파형 동검은 분포 범위가 넓고 유형이나 성격이 다양해 그것이 문화권인지 고조선의 정치적 세력권을 나타내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현재의 학계는 이를 요서의 하가점상층 문화, 요동의 비파형 동검 문화, 길림의 서단산 문화, 한반도의 세형동검 문화권 등으로 대체적인 정리를 하고 있으나, 그 뿌리에 관하여는 동호라든가 예맥, 조선, 숙신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혼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요하와 대동강 일대에 밀집분포하는 고조선의 미송리형 토기가 새로이 주목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토기는 주재료인 점토가 장시간이 지나도 소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화 담당자의 성격을 시대적, 지역적으로 비교적 민감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문헌사료와 이러한 고고학적 연구성과를 토대로 고조선 왕국과 교섭하였던 주변 제 민족의 위치를 고려하여 살펴보면, 전성기 고조선의 강역은 대체로 요동반도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대릉하 유역에서 동호와 만나고, 남쪽으로 대동강 유역을 경계로 진번, 진국과 이웃하며, 북쪽과 동쪽으로는 부여 숙신 임둔과 접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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